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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탠리 Henry Morton Stanley 1841-1904

      기자 활동을 하다 1869년 아프리카에서 소식이 끊긴
      데이비드 리빙스턴을 찾아내라는 밀명을 받고
      아프리카 탐험에 뛰어든 인물입니다.

      그는 천심만고의 역정 끝에 1871년 11월 식량과 약품이
      모두 떨어진 채 앓고 있는 리빙스턴과 극적으로 만납니다.

      이때 스탠리가 '리빙스턴 박사님이시지요?'
      라고 인사를 건낸 것은 유명한 일화입니다.

      1874년 리빙스턴 구출을 위해 다시 한번 아프리카로 갔으나
      이번에는 리빙스턴의 죽음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탐험에서 그는 나일 강의 원천인 빅토리아 호를 발견하고
      아프리카 대륙을 횡단하는 등 아프리카
      탐험 역사의 한 장을 새로 썼습니다.

      그를 불굴의 탐험가로 만든 요인으로는 그의 타고난 담대함과
      인내심, 치밀함 등을 들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그를 정신적으로나 도덕적으로 강하게 만들어 준 기도의 힘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는 새로운 도전과 위험 앞에 설 때마다 동료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기도는 나에게 자신감을 주었습니다
      나의 일에서 즐거움과 자부심을 얻게 해 주었고,
      1.500마일의 숲 속을 거뜬히 지나갈 수 있도록 희망을 주었으며,
      매일 매일의 위험을 극복할 의욕을 주었습니다'

      그의 알려지지 않은 일화 가운데는 우간다의 토인들에게
      복음이 전해지게 된 기적 같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탐사 여행 중에 만난 한 원시 부족의 추장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설명하고 깊은 인상을 심어준 스탠리는
      더 나아가 그 지역에 선교사를 보내 달라는 편지를 보낼 결심을 하였고.

      그 중요한 편지를 본국에 전달할 인물로
      한 프랑스인을 선발하게 되었습니다.불행하게도 그 젊은이는
      험난한 여정 중 무지몽매한 토인들에게 살해 당하고 맙니다.

      그의 비참한 죽음은 헛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몇 달 뒤 영국 군인들에게 그의 유골과 함께
      그가 신었던 부츠안에 있던 스텐리의 편지가 발견 되었던 것입니다.

      한 용감한 탐험가의 기도와 이름 없는 청년의 희생은
      이렇게 해서 위대한 기적 하나를 성취하였습니다.

      이 편지에 감동 받은 7명의 선교사가 스탠리가 있던 오지로 들어가서
      그 일대의 원주민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오직 기도와 사랑의 희생만이
      그분이 원하시는 선교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