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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기도로 성령 충만한 성도 (행10:44-48)
교육하고 선교 하고 봉사하는 교회로 1907년 처럼 다시 부흥하는 역사를 이루어 가는 가운데 주일학교 교사 강습회가 열리가 되었습니다.
강습회 주제가 말씀과 기도로 성령 충만한 어린이입니다.
그래서 말씀과 기도로 성령 충만한 성도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상고 하고자 합니다.
말씀을 전할 때 성령이 임하셨습니다
(행10:44) 베드로가 이 말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고넬료의 초청을 받은 베드로는 이방인들 앞에서 예수님의 메시아성을 주제로 설교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께 성령을 기름 붓듯 함으로써 예수님의 메시아 되심을 직접 인정하셨다는 것입니다.
(요 3:34) 하나님의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없이 주심이니라
예수님의 이적 행하심도 언급했는데, 이것은 이미 하나님의 나라가 임했다고 하는 증거이며, 그리스도의 메시아성을 말해 주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선포했습니다. 초대 교회의 설교 중에서 가장 중심적 내용이었는데 이것은 오늘날이나 앞으로나 영원히 설교의 내용과 중심이 되어야 하며, 전도의 핵심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믿으면 사람들이 다 죄 사함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이렇게 예수님의 메시아이심을 설교할 때 설교를 듣고 있던 이방인의 무리 위에 성령이 강림하였습니다.
그것은 오순절에 사도들에게 임한 것과 같은 것입니다(행 2:1, 2).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특별한 축복이나 성령을 위한 기도가 없이도, 또 안수 기도 없이도 성령이 임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말씀 듣는 일에 열심을 다해야 합니다.
어떤 분이 어릴적에 주일학교에 다니다가 중학교에 올라가면서부터 내 머리와 내 힘을 믿자면서 교회를 등지고 살아오다가 미국유학중이던 1989년 가을, 하나님께서 치신 매를 맞고나서 두손 번쩍 들고 주님을 의지하는 생활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생활은 시작했지만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던 시절 하나님께서는 여러가지 방법으로 특별교육을 시켜주셨는데 가장 큰 은혜는 주님의 살아계심을 직접 체험할 수 있었던 성령세례 사건이었다 합니다. 1989년 여름, 딸아이에게 일어난 사건을 통해서 예수님께 항복하고 나왔으나 그 전에 이미 한국교회에 대해 안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어 주일날 미국교회에 나가거나 아니면 집에서 설교테이프를 들으면서 보내곤 하였다합니다. 다음해 2월, 어느 기도원의 신유집회 비디오테이프를 보면서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기적들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음을 보게 되었는데 그 순간 눈에는 저절로 눈물이 흘러나오면서 성경에 기록된 예수님의 기적들이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 사실이라는 강렬한 확신이 마음속에 가득 채워졌고 그동안 읽기는 읽었지만 무슨 소리인지 전혀 감이 안잡히던 성경말씀이 이때부터 서서히 실감있게 다가오기 시작했다합니다. 어느 주일 예배 설교에 어떤 사람이 예수님과 함께 해변을 걷다가 뒤 돌아보니 두 사람 발자국이 있다가 어느 지점에는 한사람의 발자국만 있어서 예수님께 "예수님이 나를 버려두셨기 때문에 내가 그때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십니까?"하고 따지자 예수님께서 조용히 말씀하시기를 "내 사랑하는 자여, 저 발자국은 네 것이 아니고 내 것이니라. 네가 지쳐 넘어질 때 내가 너를 업고갔었느니라." 하시는 말씀을 듣는 순간 가슴에는 형언할 수 없는 엄청난 감동이 밀려왔고 자꾸만 눈물이 흘러 억지로 눈물을 참으면서 설교가 끝났는데 마지막으로 부른 찬송가 469장 "내 영혼의 그윽히 깊은데서"가 또다시 일격을 가했다합니다. 찬송을 부르던 중 "그 사랑의 물결이 영원토록 내 영혼을 덮으소서"라는 구절을 부르는 순간 폭포 같은 눈물이 펑펑 쏟아져 내리는데 하나님께서 사랑하시고 계신다는 너무나 강렬한 감동이 제압하여 그저 울 수밖에 없었고. 예배가 끝났지만 도저히 자리에서 일어날 수가 없어 그대로 앉아서 고개를 숙이고 한참을 울었다합니다. 참 이상한 것은 무지무지 슬퍼서 울기는 울면서도 한편으로는 좀 창피하다는 생각도 들었고 머리 속의 생각은 말짱했는데도 가슴으로는 무언가 형언할 수 없는 감동 때문에 계속해서 나오는 울음을 그칠 수가 없었다합니다. 그러면서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피 흘려 돌아가셨는데, 그것을 내가 모르고 있었던 것이 죄 중의 죄였구나"하는 생각이 너무나 강렬하게 가슴에 파고들었다합니다. 그리고 방언을 체험하고 하나님의 실재하심을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합니다. 그리고 성경을 보는데 희한하게도 눈으로 보는 말씀이 마치 꿀같이 달다는 참 이상한 느낌도 받았고 성경을 읽어나가면 예전과 달리 이제는 무슨 뜻인지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합니다. 성령세례를 받은 다음날 월요일 아침 워싱턴으로 출발하기 전에 난생 처음으로 새벽예배에 참석하고 해하는 발걸음은 마치하늘을 날아다닐듯 가벼웠다합니다. 길거리의 그 많은 사람들에게 "나는 예수쟁이다!"라고 큰소리로 외치고 싶었고 세상 모든 것이 아름답게만 보였다합니다. 내 힘과 내 머리만 믿고 하나님 따위는 나와 상관없다고 큰소리치면서 살던 나를 강권적으로 붙들어주시고 그분의 실재하심과 사랑하심을 체험적으로 알게 해 주신 하나님께 깊은 감사를 드릴 따름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모든 영광을 아버지께 돌립니다 라고 간증합니다.
(엡 1:13)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기도할 때 성령이 임하십니다.
(행 8:15-17) 그들이 내려가서 저희를 위하여 성령받기를 기도하니 이는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고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만 받을 뿐이러라 이에 두 사도가 저희에게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
(행 19:6)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한국기독교선교 대상을 받은 [선교사부문 서만수 선교사]는 인도네시아에서만 20여년을 선교사로 보낸 공로를 인정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선교사님은 이 상을 받게 한 것은 내가 아니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섭리와 인도, 성령의 은혜가 오늘의 나를 만든 것 뿐이다고 합니다.
1963년 대학원에 재학중 미국유학을 일주일 앞둔 때였다 합니다. 간간이 기침을 했지만 갑자기 상태가 심해진 것 같아 병원을 찾았더니 [농립성 결핵입니다. 중증인데 어떻게 이제야 병원에 오셨습니까] 하더랍니다. 당시만 해도 결핵은 치명적인 병이었습니다. 전도 창창한 26세의 대학원생에겐 이 일은 너무나 엄청난 사건이었습니다. 결핵과의 처절한 전투가 시작됐으나 이미 패배할 것을 예견하고 있었다합니다. 주위에서 결핵으로 쓰러진 사림이 많았거니와 죽음에 대한 공포가 늘 에워싸고 있었기 때문이었다합니다. 치료에도 불구하고 증세가 점점 더 심해졌고 의사도 더 이상 가망이 없다는 최종선언을 하자 [집에서 가족들을 힘들게 하느니 산속에 들어가 조용히 사라져 버리자. 그것이 내가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다] 생각하고 머문 곳은 산속의 어느 기도원이었다 합니다. 형식적이나마 교회를 다녔던 경험이 그곳으로 인도한 것이었다고 합니다. 기도원에서 하나님을 향해 절박하게 부르짖는 성도들을 보며 병을 치료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했다합니다. 원래 기독교를 단순히 종교의 하나로 생각했고 윤리와 도덕적인 차원에서만 이해했다합니다. 이런 그에게 기독교의 새로운 세계가 열리기 시작했다합니다. [인간에게는 영적세계가 있으며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면 구원을 얻고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 생활과 환경을 변화시키게 된다]는 목사님의 메시지는 큰 도전이 되었고 그것은 사실이었다 합니다. 죽음을 앞둔 그에게 남은 것은 [절박한 기도]뿐이었기에 간절히 하나님께 매달렸다합니다. 기도로 하루하루 보낸 그에게 성령의 은혜가 쏟아졌다합니다. 기도원에서 6개월을 지낸 후 하산했을 때 전보다 더 건강한 몸이 되어 있었고 더욱 변한 것은 삶의 목표였다 합니다. 대학교수가 아니라 목사가 되기로 결심한 것이었습니다. 집안의 반대가 완강했지만 신학교에 입학했다합니다. [덤으로 받은 내 인생, 당연히 주님께 헌신하는 삶이 되어야 할것이 아닌가] 1970년 제55차 예장합동 총회에서 자원한 인도네시아 선교사로 임명받았다합니다. 왜 그런 오지에 가느냐고 만류하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 더 어려운 곳도 기쁘게 갈 수 있을 것 같았다합니다. 모든 면에서 낙후되고 미개한 인도인들을 선교하기란 쉽지 않았으나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불타는 사명감이었다고 간증 합니다.
성령이 임하면 따르는 은사와 사명이 있습니다.
(행 10:46)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
성령은 받은 자들이 방언의 은사를 체험하는 역사가 함께 합니다
대북 성회의 위원장직을 맡으셨던 주연화 목사님에게 들은 간증입니다. 주연화 목사님은 전 장총통이 서거했을 때 장례식을 집행한 자유중국의 대표적인 목사님이십니다. 그는 중국 본토가 공산당에게 점령 당하기 전, 상해에서 신학교를 다니고 있었습니다. 공산당에게 점령 당하기 전 평화로울 때에는, 교수와 신학생들이 신학에 관한 이론을 가르치고 공부했었지만, 중국의 본토가 공산당의 발에 짓밟힐 위기에 처하자 교수와 신학생들은 학업을 전폐하고 강의실에 모여 하루종일 "하나님이여, 살아계신 하나님을 우리가 만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하고 간절히 부르짖어 기도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목사님은 "공산당이 눈앞에 다가오게 되자 신학적 이론은 뒤에 두고 하늘과 땅과 세계를 지으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을 직접 만나야겠다는 절박한 심정이 되더라"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교수와 신학생들이 한 자리에 모여 일심으로 부르짖어 기도를 시작하자, 그곳에 성령의 불이 임하여 모인 대부분의 사람들이 성령충만함을 받고 방언으로 말하며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으로 충만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때 많은 사람들이 성령충만함을 받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는 체험을 했기 때문에, 공산당이 중국 본토를 점령하고 기독교인에 대해 말할수 없는 핍박을 가해도, 그 시련을 능히 이기고 복음의 불씨를 간직했다가 지하교회의 구역예배를 통해 복음의 불길을 번지게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성령 받은 사람들에게 방언의역사가 함께 합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하나님을 높였습니다. 이처럼 성령 받은 자의 외적 표시는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그가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날 누가 성령을 받았는가를 알려면 과연 그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사는가를 보면 됩니다. 반대로 성령을 받았다고 자처하면서도 자신을 높이는 자들이 있다면 그는 진정한 의미에서 성령 받은 자가 아닌 것입니다.
헤리 무어하우스가 아직 젊었을 때에 영국의 한 도시에서 전도사업을인도하고 있었다. 그러나 당시 영국과 미국 어느 곳에서도 신앙부흥은일어나지 않았다. 어려운 장벽을 뛰어 넘으려고 노력했지만 그 도시에서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밤낮으로 그는 무릎을 꿇고 진심으로 기도하며 눈물지으며 외쳤다. "오, 하나님, 왜 신앙의 부흥이 일어나지는 않을 까요?" 어느 날 그는 걸어가고 있을 때 성령께서 그에게 다음과 같은 글자들이 쓰여 있는 큰 현수막을 보여 주셨다. "헤리 무어하우스,영국 전도사중 가장 유명한 전도사!" 그는 즉시 자신에게 말했다. "이것이 바로 신앙부흥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이다!" 그는 전도 준비위원회로 가서 말했다. "형제 여러분, 이제야 나는 신앙부흥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를 알았습니다. 여러분들이 모든 면에서 나를 얼마나 위대한 사람같이선전해 왔는가를 잘 알고 있습니다. 성령께서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된것도 놀아운 일이 아니지요. 여러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하지 않았기에 성령께서는 슬퍼하셨고 역사하시지 못하신 겁니다. 그분은 놀라우신 분이십니다. 그러나 나는 단지 영광스러운 복음을 전파하며 '세상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고 말하는 가난하고 미천한 종에 불과한 것입니다.”
자기를 낯추고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삶이 성령 충만한 삶입니다
(행 10:47) 이에 베드로가 가로되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누가 능히 물로 세례 줌을 금하리요 하고
(행 10:48) 명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 하니라 저희가 베드로에게 수일 더 유하기를 청하니라
아프리카에서 전도하고 있던 어느 선교사 한분이 세례에 대하여 이야기를 토인들에게 해주었더니 모두들 갸우뚱하며 말하기를 "몸이 살아있는데 마음은 죄에 대하여 죽는다는 것은 아무래도 모르겠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선교사는 생각다 못해서 어느 날 모든 사람들을 불러놓고 그 구덩이에 들어가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사람은 선교사의 말에 따라 그 구덩이에 들어갔습니다. 선교사는 흙을 조금 그 구덩이에 넣고서, "어디, 죽었습니까?"하고 묻자 그 사람은 웃으면서 "아니오, 죽지 않았습니다."선교사는 다시 구덩이에 흙을 넣어 그 사람 허리에 까지 차게 하고는, "아직도 죽지 않았습니까?" '천만에요, 아직도 살아있습니다. "이번에는 목까지 올라오게 흙을 메꾸었습니다. 그 사람의 두 팔이 흙에 마묻혀 버리고 목만 밖으로 나와 있을 때, 선교사가 묻기도 전에, "선생님, 이젠 죽었습니다. ""천만에요, 당신은 아직도 살아 있지 않소?" "아닙니다, 저는 죽은 거나 다름없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지 않습니까?" 그러자 선교사는 그 사람을 구덩이에서 꺼내어주며 말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 몸은 살아있으나 악한 일에 대해서는 죽은 자가 되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는 것이 세례를 받은 사람의 각오입니다."
베드로는 성령 받은 자들에게 세례를 줌으로써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인정하였습니다. 대단히 의미 있는 행위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이방인들을 교회에 받아들이시는 하나님의 은총을 확고히 하는 인간적이고도 교회적인 조치였기 때문입니다. 비록 그것은 성령의 역사에 따른 추인 행위에 불과했지만 교회의 권위자가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함으로써 베드로는 '가서 세례를 주어 모든 민족을 내 제자로 삼으라.'는 명령을 성실히 수행하였던 것입니다( 마 28:19, 20). 이들은 성령을 받음으로 실제적인 천국 시민으로, 세례를 받음으로 외적인 교회의 신자들이 되었던 것입니다.
성령 충만한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충만은 말씀과 기도로 사모하는 심령에 임합니다.
빌 만이라는 성가 가수가 어느 날 놀라운 연주를 했습니다. 관중은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여러번 앙콜에 응답한 뒤에 분장실로 들어왔는데, 한 여인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귀머거리였고, 벙어리였습니다. 그 기에다 전혀 볼 수 없는 소경이었습니다. 그러니 그녀는 빌 만의 음악을 들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분장실가지 찾아온 그녀는 피곤한 그에게 부탁을 합니다. 바로 자기 앞에서 한 곡 해달라고 말입니다. 빌만은 기꺼이 그리고 우렁찬 소리로 '거기 너 있었는가 그때에'하고 흑인영가를 불렀습니다. (찬송가 136장) 그녀는 그의 목에 손을 대고 감각으로 노래를 듣고 있었습니다. '주가 그 십자가에 달릴 때, 때로 그 일로 나는 떨려 떨려 떨려, 거기 너 있었는가 그 때에' 그녀는 눈물을 펑펑 쏟았습니다. 그리고 그녀를 통역하는 이는 노래가 계속될 동안 말했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네' 그말을 받아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광경을 믿음으로 보았습니다. 주가 죽을 때 그리고 살아날 때, 한 때는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했지만 이제 나는 성령의 소원을 따라 살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내가 살아 숨쉬는 동안 나는 이 거룩한 소욕을 따라서 살 것입니다. ' 라고 다짐하면서 말입니다.
이 여인이 바로 헬렌 켈러 였습니다. 그녀는 삼중고의 아픔을 딛고 성령의 소욕을 이루기 위해 평생을 장엄하게 싸웠습니다. (21세기 예화- 거기 너 있었는가 그때에)
말씀을 듣는 가운데 성령이 임함니다. 말씀 중심하는 신앙 생활을 합시다. 기도하는 가운데 성령이 임합니다. 더 열심히 기도하면 성령 충만한 삶을 삽시다. 성령이 임하면 따르는 은사와 사명이 있습니다. 이를 잘 간직하고 활용하며 사명 감당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모두가 됩시다.
출처/강성찬 목사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