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의 즐거움    (잠23: 22-25)


시인 피천득씨의 글 가운데 아름다운 글이 있습니다. 그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노래입니다. "30대에 세상을 떠난 내 어머니는 얼마나 젊고 아름다웠는지 모릅니다. 내가 새 한 마리도 죽이지 아니하고 살아온 것은 내 엄마의 자애로운 마음이요, 햇빛 속에 웃는 나의 미소는 내 어머니한테서 배운 웃음입니다. 나의 간절한 희망이 있다면 내 어머니의 아들로 다시 세상에 태어나는 것입니다."
이 땅에 살아가는 모든 자녀들의 마음은 이렇게 어머니의 숨결 속에서 하나님의 숨결을 느낍니다. 어머니의 사랑을 알고 살아가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이해하는데 그렇게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풍요로운 사랑을 깨닫고 살아가는 사람은 이 땅에 살아가며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나누어주며 살 수 있습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세상에서 가장 고마우신 분은 우리에게 생명을 나누어주신 분입니다. 때문에 내 아버지 내 어머니는 이 땅에서 우리의 공경을 받아 마땅하신 분들입니다. 세상 최고의 스승이 있다면 아마 하나님을 가르쳐 주신 분일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어머니는 최고의 스승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어머니를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을 봅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우리 귓전에 들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머니의 음성을 통하여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그분이 바로 우리 어머니요 가장 위대한 스승 아니겠습니까? 내 어머니는 우리 하나님을 보여 주시는 분이시오, 우리 하나님은 내 어머니 같으신 분이십니다.
프랑스에는 역사상 69명의 왕이 집권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서 세 사람의 왕만이 백성들로부터 한없는 존경을 받았습니다. 이들이 공통점은 모두 친어머니의 젖을 먹고 친어머니의 품에서 자라난 왕들이라는 사실입니다. 어머니의 사랑을 통해서 진정한 사랑을 체험한 왕은 그 사랑 때문에 백성들을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갖게 된 것이지요. 그 왕의 마음에 어머니의 사랑이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이 심겨져 있었기에 백성들을 사랑하는 왕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어느 듯 우리 나라도 서구 문화를 반영해서 가족 관계는 급속하게 붕괴되고 부모님을 모시고 효도를 다하며 사는 모습은 점차 사라지고 있습니다. 부모 자식간의 인정과 사랑은 끊어지고 메마르고 가시밭 같은 관계로 변하고 있습니다. 문화는 세련되고 경제적으로는 나아졌지만 좋았던 가족 관계는 급속도로 파괴되고 있습니다. 부모를 공경하던 아름다움은 지난날의 이야기가 되고 있습니다.

가시고기와 우렁이
부성애를 나타내는 가시고기와 모성애가 강한 우렁이가 떠오릅니다.가시고기는 소설로서 더욱 유명합니다.가시고기는 산란기에 암컷이 알을 낳고 떠나면 숫놈은 알이 부화될 때까지 신선한 공기를 제공하고 침입자를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하다가 새끼들이 둥지를 떠날 때 생을 마감하는 작은 물고기입니다.가족을 위해 수고하다 조용히 한 세상을 마감하는 아버지들의 함축된 모습을 보여주는 감동적인 드라마입니다.또 우렁이는 제 몸에다 알을 낳으며 새끼들은 어미의 살을 파먹으며 성장합니다.한 점의 살도 남김없이 새끼들에게 먹이로 주고 빈 껍데기가 되어 조용히 물에 떠내려갑니다.가족을 보호하고 울타리가 되는 아버지의 희생과 살을 깎아 먹이는 어머니의 희생은 어디에서 보상받게 될까요? 성경은“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하지만 나이든 부모는 자식들에게 서서히 짐이 되는 존재로 전락하는 듯 합니다.자녀들이 제 아무리 효도를 다한다 해도 부모의 사랑을 어찌 다 갚을 수 있을까요? 어버이주일에 가시고기와 우렁이를 생각하며 못 다한 효도를 생각하게 됩니다.
오늘은 어버이 주일입니다. 어버이 주일에는 부모님의 사랑과 은혜를 가슴에 새기며 감사하고 부모님에 대한 효도를 다짐하면서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립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자녀들은 부모님의 사랑과 은혜를 마음에 기리며 부모님의 가르침에 따라서 보다 선하고 진실하게 살기를 다짐하면서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립니다.
몇 년 전에 삼성생명에서 "어머니"라는 제목으로 다음과 같은 기업광고를 냈던 적이 있습니다.
스물 하나 - 당신은 고개를 두 개 넘어 얼굴도 본 적 없는 김씨 댁의 큰아들에게 시집을 왔습니다.
스물 여섯 - 시집온 지 오 년만에 자식을 낳았습니다. 당신은 그제서야 시댁 어른들한테 며느리 대접을 받았습니다.
서른 둘 - 자식이 밤늦게 급체를 앓았습니다. 당신은 자식을 업고 읍내 병원까지 밤길 이십 리를 달렸습니다.
마흔 - 그해 겨울은 유난히 추웠습니다. 당신은 자식이 학교에서 돌아올 무렵이면 자식의 외투를 입고 동구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리고 자식에게 당신의 체온으로 덥혀진 외투를 입혀주었습니다.
쉰 둘 - 자식이 결혼할 여자라고 집으로 데리고 왔습니다. 당신은 분칠한 얼굴이 싫었지만 자식이 좋다니까 당신도 좋다고 하였습니다.
예순 - 환갑이라고 자식이 모처럼 돈을 보냈습니다. 당신은 그 돈으로 자식의 보약을 지었습니다.
예순 다섯 - 자식 내외가 바쁘다며 명절에 고향에 못 내려온다고 했습니다. 당신은 동네 사람들에게 아들이 바빠서 아침 일찍 올라갔다며 당신 평생 처음으로 거짓말을 했습니다.
오직 하나 자식 잘 되기만을 바라며 살아온 한평생. 하지만 이제는 깊게 주름진 얼굴로 남으신 당신...... 우리는 당신을 어머니라 부릅니다.

한 아버지의 고백

몇 해 전에 신문에 기고되었던 내용인 한 아버지의 고백입니다. "스물 아홉 살에 그는 열 네 시간을 기다려서 자식의 울음소리를 들었다." 라고 말합니다. 그 부인이 산실에 들어가서 산고를 치르고 있을 때, 그는 문 밖에서 무려 열 네 시간을 기다렸습니다. 초조하게 기다려서 아기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기쁨을 잊을 수가 없다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서른 일곱 살에 그 자식이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 들어가서 우등상장을 타왔을 때 그 걸 액자를 만들어서 방에 걸어놓고 쳐다 볼 때마다 그렇게 행복해했다, 누렇게 바래질 때까지. 마흔 여덟 살에 자식이 대학을 입학한다고 입학시험을 치르게 될 때, 이 아버지는 직장에 나가기는 했지만 하루 종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고 이렇게 가슴이 울렁거리고 초조할 수가 없었다. 생애에 있어서 가장 초조한 시간으로 기억된다하는 얘기입니다. 쉰 세 살에 자식이 첫 월급을 타서 아버지 내의를 하나 사왔을 때, 쓸데없는 데 돈을 썼다고 일단 나무랐지만 밤이 늦도록 내의를 입어보고 또 입어보고 만져보면서 행복했다고 말합니다. 예순 한 살에 딸이 시집을 가는 날이었습니다. 딸은 도둑놈 같은 사위 얼굴을 쳐다보며 함박웃음을 짓고 있는데, 나는 멀찍이 서서 나이 들었지만 처음으로 눈시울이 뜨거워오는 것을 느꼈다. 아버지 마음입니다. 그저 부모는 자식이 잘 되기만을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 있습니다. 그래서 부모님은 귀한 것입니다.
부모님을 즐겁게 하라. 그리고 내 자신이 부모님의 길을 즐거워하라. 기쁘게 해드리라고 말합니다. 역시 기쁘게 해 드리는 것이 효도일 것입니다.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존재의 가치를 인정하라고. 존재의 가치를. 그의 지혜, 그의 경험, 그의 사랑 그리고 그 깊은 잔소리 속에 중요한 교훈이 있음을 인정하라는 것입니다. 부모는 구제의 대상이 아닙니다. 측은히 여기던가 불쌍히 여기는 마음은 효가 아닙니다. 부모는 공경하는 것입니다. 존경이 없는 사랑은 결코 효도일 수가 없습니다. 불쌍히 여기지 마시고 높이 존경하고 그 지혜와 경험과 그 거룩한 본을 우리가 존중해야 됩니다.
또한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효할 수 있는 길은 의인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의롭게 살아야 됩니다. 부모님의 마음이라는 것은 깊은 도덕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높은 도덕입니다. 부모님의 마음은 언제나 선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효의 지름길은 내가 의롭게 사는 것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의 마음을 보상해 드려야 하니까요.
또 하나는 지혜로운 자가 되여야 한다고 성경 말씀은 증거하고 있습니다. 부모님의 말씀을 잘 들어서 듣는 지혜를 가져야 됩니다. 청종하는 지혜입니다.
또 한가지 오늘 성경이 증거하시는 것은 "내 길을 즐거워하라." 고 말합니다. 부모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길은 부모님의 길, 그의 선택, 그의 철학, 그의 이상, 그의 살아온 생을 내가 기뻐해야 됩니다. 부모님은 마음속에 지금 무언가 잘못 살았다고 하는 그런 후회가 있습니다만 자식의 행위를 통하여, "아닙니다. 부모님은 잘 살았습니다. 성공적으로 살았습니다. 훌륭하게 살았습니다."라고 말해주기를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부모님으로 하여금 살아온 생에 대하여 후회하게 만들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걸 자랑하게 만들 수 있도록 부끄러운 일생을 자식이 보상해 주어야 됩니다. 이보다 더 큰 효도는 없습니다.
효 그 자체가 복입니다. 효가 있는 가정이 복됩니다. 효가 복의 근본입니다. 효자가 효자를 낳습니다. 여러분, 자녀교육을 바로 하고 싶습니까? 효도하십시오. 그리고 내버려둬도 자녀들은 저절로 훌륭하게 자라게 될 것입니다. 부모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면서 내 자식 잘 되기를 바라지 마십시오. 그런 일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부모님을 즐겁게 합시다. 효는 문화의 유산이 아닙니다. 효는 이 나라의 단순한 도덕이 아닙니다. 이것은 성경적 진리요 하나님의 뜻입니다.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이 크나큰 원리와 진리는 변하지 않습니다.
유대인의 사회에서 노인은 인생 막바지 황혼을 걷고 있는 존재가 아니라 인생 안식년으로 접어들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노년에 일을 할 수 없다 해도 심리적인 열등감이나 죄책감을 느끼지 않습니다. 구약성서나 유대인의 전통에서 노년기는 구원의 희망을 향해 가는 시기요 인간 성숙의 정점인 자기 실현을 위한 안식년에 접어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노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고 인간의 영혼을 깨끗하게 하는 고귀한 목적에 자신을 바치게 됩니다.
사람이 늙으면 세 가지 서글픔이 있다고 합니다.
첫째로, 아픈 데가 많습니다.
늙으면 몸이 노쇠함으로 자연히 아픈 데가 많아집니다. 허리도 아프고 어깨도 쑤시고 무릎도 아픕니다. 그러나 대부분 자식들의 눈치보느라 아파도 아픈 내색을 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평소에 어디가 아프신지 관심을 가지고 자주 물어보아야 합니다.
둘째로, 외로움을 잘 타십니다.
젊었을 때는 바빴지만 늙으면 한가해집니다. 젊어서는 하는 일이 많다 보니 만나는 사람도 많고 외로워할 틈이 없습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 현역에서 물러나 일손을 놓으셨기 때문에 한가해지고 만나는 사람도 적어집니다. 시간은 많은데 하는 일이 적어 외로운 시간이 많습니다. 시집간 딸 생각, 외국 나간 아들 생각으로 밤낮 자녀들이 어떻게 사는지, 어려움은 없는지, 건강한지 늘 궁금해 하십니다. 그러므로 자식들이 자주 찾아 뵙지는 못한다 해도 부모님께 자주 안부 전화를 드려야 합니다.
셋째로, 배고픔을 자주 느끼십니다.
모든 기능이 약해지다 보니 마음뿐이지 많이 잡수실 수가 없습니다. 입맛도 예전 같지 않으십니다. 더구나 많이 잡수시면 탈이 납니다. 그래서 자주 시장기를 느끼십니다. 몸도 허하고 기름기도 없으니 중간 중간 시장하실 때마다 잡수시도록 눈깔사탕이나 땅콩, 과자... 좋아하시는 간식이 떨어지지 않도록 늘 챙겨 드리시기 바랍니다.
효도는 복의 근원이라고 했습니다.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며, 가정이 화목해지는 복을 받을 것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자신의 아들 딸도 효자가 될 것입니다. 부모들이 할머니 할아버지께 어떻게 했는지 보고 배웠기 때문에 그대로 따라 할 것입니다. 어느 분가해간 자녀들은 하나님께만이 아니라 매번 십일조를 부모님께 보내오는 자녀가 있다고 합니다. 하나님 앞에 십일조를 하듯이 부모님께도 십일조를 해야 합니다. 그래도 그 은혜를 다 갚지 못합니다. 노인에 대한 사랑은 곧 자기의 미래에 대한 사랑 곧 자기 사랑입니다. 노인을 사랑하는 것은 내가 노인 되었을 때를 생각해서 사랑하는 것입니다. 효자가 효자를 낳습니다. 노인을 사랑하면 바로 그것은 장차 올 내 미래를 사랑하는 것이 된다는 말입니다. 성도 여러분! 그 동안 부모님께 불효한 것은 없는지 생각해보시고 이제부터는 참 효도를 하기로 결심하시기 바랍니다.

제일 먼저 만난 사람
여러분이 이 땅에 태어나서 제일 먼저 만난 사람이 누구입니까?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부모님이지요. 부모님은 인간관계의 첫 출발점이십니다. 그때부터 시작해서 부모님은 우리에게 가장 많이 웃음을 보여주신 분이시며 또한 우리를 위해서 가장 많이 눈물을 흘려주신 분입니다. 우리가 마음이 아플 적에 우리가 병들었을 때에, 우리가 힘들고 괴로울 때에 가장 많이 걱정하고 염려해 주신 분입니다. 우리가 삶을 살아갈 때에 어떤 필요한 것이 있을 때마다 책임지고 그 필요함을 채워주신 분들이 바로 부모님입니다. 부모님은 자녀들에게 한없는 사랑을 베풀어주시는 분입니다. 부모님들은 자녀들을 위해서 철저하게 희생하시는 분입니다. 부모님은 자녀들을 위해서 끝없는 은혜를 베푸시는 분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님의 뜻에 순종하고 공경하는 것은 당연함에도 불구하고 오늘 성경말씀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강력하게 명령하십니다. 사람은 철이 들고나서야 부모님 곁으로 가까이 다가간다
암전문의로 명성을 날리는 한 의사는 5월 어버이날이 다가오면 불효자라는 죄책감에 마음이 짓눌려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종종 재래시장을 찾곤 하는데 시장 구석에서 쭈그리고 앉아서 나물을 팔고 계신 할머니를 볼 때마다 고통스럽다고 했습니다. 그런 할머니를 볼 때마다 자신의 어머니 생각이 났기 때문입니다. 그는 돌아가신 어머니를 회상하며 참회의 눈물로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어린 시절 나는 가난이 싫었습니다. 그래서 언젠가는 이 가난을 벗고 말겠다고 다짐하며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저의 부모님은 막노동을 하셨는데, 막노동을 하던 중에 철근에 깔린 어머니를 구하려고 하다가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한쪽 다리를 잃었습니다. 그때부터 어머니는 나물을 캐고 다듬어서 시장 한 귀퉁이에 쪼그리고 앉아 나물을 팔아 생계를 이어갔습니다. 나는 그런 어머니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요. 어머니는 그렇게 힘들게 번 돈을 용돈이라고 내게 기쁜 마음으로 주셨어요. 그런데 나는 그게 싫어서 뿌리치고 달아나곤 했어요. 나는 잘먹고 잘입지는 못했지만 악착같이 공부했지요. 그래서 부자 집 자식들보다 공부를 잘하는 편이었어요. 부자 집 자식들은 그런 나를 미워했어요... 고등학교 때였습니다. 어느 날 4교시 수업이 끝날 때에 친구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서 복도를 보니 낯익은 모습이 보였습니다. 나의 어머니가 절뚝거리면서 교실로 들어오시고 있었어요. 어머니는 시장에 내다 팔려고 다듬은 나물 한 봉지를 들고서 찾아오신 겁니다. 그러자 부자 집 아들이 어머니의 절뚝거리는 흉내를 내면서 나에게 '야, 너네 엄마 병신이었냐?' 하며 비아냥거리는 거예요. 순간 교실에 있는 아이들은 '와~' 하며 낄낄대며 웃더라구요. 나는 참을 수 없어서 부자 집 아들을 정신없이 두들겨 패줬지요. 그리고 수업을 마치고 집에 가는데, 잘 차려입은 아주머니와 그 부자 집 아들이 어머니에게 소리를 지르며 호통을 치고 있는 거예요.
"아니, 애비 없는 자식은 이래도 되는 거야? 못 배우고 없는 티 내는 거야 뭐야. 자식 교육 좀 잘 시켜. 어디 감히 우리 집 귀한 자식 얼굴을 이렇게 만들어 놓느냔 말이야. 으응?. 어머니라는 작자가 병신이니 자식 정신이 온전하겠어?"
부자 집 아주머니가 내뱉은 듣기 거북한 말을 듣고서도 어머니는 연신 죄송하다며 머리를 숙이고 있었습니다. 나는 어느 것 하나 당당하지 못한 어머니의 모습이 싫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에게 "차라리 엄마가 없었으면 좋겠다"고 해서는 안될 말을 해버렸어요. 그런 나에게 어머니는 수업료를 꼬박꼬박 챙겨주셨지요. 다음 날 학교에 갔더니 선생님이 나를 불러 조용히 말씀하셨어요. "ooo야, 네 어머니께 잘해드려야 한다. 그리고 어제 주신 나물 맛있게 먹었다고 전해주거라."...
그후 17년의 세월이 흘렀고 나는 의사가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가정도 이루었습니다. 처가(妻家)에서 병원도 개업해 주고 너무나 풍요로운 생활을 하면서 나는 어머니를 잊고 살았어요. 솔직히 잊고 싶었던 겁니다. 어머니에게는 매달 생활비를 보내드리기는 했지만 한 번도 찾아가 뵙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어느 날 병원에서 일을 마치고 집에 오는데, 우리 집 앞에서 한 노인과 가정부 아주머니가 싸우고 있는 거예요. 야윈 얼굴에 허름한 옷차림을 한 노인이었는데 다리를 절고 있었지요. 그 노인은 바로 저의 어머니였습니다. 어머니는 나를 보자 기뻐하면서 "애, oo아, 많이 좋아졌구나." 하고 다가 오시더라구요. 가정부가 보고 있어서 그랬는지 순간 나는 차가운 말로 어머니를 떠나 보내야 했습니다. "사람 잘못 보셨어요. 할머니. 저는 oo이가 아니라 최oo입니다." 어머니는 힘없이 떨리는 목소리로 나의 이름을 부르면서 뒤돌아 가셨지요. 어머니가 돌아가자, 가정부는 "별 노망든 할머니가 다 있다"며 푸념을 늘어놓았습니다. 그런 후에 나는 한 달 동안 악몽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견디다 못한 나머지 나는 가고 싶지 않았지만 어머니가 살고 있는 집으로 찾아갔지요. 어머니는 내가 생활비를 보내주었지만 여전히 시장 한 귀퉁이에서 나물을 팔면서 기침을 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가만히 곁에서 어머니의 모습을 지켜보았어요. 그때 나물을 사려는 한 아주머니가 다가오더니 "할머니, 할머니는 자식이 없나요?"하고 물었어요. 어머니는 "아니여. 우리 아들은 서울 큰 병원 의사여. 자꾸 나보고 같이 살자고 하는디. 내가 싫다고 혔어. 내가 살면 얼마나 산다고 자식 신세를 져. 요즘도 자꾸 올라오라는 거 뿌리치느라고 혼났구만. 우리 아들 같은 사람 세상에 둘도 없어. 우리 아들이 효자여, 효자." 하며 자랑하시면서 나물을 듬뿍 주고 있었어요. 나는 그런 어머니를 보고도 달려갈 수 없었어요. 곧장 어머니가 살고 있는 다 쓰러져 가는 허름한 집에 들러 방 틈으로 돈 봉투만 넣어두고 돌아왔습니다.
그 일이 있은 지 1년이 지날 무렵이었어요. 고등학교 시절 담임 선생님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너의 어머니가 돌아가셨으니 내려 오라"는 부고였습니다. 부고를 받고 시장에 들렀는데, 정말로 어머니의 모습이 보이질 않았어요. 집에는 선생님 혼자 계셨습니다. 선생님은 저에게 아무 말씀도 없으시다가 잠시 후에 저를 불렀습니다. "oo아, 내 옆에 와서 잠깐 앉아라." 선생님은 나에게 어머니가 쓰시던 낯익은 보따리를 주시면서 "풀어 보라"고 하셨습니다. 보따리를 풀어 보니 돈이 있었습니다. "이거, 돈 아닙니까?" "그래 돈이다. 네 어머니가 너에게 주시는 마지막 선물이다. 그 동안 네가 돌아오면, 혹시나 네가 성공하지 못하면 다른 사업을 할 수 있도록 모아두신 돈이란다. 너 하나 믿고 무슨 미련인지 이곳을 떠나지 못하고 너를 기다리셨다. 너에게 잘해주지 못해 항상 미안 해 하시더구나. 내가 가끔 네 어머니의 말동무가 되어 드렸는데, 나에게 네 어머니의 유언을 전하도록 부탁하셨단다. 그리고 네가 모르고 있었던 사실들도 함께 말이다."
그 자리에서 선생님은 나에게 충격적인 이야기를 해 주셨습니다. "네가 아주 어렸을 적이었다. 너를 키워주신 부모님이 퇴근길에 집에 오는데, 네가 쓰레기통을 뒤지고 있는 것을 보셨단다. 마침 너의 부모님은 자식이 없던 터라 너를 데리고 가서 키우기로 했단다. 배아파 낳은 자식은 아니었지만 너를 데리고 와서 얼마나 기뻐했는지 몰랐다고 하셨다. 어린 너를 혼자서 집에 둘 수 없어서 항상 공사판에 데리고 다녔는데, 네가 무너지는 철근 밑에 있는 것을 보고 어머니가 뛰어들었단다. 네 목숨이 위험하게 되자, 너의 아버지가 너와 어머니를 구하기 위해 몸을 던지셨는데 그때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한쪽 다리를 잃게 되셨단다. 그러니 너는 아버지의 목숨과 어머니의 다리 덕에 살아났다는 거야. 다리를 다쳐 벌이가 시원치 않아 생활이 어려울 거라고 염려하던 주위 사람들이 네 어머니에게 "키워봤자 소용이 없으니 고아원에 보내라"고 했다는 구나. 하지만 그 말을 듣고도 너를 버리지 않고 당신의 목숨보다 귀하게 키웠다는 거야. 네가 의과대학에 다닐 때에 네 어머니는 암이 걸리셨는데, 그것을 알고도 네 학비를 대기 위해서 병원에 가지 않으셨단다. 그리고 네가 암 전문의가 되어 명성을 날리자, 네 어머니는 마지막으로 너를 보려고 물어물어 서울에 올라가셨다가 집에 내려오셨단다..."
선생님의 말씀을 듣는 순간에 나의 심장이 멎는 것 같았습니다. 은혜를 모르는 배은망덕한 자신을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었습니다. 허울좋은 인간의 가식에 머리를 들 수 없었지만 어머니의 얼굴이 보고 싶어졌습니다. 어머니의 영정을 바라보았습니다. 어머니는 잔잔한 미소로 이 불효자를 바라보시고 계셨습니다. 저는 부모님께 용서를 빌었습니다. "어머니, 아버지, 이 불효자를 용서해 주십시오."하고 말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부모님이 우리의 곁에 가까이 계신 것 같습니까? 아니면 자식들이 부모님 곁에 가까이 있습니까? 사람은 철이 들고나서야 비로소 부모님 곁으로 가까이 다가가는 것 같습니다. 보십시오. 전문 지식을 가졌다고 해서 철이 든 것이 아닙니다. 나이가 들어 가정을 이루고 자식을 낳았다고 해서 철든 것이 아닌 것 같아요. 은혜를 알 때 비로소 철이 든 것입니다. 사랑의 깊이를 깨달을 때 철이 든 것입니다. 철들기 전에는 뭐든지 떨떠름합니다. 깊은 맛이 없어요. 철없는 사람에게 사랑은 아래만 보입니다. 내리 사랑만 하는 사람은 아직도 철없는 것입니다. 인간은 철들고 나서야 비로소 위를 바라보는 것 같아요. 부모를 공경할 줄 아는 것입니다. 철든 신앙인 만이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합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며 경외하는 마음으로 예배를 드립니다. 어떻습니까? "나는 철들었다"고 생각하십니까? 철들지 못한 사람은 청개구리처럼 비가 올 때마다 웁니다. 철들지 못한 사람은 어버이날이 다가올 때마다 불효자로서 우는 것입니다. 복은 받았지만 복을 누리며 살지 못하는 거예요. 하나님은 믿음의 사람들이 복을 받고 복을 누리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복을 누리며 살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합니까?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귀한 뜻이 담긴 시 하나를 소개합니다.

오해

우리 어머니는 엄마가 보고 싶지 않은 줄 알았습니다.
어머니는 첫사랑이 없는 줄 알았습니다.
어머니는 친구가 한 사람도 없는 줄 알았습니다.
어머니 몸은 절대 아프지 않는 어떤 특별한 몸인 줄 알았습니다. 어머니는 어렸을 때부터 아무 꿈도 품은 적이 없는 줄 알았습니다. 어머니는 새벽에 일찍 일어나고 늦게 잠드는 것을 좋아하시는 줄 알았습니다. 어머니는 특별히 좋아하시는 음식이 한 가지도 없는 줄 알았습니다. 어머니는 짧은 파마 머리만 좋아하시는 줄 알았습니다. 어머니는 얼굴이 고와지고 몸매가 날씬해지는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으신 줄 알았습니다. 어머니는 모든 것을 좋게 받아들이고 아무 불만도 없으신 줄 알았습니다. 어머니는 우리가 전화를 길게 하는 것을 좋아하시지 않는 줄 알았습니다. 어머니는 언제까지나 우리 곁에 계실 줄 알았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단 하루라도 쉬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는 웃는 걸 모르시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는 딸이 시집가는 것을 보고 마냥 기뻐만 하시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는 어머니 외에 아는 여자라고는 한 사람도 없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는 배가 빨리 불러 와 좋은 음식 앞에서 먼저 일어나시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는 양복 입고 넥타이 매는 것을 싫어하시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 안 주머니에는 늘 돈이 얼마쯤은 들어 있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는 좋아하시는 운동도 취미도 없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는 우리가 하는 말을 귀담아듣지 않으시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는 아무리 깊고 험한 길을 걸어가도 조금도 두려워하시지 않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 눈에는 눈물이 한 방울도 없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는 우리가 객지로 떠나는 것을 좋아하시는 줄 알았습니다. 이와 같은 오해를 오랫동안 해왔던 우리들입니다. 이제는 자녀로서 진정 어버이의 즐거움을 위해 후회 없는 효도를 다짐하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출처/서정호목사 설교자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