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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을 발하라 (사 60:1-3)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에게 우리 주님의 평화가 가득 넘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두 주일에 걸쳐서 저는 여러분에게 "일어나라"는 제목으로 설교했습니다. 한번은 오랜 포로 생활 끝에 돌아온 고향에서 절망하던 이스라엘 백성을 격려하는 말씀이었고, 다른 한번은 회당장 야이로의 죽은 딸을 살린 말씀입니다. 오늘은 다시 처음의 본문으로 돌아가려고 합니다. 여기서 이사야는 동족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스라엘 백성이 절망을 딛고 일어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어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일어나는 이유가 있어야 할 것이 아닙니까? 단지 일어나기 위해 일어나는 사람은 없습니다. 물론 바닥을 기어다니다가 처음으로 일어난 어린 아기의 경우에는 일어나는 것만으로 기쁜 일이 되겠지만, 우리 어른에게는 그저 일어나는 것만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아무런 목적도 없이 일어나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오늘 본문에서 이사야는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여 왜 "일어나라"고 외칩니까? 빛을 발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여기서 빛이란 무엇이며, 빛은 무슨 역할을 합니까? 빛은 물론 발광체로부터 나오는 밝은 광선을 말하지만, 여기서는 분명히 하늘에서 빛나는 해와 달과 별이나 사람들이 나무나 초를 태워 만드는 그런 자연적인 빛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여기서 빛은 이보다 더 깊은 뜻을 갖고 있습니다. 빛은 무엇보다 생명을 의미합니다. 지구의 모든 생명체들도 빛을 의지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빛을 등지고 살아가는 생명체도 없진 않지만, 대개 생명체들은 빛을 받아야만 성장하고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이 땅에서 1억 년 이상이나 왕성한 활동을 하던 거대한 동물 공룡이 지구에서 완전히 사라진 이유가 무엇입니까? 먹이가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왜 갑자기 먹이가 사라졌습니까? 거대한 혹성이 땅에 충돌한 결과로 거대한 먼지 구름이 일어났고, 이 구름이 하늘을 온통 가려서 태양 빛을 차단함으로써, 지구 생명체들이 더 이상 살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빛은 이 땅의 생명에도 필수적인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이사야가 "빛을 발하라."고 말할 때, 이 빛은 무엇보다도 생명을 말합니다. 이 땅의 생명만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말합니다.
그리고 빛은 진리를 의미합니다. 빛이 없으면, 우리는 사물을 분간할 수 없습니다. 어둠 속에서 우리는 무엇이 옳고 그른지, 무엇이 길이고 무엇이 벼랑인지를 분간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어둔 길을 갈 때마다 늘 불을 밝힙니다. 그리고 어두운 곳에서 사람을 인도하는 것은 빛입니다. 옛날의 뱃사람들은 하늘의 별을 보고 항해했고, 요즘 사람들도 좋은 나침반과 레이더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등대를 의지합니다. 이처럼 빛은 거짓된 길, 길이 아닌 길을 드러내고, 참 길로 인도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이름을 알 수 없는 어느 시편 기자도 빛과 진리를 동시에 말합니다. "주의 빛과 주의 진리를 보내어 나를 인도하사, 주의 성산과 장막에 이르게 하소서"(시 43:3). 이사야가 "빛을 발하라."고 말할 때, 이 빛은 또한 진리를 말합니다. 이 땅의 희미한 진리만이 아니라 참 진리를 말합니다.
빛은 또한 영광과 기쁨과 소망을 의미합니다. 이사야는 빛과 영광을 나란히 말합니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사 60:1). 옛날부터 탁월한 공을 세운 사람들은 빛나는 훈장을 받고, 밝은 조명을 받습니다. 어둠은 마음을 상하게 하지만, 빛은 기쁨을 가져다줍니다. 이처럼 영광도 사람들에게 기쁨을 줍니다. 또한 빛은 소망을 의미합니다. 절망에 빠진 사람은 어둠 속으로 숨으려고 하지만, 소망에 넘치는 사람은 빛으로 나옵니다. 아니 소망으로 넘치는 사람의 얼굴에는 빛이 납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뜻은 바로 그들이 만방의 빛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제자들은 향해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마 5:14-16)고 말씀하셨습니다. 빛은 가만히 있지 못합니다. 빛은 빛을 냄으로써만 빛의 가치를 발합니다. 말로만의 사랑은 아무 것도 아니듯이, 울리지 않는 종은 아무 소용이 없듯이, 빛을 내지 않은 빛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아니 빛을 내지 않는 것은 이미 빛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과 예수의 제자들의 사명은 바로 빛을 발하는 데 있습니다.
빛을 발한다는 것은 곧 선교의 사명을 실천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교회는 두 가지 방법으로 선교의 사명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 밤에 불을 밝히면, 온갖 벌레들이 날아옵니다. 이처럼 교회가 빛을 발하면, 어둠 속에 있는 사람들이 이 빛을 보고 저절로 찾아옵니다. 이것을 한 마디로 '구심적 선교'라고 합니다. 중심으로 모으는 선교라는 말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한 장소에서 빛을 조용히 낼 수도 있지만, 때로는 어둠 속으로 빛을 가지고 들어갈 수 있습니다. 밤길을 갈 때, 어둠 속에서 잃은 물건을 찾을 때, 어둠 속에서 "도와달라"는 소리가 들릴 때, 불을 밝혀서 이동해야 합니다. 이처럼 교회는 가만히 앉아서 세상을 향해 빛을 발할 수도 있지만, 세상 속을 들어가 빛을 밝힐 수도 있습니다. 이것을 한 마디로 '원심적 선교'라고 합니다. 바깥으로 흩어지는 선교라는 말입니다. 구약 시대의 사람들은 구심적 선교, 즉 이방 사람을 끌어 모으는 선교를 주로 했다면, 신약의 시대부터는 원심적 선교, 즉 이방 사람을 향해 나아가는 선교를 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빛은 어디서 나옵니까? 스스로 빛을 내는 것도 있지만, 대개는 다른 빛을 받아서 반사합니다. 밤하늘의 많은 별들 중에도 스스로 빛을 내는 별이 있는가 하면, 다른 빛을 받아서 반사하는 별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 예수님의 제자들, 교회가 내는 빛은 어떤 빛입니까? 스스로 내는 빛입니까? 아닙니다. 생명과 진리와 영광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옵니다. 그래서 이사야는 말합니다.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이스라엘이 발하는 빛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빛입니다. 그는 오직 이 빛은 받아서 반사할 따름입니다. 스스로 빛을 내지 못하고 오직 태양 빛을 반사하는 달처럼 성도는 하나님의 빛을 받아야만 빛을 발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스스로 빛을 내려고 안달할 필요가 없습니다. 스스로 빛이 된 것처럼 자처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직 빛을 향해 방향을 돌리기만 하면 됩니다. 빛이 아무리 찬란히 비추어도, 빛을 바라보지 않거나 빛을 등지는 사람은 빛은 받을 수 없고, 그래서 빛을 반사할 수도 없습니다. 거울이 빛을 반사하려면, 빛을 향해 바라보아야 합니다. 이처럼 성도가 세상의 빛이 되려면, 빛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거울은 자신을 위해 존재하지 않습니다. 거울은 빛을 반사하기 위해 존재합니다. 그래야만 어둠을 밝힐 수 있고, 거울을 보는 사람을 비출 수 있습니다. 이처럼 교회는 교회를 위해 존재하지 않습니다. 교회는 세상을 위해 존재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교회는 세상을 향해 하나님의 빛을 비추기 위해 존재합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세상을 향해 작은 천국이 되어야 하고, 작은 천국을 비추는 거울이 되어야 합니다. 20주년을 바라보는 우리 교회는 세상을 향해 어떤 빛을, 어떻게 비추어야 하겠습니까? 무슨 거창한 일을 하려고 하기 전에, 무슨 큰 계획을 세우기 전에, 대단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기 전에 먼저 온 몸으로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를 향해 비추시는 하나님의 빛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먼저 온 몸과 온 뜻을 다해, 온 정성과 목숨을 다해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배해야 합니다.
그렇게 한다면, 하나님의 빛은 자연히 우리를 통해 빛나게 될 것입니다. 빛을 비추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우리는 저절로 빛을 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먼저 열심히 모이고, 열심히 예배합시다. 열심히 기도하고, 열심히 찬양합시다. 빛은 빛이 되기를 중단하는 법이 없습니다. 오직 깨어진 거울, 더러워진 거울만이 빛을 반사하지 못합니다. 만약 우리 교회가 깨어지거나 더러워졌다면, 먼저 깨끗이 씻습니다. 진심으로 회개합시다. 그리고 하나님의 빛을 온전히 반사합시다. 그리고 빛을 반사하려면, 일어나야 합니다. 누워있는 거울은 빛을 제대로 반사할 수 없습니다. 더욱이 엎드려 있는 거울은 빛을 전혀 반사할 수 없습니다. 이처럼 성도가 빛을 발하려면, 빛을 향해 일어나야 합니다. 그리고 온 몸으로 빛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래서 온 몸이 바로 빛이 되어야 합니다. 스스로 빛이 되지는 못하지만, 마치 자신이 빛인 것처럼 온 몸으로 빛을 발해야 합니다. 말과 행실이 빛이 되어야 합니다. 인격과 삶이 빛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빛입니다. 그러므로 빛을 발해야 합니다. 그러자면, 먼저 일어나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향해 일어납시다. 그리하여 세상 사람들이 우리의 행위를 보고,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게 해야 합시다. 우리의 빛을 보고, 하나님에게 돌아오게 합시다. 우리의 빛 때문에 주위가 밝아지고, 주위가 기쁨과 소망으로 넘치도록 일어나 빛을 발합시다. 일어나십시오. 하나님의 빛이 여러분을 향해 비추고 있습니다. 한번 같이 외치겠습니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출처/이신건 목사 설교 중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에게 우리 주님의 평화가 가득 넘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두 주일에 걸쳐서 저는 여러분에게 "일어나라"는 제목으로 설교했습니다. 한번은 오랜 포로 생활 끝에 돌아온 고향에서 절망하던 이스라엘 백성을 격려하는 말씀이었고, 다른 한번은 회당장 야이로의 죽은 딸을 살린 말씀입니다. 오늘은 다시 처음의 본문으로 돌아가려고 합니다. 여기서 이사야는 동족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스라엘 백성이 절망을 딛고 일어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어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일어나는 이유가 있어야 할 것이 아닙니까? 단지 일어나기 위해 일어나는 사람은 없습니다. 물론 바닥을 기어다니다가 처음으로 일어난 어린 아기의 경우에는 일어나는 것만으로 기쁜 일이 되겠지만, 우리 어른에게는 그저 일어나는 것만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아무런 목적도 없이 일어나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오늘 본문에서 이사야는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여 왜 "일어나라"고 외칩니까? 빛을 발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여기서 빛이란 무엇이며, 빛은 무슨 역할을 합니까? 빛은 물론 발광체로부터 나오는 밝은 광선을 말하지만, 여기서는 분명히 하늘에서 빛나는 해와 달과 별이나 사람들이 나무나 초를 태워 만드는 그런 자연적인 빛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여기서 빛은 이보다 더 깊은 뜻을 갖고 있습니다. 빛은 무엇보다 생명을 의미합니다. 지구의 모든 생명체들도 빛을 의지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빛을 등지고 살아가는 생명체도 없진 않지만, 대개 생명체들은 빛을 받아야만 성장하고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이 땅에서 1억 년 이상이나 왕성한 활동을 하던 거대한 동물 공룡이 지구에서 완전히 사라진 이유가 무엇입니까? 먹이가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왜 갑자기 먹이가 사라졌습니까? 거대한 혹성이 땅에 충돌한 결과로 거대한 먼지 구름이 일어났고, 이 구름이 하늘을 온통 가려서 태양 빛을 차단함으로써, 지구 생명체들이 더 이상 살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빛은 이 땅의 생명에도 필수적인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이사야가 "빛을 발하라."고 말할 때, 이 빛은 무엇보다도 생명을 말합니다. 이 땅의 생명만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말합니다.
그리고 빛은 진리를 의미합니다. 빛이 없으면, 우리는 사물을 분간할 수 없습니다. 어둠 속에서 우리는 무엇이 옳고 그른지, 무엇이 길이고 무엇이 벼랑인지를 분간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어둔 길을 갈 때마다 늘 불을 밝힙니다. 그리고 어두운 곳에서 사람을 인도하는 것은 빛입니다. 옛날의 뱃사람들은 하늘의 별을 보고 항해했고, 요즘 사람들도 좋은 나침반과 레이더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등대를 의지합니다. 이처럼 빛은 거짓된 길, 길이 아닌 길을 드러내고, 참 길로 인도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이름을 알 수 없는 어느 시편 기자도 빛과 진리를 동시에 말합니다. "주의 빛과 주의 진리를 보내어 나를 인도하사, 주의 성산과 장막에 이르게 하소서"(시 43:3). 이사야가 "빛을 발하라."고 말할 때, 이 빛은 또한 진리를 말합니다. 이 땅의 희미한 진리만이 아니라 참 진리를 말합니다.
빛은 또한 영광과 기쁨과 소망을 의미합니다. 이사야는 빛과 영광을 나란히 말합니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사 60:1). 옛날부터 탁월한 공을 세운 사람들은 빛나는 훈장을 받고, 밝은 조명을 받습니다. 어둠은 마음을 상하게 하지만, 빛은 기쁨을 가져다줍니다. 이처럼 영광도 사람들에게 기쁨을 줍니다. 또한 빛은 소망을 의미합니다. 절망에 빠진 사람은 어둠 속으로 숨으려고 하지만, 소망에 넘치는 사람은 빛으로 나옵니다. 아니 소망으로 넘치는 사람의 얼굴에는 빛이 납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뜻은 바로 그들이 만방의 빛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제자들은 향해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마 5:14-16)고 말씀하셨습니다. 빛은 가만히 있지 못합니다. 빛은 빛을 냄으로써만 빛의 가치를 발합니다. 말로만의 사랑은 아무 것도 아니듯이, 울리지 않는 종은 아무 소용이 없듯이, 빛을 내지 않은 빛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아니 빛을 내지 않는 것은 이미 빛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과 예수의 제자들의 사명은 바로 빛을 발하는 데 있습니다.
빛을 발한다는 것은 곧 선교의 사명을 실천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교회는 두 가지 방법으로 선교의 사명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 밤에 불을 밝히면, 온갖 벌레들이 날아옵니다. 이처럼 교회가 빛을 발하면, 어둠 속에 있는 사람들이 이 빛을 보고 저절로 찾아옵니다. 이것을 한 마디로 '구심적 선교'라고 합니다. 중심으로 모으는 선교라는 말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한 장소에서 빛을 조용히 낼 수도 있지만, 때로는 어둠 속으로 빛을 가지고 들어갈 수 있습니다. 밤길을 갈 때, 어둠 속에서 잃은 물건을 찾을 때, 어둠 속에서 "도와달라"는 소리가 들릴 때, 불을 밝혀서 이동해야 합니다. 이처럼 교회는 가만히 앉아서 세상을 향해 빛을 발할 수도 있지만, 세상 속을 들어가 빛을 밝힐 수도 있습니다. 이것을 한 마디로 '원심적 선교'라고 합니다. 바깥으로 흩어지는 선교라는 말입니다. 구약 시대의 사람들은 구심적 선교, 즉 이방 사람을 끌어 모으는 선교를 주로 했다면, 신약의 시대부터는 원심적 선교, 즉 이방 사람을 향해 나아가는 선교를 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빛은 어디서 나옵니까? 스스로 빛을 내는 것도 있지만, 대개는 다른 빛을 받아서 반사합니다. 밤하늘의 많은 별들 중에도 스스로 빛을 내는 별이 있는가 하면, 다른 빛을 받아서 반사하는 별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 예수님의 제자들, 교회가 내는 빛은 어떤 빛입니까? 스스로 내는 빛입니까? 아닙니다. 생명과 진리와 영광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옵니다. 그래서 이사야는 말합니다.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이스라엘이 발하는 빛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빛입니다. 그는 오직 이 빛은 받아서 반사할 따름입니다. 스스로 빛을 내지 못하고 오직 태양 빛을 반사하는 달처럼 성도는 하나님의 빛을 받아야만 빛을 발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스스로 빛을 내려고 안달할 필요가 없습니다. 스스로 빛이 된 것처럼 자처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직 빛을 향해 방향을 돌리기만 하면 됩니다. 빛이 아무리 찬란히 비추어도, 빛을 바라보지 않거나 빛을 등지는 사람은 빛은 받을 수 없고, 그래서 빛을 반사할 수도 없습니다. 거울이 빛을 반사하려면, 빛을 향해 바라보아야 합니다. 이처럼 성도가 세상의 빛이 되려면, 빛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거울은 자신을 위해 존재하지 않습니다. 거울은 빛을 반사하기 위해 존재합니다. 그래야만 어둠을 밝힐 수 있고, 거울을 보는 사람을 비출 수 있습니다. 이처럼 교회는 교회를 위해 존재하지 않습니다. 교회는 세상을 위해 존재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교회는 세상을 향해 하나님의 빛을 비추기 위해 존재합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세상을 향해 작은 천국이 되어야 하고, 작은 천국을 비추는 거울이 되어야 합니다. 20주년을 바라보는 우리 교회는 세상을 향해 어떤 빛을, 어떻게 비추어야 하겠습니까? 무슨 거창한 일을 하려고 하기 전에, 무슨 큰 계획을 세우기 전에, 대단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기 전에 먼저 온 몸으로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를 향해 비추시는 하나님의 빛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먼저 온 몸과 온 뜻을 다해, 온 정성과 목숨을 다해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배해야 합니다.
그렇게 한다면, 하나님의 빛은 자연히 우리를 통해 빛나게 될 것입니다. 빛을 비추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우리는 저절로 빛을 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먼저 열심히 모이고, 열심히 예배합시다. 열심히 기도하고, 열심히 찬양합시다. 빛은 빛이 되기를 중단하는 법이 없습니다. 오직 깨어진 거울, 더러워진 거울만이 빛을 반사하지 못합니다. 만약 우리 교회가 깨어지거나 더러워졌다면, 먼저 깨끗이 씻습니다. 진심으로 회개합시다. 그리고 하나님의 빛을 온전히 반사합시다. 그리고 빛을 반사하려면, 일어나야 합니다. 누워있는 거울은 빛을 제대로 반사할 수 없습니다. 더욱이 엎드려 있는 거울은 빛을 전혀 반사할 수 없습니다. 이처럼 성도가 빛을 발하려면, 빛을 향해 일어나야 합니다. 그리고 온 몸으로 빛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래서 온 몸이 바로 빛이 되어야 합니다. 스스로 빛이 되지는 못하지만, 마치 자신이 빛인 것처럼 온 몸으로 빛을 발해야 합니다. 말과 행실이 빛이 되어야 합니다. 인격과 삶이 빛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빛입니다. 그러므로 빛을 발해야 합니다. 그러자면, 먼저 일어나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향해 일어납시다. 그리하여 세상 사람들이 우리의 행위를 보고,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게 해야 합시다. 우리의 빛을 보고, 하나님에게 돌아오게 합시다. 우리의 빛 때문에 주위가 밝아지고, 주위가 기쁨과 소망으로 넘치도록 일어나 빛을 발합시다. 일어나십시오. 하나님의 빛이 여러분을 향해 비추고 있습니다. 한번 같이 외치겠습니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출처/이신건 목사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