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를 격노케 말라   (골 3:21)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에게 우리 주님의 평화가 늘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5월은 "가정의 달"이므로 앞으로 가정을 위해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까 합니다. 오늘은 어린이주일이므로 자녀 교육에 관한 말씀을 들을까 합니다. 성경에는 어린이 혹은 자녀에 관한 말씀이 적지 않게 나오지만, 오늘은 골로새서 3장 21절을 통해 은혜를 받기를 원합니다. 골로새서 3장 18-21절은 가정 생활에 관한 지침을 줍니다. 18절-19절은 아내와 남편의 도리를 말하고, 20절-21절은 부모와 자식의 도리를 말합니다. 오늘은 3장 21절을 통해 "부모가 자녀를 어떻게 양육하는 것이 옳은지?"에 관해 소중한 깨달음을 얻기를 바랍니다.  

(1) 먼저 본문은 "아비들아" 하고 말합니다. 여기서 아비라는 말은 아버지만을 말하는 아니라 아버지와 어머니, 즉 어버이를 말합니다. 옛날에는 가정에서 아버지의 영향이 어머니의 영향보다 훨씬 더 강했습니다만, 요즘에 와서는 아버지의 권한은 한심할 정도로 약해졌습니다. 그래서 가정에서 아버지보다는 어머니의 영향이 훨씬 커졌습니다. 자녀 출생과 자녀 교육에서 어머니가 하는 역할이 아버지보다 훨씬 큰 탓도 있을 것입니다. 어머니는 오랫동안 자식을 배에서 품었다가 낳고, 또 자식을 낳은 후에도 오랫동안 자식을 품에 안고 기릅니다. 그래서 아버지보다 어머니가 자녀에 대해 훨씬 더 집착하기 쉽고, 자녀를 사랑하기 훨씬 더 쉽습니다. 더욱이 아버지는 주로 바깥에 나가서 돈을 벌다보니, 자녀들과 가까이 할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그 대신 어머니는 주로 가정을 지키며 자녀를 양육하다 보니, 심리적으로 자녀들과 가까워지기 마련입니다. 자녀들도 심리적으로 아버지보다는 어머니를 더 의지합니다. 옛날에는 어머니가 자식을 낳는 기계로 취급되었다면, 요즘에는 아버지가 돈을 버는 기계로 전락했습니다. 물론 요즘에는 부부의 역할이 많이 바뀌어가고 있습니다. 어머니가 직장에 나가고, 아버지가 가정을 지키는 가정도 늘어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는 여전히 아버지보다는 어머니가 가정과 자녀에 대한 책임을 더 많이 떠맡고 있습니다.

하지만 자녀 양육에 대한 책임은 부모가 함께 져야 합니다. "아비들아" 하면, 옛날 사람들은 아마도 "아버지들아"하고 들었을 것입니다. "아비"라는 말이 우리말로는 아버지의 준말처럼 들리니까, 요즘에도 사람들이 이 말을 "아버지"로 잘못 들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부모 양쪽을 향해 "부모들아"하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버지들은 아무리 돈벌이에 바빠도, 자녀에 대한 관심과 책임을 버려서는 안 됩니다. 설령 어머니가 자녀들과 한 통속이 되어 아버지를 가정에서 왕따를 시켜도, 아버지는 목숨을 걸고서라도 가정과 자녀를 사수해야 합니다. 아버지는 "애라, 나도 피곤하고 귀찮다. 극성스러운 마누라가 다 해라."는 식으로 가정을 포기해서는 절대 안 됩니다. 아버지가 자녀에게 상처를 주는 것도 나쁜 일이지만, 자녀에게 무관심한 것도 나쁜 일입니다.

아버지가 자녀들의 미래에 상당한 영향을 준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아무리 바쁘고 귀찮더라도, 좋은 아버지가 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좋은 아버지가 되면 다행이고, 안 되면 할 수 없다"는 식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아버지가 된 이상, 좋은 아버지가 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아버지가 된다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큰 의무이자, 하나님의 큰 축복입니다. 여기서 "어떻게 하면 좋은 아버지가 되는지?"에  관해서는 말씀을 드리리 않겠습니다. 시중에 나온 책이나 인터넷 등을 보면, 잘 가르쳐 줍니다. 좋은 아버지가 되지 못하는 것은 좋은 아버지가 되는 법을 몰라서가 아닙니다. 좋은 아버지가 되려고 노력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어머니도 바깥에서 돈벌이를 하느라 아무리 피곤하고 힘들어도, 자녀 양육에 대한 책임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자녀 양육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공동 책임이라는 것을 분명히 아시기를 바랍니다.



(2) "아비들아"라고 말한 다음, 본문은 "너희 자녀를 격노케 말라"고  말합니다. "격노케 한다"는 말은 "심하게 화나게 한다"는 말입니다. 자녀를 올바로 양육하는 비결에 관해 해주고 싶은 좋은 말들도 참으로 많을 텐데, 본문은 "아비들아"라고 말한 다음 대뜸 "너희 자녀를 격노케 말라"고 경고부터 합니다. 자녀를 잘 기르고 훌륭하게 키우고 싶지 않은 부모들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지만 이게 어디 쉬운 일입니까? 우리 나라에서도 도저히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가 둘이 있는데, 둘 다 "교"자로 시작합니다. 하나는 교통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교육 문제라고 합니다. 아무리 도로를 만들어도, 길은 좁기만 합니다. 아무리 교육 제도를 바꾸어도, 늘 문제라고 아우성입니다. 하지만 자녀를 잘 기르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녀를 망치지 않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한 것 같습니다.

오늘 본문도 그런 뜻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자녀를 잘 기르려고 하기 전에 먼저 자녀를 망치지 않으려고 조심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무엇이 자녀가 망친다는 말입니까? 자녀를 심하게 화나게 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아이는 자랄수록 화를 내기를 잘 하고, 화를 내는 법도 배우게 됩니다. 화라고 모두 나쁜 것은 아닙니다. 화를 너무 참으면, 병을 얻습니다. 화가 나면, 솔직히 화를 내도록 자녀를 가르쳐야 합니다. 만약 화를 내는 것 자체를 무조건 나무라면, 자녀는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법을 배우지 못해 심리적으로 위축되고, 그래서 마음의 병을 얻기 쉽습니다. 다만 문제는 심하게 화를 내는 것입니다. 격노하는 것입니다. 격노하면, 성격을 그르치고, 건강을 그르칩니다. 남에게 폭행을 가하거나, 자신에게 해를 가합니다. 요즘 들어서, 어린이와 젊은이가 남에게 폭행을 가하거나 자살하는 사건이 늘어납니다.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가정과 사회에서 큰 상처를 받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받은 상처에 대한 분풀이로 남을 괴롭히거나, 자해와 자살함으로써 억울함을 표현합니다.

자녀를 심하게 화나게 하는 것은 한 둘이 아닙니다. 몇 가지만 예를 들면, 무엇보다 자녀에게 심한 폭력을 가하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에는 "자녀를 교육하려면, 죽지 않을 정도로 때려라"는 말이 있지만, 구약 시대는 상당히 가부장적이고 권위적인 시대여서 이런 말이 통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신약 시대에 들어와서는 자녀에 대한 보호와 사랑을 각별히 강조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아이를 실족시키지 말라."고 엄하게 경고하셨습니다. 영화배우 김혜자는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는 말을 했습니다만, 꽃이 아니라 그보다 더 아름다운 것으로도 가급적 자녀를 때리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부득이 교육적으로 체벌하려면, 무엇을 잘 못했는지를 분명히 알려 주십시오. 일관된 기준을 마련해 놓고, 매를 드십시오. 일관성이 없는 체벌은 아이에게 혼란을 일으키게 됩니다. 매를 들 때, 부모의 감정을 싣지 마십시오. 화가 난다고 아무 데나 마구잡이로 때리지 말고, 일정한 매로 손바닥이나 종아리 혹은 엉덩이를 가볍게 때리십시오. 너무 자주 매를 들면, 면역성이 생겨 매를 겁내지 않는 아이가 되기 쉽습니다. 현명했던 우리 조상들은 자신의 종아리를 때림으로써, 자녀의 잘못된 버릇을 고쳤습니다. 매보다는 말로 아이를 다스릴 수 있는 부모가 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매로 때리는 것보다 말로 때리는 것이 더 아플 때가 많습니다. 자녀를 심하게 화나게 하는 말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말입니다. 나가서 죽어버려! 다시 한번 그런 짓 하면, 그냥 안 둔다. 너의 형은 안 그러는데, 너는 왜 그래? 너 때문에 죽고 싶다. 너는 정말 어쩔 수 없다. 너는 구제불능이다! 너는 왜 그렇게 머리가 나쁘냐? 너는 몰라도 돼! 이처럼 지나치게 남과 비교하는 말이나 지나치게 자존심을 건드리는 말을 하면 안 됩니다. 아무리 잘못해도, 자녀의 인격과 자존심에 심각한 상처를 입히는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요즘에 들어서 심각한 문제가 되는 것은 체벌이나 폭력이라기보다는 빗나간 자식 사랑입니다. 자녀를 사랑한답시고 자녀들에게 지나치게 심리적인 부담을 주는 부모들이 늘어납니다. 아무리 자녀를 잘 키우고 싶더라도, 자녀의 개성과 건강과 인격을 존중하지 않고 지나치게 학업 경쟁과 출세 경쟁으로 내모는 것은 매우 위험한 도박이요, 또 하나의 큰 폭력입니다. "내가 이렇게 살았으니, 너도 이렇게 살아라. 내가 이렇게 살지 못 했으니, 너는 이렇게 살아라"는 식으로 부모의 욕심과 한을 자녀에게 전가하여 교육하는 것은 교육이 아니라 사육입니다. 사육은 동물에게 하는 짓이지, 사람에게 하는 짓이 아닙니다. 이와 같은 빗나간 사육 때문에 해마다 얼마나 많은 자녀들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행동을 택합니까!

자녀는 부모를 통해 왔지만, 부모의 소유는 아닙니다. 성경은 무어라고 말합니까? 시 127편은 말합니다.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자식은 하나님이 당신의 계획을 이루시기 위해 주신 선물이요, 하나님이 부모의 사랑의 대가로 주신 상급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자녀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키워야 하지, 부모의 뜻대로 키워서는 안 됩니다. 그러므로 학업 성취를 핑계로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일을 게을리하지 마십시오. 자녀의 장래가 정말 걱정이 되신다면, 아니 자녀가 최소한 망하지 않기를 바라신다면, 어거스틴의 어머니 모니카처럼 자녀를 위해 눈물로 기도하십시오. 어거스틴의 생애를 지켜다 본 암브로시우스 주교는 "눈물로 기도한 부모의 자식은 결코 망하지 않는다"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요즘 부모는 자녀의 출세를 위한답시고 교회보다 학원에 더 열심히 보내고, 심지어 조기 유학을 위해 "기러기 아빠"를 두고 어머니가 외국에 나가 살기도 합니다. 이런 일은 자녀를 망치기 더 쉬운 일임을 알아야 합니다. 제발 자녀들을 화나게 하지 마십시오. 자녀에게 가정과 아버지와 어머니와 친구를 빼앗지 마십시오. 자녀에게 꿈을 빼앗지 마십시오. 무엇보다 자녀에게 참되신 어버이가 되시는 하나님을 빼앗지 마십시오. 자녀를 믿음으로 살게 하십시오. 부모는 자녀를 끝까지 돌보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끝까지 돌보십니다.



(3) 마지막으로 본문은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격노케 말라"라고 말합니다. "낙심할까" 두렵기 때문입니다. 의기가 꺾일까 두렵기 때문입니다. 물론 자식이 낙심할까 두려워 무조건 자녀를 방치하는 것은 문제입니다. 부모는 자식을 사랑하기 때문에 빗나간 자식을 엄히 나무랍니다. 그러므로 자식을 잘 나무라는 것도 중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꾸중은 빗나간 행동을 다시는 못하게 할 수는 있지만, 좋은 행동을 하도록 자극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자녀를 나무란 후에는 반드시 격려도 해 주어야 합니다. 한 손으로 때렸다면, 다른 손으로는 반드시 어루만져 주어야 합니다. "병 주고, 약 주라"는 말이 아니라 "채찍과 당근을 동시에 사용하라"는 말입니다. 저도 자녀를 좀 심하게 나무랐다(때렸다!) 싶으면, 반드시 적절한 해명과 사과와 함께 격려의 말을 해주곤 합니다. 꾸중한답시고 자녀의 사기를 완전히 꺾어놓는 일은 차라리 꾸중하지 않는 것만도 못합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칭찬은 유전자도 춤추게 합니다. 자녀가 실망하고 끝내는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행동을 하지 않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자녀가 잘 되고 훌륭하게 되기 위해서 부모는 자녀에게 적절한 격려를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자녀의 단점이나 약점을 일일이 들추어 가면서 꾸중하면, 자녀는 자신감을 잃고 의욕을 상실하게 됩니다. 하지만 부모의 칭찬과 격려는 자녀에게 용기를 북돋아주고, 자신감을 갖게 하는 가장 강력한 활력소가 됩니다. 특히 자녀가 실패를 거듭하여 자신감을 잃었을 때, 부모의 따뜻한 격려 한 마디는 가장 효과적인 버팀목이 되어 줍니다. 부모가 주는 자신감과 안도감은 자녀에게는 마음의 항구와도 같은 것입니다. 부모의 이러한 역할은 자녀가 인생의 거친 파도를 헤엄쳐 나갈 수 있도록 지혜와 힘을 줍니다.

자녀를 격려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녀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이 적성에 맞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일에 자신감을 가질 수 있도록 격려해야 합니다. 자녀를 격려를 할 때, 세 가지를 주의해야 합니다. 첫째로, 격려를 한다는 것이 강압이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어떤 요구를 들어주지 못하면, 사랑을 베풀지 않겠다"는 말투는 격려가 아닙니다. 그리고 "다른 아이들보다 월등히 더 잘해야 한다"는 식으로 말하면, 자녀는 오히려 스트레스만을 받을 뿐입니다. 저의 개인적인 경험을 말하자면, 부모님의 눈물어린 격려와 형님의 자상한 격려가 저의 학업에 큰 용기를 주었습니다. 둘째로, 격려가 오히려 자신감을 잃게 하는 결과를 낳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하지 말라" 는 금지령을 자주 해서는 안 됩니다. 이런 부모 아래서 자란 아이는 매사에 혼자 결정하지 못하고, 타인에게 의존하는 우유부단한 성격을 갖기 쉽습니다. 셋째로, 자녀의 소질이나 적성을 고려하여 칭찬해야 합니다. 단번에 실현할 수 없는 높은 목표를 세우지 말고, 서서히 목표의 단계를 높여나가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자녀가 아무리 자주 실패해도, "너는 할 수 있다, 너를 믿는다. 너를 사랑한다. 설령 실패해도 너를 끝까지 사랑한다"는 말로 계속 격려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자녀를 위해 최선을 다 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도 여러분은 힘껏 도우실 것입니다. 우리 한번 좋은 부모가 되어 봅시다! 힘내십시오.

출처/이신건목사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