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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의 믿음 (삼상12:1-5)
여러분은 생명을 보존하고, 건강을 유지하고, 삶의 풍요를 위해 무엇을 하십니까? 어떻게 하며 무엇으로 사십니까? 우리는 이런 삶을 위해 음식도 먹고, 잠도 충분히 자고, 적당히 운동도 하고,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애를 쓰고 있습니다. 이것이 지금 우리의 삶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이런 것과 함께 무엇으로 살아야 할까요? 하박국 선지자의 고백처럼 믿는 자는 믿음으로 삽니다. 어쩌면 믿음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믿음을 먹고, 믿음으로 운동하고, 믿음으로 스트레스를 풀어야 건강하고 풍요롭게 되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믿음에 관심을 가져야 하고, 믿음을 배워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경에 나타난 믿음의 사람들의 믿음을 찾아야 합니다. 그런 과점에서 지금까지 여러 사람의 믿음을 보았습니다. 이제 오늘은 히브리서 11장에 믿음의 사람으로서 이름으로는 마지막에 언급되어 있는 사무엘을 생각하려고 합니다. 성경은 그의 믿음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할까요? 그는 어떤 믿음의 사람이기에 믿음의 명예의 전당에 그의 이름이 선별하여 기록되어 있을까요? 오늘은 사무엘의 믿음에 대하여 본문을 중심으로 찾아보면서 그를 통해 귀한 믿음을 생각하고, 배우기를 원합니다.
첫째, 삶을 잘 마무리하는 믿음입니다. 성경에 사무엘에 대해서는 비교적 자세하게 보여줍니다. 출생부터 죽을 때까지의 전 생애를 알려줍니다. 그리고 사무엘서는 그의 이름으로 기록된 성경으로서 그는 사사시대와 왕정시대의 과도기를 잇는 다리의 역할을 감당한 사람입니다. 혼란하고 어지러운 시대에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가운데 태어난 그는 평생 하나님의 성전을 지키며 큰 일을 감당하여 당대와 후대가 인정하는 뛰어난 사람이 되었습니다.
본문은 그의 생애 가운데 마지막 때를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어느덧 사무엘도 늙었습니다. 나이가 많이 이제 파란만장한 인생을 정리하고 삶의 무대에서 내려올 때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2절에 보니 사무엘은 지금까지의 삶에 대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늙어 머리가 희었고 내 아들들도 너희와 함께 있느니라 내가 어려서부터 오늘날까지 너희 앞에 출입하였거니와...” 라고 고백합니다. 우리는 그의 고백 속에서 그가 살아왔던 지난날의 삶이 어떠했는가를 엿볼 수 있습니다. 그는 부끄러움 없이 살았고, 후회 없이 살았고, 인생의 경주를 잘 달려왔던 삶인 것을 발견합니다. 그렇게 살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보다도 그에게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처음 사무엘이 성경의 무대에 등장한 것은 어머니 한나가 고통 중에 하나님께 부르짖어 태어날 때부터였습니다. 사무엘은 어려서 부모의 큰 믿음과 사랑 속에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자랐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아이 사무엘이 점점 자라매 여호와와 사람들에게 은총을 더욱 받더라” 그는 이처럼 어려서부터 하나님과 사람에게 많은 은총과 사랑을 받으며 건강하게 자랐습니다. 그리고 서원대로 그는 어려서 성전으로 들어가 하나님을 섬기고, 성전을 섬기면서 살았습니다. 그가 장성한 사람이 되었을 때는 하나님은 그를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부르셨고, 온 백성과 함께 하나님을 신실히 믿는 민족으로 거듭나게 했습니다. 사무엘은 모든 백성들이 존경하는 좋은 리더였습니다. 그래서 사무엘의 시대부터 이스라엘은 비로소 안정을 찾았습니다. 이 부분에 대하여 성경은 이렇게 강조합니다. “사무엘이 자라매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셔서 그 말로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시니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의 온 이스라엘이 사무엘은 여호와의 선지자로 세우심을 입은 줄을 알았더라” 그는 이렇게 하나님과 사람에게 인정을 받으며 신실하게 주어진 모든 삶을 잘 살았습니다. 그리고 이제 인생의 황혼이 왔을 때 하나님께 감사하고 더 좋은 하늘나라로 갔던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이 땅에 태어나는 것으로 다 되는 것이 아닙니다. 어린 시절과 청년시절만의 인생도 아니고, 중년이나 장년의 인생도 전부가 아닙니다. 노년과 마지막까지 가야 압니다. 어느 시절 하나라도 중요하지 않은 때가 없지만 마지막이 중요합니다. 처음에 어렵고, 중간이 힘들어도 마지막을 잘하면 모든 것을 다 회복하게 됩니다. 성경에 그런 예가 많이 나옵니다. 삼손이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그는 처음 모든 사람의 축복 속에 출발하여 큰 일을 감당했습니다. 그러나 중간에 그는 탈선하고 말았습니다. 만약 그것으로 삶을 끝냈다면 삼손만큼 불행한 사람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삼손의 마지막이 너무도 아름다웠습니다. 비록 한순간 실패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듯 했지만 마지막에 그의 신앙과 삶을 다 회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크게 드러내며 영예롭게 인생을 마친 것입니다.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었던 사울입니다. 그는 처음에는 너무도 화려하고 멋지게 등장했습니다. 그러나 처음과는 달리 점점 내리막길을 걸었습니다. 그러다가 다시 회복하지 못하고 인생을 마감하고 말았습니다. 어떤 인생을 하나님이 원하실까요? 물론 처음과 과정과 마지막, 시종일관 한결같으면 두말할 나위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인생에 처음과 과정도 중요하지만 마지막의 장식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인생을 어떻습니까? 우리가 지금 어디에 이르렀던지 마지막까지 잘 가야 합니다. 우리의 인생을 잘 마무리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우리를 부르시면 천국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바울도 황혼의 때에 이렇게 뒤를 돌아보며 인생을 회고했습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시는 그 마지막순간까지 우리는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달려갈 길로만 가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인생을 잘 마치는 길입니다. 바울처럼, 삼손처럼, 사무엘처럼,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키면서 하나님의 부르시는 그날까지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는 여러분들의 인생, 아름다운 신앙생활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둘째, 사람을 세우는 믿음입니다. 사무엘은 그의 인생을 통해 어떤 일보다도 사람을 세우는 일을 잘 감당한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그를 중심으로 사사시대에서 이제 왕정시대라는 역사의 전환점을 이루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무엘을 통해 그가 사람을 세우는 일이 얼마나 소중했는가를 배워야 합니다. 본문 1절에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사무엘이 온 이스라엘에게 이르되 보라 너희가 내게 한 말을 내가 다 듣고 너희 위에 왕을 세웠더니 이제 왕이 너희 앞에 출입하느니라..” 이처럼 그는 사람을 세운 일을 그의 업적으로 강조합니다. 그가 그의 인생을 통해 사람을 세운 일은 크게 두 사람입니다. 하나는 사울이고, 다른 한 사람은 다윗입니다. 물론 둘 다 사무엘이 세우긴 했지만, 사울의 경우는 사무엘의 의도보다 백성의 지지가 더 강했던 것을 봅니다. 그래서 사울은 실패한 왕으로 끝났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다릅니다. 사무엘이 믿음을 가지고 세운 다윗이야말로 그의 큰 공헌이었습니다. 이것이 사무엘상 16장에 잘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명령과 말씀에 따라 사무엘은 베들레헴 이새의 집에서 그의 생각이나 판단이 아닌 하나님의 관점과 지시에 따라 다윗을 왕으로 기름을 붓습니다. 이렇게 사무엘은 다윗을 세우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다윗을 통해 큰 역사가 이루어집니다. 다윗이 누구입니까? 다윗이 어떤 일을 했습니까? 그는 통일이스라엘의 가장 큰 번영을 이루는데 큰 공헌과 업적을 남긴 사람입니다. 믿음의 사람중의 믿음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바로 이런 다윗을 사랑하고, 키우고, 세운 사람이 바로 사무엘입니다. 그는 떠났지만 사람을 세운 그의 일은 후대까지 이어집니다. 오늘 우리가 이것을 귀하게 보아야 합니다. 사람을 세우는 일이 중요하고, 이것이 귀한 믿음입니다.
‘사람을 세우는 사람’이란 책이 있습니다. 미국에 유명한 교육학자 하워드 헨드릭스라는 사람이 지은 것으로 전 세계의 기독교인에게 큰 감동을 준책입니다. 특히 기독교교육을 하는 사람과 이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에 사이에서는 한번은 꼭 접하는 서적입니다. 그가 이 책에서 가장 강조하는 것은 성공적인 인생을 꿈꾸는 모든 사람을 향하여 인생의 가장 귀한 성공은 사람을 세우는 일, 다음 세대를 섬기는 삶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날 때 남길 가장 귀한 유산은 바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 좋은 예로 엘리야와 엘리사에게 거론합니다. 그들은 정신적으로 황폐해진 시대를 살았지만 그 시대에 영향을 주고받음으로서 큰 일을 감당했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사람을 잘 세우는 일을 감당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 모두는 멘토라는 것입니다. 결국 세계는 사람을 세우는 일을 잘 감당한 나라, 시대, 민족, 교회가 역사를 주도했다는 것입니다. 사람을 세우는 일이 우리 믿음과 삶과 교회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사람을 세우는 자들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누군가에 의해 세워져 가듯, 우리도 사람을 세워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무엇보다도 ‘사람’에게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재물을 잃고, 명예를 잃어버린다 해도 결코 사람을 잃어버리지는 말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사람이어야 합니다. 현대 사회는 점점 사람은 빠지고, 기계와 물질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런 시대에 사는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사람입니다. 사람을 놓치지 마십시오. 사람을 잃어버리지 마십시오. 무엇보다도, 어떤 것보다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십시오. 남편의 돈이 아니라 아내의 음식이 아니라 아내, 남편 그 자체여야 합니다. 그렇게 사람에게 관심을 두고 사랑해야 합니다. 사람을 세우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아름답게 이루어 가시기를 소원합니다.
셋째, 정직한 믿음입니다. 본문에서 사무엘은 지난날의 자신의 삶을 회고하며 무엇보다도 모든 백성 앞에 정직하고 깨끗했던 삶을 강조합니다. 3절을 보십시오. "내가 여기 있나니 여호와 앞과 그 기름 부음을 받은 자 앞에서 내게 대하여 증거하라 내가 뉘 소를 취하였느냐 뉘 나귀를 취하였느냐 누구를 속였느냐 누구를 압제하였느냐 내 눈을 흐리게 하는 뇌물을 뉘 손에서 취하였느냐 그리하였으면 내가 그것을 너희에게 갚으리라" 사무엘은 온 백성 앞에서 이렇게 당당하게 말합니다. 그는 지금까지 정직하게 살아왔다는 것입니다. 남을 속이지 않았고, 아주 작은 것에도 불의하지 않았고, 뇌물을 취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사무엘에 대하여 백성들은 그를 인정해 주었습니다. 4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가로되 당신이 우리를 속이지 아니하였고 압제하지 아니하였고 뉘 손에서 아무 것도 취한 것이 없나이다...”
이것이 바로 사무엘의 삶이요, 믿음입니다. 그는 평생 남을 속이지 않았습니다. 이중인격이나 위선자의 모습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불의하지 않았고, 정직하고 깨끗하게 살았습니다. 그것을 모든 백성이 인정해 주었습니다. 물론 그가 완벽했다는 뜻은 아닙니다. 이것은 사무엘의 중심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도 사람이기에 잘못도 하고, 실수도 하고, 허물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중심은 늘 정직하기를 원했고, 믿음으로 부족하지만 정직하게 살아보려고 몸부림쳤다는 뜻입니다. 사람들은 바로 그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세상에 어떤 사람이 완벽할 수 있습니까? 부족하지만 마음에는 이런 삶을 추구하려는 귀한 믿음이 있음을 고백하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공의와 정직을 강조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성품과 이름이 공의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였고, 불의한 개인과 공동체와 나라를 무섭게 다루셨습니다. 그것은 예수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주님이 이 땅에서 보여주었던 가장 귀한 모습은 바로 공의입니다. 주님은 바로 정직을 위하여 짧은 생애를 사시다가 불의한 자들의 모함에 의해 십자가를 지셨고, 결국 주님은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기 위해 십자가에서 물과 피를 쏟으며 돌아가신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무엇보다도 공의와 정직을 강조합니다. 특히 구약성경 미가서에 보면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심정을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 내가 번제물 일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 여호와께서 천천의 수양이나 만만의 강수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를 인하여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다윗도 보십시오. 다윗이 모든 사람에게 존경을 받는 뛰어난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있었던 중요한 요인은 바로 공의와 정직 때문입니다. 다윗 시대가 살기 좋은 나라가 된 것은 바로 공과 의가 행해졌기 때문입니다. 다윗 이전의 시대까지는 너무도 부정과 부패가 만연했습니다. 다윗 시대부터 비로소 공의가 실현되면서 부강한 나라,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게 된 것입니다.
기독교의 뿌리가 깊은 서양, 특히 유럽의 나라를 보면 모든 삶에 정직한 것이 몸에 베어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유럽 어디를 여행해도 버스를 탈 때 버스 표를 점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모두 표를 반드시 구입하고 버스에 오릅니다. 그들이 어디에서라도 물건이나 지갑을 잃어버리면 자기 주머니에 넣는 경우가 없습니다. 경찰서에 갖다 주던지 아니면 그 자리에 그대로 남겨둡니다. 시간이 지나 잃어버린 사람이 생각나서 추적하여 뒤를 돌아가면 그 자리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들은 모든 서류에 자기의 사인이 들어가면 그 내용이 어떠하든지 그대로 믿어줍니다. 그것이 오랜 관행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떻습니까? 만약 동일한 일이 우리 나라에서 벌어진다면 가능할까요? 물론 지금은 우리도 많이 좋아졌고, 그렇다고 유럽도 예전 같지는 않다고 말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정직하지 못합니다. 만약 우리 나라의 지하철이나 버스를 자율적으로 맡기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표를 구입할까요? 우리가 공원에서 지갑을 주우면 웬 떡이냐 하고 지갑 속을 뒤지고 혹이라도 돈이 많으면 살짝 빼지 않을까요? 우리는 아직 도장의 문화입니다. 사인을 하면 잘 믿지 않습니다. 도장을 찍고 각서를 쓰고 공증을 하고 법률적인 것을 다 동원하여 서류를 완벽하게 만듭니다. 그런데도 서류를 보며 ‘이거 믿을 만 합니까?’ 라고 묻는 민족입니다.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몸에 베어 있는 거짓말을 너무도 자연스럽게 행할 때가 많습니다. 전혀 의식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저도 그런 경험을 종종 했습니다. 영국에 있을 때 아이들이 놀이공원이나 동물원을 가면 8살부터 돈을 받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이미 8, 9살도 지나가는데 아이의 나이를 물으면 7살이라고 대답합니다. 그러다가 우리 아이한테 ‘아빠 나 9살이야’ 해서 아주 혼쭐 난적이 있었습니다. 잘 의식하지 못하고 나오는 것입니다.
정직은 작은 것부터 실천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나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그리고 정직한 삶은 우리 크리스천들이 사회에서 솔선하여 출발해야 합니다. 우리는 나도 모르게 습관처럼 되어버린 거짓을 버려야 합니다. 이것이 믿음으로 의식하며 행해야 합니다. 성경을 배우고, 하나님을 알고, 주님의 사랑을 받고 사는 우리부터 실천해야 합니다. 더디더라도 나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서양의 정직한 문화는 10년 20년이나 100년 200년의 역사가 아닙니다. 1000년을 넘게 뿌리를 지니고 온 기독교 문화입니다.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에, 작은 것부터, 나부터, 믿는 자부터 시작할 때 그것이 발단이 되어 앞으로 귀한 열매와 결실을 보게 될 것입니다.
사무엘의 믿음은 삶을 잘 마치는 믿음, 사람을 세우는 믿음, 그리고 정직한 믿음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귀한 말씀을 마음에 담고 우리 삶의 현장에서 빛과 소금의 길을 향하여 힘있게 출발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출처/서해원목사 설교 중에서
여러분은 생명을 보존하고, 건강을 유지하고, 삶의 풍요를 위해 무엇을 하십니까? 어떻게 하며 무엇으로 사십니까? 우리는 이런 삶을 위해 음식도 먹고, 잠도 충분히 자고, 적당히 운동도 하고,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애를 쓰고 있습니다. 이것이 지금 우리의 삶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이런 것과 함께 무엇으로 살아야 할까요? 하박국 선지자의 고백처럼 믿는 자는 믿음으로 삽니다. 어쩌면 믿음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믿음을 먹고, 믿음으로 운동하고, 믿음으로 스트레스를 풀어야 건강하고 풍요롭게 되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믿음에 관심을 가져야 하고, 믿음을 배워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경에 나타난 믿음의 사람들의 믿음을 찾아야 합니다. 그런 과점에서 지금까지 여러 사람의 믿음을 보았습니다. 이제 오늘은 히브리서 11장에 믿음의 사람으로서 이름으로는 마지막에 언급되어 있는 사무엘을 생각하려고 합니다. 성경은 그의 믿음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할까요? 그는 어떤 믿음의 사람이기에 믿음의 명예의 전당에 그의 이름이 선별하여 기록되어 있을까요? 오늘은 사무엘의 믿음에 대하여 본문을 중심으로 찾아보면서 그를 통해 귀한 믿음을 생각하고, 배우기를 원합니다.
첫째, 삶을 잘 마무리하는 믿음입니다. 성경에 사무엘에 대해서는 비교적 자세하게 보여줍니다. 출생부터 죽을 때까지의 전 생애를 알려줍니다. 그리고 사무엘서는 그의 이름으로 기록된 성경으로서 그는 사사시대와 왕정시대의 과도기를 잇는 다리의 역할을 감당한 사람입니다. 혼란하고 어지러운 시대에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가운데 태어난 그는 평생 하나님의 성전을 지키며 큰 일을 감당하여 당대와 후대가 인정하는 뛰어난 사람이 되었습니다.
본문은 그의 생애 가운데 마지막 때를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어느덧 사무엘도 늙었습니다. 나이가 많이 이제 파란만장한 인생을 정리하고 삶의 무대에서 내려올 때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2절에 보니 사무엘은 지금까지의 삶에 대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늙어 머리가 희었고 내 아들들도 너희와 함께 있느니라 내가 어려서부터 오늘날까지 너희 앞에 출입하였거니와...” 라고 고백합니다. 우리는 그의 고백 속에서 그가 살아왔던 지난날의 삶이 어떠했는가를 엿볼 수 있습니다. 그는 부끄러움 없이 살았고, 후회 없이 살았고, 인생의 경주를 잘 달려왔던 삶인 것을 발견합니다. 그렇게 살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보다도 그에게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처음 사무엘이 성경의 무대에 등장한 것은 어머니 한나가 고통 중에 하나님께 부르짖어 태어날 때부터였습니다. 사무엘은 어려서 부모의 큰 믿음과 사랑 속에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자랐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아이 사무엘이 점점 자라매 여호와와 사람들에게 은총을 더욱 받더라” 그는 이처럼 어려서부터 하나님과 사람에게 많은 은총과 사랑을 받으며 건강하게 자랐습니다. 그리고 서원대로 그는 어려서 성전으로 들어가 하나님을 섬기고, 성전을 섬기면서 살았습니다. 그가 장성한 사람이 되었을 때는 하나님은 그를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부르셨고, 온 백성과 함께 하나님을 신실히 믿는 민족으로 거듭나게 했습니다. 사무엘은 모든 백성들이 존경하는 좋은 리더였습니다. 그래서 사무엘의 시대부터 이스라엘은 비로소 안정을 찾았습니다. 이 부분에 대하여 성경은 이렇게 강조합니다. “사무엘이 자라매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셔서 그 말로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시니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의 온 이스라엘이 사무엘은 여호와의 선지자로 세우심을 입은 줄을 알았더라” 그는 이렇게 하나님과 사람에게 인정을 받으며 신실하게 주어진 모든 삶을 잘 살았습니다. 그리고 이제 인생의 황혼이 왔을 때 하나님께 감사하고 더 좋은 하늘나라로 갔던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이 땅에 태어나는 것으로 다 되는 것이 아닙니다. 어린 시절과 청년시절만의 인생도 아니고, 중년이나 장년의 인생도 전부가 아닙니다. 노년과 마지막까지 가야 압니다. 어느 시절 하나라도 중요하지 않은 때가 없지만 마지막이 중요합니다. 처음에 어렵고, 중간이 힘들어도 마지막을 잘하면 모든 것을 다 회복하게 됩니다. 성경에 그런 예가 많이 나옵니다. 삼손이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그는 처음 모든 사람의 축복 속에 출발하여 큰 일을 감당했습니다. 그러나 중간에 그는 탈선하고 말았습니다. 만약 그것으로 삶을 끝냈다면 삼손만큼 불행한 사람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삼손의 마지막이 너무도 아름다웠습니다. 비록 한순간 실패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듯 했지만 마지막에 그의 신앙과 삶을 다 회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크게 드러내며 영예롭게 인생을 마친 것입니다.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었던 사울입니다. 그는 처음에는 너무도 화려하고 멋지게 등장했습니다. 그러나 처음과는 달리 점점 내리막길을 걸었습니다. 그러다가 다시 회복하지 못하고 인생을 마감하고 말았습니다. 어떤 인생을 하나님이 원하실까요? 물론 처음과 과정과 마지막, 시종일관 한결같으면 두말할 나위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인생에 처음과 과정도 중요하지만 마지막의 장식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인생을 어떻습니까? 우리가 지금 어디에 이르렀던지 마지막까지 잘 가야 합니다. 우리의 인생을 잘 마무리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우리를 부르시면 천국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바울도 황혼의 때에 이렇게 뒤를 돌아보며 인생을 회고했습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시는 그 마지막순간까지 우리는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달려갈 길로만 가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인생을 잘 마치는 길입니다. 바울처럼, 삼손처럼, 사무엘처럼,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키면서 하나님의 부르시는 그날까지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는 여러분들의 인생, 아름다운 신앙생활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둘째, 사람을 세우는 믿음입니다. 사무엘은 그의 인생을 통해 어떤 일보다도 사람을 세우는 일을 잘 감당한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그를 중심으로 사사시대에서 이제 왕정시대라는 역사의 전환점을 이루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무엘을 통해 그가 사람을 세우는 일이 얼마나 소중했는가를 배워야 합니다. 본문 1절에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사무엘이 온 이스라엘에게 이르되 보라 너희가 내게 한 말을 내가 다 듣고 너희 위에 왕을 세웠더니 이제 왕이 너희 앞에 출입하느니라..” 이처럼 그는 사람을 세운 일을 그의 업적으로 강조합니다. 그가 그의 인생을 통해 사람을 세운 일은 크게 두 사람입니다. 하나는 사울이고, 다른 한 사람은 다윗입니다. 물론 둘 다 사무엘이 세우긴 했지만, 사울의 경우는 사무엘의 의도보다 백성의 지지가 더 강했던 것을 봅니다. 그래서 사울은 실패한 왕으로 끝났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다릅니다. 사무엘이 믿음을 가지고 세운 다윗이야말로 그의 큰 공헌이었습니다. 이것이 사무엘상 16장에 잘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명령과 말씀에 따라 사무엘은 베들레헴 이새의 집에서 그의 생각이나 판단이 아닌 하나님의 관점과 지시에 따라 다윗을 왕으로 기름을 붓습니다. 이렇게 사무엘은 다윗을 세우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다윗을 통해 큰 역사가 이루어집니다. 다윗이 누구입니까? 다윗이 어떤 일을 했습니까? 그는 통일이스라엘의 가장 큰 번영을 이루는데 큰 공헌과 업적을 남긴 사람입니다. 믿음의 사람중의 믿음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바로 이런 다윗을 사랑하고, 키우고, 세운 사람이 바로 사무엘입니다. 그는 떠났지만 사람을 세운 그의 일은 후대까지 이어집니다. 오늘 우리가 이것을 귀하게 보아야 합니다. 사람을 세우는 일이 중요하고, 이것이 귀한 믿음입니다.
‘사람을 세우는 사람’이란 책이 있습니다. 미국에 유명한 교육학자 하워드 헨드릭스라는 사람이 지은 것으로 전 세계의 기독교인에게 큰 감동을 준책입니다. 특히 기독교교육을 하는 사람과 이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에 사이에서는 한번은 꼭 접하는 서적입니다. 그가 이 책에서 가장 강조하는 것은 성공적인 인생을 꿈꾸는 모든 사람을 향하여 인생의 가장 귀한 성공은 사람을 세우는 일, 다음 세대를 섬기는 삶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날 때 남길 가장 귀한 유산은 바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 좋은 예로 엘리야와 엘리사에게 거론합니다. 그들은 정신적으로 황폐해진 시대를 살았지만 그 시대에 영향을 주고받음으로서 큰 일을 감당했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사람을 잘 세우는 일을 감당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 모두는 멘토라는 것입니다. 결국 세계는 사람을 세우는 일을 잘 감당한 나라, 시대, 민족, 교회가 역사를 주도했다는 것입니다. 사람을 세우는 일이 우리 믿음과 삶과 교회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사람을 세우는 자들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누군가에 의해 세워져 가듯, 우리도 사람을 세워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무엇보다도 ‘사람’에게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재물을 잃고, 명예를 잃어버린다 해도 결코 사람을 잃어버리지는 말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사람이어야 합니다. 현대 사회는 점점 사람은 빠지고, 기계와 물질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런 시대에 사는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사람입니다. 사람을 놓치지 마십시오. 사람을 잃어버리지 마십시오. 무엇보다도, 어떤 것보다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십시오. 남편의 돈이 아니라 아내의 음식이 아니라 아내, 남편 그 자체여야 합니다. 그렇게 사람에게 관심을 두고 사랑해야 합니다. 사람을 세우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아름답게 이루어 가시기를 소원합니다.
셋째, 정직한 믿음입니다. 본문에서 사무엘은 지난날의 자신의 삶을 회고하며 무엇보다도 모든 백성 앞에 정직하고 깨끗했던 삶을 강조합니다. 3절을 보십시오. "내가 여기 있나니 여호와 앞과 그 기름 부음을 받은 자 앞에서 내게 대하여 증거하라 내가 뉘 소를 취하였느냐 뉘 나귀를 취하였느냐 누구를 속였느냐 누구를 압제하였느냐 내 눈을 흐리게 하는 뇌물을 뉘 손에서 취하였느냐 그리하였으면 내가 그것을 너희에게 갚으리라" 사무엘은 온 백성 앞에서 이렇게 당당하게 말합니다. 그는 지금까지 정직하게 살아왔다는 것입니다. 남을 속이지 않았고, 아주 작은 것에도 불의하지 않았고, 뇌물을 취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사무엘에 대하여 백성들은 그를 인정해 주었습니다. 4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가로되 당신이 우리를 속이지 아니하였고 압제하지 아니하였고 뉘 손에서 아무 것도 취한 것이 없나이다...”
이것이 바로 사무엘의 삶이요, 믿음입니다. 그는 평생 남을 속이지 않았습니다. 이중인격이나 위선자의 모습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불의하지 않았고, 정직하고 깨끗하게 살았습니다. 그것을 모든 백성이 인정해 주었습니다. 물론 그가 완벽했다는 뜻은 아닙니다. 이것은 사무엘의 중심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도 사람이기에 잘못도 하고, 실수도 하고, 허물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중심은 늘 정직하기를 원했고, 믿음으로 부족하지만 정직하게 살아보려고 몸부림쳤다는 뜻입니다. 사람들은 바로 그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세상에 어떤 사람이 완벽할 수 있습니까? 부족하지만 마음에는 이런 삶을 추구하려는 귀한 믿음이 있음을 고백하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공의와 정직을 강조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성품과 이름이 공의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였고, 불의한 개인과 공동체와 나라를 무섭게 다루셨습니다. 그것은 예수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주님이 이 땅에서 보여주었던 가장 귀한 모습은 바로 공의입니다. 주님은 바로 정직을 위하여 짧은 생애를 사시다가 불의한 자들의 모함에 의해 십자가를 지셨고, 결국 주님은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기 위해 십자가에서 물과 피를 쏟으며 돌아가신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무엇보다도 공의와 정직을 강조합니다. 특히 구약성경 미가서에 보면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심정을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 내가 번제물 일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 여호와께서 천천의 수양이나 만만의 강수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를 인하여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다윗도 보십시오. 다윗이 모든 사람에게 존경을 받는 뛰어난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있었던 중요한 요인은 바로 공의와 정직 때문입니다. 다윗 시대가 살기 좋은 나라가 된 것은 바로 공과 의가 행해졌기 때문입니다. 다윗 이전의 시대까지는 너무도 부정과 부패가 만연했습니다. 다윗 시대부터 비로소 공의가 실현되면서 부강한 나라,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게 된 것입니다.
기독교의 뿌리가 깊은 서양, 특히 유럽의 나라를 보면 모든 삶에 정직한 것이 몸에 베어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유럽 어디를 여행해도 버스를 탈 때 버스 표를 점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모두 표를 반드시 구입하고 버스에 오릅니다. 그들이 어디에서라도 물건이나 지갑을 잃어버리면 자기 주머니에 넣는 경우가 없습니다. 경찰서에 갖다 주던지 아니면 그 자리에 그대로 남겨둡니다. 시간이 지나 잃어버린 사람이 생각나서 추적하여 뒤를 돌아가면 그 자리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들은 모든 서류에 자기의 사인이 들어가면 그 내용이 어떠하든지 그대로 믿어줍니다. 그것이 오랜 관행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떻습니까? 만약 동일한 일이 우리 나라에서 벌어진다면 가능할까요? 물론 지금은 우리도 많이 좋아졌고, 그렇다고 유럽도 예전 같지는 않다고 말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정직하지 못합니다. 만약 우리 나라의 지하철이나 버스를 자율적으로 맡기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표를 구입할까요? 우리가 공원에서 지갑을 주우면 웬 떡이냐 하고 지갑 속을 뒤지고 혹이라도 돈이 많으면 살짝 빼지 않을까요? 우리는 아직 도장의 문화입니다. 사인을 하면 잘 믿지 않습니다. 도장을 찍고 각서를 쓰고 공증을 하고 법률적인 것을 다 동원하여 서류를 완벽하게 만듭니다. 그런데도 서류를 보며 ‘이거 믿을 만 합니까?’ 라고 묻는 민족입니다.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몸에 베어 있는 거짓말을 너무도 자연스럽게 행할 때가 많습니다. 전혀 의식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저도 그런 경험을 종종 했습니다. 영국에 있을 때 아이들이 놀이공원이나 동물원을 가면 8살부터 돈을 받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이미 8, 9살도 지나가는데 아이의 나이를 물으면 7살이라고 대답합니다. 그러다가 우리 아이한테 ‘아빠 나 9살이야’ 해서 아주 혼쭐 난적이 있었습니다. 잘 의식하지 못하고 나오는 것입니다.
정직은 작은 것부터 실천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나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그리고 정직한 삶은 우리 크리스천들이 사회에서 솔선하여 출발해야 합니다. 우리는 나도 모르게 습관처럼 되어버린 거짓을 버려야 합니다. 이것이 믿음으로 의식하며 행해야 합니다. 성경을 배우고, 하나님을 알고, 주님의 사랑을 받고 사는 우리부터 실천해야 합니다. 더디더라도 나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서양의 정직한 문화는 10년 20년이나 100년 200년의 역사가 아닙니다. 1000년을 넘게 뿌리를 지니고 온 기독교 문화입니다.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에, 작은 것부터, 나부터, 믿는 자부터 시작할 때 그것이 발단이 되어 앞으로 귀한 열매와 결실을 보게 될 것입니다.
사무엘의 믿음은 삶을 잘 마치는 믿음, 사람을 세우는 믿음, 그리고 정직한 믿음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귀한 말씀을 마음에 담고 우리 삶의 현장에서 빛과 소금의 길을 향하여 힘있게 출발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출처/서해원목사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