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소서.  (베드로전서5:8-11)

“몹시 가난했지만 열심히 믿음으로 산 ‘빌 로젠버그’라는 소년이 있었습니다. 정직하게 십일조헌금을 드리고,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며, 성실하게 사는 삶이 성공을 가져온다고 믿었습니다. 30세가 되던 1946년, 2차 세계대전 중, 노동자들에게 간편한 점심메뉴를 제공할 필요를 느껴서 ‘도너츠와 커피’를 서비스 하게 되었습니다. “We make people happy.” 라는 슬로건 아래, 자본금 5,000불을 투자하여 ‘던킨 도너츠’를 만들었습니다. 1955년 제1호 가맹점을 연 후 지금은 세계50개 나라에서 6,000여개의 점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1994년 이태원에서 1호점을 개점한 이래 현재 320여 개의 매장이 있습니다. ‘빌 로젠버그’가 72세의 생일 축하자리에서 한 말입니다.  
“나는 가난하여 정규교육을 받지 못하고 자랐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늘 저의 짐을 맡아 주셨습니다. 성공은 지식에 있지 않고, 태도에 있다고 나는 믿습니다.”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받는 한 사람이 세상에 어떤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좋은 예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다스리시면, 세상에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며 살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가르치셨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오늘은 기도, 그 4번째 시간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옵소서.” 라는 말씀을 통하여 함께 은혜를 받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왕권, 주권, 통치, 또는 다스리는 활동을 포함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옵소서.” 라는 말은 “하나님이 내 삶의 왕이 되어 모든 것을 다스려 주옵소서.” 라는 기도입니다.

1.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이루어졌습니다.  
“나라가 임하옵시며” 라는 이 기도는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라는 기도를 먼저 이해해야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뜻이 다 이루어진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알고 기도해야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이미 하늘에서는 다 이루어졌다”는 말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나라 역시 하늘에서는 다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므로 이 기도는 ‘하나님의 나라가 하늘에서 다 이루어진 것 같이 우리에게도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라는 기도입니다.
주님이 가르치신 기도를 잘못 이해하면 큰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하지 못한데, 우리가 이름이 거룩하게 하옵소서 라고 기도해야 거룩해지는 줄 안다든지,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되지 못하였는데 우리가 간절히 기도하여 이루어진다면, 전능하신 하나님의 성품에 훼손이 올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십니다. 완전하십니다.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무엇인가를 이룰 수 있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계획하신 모든 일, 뜻하신 모든 일을 다 이루십니다. 천지를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은 사람의 도우심을 받으신 적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첫 설교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 는 말씀입니다. 회개하므로 천국을 이룩하자는 말씀이 아닙니다. 회개한 사람에게는 천국은 이미 가까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2,000년 전에 사도요한이 ‘밧모 섬’에서 기도하는 중에 본 환상은 이미 이루어진 하나님의 나라였습니다. 요한계시록21,22장의 말씀은 그 하나님나라의 영광이 어떠한지 세밀하게 계시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기도와 노력과 상관없이 때가 되면 하나님의 나라는 임하시게 됩니다. 이미 하나님의 계획 속에 완성된 나라가 사람의 준비가 되면 임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베드로후서3:12,13에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에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가 사는 세상이 점차 개선되고 좋아져서 완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완전하고 거룩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이 이미 이루어진 새 하늘과 새 땅이 하늘로부터 도래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의 나라를 완성한다고 착각하면 안 됩니다.  

2.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시면 삶의 정권교체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나라이 임하옵시며.” 라는 기도는 무엇을 위한기도입니까? 이 기도는 전적으로 우리를 위한 명령입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하나님의 나라의 영광에 동참하라 시는 명령입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의 삶의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자신의 세계관이 있습니다. 내 자신이 내 삶의 모든 것의 모든 것입니다. 나-중심적인 삶입니다. 내가 세상 모든 것의 기준입니다. 내가 모든 판단의 기준입니다. 의의 기준이 됩니다. 나를 중심으로 사람들을 평가하고 자기 세계를 형성해 나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살아가는 삶은 상처와 허물투성입니다. 모든 사람이 모든 사람에 대하여 재판관이 되어 살기 때문에 함께 사는 삶이 곧 상처요 허물투성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시면 우리 삶에 정권교체가 일어나는 것과 같습니다. 내 삶의 주권을 바꾸는 것입니다. 어느 날 내 삶의 중심에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접하고 예수를 왕으로 모셔 들이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그리스도를 왕으로 영접한 사람은 이렇게 기도합니다.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내가 내 마음의 왕좌에서, 밀려나고 하나님이 그 왕좌에 임하신 것입니다. 내 삶의 명령체계가 나 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바뀐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알지 못한 사람들은 이 싸움을 계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던 날의 일을 기억하십니까? 대제사장 가야바가 예수님을 총독 본디오 빌라도에게 넘겨주고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요청합니다. 모든 군중들을 선동하여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십시오‘ 라고 외칩니다. 빌라도가 끝까지 예수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겠다고 하였을 때 유대인들은 말합니다.  
“우리의 왕은 가이사 뿐입니다.”(요한복음19:15)
빌라도는 죄 없는 예수를 놓아줄 심산으로 유월절에 죄수 한 사람을 놓아주는 전례가 있다며 예수와 함께 바라바를 내 놓았습니다. 이 때 사람들은 강도 바라바를 놓아주고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칩니다.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기를 거절하는 사람들은 가이사와 바라바를 선택하였습니다.  
사랑과 진리의 왕이신 예수를 배척한 사람들은 권력을 최고의 가치로 생각하는 권력지상주의를 선택합니다. 돈에 최고의 가치를 두고 돈을 벌기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물질지상주의를 선택한 것입니다.
“나라이 임하옵시며” 이 기도는 세상의 어떤 것보다 하나님을 최고의 가치로 생각하고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고 그 다스리심을 받겠다고 하는 정권교체입니다.
예수가 임금이 되는 나라를 선택하는 결단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가아사가 아닌 다른 임금 곧 예수가 있다고 믿는 사람들입니다.  
사도행전17:7에 그리스도인들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다른 임금 곧 예수라 하는 이가 있다 하더이다.”

3.이 기도는 계속되어야 합니다.  
주기도문은 일생 한 번 하면 되는 기도가 아닙니다. 하루에도 수없이 계속되어야하는  기도입니다.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경험하는 한 가지 이상한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잡초는 씨를 뿌리지 않고, 가꾸지 않아도 너무너무 많이 나고, 또 잘 자랍니다.  김을 매주고 또 매주어도 잡초는 무성하게 자랍니다. 방심하고 얼마동안만 방치하면 좋은 씨앗을 뿌려놓은 밭은 금방 잡초 밭이 되고 맙니다.
우리그리스도인들의 마음에 끊임없이 악한 씨앗을 심고, 가라지가 자라게 하는 사단의 역사가 있기 때문에 우리의 마음과 삶을 하나님이 다스리시도록 기도를 계속해야합니다.  
하나는 영적인 이유 때문입니다.
오늘 읽은 본문말씀 베드로전서5:7,8 입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니라.”
사단은 세상의 것을 왕으로 삼아 살게 함으로, 사람들을 자기의 종으로 삼기 위하여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닙니다. 사단은 때로는 우리를 달콤한 속임수로 유혹합니다. 선악과를 먹으면 금방 하나님처럼 되는 길이 있는 것처럼 속입니다.  
때로는 우리를 무서운 말로 협박하며 위협합니다. 이를테면 다니엘에게 계속기도하면 사자굴 속에 던져 넣겠다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의 짧은 머리로는 사단의 수완을 당할 수 없습니다.
성경은 마귀는 타협할 상대가 아니라, 믿음으로 대적해야합니다. 영적으로 바르지 않다고 판단될 때는 단호해야합니다.

지난 수요일 저녁 전경배집사의 간증을 들었습니다. 그는 1974년에 도미하여, 지금 ‘뉴욕 주 고등법원 판사’로 일하고 있는 46세의 한인이었습니다. 목사의 아들인 그는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해서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그는 간증에서 두 가지 사실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 앞에 우리의 모든 것은 숨길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검사로 일을 할 때, 필요에 의하여 범인들의 집에 도청장치를 하여 놓고, 그들의 삶의 모든 사실을 알고 범인을 채포하는 과정에서 깨달은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도청장치나, 몰 카를 설치하지 않아도 우리의 모든 것을 다 아신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말과 행동뿐만 아니라, 생각까지도 다 아시는 하나님 앞에서 살아야 한다는 고백이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그러므로 항상 주님만 바라본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지켜보시면서 항상 도와주시는데 내가 잘나서 한 것처럼 교만을 떨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시때때로 주님을 바라본다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항상 주님을 바라보아야할 이유입니다.

우리의 기도를 중단할 수 없는 영적인 이유입니다. 사단은 하나님을 바라보며 겸손히 살아가는 우리를 꼬드겨서 마음속에 ‘내가 대단한 존재야. 하나님 없이도 넌 정말 잘하고 있어!’ 라는 생각으로 나가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쉬지 않고 기도해야합니다.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받아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을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하나는 현실적인 이유입니다.
우리들의 육체적인 삶에는 현실에 안주하려고 하는 유혹이 끝없이 계속되기 때문입니다. 우리 스스로 삶의 자세를 가다듬고 새롭게 나아가지 않으면 처음사랑을 유지하는 일이 대단히 어렵기 때문입니다. 에베소교회가 처음 사랑을 잃어버린 것은 영적인 문제이기도 하지만 현실적으로 육신적인 삶의 문제입니다.  
예수님은 달란트비유로 이 사실을 알게 하셨습니다. 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계속 자신이 일하지 않아도 될 충분한 이유를 찾기에 급급하였습니다. 아직은 시기가 좋지 않다고 보았습니다. 남보다 상대적으로 적은 달란트를 받았기 때문에 한 번 실수하면 재기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투자를 신중히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결정적으로 투자해야할 때가 오면, 이다음에 틀림없이 더 좋은 기회가 올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투자하지 않으면 안 될 때가 되었는데도 그는 아직도 일할 기회는 얼마든지 많다고 스스로에게 세뇌를 시키며 일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육신적인 안일을 추구하는 심리적인 이유들입니다.  
우리의 환경에서 ‘이것이 최상이다.’ 라고 판단할 때는 누구도 모릅니다.
그래서 언젠가 해야 될 일이라면 지금하고,
누군가가 해야 할 일이라면 내가 하고,
기왕에 해야 할 일이라면 더욱 잘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속에 하나님나라가 임하시면 우리들의 삶 속에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다스리시는 역사는 새로운 세상을 창출할 가치관을 창출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로마서14:17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다스리시면 의와 평강과 희락을 이루며 살게 됩니다. 세상을 바꾸는 사람이 됩니다.
우리 속에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의 경험은 우리개인에게서 끝나서는 안 됩니다.  
이 기도는 우리와 관계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기도로 발전해야합니다.
우리 민족과 나라를 위한 기도로 발전해야합니다.

우리는 주변의 사람들에게 대하여 두 가지 태도를 가질 수 있습니다.
하나는 비난하며 저주하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그들을 위하여 중보하며 기도하는 것입니다.

출애굽기17장에 출애굽하여 가나안으로 전진하던 이스라엘이 르비딤이라는 곳에서  아말렉 군대의 공격을 받습니다. 여호수아는 군사를 동원하여 전쟁의 현장으로 나가서 싸웁니다. 이 때, 아론과 훌은 모세와 함께 르비딤 광야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산에 올라갔습니다. 모세는 전쟁의 승리를 위하여 가도합니다. 그 때 아론과 훌은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였습니다. 그것은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모세가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긴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이 때, 아론과 훌이 어떻게 하였습니까? 모세가 계속 손을 들고 기도하지 않으면 현장에서 일어나는 엄청난 손실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모세를 향하여 계속 손을 들지 않는다고 비난하지 않았습니다. 피곤한 모세의 손을 함께 잡고 그 손이 내려오지 않도록 하여 함께 기도하였습니다. 결국 이스라엘이 아말렉을 크게 격파하고 승리의 노래를 부르며 돌아왔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허물이 있습니다. 누구도 완전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나라의 지도자들과 기독교교계의 지도자들을 위하여 함께 진지하게 중보하며 기도해야합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는 사실을 믿을 진데 우리는 기도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을 믿기에 기도해야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다스리시듯 우리 저들의 마음도 다스려주시도록 기도해야합니다.  
사랑하는 자녀들을 위하여 중보하며 기도해야합니다. 사랑하는 가족들을 위하여, 우리교회 목회자를 위하여, 이 땅의 모든 교육자들을 위하여, 경제인들을 위하여, 군대와 경찰들을 위하여, 교회와 선교사들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친히 다스려주시기를 기도해야합니다.  
사무엘상 12:23에서 한 선지자의 말은 오늘 우리에게도 사실입니다.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서 결단코 범치 아니하고, 선하고 의로운 도로 너희를 가르칠 것인즉”

이 땅에는 사단의 역사가 계속되기 때문에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받는 기도가 계속 필요합니다. 우리들의 삶 속에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r도하기를 쉬지 않는 성실함이 필요합니다.  

상암서울대회-
한국교회의 부흥 100주년을 기념하는 주일입니다. 남의 이야기로 여기고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하지 말고 한국교회의 부흥의 역사를 위하여 함께 모여 기도합시다.
한국교회부흥의 역사는 남의 일이 아닙니다. 우리교회의 일입니다. 바로 내가 기도해야할  일입니다. 함께 기도합시다. 우리의 기도의 열정을 더합시다.  
1903년 원산에서 사역하던 하디 목사님의 마음속에서 시작된 한국교회 성령의 역사가 1907년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이루어진 성령의 놀라운 역사로 이어지면서 한국교회는 개인의 회개로 이루어진 경건과 삶의 변화로 대부흥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이역사로 100만 구령운동으로 교회는 기도하기 시작했고, 1919년 3월 1일 3·1운동의 모체가 되어 이 민족의 자존감을 세워나가는 큰 저력으로 발전하였습니다. 이제 우리 다시 함께 상암서울대회에 모여 함께 그 날을 감사하고, 새로운 부흥의 역사로 한국사회 속에 희망의 공동체로 자리매김을 할 수 있는 축복의 성회에 함께 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저와 여러분들의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출처/최이우 목사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