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나리 꽃이 너무 화사하고 예뻐서 꽃을 어루만지며 감탄을 하였다. 지난 겨울이 너무 추웠고 눈도 유난히 많이 오고 꽃샘 추위까지 기승을 떨어 길고 지루하게 느껴졌기 때문일까? 올해처럼 봄이 기다려지고 꽃이 그리웠던 적이 없던것 같다.

해마다 4월 둘쨋주에 시행하는 봄 정기노회를 예전처럼 평창수양관에서 하지 않고 저 남쪽 통영의 리조트를 빌려서 하게된 이유중의 하나가 아랫녘에 만개된 봄꽃을 조금이라도 빨리 보고 싶은 조급한 마음을 달래기 위함도 있었다.

나는 꽃들을 보고 어루만지면서 ‘얘들아, 너희들 이렇게 예쁘게 피워줘서 너무 고맙구나. 지난 겨울 그 모진 추위를 견뎌내느라 얼마나 고생이 많았니?’- 하며 칭찬과 격려를 해 주었다. 이내 나의 마음은 지금도 혹독한 겨울을 맞아 이기기 위해 애쓰는 성도들에게 향하며 조금만 더 인내하며 참아주길 마음속으로 응원하며 기도를 하게 된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 이런 만물에게도 새 봄의 소생을 허락하시는 우리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들에게 새 봄을 주시지 않을 리가 없다는 믿음 때문에 열심히 기도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해 본다. 그런데 봄꽃이 아쉬운 것은 꽃을 피우는 날이 그리 길지 않음에 있다.

이것은 아마도 혹독한 고난을 이기고 난 후에 쉽게 배은망덕하지 말라는 뜻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본다. 통영엘 도착하니 만개된 벚꽃이 터널을 이루며 너무너무 아름다웠는데 끝무렵이어서인지 하루가 다르게 꽃잎이 떨어지며 3박4일의 일정이 끝나고 나니 어느새 그 화려한 모습이 시들게 되었다.

그런데 교회로 돌아오는 길에 보니 통영에서 시들었던 벚꽃이 북으로 올라갈수록 다시 부활한듯 장소를 옮겨 피운듯하여 귀경길 내내 아름다운 꽃길을 달려오게 되었다.

지난 겨울 몹시 추울땐 빨리 지나가길 바랬으나 더욱 화사하고 아름답게 핀 봄꽃을 보며 지난 겨울의 고난의 유익을 깨닫게 되고 예쁜 봄꽃 바라보며 인내의 축복을 보는것 같아 기뻐하나 얼마 피어있지 않음을 보며 겸손과 감사의 마음을 가져야 겠다는 깨달음을 얻게 한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지난 겨울의 추위는 봄꽃만 피우는게 아니고 아카시아와 장미같은 여름꽃과 국화와 코스모스 같은 가을꽃까지 아름답게 피우도록 더욱 단단하게 해 준다는 사실이다.

이번주는 고난 주간이다. 예수님께서 온 인류에게 생명의 꽃을 피게 하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온갖 고난 받으시는 혹독한 고통을 통해 이 세상에 태어나는 온 인류중 믿는자들에게 생명의 꽃을 피워주시니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이란 말인가!

오 주여!

지난 겨울을 잊지 않게 하소서

그리고 배은 망덕하지 않게 하소서

(주후 이천십일년 사월 셋째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