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들 압살롬아   (사무엘하 18:31~33)

성경역사에 나오는 인물가운데 다윗은 참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는 사람입니다. 그는 히브리 왕조의 뿌리요 예수님의 조상이기도 합니다. 그는 또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실한 그리스도인의 표본인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로 묘사되는 사람입니다.
다윗을 가리켜 승리적 신앙가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다윗의 말년에는 그의 아들 압살롬의 반란으로 가장 큰 위기를 맞이하였습니다. 다윗은 맨발로 예루살렘을 빠져나와 기드론 시내를 건너 망명길에 올랐습니다(삼하 15:30).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위험에 처한 다윗을 구해주시고 반역자 압살롬을 징벌하게 하였습니다. 다윗의 군대장관 요압의 군사가 반란군을 진압하고 도망치는 압살롬에게 단창으로 심장을 찔러 죽였습니다. 다윗은 전쟁터에서 달려온 전령으로부터 그 소식을 전해 듣고는 죽은 아들 압살롬을 생각하며 슬프게 울었습니다.
본문 말씀 33절에 “왕의 마음이 심히 아파 문루로 올라가서 우니라 저가 올라갈 때에 말하기를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였더라”고 했습니다. 다윗의 이 울음 속에는 왕과 왕자라는 신분이나 또는 뺏고 빼앗기는 권력투쟁과 같은 것은 상관이 없고 다만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순수한 마음만이 담겨져 있었습니다.
오늘 어버이 주일을 맞이하여 「내 아들 압살롬아」하고 목놓아 우는 다윗의 심정을 헤아리면서 신령한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Ⅰ. 배반하는 아들

다윗에게는 모두 열아홉 명의 아들들이 있었습니다. 그 중 압살롬은 세 번째 아들로서 갈멜여인 아비가일의 소생입니다(대상 3:1-9). 사무엘하 14:25에 보면 “온 이스라엘 가운데 압살롬 같이 아름다움으로 크게 칭찬 받는 자가 없었으니 저는 발바닥부터 정수리까지 흠이 없음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처럼 준수한 용모에 남자다운 성품을 가지고 있어서 다윗의 사랑과 기대를 한 몸에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끝내 아버지의 기대를 저버리고 아버지를 왕위에서 축출하는 등 패륜을 저질렀습니다.

(1) 골육상잔의 폭력을 행사하였습니다.

압살롬에게 다말이라는 누이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배다른 형인 암논이 다말을 자기 방으로 유인해 들이고 강간을 한 뒤 구박하여 쫓아내었습니다. 이일로 인하여 압살롬은 암논에게 적개심을 품고 죽일 수 있는 기회를 엿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압살롬은 자기 목장에서 양털 깎는 행사를 빙자로 왕자들을 초청해 놓고 술을 먹으며 흥겨워 할 때 사환을 시켜 암논을 살육하게 하였습니다(삼하 13:23-29). 그리고 저는 아비의 눈을 피하여 멀리 그술 땅으로 도망을 가버렸습니다. 이처럼 암논의 범죄와 압살롬의 살육행위는 다윗 왕가에 또 하나의 부끄러운 기록을 남겼습니다.

(2) 아버지를 속이고 음모를 꾸몄습니다.

압살롬이 그술 땅으로 도망간 다음 세월이 지나면서 다윗은 집을 나간 아들을 그리워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즈음 다윗의 마음을 알아챈 군대장관 요압이 다윗의 허락을 받아 압살롬을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오게 하였습니다(삼하 14:21). 왕의 허락 받아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압살롬은 자기의 잘못을 회개하기보다 오히려 왕을 반역할 음모를 꾸미고 있었습니다. 사무엘하 15:1에 보면 “이 후에 압살롬이 자기를 위하여 병거와 말들을 준비하고 전배 오십 명을 세우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은밀하게 군사 훈련을 시키는 한편 백성들에게 인심을 얻기 위하여 가진 수단을 다하며 왕과 백성 사이를 이간시켰습니다. 사무엘하 15:6에 보면 “이스라엘 사람의 마음을 도적하니라”고 하였습니다.

(3) 반란으로 왕위를 찬탈하였습니다.

사무엘하 15:7에 보면 “사년만에 압살롬이 왕께 고하되 내가 여호와께 서원한 것이 있사오니 청컨대 나로 헤브론에 가서 그 서원을 이루게 하소서”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은 아들이 헤브론으로 가서 하나님께 서원한 일을 하겠다고 하므로 이를 쾌히 허락해 주었습니다.
헤브론은 사울이 죽은 다음 다윗이 처음으로 왕위에 즉위했던 곳입니다. 그곳에 가서 압살롬은 다윗의 모사였던 아히도벨을 중심으로 치밀하게 계획을 세워 예루살렘을 쳐들어왔습니다. 이때 다윗은 후궁 열 명을 왕궁에 남겨 놓은 채 긴급히 몸을 피해 나왔습니다. 사무엘하 15:30에 보면 “다윗이 감람산 길로 올라갈 때에 머리를 가리우고 맨발로 울며 행하고 저와 함께 가는 백성들도 각각 그 머리를 가리우고 울며 올라가니라”고 하였습니다. 한편 왕궁에 진입한 압살롬은 자기 아버지의 후궁들을 지붕 위에 모아 놓고 백성이 보는 앞에서 강간을 하는 등 패륜을 저질렀습니다(삼하 16:22).


Ⅱ. 압살롬을 위한 다윗의 마음

사람들은 흔히 부모와 자식과의 관계를 천륜(天倫)이라고 말합니다. 그 중에도 자식을 향한 부모의 마음은 어디에도 비길 수 없이 넓고 큰사랑으로 나타납니다.

(1) 이해하는 마음입니다.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사람과 사람사이 곧 대인관계입니다. 가깝게는 부부관계에서부터 부모와 자식관계, 또한 친구와 이웃과의 관계를 들 수 있는데, 여기에는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알아주는 인간관계가 원만하게 이루어져야만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가까운 부부사이나 혈육과의 관계라 하더라도 상대를 수용하고 이해하지 못할 때 갈등을 빚거나 파국에 이르고 맙니다.
바울은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이 아니니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치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고 하였습니다(고전 10:23-24). 이는 다른 사람의 입장을 먼저 생각하고 이해하는 것을 뜻합니다.
부모는 어떤 경우에도 자식의 입장을 이해하려듭니다. 나쁜 일을 저질렀을 때에도 ‘오죽 하면 그렇게 하였겠느냐’는 식으로 자식 편을 들곤 합니다. 다윗은 아비를 배반한 압살롬을 그 마음으로 받아들이며 너그럽게 이해하곤 하였습니다.

(2) 용서하는 마음입니다.

압살롬이 그의 형인 암논을 죽이고 그술 땅으로 도망한 뒤 다윗은 압살롬에게 괘씸한 마음을 가지기 보다 오히려 측은하게 여기고 그를 그리워하기까지 하였습니다. 사무엘하 13:37-39에 보면 “압살롬은 도망하여 그술 왕 암미훌의 아들 달매에게로 갔고 다윗은 날마다 그 아들을 인하여 슬퍼하니라 압살롬이 도망하여 그술로 가서 거한지 삼년이라 다윗왕의 마음이 압살롬에게 향하여 간절하니 암논은 이미 죽었으므로 왕이 위로를 받았음이더라”고 하였습니다.
자식을 향한 부모의 마음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식이 지은 죄를 시간이 지나면서 기억에서 지워버리거나 완전히 잊어버리는 경우입니다. 옛날 이삭은 그의 아들 야곱이 아비를 속이고 장자의 행세를 하며 축복을 가로채어 갔을 때 매우 큰 충격을 받고 몸을 떨기까지 하였으나(창 27:33), 얼마 후 그를 용서하고 오히려 그 후손까지 축복해 주었습니다(창 28:1-4).  
신약의 경우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탕자의 비유에도 그런 장면이 나옵니다. 아비의 재산을 허비하고 거지가 되어서 돌아오는 탕자를 그 아버지는 용서하고 오히려 옛날의 지위를 회복시켜 주었습니다(눅 15:22-24).

(3) 대신하는 마음입니다.

다윗은 압살롬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가슴을 치며 통곡하였습니다. 아버지를 배반하고 왕위를 빼앗은 아들인데도 그를 용서해주었고 그의 죽음을 애석하게 생각하였습니다. 압살롬은 그 아비 다윗을 왕위에서 축출한 것 뿐아니고 오히려 죽이려고 궤교를 꾸몄습니다.
압살롬은 왕위를 비워주고 도망간 다윗을 끝까지 쫓아가서 죽이려고 계획하였습니다(삼하 17:1-4). 만일 요압이 압살롬을 죽이지 않았더라면 필경은 압살롬의 반란군에 의하여 다윗은 죽임을 당했을 것입니다.
그런 사정을 뻔히 알면서고 다윗은 압살롬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내 아들 압살롬아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압살롬 내 아들아”하고 울었습니다. 자식의 아픔을 대신 아파 주고, 자식의 죽음을 대신 당해 주려는 마음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Ⅲ. 아버지와 아들

우리는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믿사오며…”하고 신앙고백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받은 사람들을 하나님의 자녀라고 부릅니다(요 1:12).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의 자녀로 선택하신 다음 우리에게 양자의 영을 주셔서 스스로 하나님을 향하여 「아버지」라고 부르게 하셨습니다(롬 8:15). 따라서 성도는 언제나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하고 기도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아버지와 아들의 경우를 통하여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설명하여 줍니다.

(1) 사랑의 관계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데는 어떤 이유나 조건이 없습니다. 그저 자기 자식이기 때문에 사랑하는 동물적인 성품이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도를 사랑하시는 것도 무조건적이며 자식을 향한 부모의 사랑보다 더 큰 것입니다. 이사야 49:15에 “여인이 어찌 그 젖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찌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사야 43:4에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고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사람들을 주어 너를 바꾸며 백성들로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 두려워 말라”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언약은 급기야 그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시고 그를 십자가 위에서 죽게 하사 우리를 영원한 죽음에서 살려주셨습니다(요일 4:10).

(2) 기업을 보장해 줍니다.

로마서 8:17에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신명기 7:6에 보면 “너는 여호와 네 하나님의 성민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택하셨나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기업이란 상속권을 뜻합니다. 아버지가 자식을 위하여 기업을 준비해 놓고 그것을 물려주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기업은 현세적이거나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내세적이고 신령한 것이며 영원한 것입니다.

(3) 완전한 구원에 이르게 하십니다.

다윗은 압살롬의 죽음을 애석해하고 통곡하였을 뿐이지만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범죄한 자녀들의 죄를 사해주시고 죽음에서 구원해 주십니다. 이사야 1:2-3에 보면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마침내 하나님께서는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찌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찌라도 양털 같이 되리라”하고 사죄와 구원의 길을 열어놓았습니다(사 1:18).
이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아버지와 아들의 완전한 관계입니다. 여기 압살롬의 죽음을 애석하게 여기고 슬피우는 다윗의 심정에서 인간적인 부성애(父性愛)를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육신의 아버지보다 더 위대한 하나님 아버지께서 죄인들에게 베풀어주시는 사랑과 구원의 은혜를 깨닫고 감사하여야 할 것입니다.


출처/손상률목사 설교자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