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여년 전 쯤인가 보다. 풍덕천에 있는 목욕탕 사우나 도크에서 땀을 빼고 있는데 함께 있던 젊은 분이 내 풍체를 보며 ‘몸이 참 좋으십니다. 그런데 무슨 일을 하시는 지요?’ 하며 묻길래 나도 모르게 ‘나는 목삽니다’라고 대꾸한 적이 있었다.

며칠 전, 불신 남편이 전도되어 그 가정을 심방하며 대화를 하던 중‘혹시 오-래전에 풍덕천에 있는 사우나에 가신 적이 없으신지요?’ 하며 그때 일을 기억했다.

목사님이라고 하시길래 자신도 깜짝 놀라서 그 자리를 황급히 피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그 분이 아니냐는 것이었다. 가만히 기억을 더듬어 보니 나도 그때, 갑작스런 질문에 당황했었던 일이라 어렴풋이 생각이 되살아 나는 것이었다. 거의 십 여년 전 쯤의 일이었는데 그 때 일을 기억하고 있는 것도 또 이렇게 수지산성가족이 되어 목회자와 성도로 만나게 되는 일도 예삿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평소에 내가 크리스챤이라는 표시도 더구나 목사라는 표시를 내는 말이나 행동을 섣불리 하지 않는다. 물론 전도 할 때는 밝히지만 평소 입고 다니는 양복에 십자가나 그 외의 어떤 표식을 다는 것은 물론이고 타고 다니는 자동차에도 기독교인의 냄새가 나는 것을 표시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기독교인으로서 완벽한 품위를 지킬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표시가 자신의 행동을 절제 시킬 수도 있지만 운전을 할 때나 일상을 살 때 혹시라도 실수를 하게 되면 다른 사람들로부터 비난의 대상이 될 뿐 아니라 괜히 교회가 욕을 먹고 대다수의 경건한 크리스챤들과 심지어는 예수님도 욕 먹이고 전도길이 막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나의 행동이 영적으로는 비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인간은 연약한지라 내가 기독교인이요 목사로서 아무리 선한 일을 하고 잘해도 세상 사람들 눈에는 그것이 당연한 일로 인식되고, 미필적 고의와 실수로 잘못을 해도 무조건 기독교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욕을 먹기 때문이다.

만약에 십 여년 쯤의 그 목욕탕에서 지금의 그 남자 성도의 기억 속에 나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입력 되었었더라면 내가 얼마나 부끄러웠을까, 아니 어쩌면 그 성도가 교회 등록을 포기 할 수도 있었을런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가슴이 철렁되었다.

더구나 나는 얼굴의 나이에 비해 머리색이 하얗기에 다른 사람보다 눈에 더 잘 띄고 기억이 더 잘되기에 더더욱 나의 평소의 언행이 조심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에수믿는 표식을 달고 다니는 분들이 참 부럽다. 나는 언제나 그들처럼 할 수 있을까?

오! 주여

표식을 하건 안 하건 신앙 양심에 따라 살게하소서.

적어도 저 때문에 지옥가는 사람이 없게 해 주소서

(주후 이천십일년 시월 둘째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