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에게   (신 6:7-9)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신6:7-9)

임금으로부터 거대한 자기의 석상을 세우라는 지시를 받은 석공이 있었습니다. 그로서는 일생일대의 영광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바로 그날부터 엄청난 고민에 사로잡혔습니다. 오늘날 같은 대형 기중기가 없던 시절입니다. 엄청난 크기의 입상을 세우려면 몇 개 부분으로 나누어 조각할 수밖에 없는데 그것들을 성공적으로 조립할 방도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밤낮없이 고민하던 석공의 발길이 어느 날 바닷가를 찾았습니다. 적당한 자살 장소를 물색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무심한 어린이 몇이 자기 곁에서 모래장난을 치고 있습니다. 무심코 그들을 바라보던 석공은 순간 벼락을 맞은 것 같은 감동에 사로잡혀 한달음에 석상을 세울 현장에다 석상의 밑부분을 세운 다음 석공은 그것을 완전히 흙으로 덮어 버렸습니다. 이렇게 하여 마치 신라시대 왕릉과도 같이 둥글게 구릉을 이룬 곳 정상에서 또 다시 석상의 몸통 부분을 조각했고 그것을 파묻혀 있는 다리 윗부분과 연결했습니다. 그리곤 다시 전과 같은 요령으로 흙으로 파묻어 버렸습니다. 다음, 같은 방식으로 석상의 두부를 조각하여 몸체 위에 조립한 그는 지금까지 덮어두었던 흙을 모두 치워버렸습니다. 그렇게 하니 거기 우람한 임금의 석상이 제 모습을 드러었습니다. 석공은 해변가 코흘리개 어린이들에게서 배워 마침내 이 거대한 작품을 남길 수 있었던 것입니다.(어린이에게 배운 석공-인터넷 정보)

사랑과 정열의 시인 하이네는 가끔 집에서 파티를 열었습니다. 그런데 초청 받은 손님들은 모두 어린이들이었습니다. 그의 집에는 항상 수십 명의 어린이들이 와글거렸습니다. 한 친구가 하이네에게 물었습니다."여보게 자네에게는 아이가 없지 않은가. 도대체 저 아이들은 누구인가. 그리고 저렇게 떠드는 어린이들 틈에서 어떻게 시를 쓰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군." 하이네가 밝은 표정으로 말했습니다."우리 마을의 꼬마들일세. 어린이들의 깔깔대는 웃음과 가식 없는 얼굴을 봐야 시상이 떠오른다네. 그래서 가끔 어린이들을 초청해 파티를 연다네." 하이네는 어린이들의 밝은 표정에서 시상을 얻어 명작을 남겼다합니다.


오늘 성경은 자녀들의 인격을 인정하고 가르치고 강론 할 것을 말씀합니다. '부지런히 가르치다'(솨난)의 본래 뜻은 '찌르다', '뾰족하게 하다'입니다. 따라서 이 말은 생명력 있는하나님의 말씀(히 4:12)으로 자녀들의 마음과 영혼을 예리하게 찌르듯 감동시키고 교훈하라는 뜻임을 알 수 있습니다.
  
  왜 자녀에게 가르쳐야 할 까요
  잘 기억하는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김삼환 목사님은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목사님이 속한 교단에 목사님 한 분이 연세 많은 90 넘으신 목사님이 한분 계시는데 또 80 넘으신 목사님하고 두분이 만나셨어요. 대화를 하시는 거예요. 여보, 당신 입원 했다지. 그래 입원했어. 그래 좀 어때? 괜찮아. 그러고 좀 이야기하시다가 정확하게 10분 이내로 또 한번 묻는 거예요. 자네 입원했다지. 그래 입원했어. 어떻게 됐어? 퇴원했어 괜찮아. 그러고 죽 이야 기하시다가 또 10분되면 또 그 이야기해요. 자네 입원했다지. 옆에서 들어보니까 계속 일곱 번 여덟 번 반복하더랍니다.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 합니다. 10분전에 한 이야기를 잊어버리시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다 잊어버린다는 것입니다. 연세가 많으면 다 잊어버리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침 먹은 걸 잊어버리고, 자기가 집에서 나온 걸 잊어버리고, 조금 전에 들은 이야기를 금방 잊어버리는 등 다 잊어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80, 70, 60 되어서 접했던 것은 다 잊으시고, 20대, 10대에 있었던 일은 골목골목 돌 하나 있는 것까지 다 기억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도 안 잊어버린답니다. 모든 이야기의 내용, 언제 이야기만 하느냐? 할 때 어렸을 때 이야기만 한다는 겁니다. 연세 많아서 한 일은 금방 잊어버린답니다. 이는 과학적으로 뇌 세포가 나이든 기억을 담고 있는 곳부터 죽어가기 때문이라 합니다.
자녀에게 가르치라 합니다. 자녀들은 잘 기억할 수 있는 세대입니다.

  잘 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의 탁월성이 여러 면에서 확실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미국에 변호사는 70만 명입니다. 그 중에 14만명이 유대인입니다. 미국 400대 재벌 중에 24% 약 100명이 유대인입니다. 더 압축하여 40명 재벌을 뽑으니 24명이 유대인입니다. 뉴욕 교사의 60%가 유대인입니다. 유명 대학 총장의 90% 유대인입니다. 더구나 노벨상을 받은 300여 명 중에 유대인이 93명입니다. 정말 탁월한 민족입니다. 세계 최고의 천재 물리학자 아인슈타인, 심리학의 천재 프로이드, 소아마비 백신을 발명한 의학의 천재 조나 삭, DNA  발견한 천재 아더 코른베르그, 그리고 DNA 합성에 성공한 천재 솔로몬 쉬피겔는 유대인입니다. 그리고 세계 최초의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아브라함 마이클슨도 유대인입니다. TV발명자 데이비드 사노프도 유대인입니다. 정치가 키신저, 세계 최대의 영화감독 스필버그도 유대인입니다. 미술의 천재 샤갈도 유대인입니다. 심지어 모세, 바울 그리고 예수님까지 유대인입니다. 유대인들은 교육의 천재입니다. 세계 인구 중에 4명을 붙잡으면 한 명이 중국입니다. 100명 잡으면 한 명이 한국입니다. 500명을 모아야 유대인이 한 명입니다. 다시 말해 봅니다. 1000명을 모으면 그 중에 250명이 중국인입니다. 한국인이 10명입니다. 유대인은 두 명입니다. 그런데 1000명을 움직이는 것은 유대인입니다. 오늘 날 유대인이 세계를 움직이고 있습니다.

  성경의 가르침이기 때문입니다. 유대인 아버지는 자녀에게 율법을 가르쳐야 합니다. 토라, 탈무드를 가르쳐야 합니다. 그래서 13살에 율법 시험에 합격시켜야 유대인으로 인정받게 됩니다. 율법시험에 합격하면 성년식을 회당에서 하는 데 3시간가량 걸립니다. 할아버지, 아버지 그리고 성년이 된 아들이 강대상으로 나옵니다. 랍비는 두루마리 성경을 꺼내 할아버지에게 줍니다. 할아버지는 아버지에게, 아버지는 아들에게 줍니다. 이 때 아버지는 펑펑 웁니다. <내가 자식을 낳아 할 일을 이제 다 했다. 하나님이 나를 저주하지 않으신다> 이 때 두루마리 성경을 떨어뜨리면, 성경이 떨어지는 것을 본 이들은 모두 3일 금식하여야 합니다. 조심조심 받아서 들고 아들이 강대상을 내려와서 한 바퀴 돕니다. 회중은 다 일어나서 성년이 된 아들이 지나갈 때 토라에 손을 대고 자기 입에 댑니다. 그리고 율법시험에 합격한 아들을 격려하여 줍니다. 아들인 경우에는 바르 마츠바, 딸인 경우에는 바르 미트바라고 합니다. <율법의 아들> <율법의 딸>이라고 하는 의미입니다.

   어떻게 가르쳐야 합니까
  강론하며 가르쳐야 합니다. 강론할 것이라는 자신 및 자신의 가족 뿐 아니라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도 하나님의 말씀을 거듭 주지시켜 그들로 하여금 그들의 일상 삶과 사고 가운데서 늘 말씀에 유의하며, 또한 이를 준수하는 생활에 힘쓰도록 노력해야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리하여 부모를 닮기 원하는 자녀가 되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위로, 격려, 불안정의 해소를 위해 직접적인 사랑의 훈계를 해야 합니다. 자녀들의 죄, 위험, 절망적인 결과 등에 대한 경고를 주저하지 말고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라고 합니다. 그들에게 말씀을 가르쳐서 행복의 유일한 길이란 하나님 안에서 평안을 누리는 것임과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야 합니다. 자리에 앉았을 때, 자리를 옮겨 걸을 때, 그리고 서로 만나 얼굴을 대할 때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토론하며 전달하고 가르치라고 했습니다.

  본을 보이면서 가르쳐야 합니다. 유대인들은 마음에 새겨진 하나님의 말씀은 개인의 삶 속에서 표현되어져서 그 사람의 미간과 손목의 표지가 되는 동시에 가정생활에도 중심이 되어짐으로 집의 현관과 바깥문에 나타나도록 하며 본을 보입니다(8, 9절).
1911년 일제는 「총독암살날조작극」을 꾸미고 대한민국 독립 인사들을 대거 체포했습니다. 이것이「105인사건」입니다. 이때 민족지도자인 남강 이승훈선생도 일경에 체포되어 5년간 수감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나 일제는「민족정신」만큼은 수감시킬 수 없었습니다. 남강은 감옥에서 더욱 투철한 신앙인, 독립투사가 되었습니다. 그는 여기서 성경을 세번 통독하고 기도와 사랑실천에 힘썼습니다. 후에 남강의 비석에 사람들은 이런 말을 새겼습니다. 『일생을 남을 위해 살았고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 것도 한 것이 없는 사람』

   인격을 존중하며 가르쳐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린아이가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에 있는 사람들이 다 이와 같은 자 들이라』고 말씀하시며 아이들을 다 자기에게 오게 하고 어린이들을 자기가 친히 안고 손을 머리 위에 얹고 안수해 주시면서 다 복을 빌어주시고 계속해서 제자들에게 하시는 말씀이『너희들이 하나님 나라 받들기를 이 어린이들과 같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갈 수가 없느니라』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어린이에 대한 이런 태도, 또한 이와 같은 교훈이 세계 역사를 통해 준 영향은 심히 큰 것입니다. 예수 님께서 세상에 오셔서 어린이들에게 이런 태도를 취하셨고 또 어린이를 중심으로 하는 귀한 교훈을 주셨음으로 어린이들이 이 세상에 있어서 사회적 지위와 법률적 권리 등 이런 모든 방면에 큰 영향을 준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 전에 여러 나라, 여러 사회, 여러 문명 가운데서 어린이들에 대한 태도를 찾아보면 매우 유감스러운 것이 많습니다. 옛날 5천년 전 애굽의 문명은  각 방면에 발전했던 것을 보며 찬탄해 마지않는 점이 많습니다. 그렇지마는 그 사회에서 어린이를 어떻게 했는가는 출애굽기를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물론 애굽 어린이들은 잘 대했겠지만 그들의 종노릇하는 이스라엘의 어린이들은 여자를 낳으면 그냥 살려두었지만 남자를 낳으면 곧 나일 강에 던지라는 법령을 내린 일도 있습니다. 애굽을 문명한 사회라고 하였지만 어린이의 지위가 이런 지위에 있었던 것입니다.

     무었을 가르쳐야 할까요
   하나님을  바로 섬기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영국의 유명한 설교가, 스펄젼 목사님에게 젊은 신학생 한 명이 찾아와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목사님, 목사님도 낙망하신 일이 있습니까?" 그러자 그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놀라운 답변을 했습니다. "적어도 지난 20년 동안은 낙망해 본 적이 없네. 나는 그 동안 하나의 중요한 원리를 내 삶에 적용하고 있었지. 그 원리란 계속해서 주님을 바라보는 것이라네. 나는 하루에 15분도 주님을 생각하지 않고 지나간 일이 없네. 그때 이래로 나는 낙망을 모르고 살아왔어." 크신 하나님을 항상 바라보며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믿는다면, 내 주위의 사람들이 어떠한 비판을 가하여도, 조롱하여 비웃어도 우리는 크게 외칠 수 있습니다. "나는 아무 것도 염려하지 않습니다." 예수님도 늘 하나님을 바라보셨습니다. 예수님처럼 핍박과 반대와 조롱을 당하신 분이 어디 있습니까? 그분은 그러한 문제들을 끌어안고 하늘을 우러러보시며 아버지께 기도하셨습니다. 그분이 가셔야만 했던 십자가 그 길을 향해서 뚜벅뚜벅 걸어가실 뿐 모든 비웃음과 고난을 하나님께 맡기셨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십자가 상에서 마지막 숨을 거두시며 이렇게 말씀하실 수 있었습니다. "다 이루었다."

   기도하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워 감독의 어렸을 때 일입니다. 하루는 그의 아버지에게서 어떤 일을 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 일을 하는데 그의 친구가 와서 데리고 나갔기 때문에 이 일이 중단되었습니다. 그날 밤에 워의 아버지는 "프랭크야 아까 시킨 일은 다했니?" 라고 물었습니다. 워는 서슴치않고 "네. 다 했습니다." 라고 거짓말로 대답했다. 아버지는 벌써 거짓말인 줄 알고 있었지만 아무 말도 안했습니다. 아무 말도 없음에 워는 심히 마음이 불안하여 하룻밤을 무겁게 보냈습니다. 또한  그의 아버지는 자식의 거짓말에 가슴아파하여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이튿날 아침 아버지는 어린 워에게 "나는 어제 한잠도 잘 수  없었다. "라고 말하였습니다. 워가 "왜 주무시지 못했어요?" 하고 묻자 "나는 밤새도록 너를 위해 기도했단다." 라고 아버지가 대답했습니다. 이 말은 어린 아들의 마음을 화살처럼 찔렀습니다. 워는 자기의 죄를 깨닫고  아버지와 하나님께 사유함을 빌었습니다. 워는 후에 감독이 되었는데 때마침 다음과 같은 말을 했습니다. "그때 아버지의 기도를 얼마나 감사해야할지 모르겠다." 라는 것이었습니다. 불량한 자녀가 있을 때 무엇보다 할 것은 자녀를 위해 하나님께 기도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은 생각에 넘칠 것입니다. (빌 4:6,7)(자녀를 위한 기도-예화 뱅크)
   강림교회 최영순 집사님 간증입니다. 그는 지금 76세입니다.  남편이 부산에서 큰 버스 운송 사업을 하다가 부도가 났습니다. 그는 빈털털어리가 되어 부산에서 서울로 이사 왔습니다. 그 곳에서 살기 챙피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경제력을 상실한 그는 날마다 밤마다 술로 살았습니다. 끝내 알콜 중독자가 되었습니다. 폐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더니 가출하고 말았습니다. 최 집사님은 혼자서 5 남매를 길렀습니다. 첫째 아들은 목사가 되었습니다. 둘째 아들은 의사가 되었습니다. 첫째 딸은 목사 사모가 되어 목회 사역에 충성하고 있습니다. 둘째 딸은 대기업의 상무가 되었습니다. 막내 딸은 미국 유학 가서 샌프란시스코의 한 신문사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다섯 남매가 다 성공하고 잘 되었습니다. 남부럽지 않은 사람들로 당당하게 살고 있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집사님에게 물었습니다. <혼자 힘으로 어떻게 자녀들을 다 성공시켰습니까?> 최 집사님은 이렇게 대답하고 있습니다. <나는 한 것이 없습니다. 그저 날마다 새벽에 하나님께 나아가 이렇게 기도하였지요. ‘저는 남편이 없습니다. 아이들은 아버지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맡아주셔서 아이들의 아버지가 되어 주십시오.’ 그리고 저녁에 아이들이 들어오면 붙들고 하나하나 붙들고 이렇게 기도하였지요. ‘하나님이 축복해 주시옵소서’ 내가 아이들을 위하여 한 것은 기도밖에 없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우리 아이들을 길러주셨습니다>
하나님에게 기도하며 자녀들에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정성을 다 하여 섬기게 하는 것이 최고의 교육임을 증명하여 주었습니다.

     교회 출석을 잘 하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어느 목사님이 설교 초청을 받아 그 교회에 가게 되었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겨서 아무리 찾아도 초청받은 교회를 찾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리저리 헤매다가 마침 복덕방이 있길래 그 앞에 차를 세워놓고 물어보았답니다. 그랬더니, 그 복덕방 할아버지가 친절하게 가르쳐 줘서 그 교회를 찾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시간이 되서 그 복덕방을 찾아 가서 감사인사를 했습니다. "할아버지, 감사합니다. 어떻게 그렇게 친절하신지 너무 고마워서 인사를 하려고 다시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할아버지 예수는 믿으시지요?" 물었더니, "아니요, 나는 예수님 믿지 않습니다." "아니, 왜요? 예수님 믿으면 복을 받아 잘 살게 되고, 죽어서는 천당을 가게 되는데 왜 그렇게 좋은 예수님을 믿지 않으신단 말입니까? 제가 천당 가는 길을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그랬더니, 이 할아버지가 뭐라고 했는지 아십니까? "교회 가는 길도 모르면서 어떻게 천당 가는 길은 가르쳐 준다는 말입니까?" 천당은 교회의 완성된 상태라 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내세 천당은 교회 생활 잘 하는 것과 이어집니다. 교회 나왔다고 다 천당가느냐 하는 것은 따로 살펴 볼 일입니다만 교회 가는 것을 잊어버리고 천당 가는 것을 기대할 수가 있겠습니까?
내가 구원 받았으면 예배하는 것 알고, 하나님 앞에 십일조 생활할 줄 알고, 교회에 일이 있을 때 앞장서서 일을 해야 하는데, 이모든 일의 기본은 교회 출석을 잘 하는데 있습니다.

부지런히 가르치라는 자녀에 대한 부모의 신앙 교육의 책임과 의무를 일깨워 주는데, 후일 사도 바울이 성도들에게 특별히 권면한 점이기도 합니다.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엡 6:4)합니다.
가르치는 책임은 학교나 교회, 사회보다도 가정에 있습니다. 가정 이외의 교육 기관들이 아무리 많은 교육적 역할을 수행한다 해도 하나님께서는 '가정'만큼 중요한 교육 기관을 세우신 적이 없습니다. 어린이 주일을 지키며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되 어린 시절이 가르침의 가장 좋은 기회요 잘되는 길이요 성경의 가르침임을 바로알고 가르치며 강론하며 삶의 본을 보이며 인격을 인정하며 가르치며 하나님 섬김과 기도 생활과 교회 출석을 잘 하도록   가르치는 모두가 됩시다.


출처/강성찬목사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