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님을 스승으로   (요 14:16-17, 26 롬 8:26-27)

지난주간은 가정 회복을 위한 치유 세미나가 정동섭 교수를 통해서 은혜롭게 이루어 졌습니다. 시간, 시간 꼭 필요한 말씀들을 우리에게 주셔서 우리의 가정들이 많은 도움을 입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감사 드리고 시간, 시간 분주한 일손을 쉬고 은혜의 자리에 참석하신 교우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러나 함께 할 수 없었던 교우들에 대해서 아쉬운 마음이 있습니다. 오죽 했으면 참석을 못하셨을까 하는 마음에 연민의 정을 느낍니다.

5월 15일 어저께는 스승의 날이었습니다. 스승의 날이면 생각나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교수이며 목사이며, 가정치유 사역자요 상담자이신 정태기 교수의 감동적인 이야기입니다. 정 목사님은 어린 시절 전라도의 어느 조그마한 섬에서 자랐다고 합니다. 그런데 거친 섬사람들은 습관적으로 욕을 밥먹듯이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어린 시절 정 목사님도 똑같이, 아니 다른 아이들보다 더 많이 욕을 하면서 자랐다고 합니다.

그런데 바로 그 섬 마을에 예수님을 아주 잘 믿으시는 한 선생님이 들어오셨다고 합니다. 이 선생님은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시면서 그들을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가지고 사랑으로 잘 가르치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선생님은 당시 아이들이 욕을 너무나 잘 하는 것에 대해서 늘 괴로워 하셨습니다. 그래서 궁리 끝에 이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욕 표를 한 달에 각각 10장씩 주면서 누구든지 욕을 할 때마다 한 장씩 빼앗기도록 했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이 욕표를 제일 많이 빼앗기는 아이에게는 운동장을 돌리며 심한 벌을 세웠다고 합니다.

그런 가운데서 한 달이 다 되던 어느 날 선생님이 욕표 검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욕표 검사결과 정태기 목사님이 이 표를 다 빼앗겨 제일 꼴등을 하였고, 그 반에서 제일 욕을 잘하는 아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를 보고 화가 난 선생님은 교무실로 오라고 하시더니 종아리를 걷으라고 하시면서 열대를 때리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정 목사님이 세 대를 맞을 때에 너무 아파서 이에 반항하며 그만 그 선생님을 가로막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때 그 선생님께서 자기를 향하여 "태기야, 내가 너를 얼마나 믿었는데"하시면서 마구 우시더라 는 것입니다. 이 모습을 본 정 목사님은 큰 충격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너무나 감동된 나머지 자신도 울면서 다시 다리를 걷어붙이고 나머지 일곱 대를 다 맞았다고 합니다. 성도 여러분! 스승과 제자 사이에 얼마나 감동적인 이야기입니까? 정 목사님은 바로 이 사건이 자신의 운명과 인생을 바꾸어 놓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고 고백하셨습니다. 오늘날 이런 스승과 제자가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학교에 갔더니 스승의 날이라고 해서 꽃바구니를 드리고 스승의 노래를 오랜만에 불러 드렸습니다. "스승의 은혜는 하늘같아서 우러러 볼수록 높아만 지네 참 되거라 바르거라 가르쳐 주신/ 스승의 은혜는 어버이시라/ 아아 고마워라 스승의 사랑/ 아아 보답하리 스승의 은혜/

오늘의 저와 여러분이 있기까지 여러모로 가르쳐 주시고 키워주신 스승의 은혜를 다시 한번 묵상해 보는 이 시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스승을 생각하는 절기에 성령님을 생각하며 성령님을 우리의 스승으로 모시고자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우리의 스승이 되시는 성령님은 과연 어떤 분이신 가에 대해 함께 살펴보며 은혜 나누고자 합니다.

1. 참 스승이신 성령님은 우리와 함께 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오늘 본문 요14:16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얼마 있지 않으면 제자들을 떠나게 되실 것입니다. 그 대신 또 다른 보혜사 즉 성령님을 너희 곧 제자들에게 보내 주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아버지께서 보내어 주신 그 보혜사 성령님은 바로 제자들과 영원토록 함께 있게 하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여기서 말하는 보혜사란 곧 보호자란 의미가 있습니다. 성령님이 우리와 함께 한다는 것은 곧 성령님께서 우리와 생사고락을 같이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또한 성령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면서 우리를 때를 따라 위로해 주시고 보호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참 스승이 되시는 성령님은 우리와 멀리 떨어져 계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우리와 언제나 항상 함께 해 주실 뿐만 아니라 항상 우리를 위험한 가운데서 보호해 주시는 분이심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이 말씀을 볼 때에 참 스승은 어떠하여야 하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참 스승이란 곧 제자들과 함께 있는 자라는 것입니다. 참 스승이란 위에서 권위를 내세우는 자가 아닙니다. 자기를 낮추고 우리 가운데로 오셔서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우리의 친구가 되어 우리와 항상 함께 해 주시는 분이신 것입니다.

오늘 요14:17절도 함께 읽겠습니다.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여기서 볼 때 성령님은 우리와 함께 거하시며 우리 속에 계시는 분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을 살면서 외로운 나그네 인생 길을 가는 우리와 항상 함께 계시면서 우리를 도와 주시는 정말 사랑이 많으신 분이심을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이 시간 우리의 참 스승이 되시는 성령님께서 여러분과 늘 함께 해 주시고 마음 가운데 모셔 드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요즈음 교회학교의 아이들과 학생들의 삶이 잘 변화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여러 가지 있겠지만 그 중에 중요한 한 가지는 이들이 참 스승이 되시는 성령님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 교회학교 선생님들과 인격적인 사랑의 관계성을 잘 맺지 못하지 않는가 생각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교회학교의 영혼들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성령님도 만나지 못하고 또한 자기들과 항께 해 주시는 사랑의 선생님도 잘 만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분명한 사실은 주일 날 교회에 나오는 교회학교의 어린이들과 학생들, 그리고 청년들은 앞으로 자라서 이 나라의 훌륭한 일꾼들이 되어야 할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들에게 우리의 진정한 스승이 되시는 성령님을 만나도록 도와 주어야 하겠습니다. 진실로 이들이 성령님만 인격적으로 만난다면 그 삶이 변화되지 않을 수 없을 줄로 믿습니다. 아울러 우리 교사들과 리더들이 좀더 낮아져서 이들의 친구가 되어주며 어린 영혼들과 함께 하는 시간과 삶을 살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 참 스승이신 성령님은 우리를 가르쳐 주십니다.

요14:17절 상반 절에 성령님을 가르쳐 진리의 영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성령님은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는 영이라는 말씀입니다. 또한 이는 성령님은 우리를 진리의 말씀으로 잘 가르쳐 주시는 분이시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본문 요14:26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여기서 보혜사란 보호자라는 뜻도 있지만 상담자라는 뜻도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보혜사 즉 우리의 좋은 상담자이십니다. 그 분은 우리의 인생 길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들을 진리의 말씀에 입각하여 가르쳐 주시며 상담해 주시는 분인 것입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스승이라 하면 잘 가르쳐야 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며, 어떻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가를 가르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영생을 얻을 수 있는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소망과 비전이 과연 무엇인가를 가르쳐야 할 것입니다. 제자들을 바른 길 즉 진리의 길, 생명의 길로 인도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또한 현실적으로 무엇을 해야 좋을지! 어디로 가야 좋을지 잘 모를 때에 스승은 진리의 길로 잘 인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사들과 우리의 부모님들이 먼저 우리의 참 스승 되시는 성령님을 통해 그 지혜를 배워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양떼들을 의의 길, 진리의 길, 생명의 길로 잘 인도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스승의 날을 맞이해서 구조와 체제를 탓하고만 있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여러 가지 스승에 대한 부정적인 소식들이 많이 들리는 가운데 알게 모르게 제자들을 위하여 희생하고 사랑하는 모범적인 스승들이 이 땅에 많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학교 교사들이나 우리 주일학교 교사들, 그리고 자녀들에게 본을 보여야 할 우리 부모님들, 교회의 중직자들이 먼저 우리의 참 스승 되시는 성령님 앞에 겸손히 무릎을 꿇어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먼저 그 분을 통해 사랑의 상담을 받고 가르침을 받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 심령의 치유의 역사가 먼저 일어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 패역한 시대 속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서 세상 유혹에 빠져들어 가기가 너무나 쉬운 양떼들을 우리의 참 스승이신 성령님을 통해 치유 받고 회복되도록 도와 주어야 하겠습니다. 이런 일에 힘쓰시는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3. 참 스승이신 성령님은 우리 연약함을 도와주십니다.

롬8:26절 말씀을 읽도록 하겠습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이 말씀에서 우리는 우리의 스승이신 성령님의 또 한가지의 중요한 역할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성령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도와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스스로 굉장히 강한 것 같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러나 사실은 우리가 얼마나 약한 존재입니까? 그래서 잘 넘어지고 쓰러지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럴 때에 우리의 스승이 되시는 성령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도와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령님은 구체적으로 우리를 어떻게 도와 주시는 것입니까? 물론 여러 가지로 도와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을 볼 때 성령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도와 주신다고 했습니다. 특별히 우리가 어떻게 무엇을 기도해야 할지를 몰라 지쳐 있을 때에 우리보다 더 안타까운 마음과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해 주신다고 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 얼마나 놀랍고 귀한 일입니까? 그리고 성령님은 우리 성도들을 위해 기도해 주실 때에 우리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참 스승이 되시는 성령님의 중요한 역할인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의 참 스승이 되시는 성령님을 통해서 진정한 스승은 바로 제자들 즉 양떼들의 연약함을 보고 그냥 지나칠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도와 주는 자가 되어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도 인간적인 도움이 아닌 신앙적인 도움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기도하다가 지쳐있는 영혼들을 위해 중보기도를 해 줄 수 있어야 하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또한 우리가 돌보는 양들이 쓰러져 있을 때 찾아가서 일으켜 세워 주어야 하겠습니다. 물론 이것은 앞에서와 같이 우리가 다른 사람 즉 양들을 돕기 전에 먼저 우리 자신들부터 성령님을 통해 우리의 연약함에 대해 도움을 받아야 할 줄 믿습니다. 성령의 능력과 은총을 덧입어야 하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양떼들의 연약함을 도와 주는 좋은 스승이 다 되실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모쪼록 우리와 함께 해 주시고 가르쳐 주시고 연약함을 도와 주시는 성령님을 우리의 참 스승으로 모시고  살아 어두운 세상에 실족하지 아니하고 의의 길, 복된 길, 승리의 길로 걸어가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윤정현목사 설교자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