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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신을 좇는 자와 영을 좇은 자. (롬8::5~8)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다 그 무엇인가를 좇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행복이란 파랑새]를 좇고 있고, 직접적으로는 [돈]을 좇거나 [권력]을 좇거나 [사랑]을 좇거나 그 무엇인가를 좇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단 얻고 나면 여러 해 전에 유고집을 낸 증광스님의 [괜히 왔다 다 간다]라는 허무함만 간직한 채 갑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무엇을 좇고 있습니까? 과연 그것을 얻었을 때에 계속해서 기뻐할 수 있습니까? [괜히 왔다 간다]라는 말은 하지 않을 자신이 있습니까? 저는 오늘 다른 각도에서 인생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이 세상에는 [세 가지 종류의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첫째는 인간의 본성 그대로 사는 자연적 사람, 즉 불신자들이 있고,
둘째는 믿기는 하지만 아직도 옛 사람의 본성을 버리지 못하고 육신을 좇아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끝으로 영을 좇아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육신을 좇는 자란 말은 교회에 등록은 하고 있으나 옛날의 타락하고 부패한 인간의 본성을 좇는 병든 신자란 뜻이고, 영을 좇는 자란 말은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자, 즉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가진 사람을 의미합니다.
1.그러면 육신을 좇는 자의 특징은?
(1)자기중심적인 생각을 합니다(5절).
교회 일을 해도 자기중심적으로 합니다. 무엇이든지 자기중심적으로 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많은 교회가 항상 문제를 일으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에 이런 격언이 있습니다. 두 사람이 모이면 세 가지 견해가 있어서 항상 사람들의 수보다 견해가 더 많다는 말입니다. 좋게 말하면 견해가 많다는 뜻이지만 그러나 결국 자기중심적입니다.
(2)하나님과 원수가 됩니다(7절상).
자연인의 경우와 다른 것은 자연인의 경우에는 전혀 소망이 없습니다. 그러나 육신을 좇는 자의 경우는 영을 좇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자연인의 경우에는
첫째로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합니다(7절하).
둘째는 할 수도 없습니다(7절하). 하나님과 어떤 관계도 맺을 수 없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예비하신 구원을 받기를 거부하기 때문에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이처럼 자연인은 전적으로 부패된 것입니다.
(3)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합니다(8절).
왜냐하면 요일2:16절의 말씀처럼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육신의 정욕”이란 하나님을 대적하고 자기만족을 추구하는 것을 말하고, “안목의 정욕” 이란 성적 욕망과 물질적 욕망을 따라 사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이생의 자랑”이란 세상에서의 명성과 허세에 매여 있는 사람을 말합니다.
자연인은 이 세 가지의 것에 완전히 얽매여서 삽니다. 육신을 좇는 자도 큰 차이가 없습니다. 그러나 은혜를 받으면 변화됩니다. 오늘 이 시간에 이런 변화가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에는 육신을 좇는 자들이 한 사람도 없기를 축원합니다.
2. 다음은 육신을 좇는 자의 결과는?
한 마디로 말해서 [사망]입니다. [하나님과의 단절]을 의미합니다. 처음에는 [영적으로 단절]되고 나중에는 [영원히 단절] 즉 지옥에 가게 됩니다.
3. 마지막으로 영을 좇는 자의 특징은?
(1)영의 일을 생각합니다.
이것은 영의 일만을 생각하고 세상일이나 가정 일은 전혀 생각지 않는다는 뜻이 결코 아닙니다. 영의 세계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성령이 원하시는 목표를 두고, 성령 안에서 산다는 뜻입니다.
(2)영을 좇는 자는 결과적으로 6절의 말씀처럼 [생명과 평안이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생명]은 단순히 [육신의 생명]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원한 생명, 영생], 즉 새로운 생명을 의미합니다.
4. 끝으로 성령을 좇아 사는 사람이 되려면?
(1)먼저 거듭나야 합니다. 어떻게 거듭납니까?
요3:5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 갈 수 없느니라.” 이 구절은 천주교회에서는 물세례와 성령의 세례를 받아야 구원받는다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물이란 하나의 은유입니다. 즉 성령의 세례를 받아야 구원을 받는데 그 때에 물과 같은 씻김의 역사가 나타나 우리를 깨끗하게 해준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성령의 세례는 물과 같은 씻김의 역사를 일으킵니다.
(2)영과 육이 서로 대립되고, 갈등이 생길 때 성령이 승리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성령의 편을 들어주어야 합니다. 그 비결은 첫째, [성령의 역사가 소멸되지 않도록] 성령의 불이 꺼지지 않도록 불을 끄지 말아야 합니다. 다음에는 말씀의 장작을 계속해서 집혀야 합니다.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끝으로 기도의 불을 활활 타게 해야 합니다. 기도의 불은 기도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감란 산에서 마지막 기도를 할 때 주님의 제자들은 기도하지 않고 깊이 잠이 들었습니다. 그 결과가 바로 베드로의 타락이었습니다. 막14:54절에 보면 “예수를 멀찍이 좇아”라고 했습니다. 그 결과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습니다.
그러면 기도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떼쓰고, 소리 지르고, 교회에 와서 앉아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을 묻고, 그 뜻에 맡기는 훈련입니다.
(3)날마다 옛 사람이 죽고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 사람이 살아나야 합니다.
“날마다 내가 죽노라”는 고전15:31절의 바울의 간증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를 따르는 자는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마16:24)는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제가 좋아는 복음송이 있습니다.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란 노래입니다.
(1)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3번 반복), 뒤 돌아서지 않겠네 (2) 이 세상사람 날 몰라줘도(3번 반복), 뒤 돌아서지 않겠네 (3)세상등지고 십자가 보네(3번 반복), 뒤 돌아서지 않겠네.”
오늘 이 시간에 우리는 믿는다고 하면서 육신을 좇던 생활에서 변화되어 영을 좇는 삶이되는 역사가 나타나기를 축원합니다. 교회의 직분이 구원을 담보해주지 못합니다. 오직 믿음만이 우리의 구원을 담보해주고, 영을 좇는 자만이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되고, 참 성도가 됩니다. 그런 역사와 축복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출처/신성종목사 설교자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