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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 있는 백성 (이사야 43:15~21)
인류 역사상 가장 머리 좋은 과학자 다섯 사람이 대한민국에 이민을 와서 살았습니다. 그중에 에디슨이 있었는데 이 사람은 한국에 와서 자꾸 학력이 문제가 됩니다. 초등학교 졸업밖에 못했습니다. 그러니까 이력서만 넣으면 학력 때문에 취직이 안 됩니다. 또 서류심사가 통과되어도 면접을 하면 또 떨어집니다. 학력이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아인슈타인은 세계적인 천재입니다. 수학에 대해서는 이 사람을 따라갈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수능시험을 통과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아인슈타인도 대학문턱에도 못가고 별 볼일 없는 사람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뉴턴은 대학교수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대학마다 이 뉴턴을 전부 퇴출시킵니다. 왜냐하면 논문을 제출하면 다른 대학교수들이 더없이 이해를 못하니까 이 사람을 싫어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대학 저 대학에서 퇴출만 당하고 교수노릇도 못하고 있었습니다.
갈릴레이란 사람도 대단히 예리한 과학자인데 이 사람은 하도 정부의 과학정책에 대해서 비판을 하니까 도저히 출세를 하지 못합니다. 한 곳도 환영하지 않습니다.
유일하게 여자로서 퀴리부인이 있는데 이도 얼마나 머리가 비상하고 예리한지 모릅니다. 서류심사에서는 언제나 일등입니다. 성적이 아주 우수한데 퀴리부인도 전혀 한국에서는 통하지 않습니다. 면접만 보면 탈락입니다. 왜냐하면 얼굴이 받혀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어느 사람도 실패를 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제가 가끔 개업예배를 드립니다만 개업하는 사람이 실패를 원하면서 개업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 개업을 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투자를 했습니까? 얼마나 많은 기대를 가지고 있습니까? 이 사업을 통해서 꿈을 가지고 개업을 합니다. 또 지금 국가고시를 보기 위해서 매달리는 사람들이 수 십 만명이고, 공무원 시험에 매달리고 있는 사람들의 숫자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문학의 꿈을 가진 사람도 많습니다만 누구나 이문열이나 최인호 같은 사람이 되는 게 아닙니다. 연예계 입문하는 사람들도 다 성공하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안 됩니다. 너무나 장애물이 많고 우리가 앞을 향하여 나가는데 자꾸만 거치는 것들이 발생을 합니다.
지도자는 꿈을 이룬다
전자제품으로 세계를 변화시켰다고 자부하는 소니의 회장, 모리타 아키오는 근대기술문명의 영웅입니다. 저도 80년 초에 워크맨이라는 녹음기와 라디오 기능이 같이 있는 소형 라디오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당시에 청소년들이 그걸 하나 가지는 게 꿈이었습니다. 트렌지스터 라디오를 듣다가 녹음도 되고 라디오도 나오는 88m 소형 라디오가 나와서 이 지구촌에 상상을 할 수 없는 변화를 주었습니다. 이 모리타가 뉴욕 맨하탄에 소니 타운을 건설해 놓았습니다. 미국 맨하턴의 부의 상징이 바로 록펠러 타운입니다. 록펠러 타운에 가면 록펠러 타운의 제일 큰 건물을 소니사가 지금 소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모리타 아키노라는 사람은 두 가지로 평가를 합니다. 이 사람은 항상 인류의 미래를 꿈꾸는 사람입니다. 앞으로 이 지구촌에 있는 모든 사람이 함께 즐기고 기뻐하고 유익할 수 있는 제품이 무엇인가? 미래를 항상 꿈꾸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는 그 꿈이 잡히면 과감하게 투자를 합니다. 그래서 그 꿈을 이루어가는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꿈꾸는 백성에 관한 말씀이 나옵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꿈을 잃어버린 유다를 향해서 꿈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라” ‘새 일’은 유다역사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꿈입니다. 우리는 꿈을 꾸는 자, 새 일을 이루는 자는 언제나 앞을 보며 가야 합니다. 꿈을 가진 사람은 과거를 꿈꾸는 게 아니라 앞을 꿈꾸는 것입니다. 18절에 보면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중요한 말씀입니다. 꿈을 가지고 새 일을 하는 사람은 이전 일에 매이면 안 됩니다. 과거의 악몽에 매이면 안 됩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3장14절 이하에서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의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좇아간다”고 했습니다.
마음의 쓰레기를 비우라
KBS 1TV의 ‘시청자 칼럼’이라는 난이 있습니다. 제가 그 프로그램을 가끔 보면서 우리 사회구조의 모순을 많이 발견합니다. 법적으로 잘못된 것이고 분명히 실수를 저지른 사람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거기에 대하여 법적인 시행은 잘 안 되고 있는 게 너무 많습니다. 힘을 가진 사람들이, 혹은 국가기관이 시민들이나 국민들이나 약자를 향하여 무언가를 도와주려고 하는 그런 의지가 아니고 상대방이 생각도 못한 법조항을 들고 나와서 이것 때문에 안 된다고 하는 사례가 너무 많았습니다. 문제가 일어나기 전에는 아무도 모르는데 문제가 발생하여 수습을 해보려 하니까 전부 법조항을 들고 나와서 이런 규정 때문에 안 된다, 저런 규정 때문에 안 된다며 될 수 있는 데로 안 되게 해주려고 하는 이런 사회구조의 모순을 느꼈습니다.
오늘 우리들의 사고 속에 쓰레기를 비워야 됩니다. 제가 사는 동네에도 쓰레기가 쏟아져 나오는 것을 보면 엄청납니다. 매주 대형트럭이 와서 실어내도 안 되는 게 동네쓰레기입니다. 백 억짜리 호화주택도 쓰레기를 안 치우면 사람이 살 수 있는 집이 안 됩니다. 아무리 호화로운 집이라도 쓰레기를 방치해두면 그 집에는 사람이 못삽니다. 만약 쓰레기를 안 치우고 두면 집도 동네도 시내도 한반도 전 국토가 다 쓰레기장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속에 쓰레기를 치워야 됩니다. 이 쓰레기를 안 치우면 앞으로 가려고 할 때 언제나 이것이 발목을 잡고 끌어당깁니다. 이게 과거가 됩니다. 쓰레기는 과거를 말합니다. 쓰레기는 새 물건이 아닙니다. 쓰레기는 지난날의 쓰다가 남은 지나가버린 과거입니다. 이 과거, 쓰레기를 안 치우고 두면 전부 우리 발목을 사로잡습니다.
탕자라는 아들은 아버지를 떠날 때 돈을 가지고 떠났습니다. 내가 이 친구를 만나서 가만히 조사를 해보니까 돈을 가지고 떠난 게 아닙니다. 그는 인생쓰레기를 안고 떠난 것입니다. 자기를 망칠 쓰레기를 가득 안고 떠났습니다. 이 탕자는 생각하는 것부터가 망할 생각만 하고 떠나는 것입니다. 생각 속에 벌써 쓰레기가 가득합니다. 그런데 이 아들이 비록 거지가 되어 아버지 앞에 돌아왔지만 그의 인격 속에는 쓰레기를 다 비우고 돌아왔습니다. 아버지가 그 마음을 알고 아들을 받아주었습니다. 돌아오는 탕자, 우리가 그를 진정 영적으로 바로 볼 줄 알아야 됩니다. 아버지 앞에 돈을 얻어 집을 떠나는 그 당당한 탕자는 우리가 볼 때 성공한 사람 같지만 그는 잠시 후에 망하고 말 쓰레기를 안고 지금 살아가는 인생입니다. 우리는 쓰레기를 비워야 됩니다. 아주 불필요한 쓰레기가 우리의 인격 속에, 우리의 삶의 영역 안에 많습니다.
새 일은 하나님의 일이다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라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였느냐? 정녕히 내가 광야의 길과 사막의 강을 내리라.” ‘새 일’은 무엇입니까? 새 일은 하나님의 일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대학부 학생들이 여름에 단기선교를 떠났는데 떠나기 전에 몇몇 학생들을 만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 학생들을 붙잡고 이런 기도를 해주었습니다. “주님, 이들이 세계무대를 주름잡고 온 세계를 뛰어다니는 꿈을 보게 하시고 그 꿈을 보는 젊은이가 되게 해 주옵소서.” 오늘 우리는 한 번 해보자는 식으로 살면 안 됩니다. ‘한 번 살아보자’가 아닙니다. 이런 정도는 실패하면 주저앉아 버립니다. ‘해보다가 안 되면 말지’ 이건 안 됩니다. 오늘 하나님이 새 일을 이루겠다는 하나님의 의지는 그런 정도가 아닙니다. 한번 시작한 것은 기어코 이룬다고 하는 자세가 새 일입니다.
아브라함 링컨이 남북전쟁 당시에 다리를 건넌 후 이 다리를 폭파하자고 했을 때 참모가 말렸습니다. “각하, 만약 우리가 후퇴할 경우도 있을텐데 그때 이 다리가 없으면 안 됩니다. 우리가 혹시 세력이 밀리면 어떻게 합니까? 그때를 대비해서 이 다리를 두어야 됩니다.” 링컨이 정색을 하며 말합니다. “우리의 전쟁에는 후퇴라는 것은 없어! 우리의 전쟁은 패배가 없는 거야! 이 다리는 필요가 없어!” 하고 폭파를 지시했다고 합니다.
새 일을 하는 자는 삶의 목적이 있습니다. 본문 21절에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나를 위하여 지어진 존재,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우리가 지어졌습니다. 새 일을 하는 사람, 꿈을 가진 백성은 하나님을 위한 꿈이고 그 하나님을 위해 찬송을 부르게 하는 꿈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와 우선순위가 그렇게도 중요한 것입니다.
내가 아는 의사 한 분이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본인이 종합병원에 있다가 개인병원을 차렸는데 정신병원을 차렸습니다. 그런데 자기 병원에 입원하고 있는 환자들이 그 병원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간단한 오락을 허용했습니다. 자기들끼리 게임해서 실제로 돈을 주고받는 경우는 아닌데 물건 하나를 천원으로 쳐서 게임에 이기면 천원을 땄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게임을 해가지고는 나는 오늘 3천원을 땄다며 그렇게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목적을 잃지 않고 일하자
여러분, 정신병 환자가 3천원을 땄다고 좋아하는 그게 진정한 기쁨입니까? 3천원을 따는 게 문제가 아니라 빨리 병부터 고쳐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환자들이 조그마한 오락을 하면서 이겼다고 좋아하고 천원을 땄다고 좋아하는 그걸 보면 아주 서글프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인생이 하나님과의 관계가 명확하지 않게 살아가면 하나님이 보실 때 아주 서글픈 인생입니다.
어느 신실한 약사주부가 있었습니다. 결혼을 해서 제법 자립을 하고 돈을 벌었습니다. 자기가 원하는 데로 좋은 집도 장만하고 애들도 잘 커가고 자기가 설계한데로 인생이 순탄하게 성공을 향해서 가고 있었는데 어느 날 남편의 외도를 알게 됩니다. 남편이 딴 살림을 차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극심한 가정불화가 일어납니다. 남편은 상상외로 강하게 반발을 하고 가정을 버립니다. 남편의 외도 앞에 이 여성은 충격을 이기지 못하여 우울증에 걸립니다. 그는 약사입니다. 그래서 극약을 조제하여 아이들에게 먹이고 자기도 먹고 자살을 하게 됩니다. 한 때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그 수많은 자살사건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 여성이 그렇게 순탄하게 인생길을 가다가 이런 낭패를 만났는데 우리는 이 한 인생에서 중요한 것을 하나 관찰해야 합니다. 이 여성이 다 얻은 것처럼 살아갔는데 한 가지를 놓친 것입니다. 그게 무엇인가? 이 여성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삶 속에서 이런 위험한 덫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 삶의 우선권을 잘 세워야 됩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 로마서 14장 8절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다 주의 것이로다” 고린도전서 10장 41절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라”고 했습니다. 꿈이 있는 백성, ‘꿈’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일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새 일을 이루는 것이 꿈입니다. “보라 내가 새 일을 너희 가운데 행하리라” 하나님이 이루는 새 일이라는 개념이 하나님의 일이라는 것입니다. 60대가 되었다고 시간이 없다가 아니라 60대에 주를 위해서 일을 하면 주님을 위하여 사는 그것이 새 일이라는 말입니다. 노인이 했다고 옛 일이 되고 젊은이가 했다고 새 일이 되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새 일을 꿈꾸는 일군이 필요합니다. 일군으로서의 목사, 일군으로서의 장로, 일군으로서의 집사이여야 합니다. 우리가 일군으로서 멤버쉽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과 하나님의 일
제가 대한성서공회 이사직을 등록하고 실무자들을 통해서 브리핑을 듣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가 이런 기관을 가지고 있다는 게 큰 축복인데 우리나라가 성경을 170가지 언어로 만들어서 세계에 팔고 있는데 성서공회가 비영리 법인으로 등록이 되어 있기 때문에 이윤을 추구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돈을 벌려면 무한대로 벌 수 있는데 비영리 법인이기 때문에 이윤을 붙여도 전부 세금으로 환수되기 때문에 돈을 벌지 못하게 되어 있답니다. 결국은 170개국의 말로 성경을 만들어서 온 세계에 제공을 하는데 철칙이 두 가지라는 것입니다. 일거리가 계속 밀린다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에 있는 성서공회에 맡기면 틀림없다는 신용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게 어떤 일이 있어도 계약기일이 지켜주는 성서공회는 대한민국 성서공회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온 세계에 큰 하나의 신용이라는 것입니다. 그만큼 한국사람들이 일을 부지런히 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 성경이 파손되면 전혀 이의를 달지 않고 그대로 다 새로 만들어준다는 것입니다. 이윤이 없지만 온 세계를 선교하는 차원에서 그렇게 봉사하니까 성경을 새로 만들려고 하는 나라마다 대한성서공회에 보내면 틀림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비교가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만원 가지고 만들어내는 성경을 중국에서는 천원이면 만드는데 그 제품의 질과 가치는 백배로 한국이 좋다는 것입니다. 놀라운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나라가 겉으로는 여러 가지 모순도 있고, 교회나 교단도 모순이 있곤 하지만 우리가 알지 못하는 많은 기관들이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작년에 성경 배포에서 10억의 손실을 보았다고 합니다. 작년에 성경책이 제일 안 팔렸다는 것입니다. 왜 안 팔렸느냐고 하니까 요즘 개혁한글판 성경이 나왔는데 16개 교단에서 번역에 참여하고 감수에 참여해서 완간을 했습니다. 교단마다 지금 승인을 받아야 사용해야 하는데 16개 교단 중에 3개 교단만 승인이 안 되고 13개 교단이 승인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승인을 안 한 3개 교단 중에 우리 교단이 들어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교단의 신학위원회라는 데서는 ‘이 성경은 승인을 안 하기로 한다’ 이렇게 보고가 올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3개 교단만 승인을 하면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이 성경 아닌 개혁한글판 성경이 예배용으로 등장하는 시대가 옵니다. 어느 행사에 가니까 그 성경을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개혁한글판이 저도 갖고 있고 보고 있지만 우리가 가진 성경보다 훨씬 용어가 세련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가진 성경은 옛 용어가 많아서 어렵습니다. 번역은 100% 만족은 없지만 하지만 훨씬 세련되게 잘 되어 있습니다. 다른 것은 다 두고 번역이 된 것 중에 제가 성경을 읽을 때마다 이 용어는 새로 다듬어져야겠다고 생각되는 게 많았는데 그 중에 디모데서에 나오는 ‘포행자’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포행자라는 말은 없습니다. ‘포’자로 번역된 한자 ‘폭’은 뒤에 올 때는 ‘포’로 됩니다. 그런데 이게 앞에 나올 때는 ‘폭행자’입니다. 그런데 우리 번역은 그런 모순된 번역을 해놓고 있습니다. 읽을 때마다 나는 고쳐야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궤계’라는 말이 있습니다. 읽기도 어렵습니다. 이런 말을 ‘간계’로 고쳤습니다. 상당히 어려운 말들이 많이 손질이 되었습니다. 우리 보다 큰 교단들이 다 승인을 했습니다. 우리는 무슨 고집으로 승인을 안 하고 있는지 우리가 진정 앞을 향하여 일을 하려면 사소한 것에 얽매여도 안 되고 과거에 얽매어도 안 됩니다. 그러면 타 교단들이 다 쓰는데 우리만 옛 것을 붙잡고 있으렵니까? 한 때 찬송가가 새로 보급되었을 때도 우리 교단만 안 쓰겠다고 고집부리다가 손해만 보고 다시 썼습니다. 과거의 것에 얽매이면 안 됩니다.
맺는 말
하나님의 일은 기술과 실력의 개념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의 일군은 무엇으로 측정을 합니까? 사명감과 헌신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사명감이 있느냐? 그리고 얼마나 내가 주님의 일에 헌신하느냐에 따라서 결정이 나는 것이지 얼마나 기술이 있느냐? 얼마나 배웠느냐는 개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이 일하시고자 하는 새 일은 우리의 사명감과 헌신을 새롭게 할 때 언제나 하나님의 새 일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출처/이용호 목사 설교 중에서
인류 역사상 가장 머리 좋은 과학자 다섯 사람이 대한민국에 이민을 와서 살았습니다. 그중에 에디슨이 있었는데 이 사람은 한국에 와서 자꾸 학력이 문제가 됩니다. 초등학교 졸업밖에 못했습니다. 그러니까 이력서만 넣으면 학력 때문에 취직이 안 됩니다. 또 서류심사가 통과되어도 면접을 하면 또 떨어집니다. 학력이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아인슈타인은 세계적인 천재입니다. 수학에 대해서는 이 사람을 따라갈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수능시험을 통과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아인슈타인도 대학문턱에도 못가고 별 볼일 없는 사람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뉴턴은 대학교수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대학마다 이 뉴턴을 전부 퇴출시킵니다. 왜냐하면 논문을 제출하면 다른 대학교수들이 더없이 이해를 못하니까 이 사람을 싫어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대학 저 대학에서 퇴출만 당하고 교수노릇도 못하고 있었습니다.
갈릴레이란 사람도 대단히 예리한 과학자인데 이 사람은 하도 정부의 과학정책에 대해서 비판을 하니까 도저히 출세를 하지 못합니다. 한 곳도 환영하지 않습니다.
유일하게 여자로서 퀴리부인이 있는데 이도 얼마나 머리가 비상하고 예리한지 모릅니다. 서류심사에서는 언제나 일등입니다. 성적이 아주 우수한데 퀴리부인도 전혀 한국에서는 통하지 않습니다. 면접만 보면 탈락입니다. 왜냐하면 얼굴이 받혀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어느 사람도 실패를 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제가 가끔 개업예배를 드립니다만 개업하는 사람이 실패를 원하면서 개업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 개업을 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투자를 했습니까? 얼마나 많은 기대를 가지고 있습니까? 이 사업을 통해서 꿈을 가지고 개업을 합니다. 또 지금 국가고시를 보기 위해서 매달리는 사람들이 수 십 만명이고, 공무원 시험에 매달리고 있는 사람들의 숫자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문학의 꿈을 가진 사람도 많습니다만 누구나 이문열이나 최인호 같은 사람이 되는 게 아닙니다. 연예계 입문하는 사람들도 다 성공하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안 됩니다. 너무나 장애물이 많고 우리가 앞을 향하여 나가는데 자꾸만 거치는 것들이 발생을 합니다.
지도자는 꿈을 이룬다
전자제품으로 세계를 변화시켰다고 자부하는 소니의 회장, 모리타 아키오는 근대기술문명의 영웅입니다. 저도 80년 초에 워크맨이라는 녹음기와 라디오 기능이 같이 있는 소형 라디오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당시에 청소년들이 그걸 하나 가지는 게 꿈이었습니다. 트렌지스터 라디오를 듣다가 녹음도 되고 라디오도 나오는 88m 소형 라디오가 나와서 이 지구촌에 상상을 할 수 없는 변화를 주었습니다. 이 모리타가 뉴욕 맨하탄에 소니 타운을 건설해 놓았습니다. 미국 맨하턴의 부의 상징이 바로 록펠러 타운입니다. 록펠러 타운에 가면 록펠러 타운의 제일 큰 건물을 소니사가 지금 소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모리타 아키노라는 사람은 두 가지로 평가를 합니다. 이 사람은 항상 인류의 미래를 꿈꾸는 사람입니다. 앞으로 이 지구촌에 있는 모든 사람이 함께 즐기고 기뻐하고 유익할 수 있는 제품이 무엇인가? 미래를 항상 꿈꾸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는 그 꿈이 잡히면 과감하게 투자를 합니다. 그래서 그 꿈을 이루어가는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꿈꾸는 백성에 관한 말씀이 나옵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꿈을 잃어버린 유다를 향해서 꿈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라” ‘새 일’은 유다역사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꿈입니다. 우리는 꿈을 꾸는 자, 새 일을 이루는 자는 언제나 앞을 보며 가야 합니다. 꿈을 가진 사람은 과거를 꿈꾸는 게 아니라 앞을 꿈꾸는 것입니다. 18절에 보면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중요한 말씀입니다. 꿈을 가지고 새 일을 하는 사람은 이전 일에 매이면 안 됩니다. 과거의 악몽에 매이면 안 됩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3장14절 이하에서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의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좇아간다”고 했습니다.
마음의 쓰레기를 비우라
KBS 1TV의 ‘시청자 칼럼’이라는 난이 있습니다. 제가 그 프로그램을 가끔 보면서 우리 사회구조의 모순을 많이 발견합니다. 법적으로 잘못된 것이고 분명히 실수를 저지른 사람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거기에 대하여 법적인 시행은 잘 안 되고 있는 게 너무 많습니다. 힘을 가진 사람들이, 혹은 국가기관이 시민들이나 국민들이나 약자를 향하여 무언가를 도와주려고 하는 그런 의지가 아니고 상대방이 생각도 못한 법조항을 들고 나와서 이것 때문에 안 된다고 하는 사례가 너무 많았습니다. 문제가 일어나기 전에는 아무도 모르는데 문제가 발생하여 수습을 해보려 하니까 전부 법조항을 들고 나와서 이런 규정 때문에 안 된다, 저런 규정 때문에 안 된다며 될 수 있는 데로 안 되게 해주려고 하는 이런 사회구조의 모순을 느꼈습니다.
오늘 우리들의 사고 속에 쓰레기를 비워야 됩니다. 제가 사는 동네에도 쓰레기가 쏟아져 나오는 것을 보면 엄청납니다. 매주 대형트럭이 와서 실어내도 안 되는 게 동네쓰레기입니다. 백 억짜리 호화주택도 쓰레기를 안 치우면 사람이 살 수 있는 집이 안 됩니다. 아무리 호화로운 집이라도 쓰레기를 방치해두면 그 집에는 사람이 못삽니다. 만약 쓰레기를 안 치우고 두면 집도 동네도 시내도 한반도 전 국토가 다 쓰레기장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속에 쓰레기를 치워야 됩니다. 이 쓰레기를 안 치우면 앞으로 가려고 할 때 언제나 이것이 발목을 잡고 끌어당깁니다. 이게 과거가 됩니다. 쓰레기는 과거를 말합니다. 쓰레기는 새 물건이 아닙니다. 쓰레기는 지난날의 쓰다가 남은 지나가버린 과거입니다. 이 과거, 쓰레기를 안 치우고 두면 전부 우리 발목을 사로잡습니다.
탕자라는 아들은 아버지를 떠날 때 돈을 가지고 떠났습니다. 내가 이 친구를 만나서 가만히 조사를 해보니까 돈을 가지고 떠난 게 아닙니다. 그는 인생쓰레기를 안고 떠난 것입니다. 자기를 망칠 쓰레기를 가득 안고 떠났습니다. 이 탕자는 생각하는 것부터가 망할 생각만 하고 떠나는 것입니다. 생각 속에 벌써 쓰레기가 가득합니다. 그런데 이 아들이 비록 거지가 되어 아버지 앞에 돌아왔지만 그의 인격 속에는 쓰레기를 다 비우고 돌아왔습니다. 아버지가 그 마음을 알고 아들을 받아주었습니다. 돌아오는 탕자, 우리가 그를 진정 영적으로 바로 볼 줄 알아야 됩니다. 아버지 앞에 돈을 얻어 집을 떠나는 그 당당한 탕자는 우리가 볼 때 성공한 사람 같지만 그는 잠시 후에 망하고 말 쓰레기를 안고 지금 살아가는 인생입니다. 우리는 쓰레기를 비워야 됩니다. 아주 불필요한 쓰레기가 우리의 인격 속에, 우리의 삶의 영역 안에 많습니다.
새 일은 하나님의 일이다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라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였느냐? 정녕히 내가 광야의 길과 사막의 강을 내리라.” ‘새 일’은 무엇입니까? 새 일은 하나님의 일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대학부 학생들이 여름에 단기선교를 떠났는데 떠나기 전에 몇몇 학생들을 만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 학생들을 붙잡고 이런 기도를 해주었습니다. “주님, 이들이 세계무대를 주름잡고 온 세계를 뛰어다니는 꿈을 보게 하시고 그 꿈을 보는 젊은이가 되게 해 주옵소서.” 오늘 우리는 한 번 해보자는 식으로 살면 안 됩니다. ‘한 번 살아보자’가 아닙니다. 이런 정도는 실패하면 주저앉아 버립니다. ‘해보다가 안 되면 말지’ 이건 안 됩니다. 오늘 하나님이 새 일을 이루겠다는 하나님의 의지는 그런 정도가 아닙니다. 한번 시작한 것은 기어코 이룬다고 하는 자세가 새 일입니다.
아브라함 링컨이 남북전쟁 당시에 다리를 건넌 후 이 다리를 폭파하자고 했을 때 참모가 말렸습니다. “각하, 만약 우리가 후퇴할 경우도 있을텐데 그때 이 다리가 없으면 안 됩니다. 우리가 혹시 세력이 밀리면 어떻게 합니까? 그때를 대비해서 이 다리를 두어야 됩니다.” 링컨이 정색을 하며 말합니다. “우리의 전쟁에는 후퇴라는 것은 없어! 우리의 전쟁은 패배가 없는 거야! 이 다리는 필요가 없어!” 하고 폭파를 지시했다고 합니다.
새 일을 하는 자는 삶의 목적이 있습니다. 본문 21절에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나를 위하여 지어진 존재,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우리가 지어졌습니다. 새 일을 하는 사람, 꿈을 가진 백성은 하나님을 위한 꿈이고 그 하나님을 위해 찬송을 부르게 하는 꿈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와 우선순위가 그렇게도 중요한 것입니다.
내가 아는 의사 한 분이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본인이 종합병원에 있다가 개인병원을 차렸는데 정신병원을 차렸습니다. 그런데 자기 병원에 입원하고 있는 환자들이 그 병원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간단한 오락을 허용했습니다. 자기들끼리 게임해서 실제로 돈을 주고받는 경우는 아닌데 물건 하나를 천원으로 쳐서 게임에 이기면 천원을 땄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게임을 해가지고는 나는 오늘 3천원을 땄다며 그렇게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목적을 잃지 않고 일하자
여러분, 정신병 환자가 3천원을 땄다고 좋아하는 그게 진정한 기쁨입니까? 3천원을 따는 게 문제가 아니라 빨리 병부터 고쳐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환자들이 조그마한 오락을 하면서 이겼다고 좋아하고 천원을 땄다고 좋아하는 그걸 보면 아주 서글프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인생이 하나님과의 관계가 명확하지 않게 살아가면 하나님이 보실 때 아주 서글픈 인생입니다.
어느 신실한 약사주부가 있었습니다. 결혼을 해서 제법 자립을 하고 돈을 벌었습니다. 자기가 원하는 데로 좋은 집도 장만하고 애들도 잘 커가고 자기가 설계한데로 인생이 순탄하게 성공을 향해서 가고 있었는데 어느 날 남편의 외도를 알게 됩니다. 남편이 딴 살림을 차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극심한 가정불화가 일어납니다. 남편은 상상외로 강하게 반발을 하고 가정을 버립니다. 남편의 외도 앞에 이 여성은 충격을 이기지 못하여 우울증에 걸립니다. 그는 약사입니다. 그래서 극약을 조제하여 아이들에게 먹이고 자기도 먹고 자살을 하게 됩니다. 한 때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그 수많은 자살사건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 여성이 그렇게 순탄하게 인생길을 가다가 이런 낭패를 만났는데 우리는 이 한 인생에서 중요한 것을 하나 관찰해야 합니다. 이 여성이 다 얻은 것처럼 살아갔는데 한 가지를 놓친 것입니다. 그게 무엇인가? 이 여성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삶 속에서 이런 위험한 덫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 삶의 우선권을 잘 세워야 됩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 로마서 14장 8절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다 주의 것이로다” 고린도전서 10장 41절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라”고 했습니다. 꿈이 있는 백성, ‘꿈’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일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새 일을 이루는 것이 꿈입니다. “보라 내가 새 일을 너희 가운데 행하리라” 하나님이 이루는 새 일이라는 개념이 하나님의 일이라는 것입니다. 60대가 되었다고 시간이 없다가 아니라 60대에 주를 위해서 일을 하면 주님을 위하여 사는 그것이 새 일이라는 말입니다. 노인이 했다고 옛 일이 되고 젊은이가 했다고 새 일이 되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새 일을 꿈꾸는 일군이 필요합니다. 일군으로서의 목사, 일군으로서의 장로, 일군으로서의 집사이여야 합니다. 우리가 일군으로서 멤버쉽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과 하나님의 일
제가 대한성서공회 이사직을 등록하고 실무자들을 통해서 브리핑을 듣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가 이런 기관을 가지고 있다는 게 큰 축복인데 우리나라가 성경을 170가지 언어로 만들어서 세계에 팔고 있는데 성서공회가 비영리 법인으로 등록이 되어 있기 때문에 이윤을 추구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돈을 벌려면 무한대로 벌 수 있는데 비영리 법인이기 때문에 이윤을 붙여도 전부 세금으로 환수되기 때문에 돈을 벌지 못하게 되어 있답니다. 결국은 170개국의 말로 성경을 만들어서 온 세계에 제공을 하는데 철칙이 두 가지라는 것입니다. 일거리가 계속 밀린다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에 있는 성서공회에 맡기면 틀림없다는 신용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게 어떤 일이 있어도 계약기일이 지켜주는 성서공회는 대한민국 성서공회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온 세계에 큰 하나의 신용이라는 것입니다. 그만큼 한국사람들이 일을 부지런히 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 성경이 파손되면 전혀 이의를 달지 않고 그대로 다 새로 만들어준다는 것입니다. 이윤이 없지만 온 세계를 선교하는 차원에서 그렇게 봉사하니까 성경을 새로 만들려고 하는 나라마다 대한성서공회에 보내면 틀림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비교가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만원 가지고 만들어내는 성경을 중국에서는 천원이면 만드는데 그 제품의 질과 가치는 백배로 한국이 좋다는 것입니다. 놀라운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나라가 겉으로는 여러 가지 모순도 있고, 교회나 교단도 모순이 있곤 하지만 우리가 알지 못하는 많은 기관들이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작년에 성경 배포에서 10억의 손실을 보았다고 합니다. 작년에 성경책이 제일 안 팔렸다는 것입니다. 왜 안 팔렸느냐고 하니까 요즘 개혁한글판 성경이 나왔는데 16개 교단에서 번역에 참여하고 감수에 참여해서 완간을 했습니다. 교단마다 지금 승인을 받아야 사용해야 하는데 16개 교단 중에 3개 교단만 승인이 안 되고 13개 교단이 승인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승인을 안 한 3개 교단 중에 우리 교단이 들어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교단의 신학위원회라는 데서는 ‘이 성경은 승인을 안 하기로 한다’ 이렇게 보고가 올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3개 교단만 승인을 하면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이 성경 아닌 개혁한글판 성경이 예배용으로 등장하는 시대가 옵니다. 어느 행사에 가니까 그 성경을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개혁한글판이 저도 갖고 있고 보고 있지만 우리가 가진 성경보다 훨씬 용어가 세련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가진 성경은 옛 용어가 많아서 어렵습니다. 번역은 100% 만족은 없지만 하지만 훨씬 세련되게 잘 되어 있습니다. 다른 것은 다 두고 번역이 된 것 중에 제가 성경을 읽을 때마다 이 용어는 새로 다듬어져야겠다고 생각되는 게 많았는데 그 중에 디모데서에 나오는 ‘포행자’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포행자라는 말은 없습니다. ‘포’자로 번역된 한자 ‘폭’은 뒤에 올 때는 ‘포’로 됩니다. 그런데 이게 앞에 나올 때는 ‘폭행자’입니다. 그런데 우리 번역은 그런 모순된 번역을 해놓고 있습니다. 읽을 때마다 나는 고쳐야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궤계’라는 말이 있습니다. 읽기도 어렵습니다. 이런 말을 ‘간계’로 고쳤습니다. 상당히 어려운 말들이 많이 손질이 되었습니다. 우리 보다 큰 교단들이 다 승인을 했습니다. 우리는 무슨 고집으로 승인을 안 하고 있는지 우리가 진정 앞을 향하여 일을 하려면 사소한 것에 얽매여도 안 되고 과거에 얽매어도 안 됩니다. 그러면 타 교단들이 다 쓰는데 우리만 옛 것을 붙잡고 있으렵니까? 한 때 찬송가가 새로 보급되었을 때도 우리 교단만 안 쓰겠다고 고집부리다가 손해만 보고 다시 썼습니다. 과거의 것에 얽매이면 안 됩니다.
맺는 말
하나님의 일은 기술과 실력의 개념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의 일군은 무엇으로 측정을 합니까? 사명감과 헌신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사명감이 있느냐? 그리고 얼마나 내가 주님의 일에 헌신하느냐에 따라서 결정이 나는 것이지 얼마나 기술이 있느냐? 얼마나 배웠느냐는 개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이 일하시고자 하는 새 일은 우리의 사명감과 헌신을 새롭게 할 때 언제나 하나님의 새 일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출처/이용호 목사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