근원을 고쳐야 합니다   (열왕기하 2장 19-22절)

본문 : 열왕기하 2장 19-22절
19 그 성 사람들이 엘리사에게 고하되 우리 주께서 보시는 바와 같이 이 성읍의 터는 아름다우나 물이 좋지 못하므로 토산이 익지 못하고 떨어지나이다
20 엘리사가 가로되 새 그릇에 소금을 담아 내게로 가져오라 하매 곧 가져온지라
21 엘리사가 물 근원으로 나아가서 소금을 그 가운데 던지며 가로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이 물을 고쳤으니 이로 좇아 다시는 죽음 이나 토산이 익지 못하고 떨어짐이 없을지니라 하셨느니라 하니
22 그 물이 엘리사의 말과 같이 고쳐져서 오늘날에 이르렀더라


이스라엘의 영적 지도자였던 엘리야가 승천을 한 후 엘리야의 뒤를 이어 엘리사가 영적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그가 지도자가 된 후에 첫 번째 한 일이 여리고의 물을 고쳐주는 일이었습니다. 여리고는 요단강의 영향을 받아서 터가 아름다웠지만 물이 좋지 못해서 토산이 익지 못하고 떨어졌습니다. 여리고성 사람들은 엘리사에게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부탁을 받은 엘리사는 새 그릇에 소금을 담아 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소금을 물 근원에 뿌리자 물이 고쳐지게 되고 물이 고쳐지니 토산이 고쳐지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가르쳐주고 싶으신 가장 중심적인 메시지는 주님은 치료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엘리야는 세례요한을 보여주는 인물이고 엘리사는 예수님을 보여주는 인물입니다. 엘리사가 영적 지도자가 된 후 첫 번째 보인 표적이 물을 고치는 표적입니다. 이 사건은 우리의 영과 혼과 몸과 생활과 관계까지 고치는 주님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출 15장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나옵니다. 광야를 횡단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라에서 쓴물을 만나게 됩니다. 물이 써서 마실 수 없게 되자 모세가 하나님께 부르짖고 응답을 받습니다. 그리고 응답대로 하나님께서 지시하시는 한 나뭇가지를 물에 던지자 쓴물이 단물로 변하게 됩니다. 그리고 출 15:26에서 하나님께서 자신을 계시해 주시는데 "나 여호와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고 하십니다.
우리 주님은 이 땅에 오셔서 수많은 환자들을 만나셨고 성령의 능력으로 그들을 치료해주셨습니다. 지금도 성령은 동일하게 역사하시며 믿는 자들을 통해서 사람들의 영혼과 정신과 육체와 환경까지 치료하십니다. 지금도 치료하신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문제는 주님이 이루어 놓으신 이 객관적인 사실에 대해서 인간이 어떻게 반응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제가 늘 말씀드리는 것처럼 진수성찬이 차려져 있어도 먹어야 배부릅니다. 먹지 않는 사람은 여전히 배가 고픈 것입니다. 주님의 치료의 역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이 내게 적용이 되어야 합니다.
그럼 어떻게 적용할 수 있습니까? 본문에서 여리고의 물 근원이 어떻게 해서 고쳐졌는가를 살펴보므로 자신의 문제를 고치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1. 문제를 인식해야 합니다(19절).
문제를 인식하기 위해서는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문제를 바로 봐야 문제를 바로 인식할 수있습니다. 그런데 물은 눈으로 문제가 있는지 없는지 인식하기 어렵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문제도 우리의 눈으로 인식하기 어렵습니다.
본문에서는 문제를 인식하는 방법으로 겉만 봐서는 안 되고 열매를 봐야 한다고 가르쳐줍니다. 여리고 성은 아름다웠지만 토산이 익지 못하고 떨어졌습니다. 그 열매를 통해서 물에 문제가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나는 어떻습니까? 성령의 열매는 맺고 있습니까? 사업의 열매는 어떻습니까? 인간관계의 열매는 풍성합니까? 그냥저냥 먹고 사는데 지장 없고 세상 사는데 불편함이 없다고 나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 앞에 섰을 때 내놓을 열매가 있습니까? 다섯달란트 두달란트 받은 사람들처럼 주님과 계산할 때 내놓을 열매가 있습니까? 만약 없다면 여리고성이 가진 문제를 나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교회는 어떻습니까? 나름대로 열매를 맺고 있다고 하지만 초대교회와 비교하면 어떻습니까? 무엇인가 부족하지 않습니까? 부족해도 조금 부족한 것이 아니라 많이 부족하다고 느끼지 않습니까? 우리 성도들 가운데는 우리 교회가 상당히 은혜가 있고 비전이 있다고 느끼는 분들이 많습니다. 교회를 사랑하고 목회자를 사랑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그렇지만 냉정하게 초대교회와 비교해 봅시다. 저는 우리교회가 초대교회에 비교하면 아직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다른 교회가 표준이 아니고 성경적인 교회 하나님이 디자인 하신 예루살렘교회가 표준입니다.
우리나라는 어떻다고 생각합니까? 세계 10대 무역국가가 되었고, 약 5만개의 교회가 여리고성 옆으로 흘러갔던 요단강물처럼 흐르고 있지만 도덕적인 수준이나 영적인 열매가 풍성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매년 신학교를 졸업하는 사람이 1만 명이 넘고 한국교회의 1년 예산이 3조원이 넘지만 세상에도 교회 안에도 에스겔의 환상을 통해서 본 것처럼 마른 뼈들로 가득하지 않습니까?
여리고의 문제는 물 근원의 문제였습니다. 근원이 고쳐지니 물이 고쳐졌고 물이 고쳐지니 토산이 고쳐졌고 여리고가 고쳐졌습니다. 우리의 문제는 돈의 문제도, 땅의 문제도 아닙니다. 우리의 문제는 건물의 문제도 사람의 숫자의 문제도 아닙니다. 근원의 문제입니다. 인간의 가장 깊은 곳 즉 영혼의 문제인 것입니다.
제가 가슴 아프게 생각하는 것은 우리의 문제는 지도자의 문제입니다. 열리고의 문제를 진단하고 여리고의 물 근원을 고쳤던 엘리사와 같은 지도자가 없는 것입니다. 제가 그런 지도자가 되고 싶습니다. 영풍이라는 책에 보면 늙고능력이없어모든 교회에서 밀려나 마지막으로 시골로 가던 "마른 막대기 목사"라는 별명을 가진 목사가 있었습니다. 힘없이 이삿짐 차 뒤를 맥없이 따라가다가 길가에 있는 조그마한 시골교회에 들어가서 애통하며 시간가는 줄 모르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내게 권능을 주옵소서"라고 기도하던 중 그는 새로운 힘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새로 부임한 교회에 가서 행한 첫 번째 설교에서 얼마나 힘 있게 설교를 했는지 교인들이 기뻐서 서로 말하기를 "마른 막대기에 불이 붙었다"고 말했습니다.
요즘 저는 저에게 다시 한번 성령의 바람이 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한번 오순절의 불이 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를 위해서 기도해주세요. 저에게는 하나님의 불이 필요합니다.

2.주님 앞에 기도해야 한다.
문제를 가지고 변론하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안 됩니다. 막 9장에 보면 귀신들린 아이를 고치지 못한 제자들이 변론만 하고 있었는데 그 변론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문제를 가지고 교회나 다른 사람을 비판하는 것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문제만 더 키울 뿐입니다.
여리고 성 사람들은 엘리사에게 문제를 가지고 나아갔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엘리사는 예수님을 보여주는 인물입니다. 우리의 문제를 가지고 주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기도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면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말씀을 보내시며 우리를 고치사 위경에서 건져주십니다.
우리가 기도하고 응답받는 간단한 진리에 순종하지 않기 때문에 성경은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기도와 응답에 대해서 교육하고 있습니다.
워치만니는 젊었을 때 몸이 심히 연약하여 의사로부터 청년시절을 넘기지 못하고 죽을 것이라는 선고를 받았습니다. 이 때문에 그는 몸을 낫게 해주십사고 하나님께 늘 기도 드렸습니다. 한번은 그가 꿈을 꾸었습니다. 그가 배를 타고 양자강을 거슬러 올라가는데 강 한가운데 이를 즈음 큰 바위가 걸려 더 이상 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 이 배가 지나가게 하여 주옵소서" 하고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하늘에서 "사랑하는 아들아, 내가 이 바위를 옮겨 버릴까. 그렇지 않으면 물이 불어 네가 지날 수 있게 해주련?" 하는 음성이 들렸습니다. 그는 "하나님, 물이 점점 불어서 지나갈 수 있도록 하여 주옵소서"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순식간에 바위가 안보일 만큼 물이 불어 올랐고 그는 그 위를 유유히 지나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꿈을 깼습니다. 꿈을 깨고 나서 그는 자신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부활의 생명을 넘치게 얻어 그 병을 날마다 극복하며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의사는 그에게 청년시절을 못 넘기고 죽을 것이라고 하였지만 그는 중국 기독교 역사상 지울 수 없는 큰 발자취를 남기며 80살이 넘도록 살았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동안 우리에게 고난의 가시가 다가옵니다. 우리는 이 고난의 가시를, 보다 큰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동기로 삼고 신앙생활을 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문제를 놓고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의 응답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이 풀어주실 것입니다.

3.새 그릇을 준비해야 한다.
엘리사는 여리고 사람들에게 새 그릇에 소금을 담아오라고 말했습니다. 왜 새 그릇에 담아오라고 했을까요? 근원을 고치는 방법을 가르쳐 주기 위한 숨겨진 메시지가 있는 것입니다. 새 그릇은 하나님의 백성을 의미하며 새 그릇으로 물 근원을 고치셨듯이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 세상을 고치는 것입니다. 우리의 책임이 큰 것입니다.
그럼 구체적으로 새 그릇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1)거듭난 사람이 새 그릇입니다.
고후 4:7에 보면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 말하는데 여기서 그릇은 인간을 말하고 보배는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다는 말은 사람이 거듭났다는 의미입니다. 거듭난 사람은 그 중심에 그리스도를 모시고 사는 것입니다.
인간의 문제를 고치는 것은 영혼의 변화에서 시작됩니다. 영적인 변화가 없이 환경의 문제만 고쳐지는 것은 뿌리가 병들어서 열매 없는 나무를 뿌리는 고치지 않고 가지에 열매만 매달아놓는 것과 같습니다. 영혼의 변화는 거듭남으로 시작됩니다.
사회적인 문제도 영적인 문제로 인한 열매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회를 변화시키려면 영적 변화가 먼저 일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전에는 그렇게 좋았던 여리고의 물이 병들게 된 것은 영적인 원인 때문입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선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우상숭배를 했습니다. 엘리야와 엘리사 같은 선지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상숭배를 했습니다. 그 결과 여리고의 물에 문제 즉 환경의 문제가 발생하게 된 것입니다.
이 사회를 고치려면 교회만 다니는 교인의 숫자가 아니라 영적인 변화를 경험한 거듭난 사람의 숫자가 늘어나야 합니다.

2)부서지고 다시 만들어진 사람이 새그릇입니다.
렘 18:4에 보면 "진흙으로 만든 그릇이 토기장이의 손에서 파상하매 그가 그것으로 자기 의견에 선한대로 다른 그릇을 만들더라"고 하는데 여기서 토기장이는 하나님을 보여주며, 질그릇은 하나님의 손에 잡힌 사람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질그릇과 같은 사람을 선택하셔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릇으로 만들기를 원하십니다.
토기장이는 기존의 그릇을 자신이 원하는 그릇으로 만들기 위해서 깨버립니다. 망치로 두들겨 깨든지 바닥에 집어던져 깨버립니다. 그리고 완전히 고운 가루가 되도록 두들깁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택하신 사람을 하나님이 원하시는 새 그릇으로 만들기 위하여 망치로 두들기고 바닥에 집어던지고 완전히 가루가 되도록 패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그릇으로 만드신다는 선한 목적을 가지고 두들기고 깨뜨리고 박살을 내지만 우리는 그것이 너무나 괴로운 일입니다. 하지만 잘 견디면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좋은 그릇으로 새롭게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난이 유익입니다.

3)더러운 것을 씻어낸 깨끗한 사람이 새 그릇입니다.
잠 25:4에 "은에서 찌끼를 제하라 그리하면 장색의 쓸만한 그릇이 나올 것이요"라고 말합니다. 새 그릇이 되기 위해서는 찌기를 제거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잘 만들어진 그릇처럼 보이는데 하나님께 사용되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은 별 볼일 없는 그릇처럼 보이는데 하나님 앞에 귀하게 쓰임을 받습니다. 그 이유는 깨끗한 그릇이냐 더러운 그릇이냐의 차이인 것입니다.
딤후 2장에서는 큰 집에는 여러 종류의 그릇이 있는데 귀히 쓰는 그릇도 있고 천히 쓰는 그릇도 있습니다. 21절에서는 귀히 쓰임 받는 이유에 대해서 말합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

4.소금이 있어야 합니다(20절).
엘리야는 새 그릇에 소금을 담아오라고 했습니다. 소금은 여러 가지 의미를 담고 있는데 여기서 소금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의미합니다. 레 2:13에서는 "네 하나님의 언약의 소금"이라고 했으며, 민 18:19에서는 레위인들에게 주시는 약속을 "변하지 않는 소금 언약"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문제를 풀기 위해서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약속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고 믿어지면 말씀의 능력으로 문제가 풀립니다. 100세 된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의 언약이 임하자 아들 이삭을 낳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우리에게도 말씀이 임해야 문제가 풀리는 것입니다.

5.소금을 던져야 합니다
우리가 소금을 가지고 있어도 물에 던지지 않으면 짤 수 없는 것처럼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가지고 있어도 그 말씀을 전하지 않으면 변화는 없습니다.
지금 세상은 온통 여리고성이 가진 문제처럼 수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문제의 해답은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 외에는 없습니다. 세상은 문제의 해결을 원하지만 답을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문제를 볼 수 있는 눈도 있으며 문제를 해결할 하나님의 말씀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들고 세상 앞에 서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자랑스러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복음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물에 빠져 죽어가는 사람을 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자랑스러운 일입니다. 복음을 증거하는 일도 자랑스러운 일입니다.
물에 빠져 죽어가는 사람을 건지는 일은 위험한 일입니다. 잘못하면 사람 건지려다가 내가 죽는 일도 있습니다. 그런데 복음을 전하는 일은 위험한 일이지만 안전합니다. 왜냐하면 복음을 전하면 사단이 공격하기 때문에 위험하나 사단의 능력을 제어하실 수 있는 주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에 안전한 것입니다.

출처/마경훈목사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