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을 다하다
은행나무 가로수 한 그루가 죽었다. 죽는 데 꼬박 삼년이나 걸렸다.
삼년 전 봄에 집 앞 소방도로를 넓힐 때 포클레인으로 마구 찍어 옮겨심을 때 밑둥치 두 뼘가량 뼈가 드러나는 손상을 입었다.
테를 두른 듯이 한 바퀴 껍질이 벗겨져버린 것, 나무는 한 발짝 너머 사막으로 갔다. 이 나무가 당연히 당년에 죽을 줄 알았다. 그러나 삼년째, 또 싹이 텄다.
이런, 싹 트자마자 약식절차라도 밟았는지 서둘러 열매부터 맺었다.
멀쩡한 이웃 나무들보다 먼저 가지가 안 보일 정도로 바글바글 여물었다.
오히려 끔찍하다, 끔찍하다 싶더니 이윽고 곤한, 작은 이파리들 다 말라붙어버렸다.
나는 나무의 죽음을 보면서 차라리 안도하였으나, 마른 가지 위 이 오종종 가련한 것들 그만, 놓아라! 놓아라! 놓아라! 소리 지를 수 없다.
꿈에도 들어본 적 없는 비명, 나는 은행나무의 말을 한마디도 모른다.
문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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