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먹고 사는 사람  (창37:3-11)

아침에 잠에서 깬 아내가 남편에게로 가서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여보!“나 어젯밤 꿈을 꿨는데요
글쎄, 당신이 내 생일날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선물로 사주셨지 뭐유!
그래서 말인데요 여보! 그 꿈이 무슨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하세요?”
그러자 남편이 점잖게 말을 합니다.
아! 그래요“그건 당신 생일이 되면 알게 될 거요”하고 남편이 말했습니다.

드디어 아내의 생일날이 되었습니다.
남편은 작은 선물 꾸러미를 갖고 와서 아내에게 주었습니다.
아내는 무척 기뻐하며 선물꾸러미를 열었습니다.
그 안에는 [꿈 해몽] 이란 제목의 책이 들어 있었습니다.(웃음)
저는 오늘 본문 말씀을 가지고 [꿈을 먹고사는 사람] 이러한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나갈 때에 많은 즐거움이 있습니다.
가난하여 먹을 것도 없고 옷도 제대로 입지 못하고 다닐 때에는 너무나 속이 상할 때도 많습니다.
그러다가 돈을 벌면 그 돈으로 인 해 즐겁게 됩니다.
어떤 경우에는 너무 짓눌려 억울한 일을 당하고만 살다가 벼슬이라도 한 자리하게 되면 그 자리가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습니다.

또 어떤 사람이 병들어 죽게 되었다가 기적같이 살아나게 되면 다시 얻은 건강으로 즐거울 수가 있습니다.
또 외롭게 살다가 아내를 맞이하고 가정을 꾸미게 되면 그 가정으로 인해 즐거워합니다.
세상에는 이런 많은 즐거움이 있는데 우리 성도가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은 이런 즐거움과 다른 것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것들은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이 더 즐거워 할 수 있는 즐거움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이 즐거워 할 수 없는 즐거움을 우리 믿는 사람들은 즐거워해야 합니다.

저는 직장 일로 인해 해외를 자주 나가게 되는데 여러 나라를 다니다보면 여러 다른 문화권에 속한 다른 나라의 음식을 접하게 됩니다.
대게 백인들 사회에서는 육류를 많이 먹고 치즈나 버터를 즐겨 먹습니다.
그러나 아시아나, 남미 등지에 가면 사람들이 육식보다는 채식을 좋아합니다.
저는 머 워낙 음식을 가리지 않고 잘 먹는 스타일이라 어느 나라에 가든지 그 나라 음식문화에 잘 적응해서 무엇이든지 가리지 않고 잘 먹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참으로 괴로워합니다.

그런데 사람은 육신의 양식만을 먹고는 살수가 없습니다.
정신적인 문화 양식을 먹어야 살수가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신령한 양식을 먹지 않고는 영적인 사람은 살수가 없습니다.
그 신령한 양식 중에 중요한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이 바로 성령 안에서 꿈과 환상을 먹고사는 것입니다.
성령과 함께 동행하는 사람은 환상을 먹고살고 꿈을 먹고사는 사람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종들은 이 꿈의 양식을 먹고 수많은 시련과 환난을 극복하고 이 세상에 위대한 목표를 성취하고 달성하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나폴레옹은 말하기를 “이 세상은 꿈과 환상을 가진 사람에 의해서 만들어진다.”고 하였습니다.
성경도 꿈이 없는 백성은 망한다고 말씀합니다.
이와 같이 개인이나 민족이 꿈과 환상을 가질 때, 그들 앞에 꿈꾸던 세계가 펼쳐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경은 꿈에 대해서 어떻게 가르치고 있을까요?
먼저,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요셉의 꿈에 대해서 살펴봅니다.

요셉은 야곱의 12아들 중 한 명이었습니다.
그 중에 요셉은 야곱이 특별히 사랑하는 아들이라 가장 좋은 옷을 입히고 또 목축을 하려 갈 때도 형들은 다 보내지만 요셉은 집에 두고 자신과 함께 지내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요셉은 아버지를 닮아서 신앙이 특출했습니다.
기도를 많이 하고 하나님의 뜻을 받들려고 애를 쓰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꿈을 주었습니다.
요셉은 그 꿈을 형제들에게 고했습니다.

본문 7절에 보니까 "우리가 밭에서 곡식을 묶더니 내 단은 일어서고 당신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하더이다."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형들은 요셉을 더욱 미워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꿈은 아침에 깨어나서도 그 꿈이 너무나 영롱해서 살아 있고 굉장히 마음에 뚜렷합니다.
의미 없는 꿈들은 메시지가 실려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메시지가 실려 있지 않은 꿈을 믿다가는 큰일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메시지가 실려 있는 꿈은 뚜렷하고 아무리 잊으려고 해서 잊혀 지지가 않습니다.
요셉의 꿈은 하나님의 메시지가 실려 있는 꿈이었습니다.
요셉의 꿈 이야기를 들은 형들은 분개했습니다.
그 꿈으로 인해 요셉을 더욱 미워했습니다.
그런데 요셉이 또 꿈을 꾸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메시지는 대게 반복됩니다.
요셉은 또 형들을 찾아가 꿈 이야기를 했습니다.

9절을 보겠습니다."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그 형들에게 고하여 가로되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 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하니라"
  
이어서 10절에 "해와 달과 열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더구나 아비 야곱도 그 꿈 이야기를 듣고 너의 꾼 꿈이 무엇이냐 나와 네 모와 네 형제들이 참으로 가서 땅에 엎드려 네게 절하겠느냐." 라고 꾸짖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 야곱은 요셉의 말을 마음에 새겨 두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다른 형제들과 요셉이 다른 점은 요셉은 꿈을 먹고사는 사람이요, 형들은 마음속에는 아무런 꿈이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꿈이 마음속에 있을 때 우리는 그 꿈을 먹고살며 망하지 않습니다.
꿈은 바로 우리를 성공시키는 성공의 재료가 되는 것입니다.
꿈을 받고 꿈을 먹고사는 사람은 반드시 흥 하지만 꿈이 없어 꿈을 먹지 못하는 사람은 그 앞길에 아무 희망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민족에게도 가장 중대한 것은 민족적인 꿈을 되찾는 것입니다.

현재 우리 민족은 노정과 노사 문제로 국민 전 갈등과 고통 가운데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행정수도 이전이라는 중대한 문제로 여야가 요란스럽게 떠들며 국민들의 마음속에 꿈을 사라지게 하고 있습니다.
꿈이 없으면, 꿈을 먹지 아니하면 내일이 없습니다.
꿈을 먹어야 흥합니다.
꿈을 먹지 아니하면 망하는 길 밖에 없습니다.
개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가슴속에 꿈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령께서 우리 마음속에 부어주는 꿈이 잉태도 개인은 성공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 요셉처럼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비전 있는 꿈을 가지고 희망찬 삶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의 꿈,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살펴봅니다.

하나님의 꿈은 온전히 예수 그리스도 한 몸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를 구원 할 구원의 꿈을 꾸었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장차 천년 왕국의 꿈을 꾸었으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영원 무궁 세계의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꿈은 예수 그리스도 속에 움집 되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하나님의 꿈이 있을 수 없으며,
예수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하나님은 꿈을 꾸기를 원치 않습니다.
이러므로 우리들이 하나님의 꿈을 받아들이면 우리의 꿈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꿈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몸을 찢고 피를 흘려죽으심으로 우리를 대속 하신 것은 바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꿈입니다.
하나님의 꿈을 우리가 받아 드려서 하나님의 꿈을 꾸고,
하나님의 꿈을 먹고살면, 그 하나님의 꿈이 우리 가운데 이루어 진 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한 속죄 제물이 되시고, 속건 제물이 되시고, 번제물이 되시고, 혹은 감사 제물이 되어서 몸을 찢고 피를 흘려서 하나님이 그 제물을 받으심으로 우리의 죄를 다 용서해 주신 것이 하나님의 꿈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죄가 다 용서함을 받는 것이 하나님의 꿈입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 드리면 우리가 하나님의 꿈을 받아 드리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꿈을 꿀 수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화목 제물이 되셔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막힌 담을 다 헐어 버리시고, 원수 된 담을 다 없애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말미암아 하나님이 내 안에 내가 하나님 안에 들어오는 놀라운 은총을 주셨습니다.
멀리 떠나간 자식들을 모두가 하나님 품으로 불러 드리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그 화목 제사를 통해서 그 피를 통해서 이룩하겠다는 하나님의 꿈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 꿈을 예수를 통해서 이루셨으니 그리스도를 나의 화목 제물로 받아 드리는 사람은 이제는 하나님도 우리 사이의 막힌 담이 없습니다.
우리가 담대하게 하나님 보좌 앞으로 나갈 수가 있고 하나님께서 성령을 우리에게 부어 주시고 하나님의 사랑을 부으셔서 하나님이 우리 안에 우리가 예수님 안에 들어가 하나님과 함께 사는 것이 하나님의 꿈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향해서 그리스도 안에서 꿈을 주셨습니다.
우리의 병과 우리의 연약함을 다 제하시고, 우리 슬픔과 눈물을 다 제하시고, 예수를 통해서 치료의 샘물을 퍼부어 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영혼과 마음, 몸이 치료를 받고 건강하며 슬픔이 다 사라지고 기쁨과 즐거움이 넘치는 것이 하나님의 꿈이었습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꾸는 하나님의 꿈입니다.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꿈을 받아 드리면 하나님의 꿈이 우리 속에 역사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꿈은 우리를 그리스도를 통해서 저주에서 해방 시켜주는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저주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고통 당하심으로 그리스도를 말미암아 저주를 제하시고, 아브라함의 복이 임하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꿈입니다.

하나님은 그 꿈을 지금도 꾸고 계십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을 통해서 아브라함의 축복이 임하도록 하는 하나님의 꿈이 있습니다.
이 꿈을 우리가 받아 드리면 하나님의 꿈이 우리 속에 역사 하게 되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꿈은 예수를 십자가에서 죽이심으로 우리의 사망을 멸하시고 예수께서 음부에 들어갔다가 부활하심으로 사망과 음부를 철폐하시고 천국과 영생을 주는 것이 하나님의 꿈입니다.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 꿈을 이루셨고 우리가 그리스도를 우리의 구주로 모셔 드리면 하나님의 꿈이 우리 속에 역사 해서 우리 가운데에 사망을 철폐하시고, 음부를 철폐하시고, 우리에게 천국과 영원한 낙원을 허락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이 꿈을 우리는 받아 드려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꾼 꿈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가진 하나님의 이상입니다.
우리가 이 꿈을 우리 마음속에 받아 드리면 하나님의 성령께서 이 꿈을 통해서 우리 가운데에 하나님의 역사 이루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꿈을 받아 드리는 사람만이 성령의 역사를 체험 할 수 있습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꿈을 받아 드렸으면 이 꿈을 먹고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매일 같이 양식을 먹는 것처럼 꿈을 먹고살아야 됩니다.
매일 같이 신문이나 잡지를 읽어 정신적인 양식을 얻는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이 꿈을 먹고 마실 때 이 꿈을 통하여 하나님의 성령이 역사 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은 꿈이 사람을 통해서 역사 합니다.
환상 있는 사람을 통해서 역사 하십니다.
목표 있는 꿈과 환상이 있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는 창조적인 역사를 베풀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꿈이 없는 개인도 망하고 꿈이 없는 백성도 망합니다. 이 망함의 반대말은 무엇입니까? 형통 아닙니까?
꿈이 있는 개인이나 백성은 형통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십자가를 통한 하나님의 꿈을 믿음으로 받아 드리면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바로 성찬을 떼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너무 쉽게 꿈을 잊어버리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깨어진 몸을 먹고 흘리신 피를 마심으로 그리스도에 대한 하나님의 꿈을 상기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꿈을 먹어라,
하나님의 꿈을 마셔 드려라,
그리고 하나님의 꿈으로 채워라,
이것이 바로 성찬의 메시지인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아무런 의미 없이 와서 떡 조각 먹고 포도주 잔을 마시고 간다면 이것은 의식과 형식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깨어진 몸과 흘리신 피를 통하여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꿈을 먹이는 역사를 행사시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세 번째로, 요셉이 당한 역경에 대해 살펴봅니다.

요셉은 꿈을 마음 속에 품고 꿈을 먹고사는 사람인데,
어느 날 아버지 야곱은 요셉에게 형들과 양떼가 잘 있는지 살펴보고 오라고 자신에게 고하라고 명했습니다.
요셉이 형들을 찾아 떠나 [도단]에서 형들을 만났습니다.

그때 멀리서 요셉이 오는 것을 본 형들은 죽이기를 꾀하고 달려 드러 요셉을 붙잡아, 물 없는 구덩이에 던져 넣었습니다.

요셉은 절망에 처했습니다.
암담한 가운데 요셉은 그 암담함과 절망을 이길 수 있는 영양소를 섭취 할 때가 있었습니다.
그는 꿈을 먹었습니다.
하나님이 저에게 주신 꿈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는 마음속에 하나님과 통하는 꿈이 있었습니다.
그는 그 꿈을 붙잡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애굽으로 내려가는 대상들이 나타났습니다.
미디안 사람들에게 요셉을 팔아 넘겨졌습니다.
형들은 요셉을 구덩이에게 끄집어내어서 은 20개에 이스마엘 대상에게 팔았습니다.
요셉은 애굽에서 시위대장 [보디발]의 집에 종으로 팔렸습니다.
옛날에 종은 짐승과 꼭 한가지입니다. 사고 팔고… 그러다가 죽으면 그 뿐입니다.

아무런 인권이 없는 것이 종입니다.
그런 종살이에 들어가서 혹독한 어려움을 당합니다.
헐벗고 굶주리면서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저녁 늦게 자고 견딜 수 없는 시련을 겪습니다.
그런 속에서도 요셉이 다른 사람보다 형통한 것은 다른 사람이 먹지 않는 양식을 먹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육신의 양식을 먹었지만 요셉은 하나님이 주신 꿈을 먹었습니다.

그는 고된 종살이를 하면서도 그는 꿈을 먹고 꿈 가운데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형통이 따랐습니다.
종살이 속에서도 형통해서 요셉이 하는 일 마다 잘하기 때문에 보디발이 가정 총무로 삼아 주었습니다.

그래서 그 어려운 가운데 가정 총무가 되어서 사무직을 맡음으로 좀 편안하게 살 수 있는 그런 처지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요셉은 인물이 준수하고 아담한 매력이 있는 청년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보디발의 아내가 그만 요셉에게 반했습니다.
그래서 자꾸만 요셉을 유혹을 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 유혹을 자꾸 떨쳤습니다.
그리고 그 아내에게 분명히 말했습니다.
요셉은 우리 주인이 이 모든 것을 맡겨놓고 금한 것이 없는데 당신만은 내게 허락하지 아니했으니 어찌하여 악을 행해 하나님께 득죄 할 수 있겠느냐며 단호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요셉이 시무 하러 집에 들어갔을 때 마침 집에는 보디발의 아내만이 있었습니다.
보디발의 아내는 요셉의 옷을 잡고 동침하기를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옷을 그 속에 버려 둔 채 뛰쳐나갔습니다.
요셉의 이런 행동에 화가 치밀어 오른 보디발의 아내는 크게 소리질러 무고히 요셉을 고발했습니다.

집에 돌아온 [보디발]에게 그 아내는 요셉을 참소 했고 요셉은 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억울하고 답답하고 고통스러웠겠습니까?
그러나 요셉은 그 위기를 극복 할 수 있는 양식이 있었습니다.
그는 울면서 꿈을 먹었습니다.
그는 하늘을 쳐다보고 주님께서 주신 꿈을 먹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억울함과 원통함을 견딜 수가 있습니다.
꿈은 역경을 극복할 수 있는 정신 적인 자원이 있었습니다.
이 정신 자원이 있기 때문에 그는 모든 역경을 이 억울함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어느 날 감옥 속에 애굽의 술 맡을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이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몽조가 다른 꿈을 꾸었습니다.
같은 꿈을 그래서 그들이 얼굴에 아주 수심이 꽉 들어 차있었을 때 요셉이 꿈을 해석해 주었습니다.
술 맡은 관원장에게 사흘 후에 전직이 회복되리라는 해석을 해주었습니다.

떡 굽는 관원장이 해석이 길함을 보고 자신의 꿈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것은 사흘 후에 바로의 손에 죽임을 당할 것이라는 해몽이었습니다. 요셉은 술 맡은 관원장에게 득의하거들랑 자신을 기억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사흘 후 요셉의 말대로 술 말은 관원장은 복직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요셉의 존재를 잃어버렸습니다.
그래서 감옥에서만 2년 동안 더 고통을 당했습니다.
만일 요셉이 꿈꾸는 사람이 아니었으면 그는 절망을 했었을 것입니다.
요셉이 감옥에 갇힌 후 만 2년 후 바로가 꿈을 꾸었습니다.
그 꿈은 하숫가에 살진 일곱 암소가 풀을 먹더니 그 뒤에 파리한 일곱소가 그 살찐 암소를 다 잡아 먹는 꿈이었습니다.
깨었다가 다시 잠이 들었는데 또 한줄기에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이 나오고 그 후에 또 쇠약하고 동풍에 마른 일곱 이삭이 나오더니 그 쇠약한 일곱 이삭이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을 삼키는 꿈 이였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바로의 꿈을 해석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대 술 맡은 관원장이 시위대 감옥에서 자신의 꿈을 해석해 주었는데 그 소년의 말대로 복직하게 되었다는 내용을 고했습니다.
그러자 바로는 요셉을 빨리 데려 오도록 했습니다.
바로 앞에선 요셉은 하나님이 친히 평안한 대답을 하실 것이라고 전제하고 꿈을 해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동일한 꿈을 두 번 보여 주신 것이니,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곧 다가올 것을 보여 준 것입니다.
이 땅에 7년 큰 풍년이 다가오고 난 다음에 7년 흉년이 올 것인데 얼마나 거센 흉년인지 7년의 풍년이 온데 간데 없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나라를 구출하기 위해서는 명철하고 지혜 있는 자를 택해 애굽을 치리 하게 하고 7년 풍년 때 모든 수확의 5분지의 1을 거두어서 성에 적차 하게 하소서.

이 말을 듣고 바로는 하나님의 신에 감동한 사람을 어디서 얻을 수 있겠느냐며 요셉에게 애굽을 처리할 권세를 주었습니다.
자기의 인장 반지를 빼주고, 세마포 옷을 입히고 금 사슬을 목에 걸고는 버금수레에 태워 우리 앞에서 요셉이 총리가 됐음을 선포했습니다. 순식간에 그 운명이 변화되고 마는 것입니다.

자기를 잡아서 감옥에 넣었던 시위 대장이 바로 자기를 보호하는 사람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7년 풍년 동안에 곡식을 거두었다가 7년 흉년동안에 그것을 팔아 온 애굽이 살고 각 국의 백성들이 양식을 사려고 애굽으로 몰려들었습니다.
가나안의 요셉 형들이 곡식을 사려와서 해와 달과 별이 절하듯이 요셉에게 넙죽 엎드려 절하고 곡식을 팔아 달라고 간구하는 그러한 장면이 벌어진 것입니다.

장작 13년 동안이나 역경과 환난을 통하여 꿈을 먹고살았던 요셉에게 그 꿈이 생애 속에 이루어지고야 만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주신 꿈을 가슴에 품고 꿈을 먹고 살아가면 그 꿈이 우리를 이끌어 가고 그 꿈이 새로운 삶을 가져다 주는 것입니다. 이 세상을 바꾸어 놓은 사람들은 모두다 꿈꾸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꿈을 꾸고, 꿈을 품고, 꿈을 먹고, 사는 사람은 결국에 하나님의 성령의 능력으로 개인과 국가와 세계를 변화 시켜 놓는 사람인 것입니다.
오늘 날 우리 한국에 꼭 필요한 것은 꿈입니다.
우리의 개인 적인 민족적인 꿈이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에게 꿈을 심어 줄 수 있는 지도자가 필요한 것입니다.
한국이 살아 남기 위해서는 꿈을 품어야 됩니다.
꿈을 먹어야 되는 것입니다.
꿈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민족이 꿈을 잃어버리고 허랑 방탕하고 사치 낭비만 하면 파멸 당하고 맙니다.
우리의 가장 영롱한 꿈을 심어 줄자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를 위해서 하나님의 꿈을 한 몸에 싣고 오셔서 십자가에 몸 찢고, 피를 흘려 우리를 위해서 축복의 꿈을 허락해 줄 수 있는 이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가 모셔드리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꿈을 받아 드려서, 자나깨나 그 꿈을 꾸고, 그 꿈을 먹고, 그 꿈을 마시고, 그 꿈 가운데 살면은 하나님의 성령께서 요셉의 생애에 꿈을 이룬 것처럼 우리 생애 속에 이 꿈이 반드시 이루어지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도 이 예배에 참여하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앞으로도 여러분의 삶이 육의 약식만 추구하는데 매달리지 말고,
성령께서 주시는 원대한 꿈을 가지게 해 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 꿈이 반드시 이루어 져서
여러분의 삶이,
여러분의 가정이,
여러분의 사업장이,
여러분이 하시는 모든 일들이 항상 복되고
주님 안에서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 기도하겠습니다.-  

출처/이대희 강도사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