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 전 , 대관령에 있는 양떼목장에서 목장주로부터 들었던 말이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라는 세례요한의 외침과 오버랩 되면서 늘 나를 숙연케 한다.

그는 양떼목장을 경영하면서 한쪽에 양고기 음식점을 차려놓고 기르던 양을 도살하면서 죽일때마다 소름끼치도록 느꼈던 양의 성스러움 때문에 결국 양고기 음식점을 포기 했다는 것이었다.

혹 그가 기독교인이 아닐까 하여 조심스럽게 물었으나 자신은 현재 무신론자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자기가 느끼는 양이란 동물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성스러움을 가졌다는 것이었다.

대게 모든 동물은 살해의 위협을 느끼면 본능적으로 살기위해 발버둥을 치며 안간힘을 쓰는데 자기가 양을 죽이기 위해 선택하면 마치 자신은 죽기위해 태어난 것처럼 그 죽음을 운명처럼 받아 들이면서 눈만 껌벅일 뿐 미동도 하지 않고 죽음의 순간을 받아 들인다는 것이었다.

양의 목부분의 급소를 예리한 칼로 찌르면 곧 죽기에 양처럼 죽이기 쉬운 동물이 없는데 몇 마리를 잡다보니 죽이는 자신이 그만 그 양의 성스러움에 놀라서 더 이상 죽일수가 없었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의 말을 들으면서 사53:7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라는 예수님에 대한 예언의 말씀이 생각이 나서 마음이 숙연해 졌었다.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 보내셨던 예수님을 양으로도 말씀하시면서 동시에 이 땅에서 구원받는 우리들은 ‘하나님께서 기르시는 양이라’(시100:3)고도 하셨다. 이는 구원받을 양들로 하여금 우리를 위해 죽기까지 순종하셨던 양으로 오신 예수님과 같은 순종의 양이 되라는 메시지 일텐데 나는 과연 양으로 오셨던 예수님을 본받고 있는가?

어느 덧 흘러버린 이십 여년의 목사로서의 삶에 익숙해져서 혹시 하나님 앞엔 양이라는 존재를 망각하고 있진 않은가?

우리의 목자이시면서도 하나님앞엔 철저하게 양으로서의 양면의 삶을 사신 예수님을 보며 나는 혹시 목자 역활만 닮으려고 하진 않은지 자신을 되돌아 보았다.

양떼목장에서 돌아와 함께 했던 목사님 사모님들과 예배를 드리며 이 말씀을 전하다 그만 목이 메어 울어버렸던 그날을 잊지 말아야겠다. 결코 잊지 말아야겠다.

오! 주여

양떼 목장의 경험을 잊지 않게 하소서

하나님 앞엔 죽기까지 순종해야 할 양임을 기억하게 하소서

(주후 이천십일년 오월 다섯째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