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924
성령 충만한 사람의 진가 (행16:19~34)
저의 어린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아마 초등학교 1,2학년 때의 일인 것 같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무 것도 아니지만, 당시 어린 저로서는 아주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친구 중에 방앗간 집 아들이 있었는데, 어느 날 저녁 그 집에 놀러간 적이 있었습니다. 친구가 방앗간을 구경 시켜주었습니다. 방앗간 안에는 곡식 자루들이 쌓여 있었는데, 퇴근 후라 기계가 돌아가지 않고 고요했습니다. 어린 마음에 어떻게 곡식을 빻고 떡을 만드는지 몹시 궁금했습니다. 친구에게 물었더니 전기 스위치를 넣어야 기계가 움직이는데, 자기는 할 수 없다는 겁니다. 낮에 다시 오면 볼 수 있다고 했습니다. 저는 너무 궁금해서 바로 다음 날 방앗간을 찾아갔습니다. 그랬더니 어린 제 눈앞에 신기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전날 밤 미동도 없이 서 있던 그 큰 기계들이 소리를 내며 돌아갑니다. 곡식이 빻아지고, 한쪽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가래떡이 나오는 겁니다. 그때 저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전기의 힘이 얼마나 큰지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성령 충만은 마치 이런 것과 같습니다. 아무리 기계가 크고 좋아도 전기의 힘이 없으면 우두커니 서 있는 것처럼, 성령 충만 받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조건을 갖추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불신자들과 별 차이가 없습니다. 아니, 그들만 못 할 수도 있습니다. 오직 성령 충만을 받을 때 하나님의 능력으로 승리할 수 있고, 복된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크리스천들에게 가장 근본적이고 큰 복은 성령 충만입니다. 성령으로 충만하면, 험한 세상을 살아간다 해도 늘 승리할 수 있습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함께 해주십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그래서 세상에 부러울 게 없는 행복한 인생을 살게 됩니다. 아무쪼록 저와 여러분 모두 매일의 삶 속에서 성령 충만의 복을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성경을 보면 많은 신앙의 인물들이 성령 충만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성령 충만한 대표적 인물을 꼽는다면 바울을 꼽을 수 있을 겁니다. 바울은 항상 성령 충만했고, 자신의 삶을 통해 성령 충만한 삶이란 이러 이러한 것이라고 보여주었습니다. 말하자면 바울은 성령 충만의 ‘진가’(眞價)를 보여준 사람이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바울의 삶을 통해 보는 성령 충만의 진가가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인지 함께 살펴보면서 은혜를 나누기를 소원합니다.
[1] 성령 충만의 의미 : 성령의 지배 상태
먼저 성령 충만은 어떤 것인지 그 의미를 살펴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성령 충만은 성령의 ‘지배’입니다.
우리가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성령은 단순한 에너지나 힘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성령은 삼위일체 하나님 중 삼위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성령님’ 혹은 ‘성령 하나님’으로 부르는 겁니다.
성령님은 무한하신 하나님의 영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우리 속에 들어오셔서 영원히 떠나지 않고 거주하십니다. 이를 가리켜 ‘성령의 내주’(內住 Indwelling)라고 부릅니다.
이런 사실은 예수님이 십자가 지시기 전에 이미 약속하셨던 내용입니다. 요14:16~17 “16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17 그(=성령 보혜사)는 진리의 영이라 ... 그(=성령 보혜사)는 너희와 함께(with you)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in you) 계시겠음이라”
바울도 고전6:19에서 이를 증거합니다. 고전6:19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a temple of the Holy Spirit)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데 이상합니다. 내가 분명히 예수님을 믿고 내 속에 성령님이 내주하시는데, 때로는 마음이 싱숭생숭하고 우울하고 그럴까요? 왜 어떤 때는 신앙이 올라가고(up), 어떤 때는 내려가고(down) 신앙의 기복(起伏 Ups and Downs)이 생기느냐 이겁니다. 그것은 바로 성령 충만(聖靈充滿 The Fullness of the Holy Spirit)의 유무에 따라 달라지는 겁니다. 성령 충만하면 신앙이 올라가고 뜨거워집니다. 반면 성령 충만하지 못하면 신앙이 내려가고 냉랭해 집니다. 성령의 내주는 항상 유지되는 ‘영속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 충만은 그랬다 안 그랬다 ‘간헐적’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 충만을 계속 유지할 수 있도록 주의해야 됩니다. 바울은 성도들에게 명령합니다. 엡5: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이 구절에서 바울이 성령 충만을 언급하면서 왜 술 이야기를 꺼내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술과 성령은 정반대인데 말입니다. 그것은 술 취함과 성령 충만이 현상적으로 비슷한 점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술에 취하면 술의 영향과 지배를 받습니다. 이런 말이 있죠. “사람이 술을 먹지만, 나중에는 술이 술을 먹고, 결국 술이 사람을 먹어버린다!” 그래서 술에 취하면 인격(지, 정, 의)이 달라집니다. 술 취하면 괜히 기분이 좋아져서 소리를 지릅니다. 아니면 괜히 슬퍼져서 엉엉 웁니다. 자기는 똑바로 간다고 하는데 갈지(之)자를 그립니다. 혀 꼬부라진 소리를 냅니다. 술이 그 사람을 지배하는 겁니다. 마찬가지 성령 충만하면 성령이 그 사람의 인격(지, 정, 의)를 지배하고 통치합니다.
성령 충만은 성령의 지배(支配 control)이며, 성령의 통치(統治 dominate)입니다. 성령 충만은 주권(主權 Lordship)의 문제입니다. 우리가 살아갈 때 과연 누가 주권자로서 내 인생, 내 인격을 이끌어 가냐 이겁니다. 내 편에서는 적극 순종하는 거죠. 그런데 성령 충만하지 못할 때는 내가 주인입니다. 내 속의 죄성이나 욕심이 주인입니다. 내 마음대로 합니다. 성령의 뜻에 불순종합니다. 그러면 지정의 모두 악한 쪽으로, 세속적인 쪽으로 이끌립니다.
여기서 우리가 짚고 넘어갈 게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성령 충만을 공간이나 물질 개념으로 오해합니다. 그래서 고무풍선에 바람이 가득 찬 상태로 생각합니다. 그런 오해 때문에 심지어 쉭~ 쉭~ 하면서 성령 받으라고 하는 엉터리 부흥사가 생기는 겁니다. 그런 게 아니죠. 성령 충만은 ‘관계 개념’입니다. 성령님과 나의 관계가 다스리고 순종하는 관계이면 성령 충만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성령님이 ‘충분히’(fully) 나를 다스리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또 한 가지 기억할 것은 성령 충만은 곧 하나님 충만, 예수 충만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성령을 통해 우리 안에 함께 해 주십니다. 예수님이 성령을 통해 우리 안에 함께 해 주십니다. 성령 충만은 성 삼위일체 하나님이 내 속에 계시면서 나의 주인으로 나의 모든 생각, 감정, 의지를 지배하고 통치하고 이끌어 가시는 상태입니다. 그리고 말씀이 내 속에서 나를 지배하고 통치하고 이끌어갑니다. 그래서 바울은 엡5:18 성령 충만 명령 구절과 병행구절인 골3:16에서 뭐라고 말합니까? 골3:16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 ” 그러니까 성령 충만과 말씀 충만은 같은 것이라는 겁니다.
[2] 성령 충만한 사람에게 나타나는 현상 : 성령 충만의 진가
이와 같이 우리가 성령 충만해지면 우리 삶 가운데 어떤 현상이 나타납니까? 바울의 경우를 통해 살펴봅니다.
본문은 바울이 빌립보에 있을 때 겪은 사건의 기록입니다. 귀신 들려서 점을 치는 여종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너무 불쌍해서 귀신을 쫓아줍니다. 귀한 일을 한 거죠. 그런데 여종이 더 이상 점을 치지 못하면서 수입이 없어지자 돈만 아는 악한 주인이 바울에게 분노합니다. 그래서 바울과 실리를 붙잡아다 이런 저런 이유를 들어 당국에 고소합니다. 결국 바울 일행은 매를 실컷 맞고 감옥에 갇힙니다. 이런 황당한 과정 속에서 바울이 어떤 모습을 보이는지 살펴보면, “아! 저런 게 성령 충만한 사람의 모습이구나!” 하고 깨닫게 됩니다.
① 환경을 초월하는 기쁨 :
성령 충만한 바울에게 나타난 첫 번째 모습은 환경을 초월하는 기쁨입니다. 감옥에 갇힌 바울의 환경은 어떻습니까? 로마의 형벌제도는 잔인무도해서 매를 때릴 때 무제한입니다. 매를 맞다 죽는 사람도 수두룩했습니다. 바울이 그런 고통을 당한 겁니다. 그리고 깊은 감옥에 들어갑니다. 지하 감옥이죠. 중 죄수만 갇히는 캄캄하고 답답한 곳입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한밤중에 찬송하고 기도합니다. 24절~25절. “24 그가 이 이러한 명령을 받아 그들을 깊은 옥에 가두고 그 발을 차꼬에 든든히 채웠더니 25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사람은 환경의 영향과 지배를 받습니다. 그러나 항상 그런 게 아닙니다. 오히려 환경을 지배하기도 합니다. 무조건 환경이 나쁘다고 망하지 않습니다. 어떤 가정에 아버지가 알코올 중독자였습니다. 그 슬하에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한 아들은 아버지는 저부하며 자랐지만, 자기도 알코올 중독자가 되어 폐인으로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다른 아들은 아버지처럼 되지 않겠다며 이를 악물고 공부했고, 의사가 되었습니다. 알코올 중독 예방 운동을 주도하였습니다. 동일한 환경이지만 이렇게 달라질 수 있는 겁니다. 그러기에 환경보다 중요한 것은 인간의 정신력입니다.
정신력보다 더 강한 것이 성령 충만입니다. 성령 충만하면 성령께서 우리 마음을 꽉 붙잡아줍니다. 마음 속에 힘과 능력을 주십니다. 그리고 신령한 기쁨을 줍니다. 그러면 환경에 짓눌리지 않습니다. 극복해냅니다. 승리합니다.
바울은 엡5:18 성령 충만함을 받으라고 말하고, 이어서 뭐라고 말합니까? 엡5:19~20 “19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20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성령 충만하면 저절로 찬송이 나오고 기도가 나오고 범사에 감사하게 된다는 겁니다.
예수님도 말씀하셨습니다. 요7:38~39 “38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39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 ” 이처럼 우리 내면에 생수의 강이 흐르므로 세상의 어려운 환경 가운데 처해도 마음 속에서 기쁨이 솟아난다는 겁니다.
성령 충만했던 바울이 감옥에 갇혀 있어도 기뻐할 수 있었고, 찬송하며 기도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단 한 가지 성령 충만 때문이었습니다. 그가 나중에 로마 감옥에 갇혀 있을 때 쓴 빌립보서도 그런 모습을 보여줍니다. 빌4:4,11~13 “4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 ... ) 11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12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여기서 말하는 능력은 어려운 환경 가운데서도 마음에 짓눌리지 않고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성령의 능력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바울은 어떤 형편 환경에서도 자족하는 비결을 배웠다고 공언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헨렌 켈러(Helen Adams Keller 1880~1968)를 아시죠. ‘삼중고(三重苦)의 성녀(聖女)’라 불리던 분입니다. 그녀는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삼중 장애인이었지만 크리스천으로 세계적인 교육가요 사회사업가였습니다. 세계 최초의 장애인 박사였습니다. 환경으로 보면 불가능한 일이죠.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그녀가 말년에 자신의 인생을 회고하면서 이렇게 고백했다는 사실입니다. “아! 참으로 나의 생은 너무나도 아름다웠도다.” 이게 가능했던 것은 설리번 선생(Ann Sullivan)의 격려 때문입니다. “사람의 삶의 조건은 그 어떤 것이라도 그 사람을 결코 패배시킬 수 없다. 하나님은 어떠한 환경도 끊을 수 없는 사랑으로 여전히 너를 사랑하시므로 너는 얼마든지 삶의 환경을 극복하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 이 말은 곧 성령 충만하면 환경을 이기고 행복할 수 있다는 메시지였습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사람이 환경이 나빠서 불행한 게 아닙니다. 성령 충만하면 행복해 질 수 있습니다. 환경이 좋으면 좋은 대로, 나쁘면 나쁜 대로 행복할 수 있습니다. 이런 놀라운 축복을 누리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② 하나님 능력의 역사(役事) :
우리가 성령 충만하면 환경을 초월하는 기쁨을 누리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환경을 변화시키는 능력도 나타납니다. 바울을 보십시오. 성령 충만한 가운데 여종에게서 귀신을 쫓아주었습니다. 또 감옥에서는 어떤 일이 생겼습니까? 26절.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물론 바울이 간수를 위해 탈옥하지 않죠. 하지만 35절 이하 보면, 다음 날 상관들이 직접 와서 오히려 출옥하라고 사정합니다.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이것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의 역사입니다. 기적입니다. 이런 일은 우리 삶 가운데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내 앞에 있는 태산 같은 문제가 평지가 되는 역사가 있을 줄로 믿습니다. 내가 볼 때는 큰 문제지만, 하나님이 볼 때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아무리 문제가 커도 하나님은 그 문제보다 크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는 없습니다. 우리가 성령 충만하면 하나님이 크게 보이고, 문제는 작게 보입니다. 그래서 담대하게 외치고 기도할 수 있습니다. “내 앞에 있는 태산아! 평지가 될지어다!” “주여! 내 앞에 태산을 평지 되게 하옵소서!” 아무쪼록 성령 충만해서 세상에서 어떤 문제가 닥쳐와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③ 예수님을 닮은 인격 :
앞에서 성령 충만은 곧 예수 충만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므로 지속적으로 성령 충만한 상태를 유지하면 자연히 예수님을 닮은 인격으로 변화됩니다.
성령 충만한 바울의 인격을 보십시오! 잠을 자던 간수가 옥터가 흔들리자 깜짝 놀라 죄수들이 탈옥한 줄 알고 자결하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당시 로마법으로는 죄수를 놓치면 간수가 그 죄수의 형벌을 그대로 져야 합니다. 심한 경우 처형을 당합니다. 가족들에게까지 피해가 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자결하려고 했는데, 바울이 어떻게 합니까? 28절~29절. “28바울이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 하니 29 간수가 등불을 달라고 하며 뛰어 들어가 무서워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리고” 바울이 간수의 자결을 제지시키고, 탈옥의 기회를 포기하고 태연하게 앉아있는 모습을 보고 간수는 큰 감동을 받습니다. 넙죽 엎드립니다. 엎드렸다는 말은 원어의 의미로 볼 때 바울을 신적인 존재로 여겼다는 의미입니다. 바울은 비록 얼굴이 피투성이가 되었지만, 그 가운데 빛나는 모습이 있었고, 그의 희생적인 사랑은 간수를 감화시키기에 충분했던 겁니다. 이것은 그가 늘 성령 충만했던 결과입니다. 곧 성령의 열매가 맺어진 결과입니다. 갈5:22~23 “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23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여기 보면 9가지 열매가 나오는데, 이것은 모두 예수님의 고매한 인격의 요소들입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은 이런 인격의 모습으로 변화됩니다.
여러분, ‘얼짱’이란 말 아시죠. 얼굴이 잘 생긴 사람을 지칭할 때 쓰는 유행어입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은 얼짱이 됩니다! 왜 그런 줄 아십니까? 성령 충만, 예수 충만함으로 아름다워집니다. 우리 말 얼굴은 본래 ‘얼(영혼)+꼴(모양)’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즉 영혼의 모양이 얼굴인 셈입니다. 그러므로 영혼이 예뻐지면 얼굴도 예뻐집니다. 물론 생김새 자체를 바꿀 수는 없겠지만, 풍기는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한 마디로 기품이 생기는 겁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 성령 충만해서 진정한 얼짱 되시기 바랍니다.
④ 복음의 증거 :
성령은 증거의 영입니다. 성령은 예수님을 증거하는 역할을 감당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령 충만하면 자연히 예수님을 증거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냄새를 풍기게 됩니다. 바울을 보십시오! 그의 모습에 감동을 받은 간수가 묻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에 관해 증거합니다.
30절~31절. “30 그들을 데리고 나가 이르되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하거늘 31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또 32절~34절을 보면, 간수가 바울 일행을 자기 집에 데려갔고, 온 가족이 말씀을 듣고 세례를 받습니다. 구원의 기쁨으로 충만해집니다. 이렇게 해서 간수의 가족들이 루디아와 더불어 빌립보 교회 창립 멤버가 됩니다.
그렇습니다! 성령 충만하면 예수님의 십자가 구속의 은혜가 깨달아지고 구원의 기쁨이 넘치고, 주체할 수 없어서 그 복음을 증거하게 됩니다. 행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부디 저와 여러분도 성령 충만해서 가까운 이웃에게 복음을 전하고, 세계 만민에게 나든지 보내든지 선교에 헌신하시기 바랍니다.
[3] 성령 충만 받는 비결 : 말씀과 기도의 생활화 - 회개와 순종
이렇게 좋은 성령 충만이지만, 내가 받지 못하면 소용이 없는 겁니다. 여러분! 어떻게 하면 성령 충만을 받을 수 있습니까? 성령이 나를 지배하고 통치할 수 있도록 나 자신을 맡겨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날마다 말씀과 기도를 생활화하시기 바랍니다. 죄는 성령과 상극입니다. 그러므로 말씀과 기도 생활을 통해 나 자신을 돌아보고 혹시라도 회개치 않은 죄가 있는지 체크하고 회개해야 됩니다. 그리고 성령의 뜻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러면 성령 충만을 받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 나 자신의 영적 상태는 어떻습니까? 한번 스스로 진단해 보시기 바랍니다. 성령 충만하십니까? 부디 성령 충만을 사모하시고 성령 충만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바울처럼 성령 충만의 진가를 맛보며 나타내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출처/홍문수목사 설교 중에서
저의 어린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아마 초등학교 1,2학년 때의 일인 것 같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무 것도 아니지만, 당시 어린 저로서는 아주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친구 중에 방앗간 집 아들이 있었는데, 어느 날 저녁 그 집에 놀러간 적이 있었습니다. 친구가 방앗간을 구경 시켜주었습니다. 방앗간 안에는 곡식 자루들이 쌓여 있었는데, 퇴근 후라 기계가 돌아가지 않고 고요했습니다. 어린 마음에 어떻게 곡식을 빻고 떡을 만드는지 몹시 궁금했습니다. 친구에게 물었더니 전기 스위치를 넣어야 기계가 움직이는데, 자기는 할 수 없다는 겁니다. 낮에 다시 오면 볼 수 있다고 했습니다. 저는 너무 궁금해서 바로 다음 날 방앗간을 찾아갔습니다. 그랬더니 어린 제 눈앞에 신기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전날 밤 미동도 없이 서 있던 그 큰 기계들이 소리를 내며 돌아갑니다. 곡식이 빻아지고, 한쪽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가래떡이 나오는 겁니다. 그때 저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전기의 힘이 얼마나 큰지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성령 충만은 마치 이런 것과 같습니다. 아무리 기계가 크고 좋아도 전기의 힘이 없으면 우두커니 서 있는 것처럼, 성령 충만 받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조건을 갖추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불신자들과 별 차이가 없습니다. 아니, 그들만 못 할 수도 있습니다. 오직 성령 충만을 받을 때 하나님의 능력으로 승리할 수 있고, 복된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크리스천들에게 가장 근본적이고 큰 복은 성령 충만입니다. 성령으로 충만하면, 험한 세상을 살아간다 해도 늘 승리할 수 있습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함께 해주십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그래서 세상에 부러울 게 없는 행복한 인생을 살게 됩니다. 아무쪼록 저와 여러분 모두 매일의 삶 속에서 성령 충만의 복을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성경을 보면 많은 신앙의 인물들이 성령 충만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성령 충만한 대표적 인물을 꼽는다면 바울을 꼽을 수 있을 겁니다. 바울은 항상 성령 충만했고, 자신의 삶을 통해 성령 충만한 삶이란 이러 이러한 것이라고 보여주었습니다. 말하자면 바울은 성령 충만의 ‘진가’(眞價)를 보여준 사람이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바울의 삶을 통해 보는 성령 충만의 진가가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인지 함께 살펴보면서 은혜를 나누기를 소원합니다.
[1] 성령 충만의 의미 : 성령의 지배 상태
먼저 성령 충만은 어떤 것인지 그 의미를 살펴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성령 충만은 성령의 ‘지배’입니다.
우리가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성령은 단순한 에너지나 힘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성령은 삼위일체 하나님 중 삼위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성령님’ 혹은 ‘성령 하나님’으로 부르는 겁니다.
성령님은 무한하신 하나님의 영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우리 속에 들어오셔서 영원히 떠나지 않고 거주하십니다. 이를 가리켜 ‘성령의 내주’(內住 Indwelling)라고 부릅니다.
이런 사실은 예수님이 십자가 지시기 전에 이미 약속하셨던 내용입니다. 요14:16~17 “16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17 그(=성령 보혜사)는 진리의 영이라 ... 그(=성령 보혜사)는 너희와 함께(with you)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in you) 계시겠음이라”
바울도 고전6:19에서 이를 증거합니다. 고전6:19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a temple of the Holy Spirit)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데 이상합니다. 내가 분명히 예수님을 믿고 내 속에 성령님이 내주하시는데, 때로는 마음이 싱숭생숭하고 우울하고 그럴까요? 왜 어떤 때는 신앙이 올라가고(up), 어떤 때는 내려가고(down) 신앙의 기복(起伏 Ups and Downs)이 생기느냐 이겁니다. 그것은 바로 성령 충만(聖靈充滿 The Fullness of the Holy Spirit)의 유무에 따라 달라지는 겁니다. 성령 충만하면 신앙이 올라가고 뜨거워집니다. 반면 성령 충만하지 못하면 신앙이 내려가고 냉랭해 집니다. 성령의 내주는 항상 유지되는 ‘영속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 충만은 그랬다 안 그랬다 ‘간헐적’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 충만을 계속 유지할 수 있도록 주의해야 됩니다. 바울은 성도들에게 명령합니다. 엡5: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이 구절에서 바울이 성령 충만을 언급하면서 왜 술 이야기를 꺼내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술과 성령은 정반대인데 말입니다. 그것은 술 취함과 성령 충만이 현상적으로 비슷한 점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술에 취하면 술의 영향과 지배를 받습니다. 이런 말이 있죠. “사람이 술을 먹지만, 나중에는 술이 술을 먹고, 결국 술이 사람을 먹어버린다!” 그래서 술에 취하면 인격(지, 정, 의)이 달라집니다. 술 취하면 괜히 기분이 좋아져서 소리를 지릅니다. 아니면 괜히 슬퍼져서 엉엉 웁니다. 자기는 똑바로 간다고 하는데 갈지(之)자를 그립니다. 혀 꼬부라진 소리를 냅니다. 술이 그 사람을 지배하는 겁니다. 마찬가지 성령 충만하면 성령이 그 사람의 인격(지, 정, 의)를 지배하고 통치합니다.
성령 충만은 성령의 지배(支配 control)이며, 성령의 통치(統治 dominate)입니다. 성령 충만은 주권(主權 Lordship)의 문제입니다. 우리가 살아갈 때 과연 누가 주권자로서 내 인생, 내 인격을 이끌어 가냐 이겁니다. 내 편에서는 적극 순종하는 거죠. 그런데 성령 충만하지 못할 때는 내가 주인입니다. 내 속의 죄성이나 욕심이 주인입니다. 내 마음대로 합니다. 성령의 뜻에 불순종합니다. 그러면 지정의 모두 악한 쪽으로, 세속적인 쪽으로 이끌립니다.
여기서 우리가 짚고 넘어갈 게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성령 충만을 공간이나 물질 개념으로 오해합니다. 그래서 고무풍선에 바람이 가득 찬 상태로 생각합니다. 그런 오해 때문에 심지어 쉭~ 쉭~ 하면서 성령 받으라고 하는 엉터리 부흥사가 생기는 겁니다. 그런 게 아니죠. 성령 충만은 ‘관계 개념’입니다. 성령님과 나의 관계가 다스리고 순종하는 관계이면 성령 충만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성령님이 ‘충분히’(fully) 나를 다스리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또 한 가지 기억할 것은 성령 충만은 곧 하나님 충만, 예수 충만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성령을 통해 우리 안에 함께 해 주십니다. 예수님이 성령을 통해 우리 안에 함께 해 주십니다. 성령 충만은 성 삼위일체 하나님이 내 속에 계시면서 나의 주인으로 나의 모든 생각, 감정, 의지를 지배하고 통치하고 이끌어 가시는 상태입니다. 그리고 말씀이 내 속에서 나를 지배하고 통치하고 이끌어갑니다. 그래서 바울은 엡5:18 성령 충만 명령 구절과 병행구절인 골3:16에서 뭐라고 말합니까? 골3:16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 ” 그러니까 성령 충만과 말씀 충만은 같은 것이라는 겁니다.
[2] 성령 충만한 사람에게 나타나는 현상 : 성령 충만의 진가
이와 같이 우리가 성령 충만해지면 우리 삶 가운데 어떤 현상이 나타납니까? 바울의 경우를 통해 살펴봅니다.
본문은 바울이 빌립보에 있을 때 겪은 사건의 기록입니다. 귀신 들려서 점을 치는 여종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너무 불쌍해서 귀신을 쫓아줍니다. 귀한 일을 한 거죠. 그런데 여종이 더 이상 점을 치지 못하면서 수입이 없어지자 돈만 아는 악한 주인이 바울에게 분노합니다. 그래서 바울과 실리를 붙잡아다 이런 저런 이유를 들어 당국에 고소합니다. 결국 바울 일행은 매를 실컷 맞고 감옥에 갇힙니다. 이런 황당한 과정 속에서 바울이 어떤 모습을 보이는지 살펴보면, “아! 저런 게 성령 충만한 사람의 모습이구나!” 하고 깨닫게 됩니다.
① 환경을 초월하는 기쁨 :
성령 충만한 바울에게 나타난 첫 번째 모습은 환경을 초월하는 기쁨입니다. 감옥에 갇힌 바울의 환경은 어떻습니까? 로마의 형벌제도는 잔인무도해서 매를 때릴 때 무제한입니다. 매를 맞다 죽는 사람도 수두룩했습니다. 바울이 그런 고통을 당한 겁니다. 그리고 깊은 감옥에 들어갑니다. 지하 감옥이죠. 중 죄수만 갇히는 캄캄하고 답답한 곳입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한밤중에 찬송하고 기도합니다. 24절~25절. “24 그가 이 이러한 명령을 받아 그들을 깊은 옥에 가두고 그 발을 차꼬에 든든히 채웠더니 25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사람은 환경의 영향과 지배를 받습니다. 그러나 항상 그런 게 아닙니다. 오히려 환경을 지배하기도 합니다. 무조건 환경이 나쁘다고 망하지 않습니다. 어떤 가정에 아버지가 알코올 중독자였습니다. 그 슬하에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한 아들은 아버지는 저부하며 자랐지만, 자기도 알코올 중독자가 되어 폐인으로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다른 아들은 아버지처럼 되지 않겠다며 이를 악물고 공부했고, 의사가 되었습니다. 알코올 중독 예방 운동을 주도하였습니다. 동일한 환경이지만 이렇게 달라질 수 있는 겁니다. 그러기에 환경보다 중요한 것은 인간의 정신력입니다.
정신력보다 더 강한 것이 성령 충만입니다. 성령 충만하면 성령께서 우리 마음을 꽉 붙잡아줍니다. 마음 속에 힘과 능력을 주십니다. 그리고 신령한 기쁨을 줍니다. 그러면 환경에 짓눌리지 않습니다. 극복해냅니다. 승리합니다.
바울은 엡5:18 성령 충만함을 받으라고 말하고, 이어서 뭐라고 말합니까? 엡5:19~20 “19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20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성령 충만하면 저절로 찬송이 나오고 기도가 나오고 범사에 감사하게 된다는 겁니다.
예수님도 말씀하셨습니다. 요7:38~39 “38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39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 ” 이처럼 우리 내면에 생수의 강이 흐르므로 세상의 어려운 환경 가운데 처해도 마음 속에서 기쁨이 솟아난다는 겁니다.
성령 충만했던 바울이 감옥에 갇혀 있어도 기뻐할 수 있었고, 찬송하며 기도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단 한 가지 성령 충만 때문이었습니다. 그가 나중에 로마 감옥에 갇혀 있을 때 쓴 빌립보서도 그런 모습을 보여줍니다. 빌4:4,11~13 “4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 ... ) 11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12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여기서 말하는 능력은 어려운 환경 가운데서도 마음에 짓눌리지 않고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성령의 능력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바울은 어떤 형편 환경에서도 자족하는 비결을 배웠다고 공언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헨렌 켈러(Helen Adams Keller 1880~1968)를 아시죠. ‘삼중고(三重苦)의 성녀(聖女)’라 불리던 분입니다. 그녀는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삼중 장애인이었지만 크리스천으로 세계적인 교육가요 사회사업가였습니다. 세계 최초의 장애인 박사였습니다. 환경으로 보면 불가능한 일이죠.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그녀가 말년에 자신의 인생을 회고하면서 이렇게 고백했다는 사실입니다. “아! 참으로 나의 생은 너무나도 아름다웠도다.” 이게 가능했던 것은 설리번 선생(Ann Sullivan)의 격려 때문입니다. “사람의 삶의 조건은 그 어떤 것이라도 그 사람을 결코 패배시킬 수 없다. 하나님은 어떠한 환경도 끊을 수 없는 사랑으로 여전히 너를 사랑하시므로 너는 얼마든지 삶의 환경을 극복하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 이 말은 곧 성령 충만하면 환경을 이기고 행복할 수 있다는 메시지였습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사람이 환경이 나빠서 불행한 게 아닙니다. 성령 충만하면 행복해 질 수 있습니다. 환경이 좋으면 좋은 대로, 나쁘면 나쁜 대로 행복할 수 있습니다. 이런 놀라운 축복을 누리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② 하나님 능력의 역사(役事) :
우리가 성령 충만하면 환경을 초월하는 기쁨을 누리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환경을 변화시키는 능력도 나타납니다. 바울을 보십시오. 성령 충만한 가운데 여종에게서 귀신을 쫓아주었습니다. 또 감옥에서는 어떤 일이 생겼습니까? 26절.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물론 바울이 간수를 위해 탈옥하지 않죠. 하지만 35절 이하 보면, 다음 날 상관들이 직접 와서 오히려 출옥하라고 사정합니다.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이것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의 역사입니다. 기적입니다. 이런 일은 우리 삶 가운데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내 앞에 있는 태산 같은 문제가 평지가 되는 역사가 있을 줄로 믿습니다. 내가 볼 때는 큰 문제지만, 하나님이 볼 때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아무리 문제가 커도 하나님은 그 문제보다 크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는 없습니다. 우리가 성령 충만하면 하나님이 크게 보이고, 문제는 작게 보입니다. 그래서 담대하게 외치고 기도할 수 있습니다. “내 앞에 있는 태산아! 평지가 될지어다!” “주여! 내 앞에 태산을 평지 되게 하옵소서!” 아무쪼록 성령 충만해서 세상에서 어떤 문제가 닥쳐와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③ 예수님을 닮은 인격 :
앞에서 성령 충만은 곧 예수 충만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므로 지속적으로 성령 충만한 상태를 유지하면 자연히 예수님을 닮은 인격으로 변화됩니다.
성령 충만한 바울의 인격을 보십시오! 잠을 자던 간수가 옥터가 흔들리자 깜짝 놀라 죄수들이 탈옥한 줄 알고 자결하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당시 로마법으로는 죄수를 놓치면 간수가 그 죄수의 형벌을 그대로 져야 합니다. 심한 경우 처형을 당합니다. 가족들에게까지 피해가 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자결하려고 했는데, 바울이 어떻게 합니까? 28절~29절. “28바울이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 하니 29 간수가 등불을 달라고 하며 뛰어 들어가 무서워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리고” 바울이 간수의 자결을 제지시키고, 탈옥의 기회를 포기하고 태연하게 앉아있는 모습을 보고 간수는 큰 감동을 받습니다. 넙죽 엎드립니다. 엎드렸다는 말은 원어의 의미로 볼 때 바울을 신적인 존재로 여겼다는 의미입니다. 바울은 비록 얼굴이 피투성이가 되었지만, 그 가운데 빛나는 모습이 있었고, 그의 희생적인 사랑은 간수를 감화시키기에 충분했던 겁니다. 이것은 그가 늘 성령 충만했던 결과입니다. 곧 성령의 열매가 맺어진 결과입니다. 갈5:22~23 “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23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여기 보면 9가지 열매가 나오는데, 이것은 모두 예수님의 고매한 인격의 요소들입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은 이런 인격의 모습으로 변화됩니다.
여러분, ‘얼짱’이란 말 아시죠. 얼굴이 잘 생긴 사람을 지칭할 때 쓰는 유행어입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은 얼짱이 됩니다! 왜 그런 줄 아십니까? 성령 충만, 예수 충만함으로 아름다워집니다. 우리 말 얼굴은 본래 ‘얼(영혼)+꼴(모양)’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즉 영혼의 모양이 얼굴인 셈입니다. 그러므로 영혼이 예뻐지면 얼굴도 예뻐집니다. 물론 생김새 자체를 바꿀 수는 없겠지만, 풍기는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한 마디로 기품이 생기는 겁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 성령 충만해서 진정한 얼짱 되시기 바랍니다.
④ 복음의 증거 :
성령은 증거의 영입니다. 성령은 예수님을 증거하는 역할을 감당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령 충만하면 자연히 예수님을 증거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냄새를 풍기게 됩니다. 바울을 보십시오! 그의 모습에 감동을 받은 간수가 묻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에 관해 증거합니다.
30절~31절. “30 그들을 데리고 나가 이르되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하거늘 31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또 32절~34절을 보면, 간수가 바울 일행을 자기 집에 데려갔고, 온 가족이 말씀을 듣고 세례를 받습니다. 구원의 기쁨으로 충만해집니다. 이렇게 해서 간수의 가족들이 루디아와 더불어 빌립보 교회 창립 멤버가 됩니다.
그렇습니다! 성령 충만하면 예수님의 십자가 구속의 은혜가 깨달아지고 구원의 기쁨이 넘치고, 주체할 수 없어서 그 복음을 증거하게 됩니다. 행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부디 저와 여러분도 성령 충만해서 가까운 이웃에게 복음을 전하고, 세계 만민에게 나든지 보내든지 선교에 헌신하시기 바랍니다.
[3] 성령 충만 받는 비결 : 말씀과 기도의 생활화 - 회개와 순종
이렇게 좋은 성령 충만이지만, 내가 받지 못하면 소용이 없는 겁니다. 여러분! 어떻게 하면 성령 충만을 받을 수 있습니까? 성령이 나를 지배하고 통치할 수 있도록 나 자신을 맡겨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날마다 말씀과 기도를 생활화하시기 바랍니다. 죄는 성령과 상극입니다. 그러므로 말씀과 기도 생활을 통해 나 자신을 돌아보고 혹시라도 회개치 않은 죄가 있는지 체크하고 회개해야 됩니다. 그리고 성령의 뜻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러면 성령 충만을 받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 나 자신의 영적 상태는 어떻습니까? 한번 스스로 진단해 보시기 바랍니다. 성령 충만하십니까? 부디 성령 충만을 사모하시고 성령 충만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바울처럼 성령 충만의 진가를 맛보며 나타내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출처/홍문수목사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