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의 믿음  (사6:1-8)


우리는 지금 계속해서 히브리서 11장에 나타난 믿음의 사람들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처음 아벨을 시작으로, 에녹, 노아, 아브라함, 사라, 이삭, 야곱, 요셉, 모세, 라합, 기드온, 삼손, 입다, 다윗, 그리고 지난주에 사무엘까지 보았습니다. 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성경에 있지만 이들은 저자의 의해 선별된 사람들입니다. 이제 이름을 알려준 사람은 다 소개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히브리서 11장 32절에 저자는 이렇게 강조합니다. “내가 무슨 말을 더 하리요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와 다윗과 사무엘과 및 선지자들의 일을 말하려면 내게 시간이 부족하리로다” 믿음의 사람들을 말하면서 ‘선지자들의 일’까지 소개하려면 시간이 부족하다고 말하면서 선지자들의 믿음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믿음의 반열에 선지자도 말해야 합니다. 많은 선지자 가운데 몇 사람만 소개하려고 합니다. 오늘은 첫 번째로 이사야입니다. 성경은 그의 믿음을 무엇이라 말할까요? 그것을 본문을 중심으로 찾아보면서 이사야의 귀한 믿음을 찾고 배우기 원합니다.

   첫째, 하나님을 보는 믿음입니다. 이사야라는 선지자는 이스라엘이 남쪽과 북쪽으로 갈라진 분열왕국시대에 활동했던 선지자입니다. 본문 1절에 언급된 것과 같이 그는 남쪽에 제 10대 왕이었던 웃시야가 죽던 해에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 까지 4대에 걸친 왕이 바뀐 때에 활동을 했던 선지자입니다. 그가 활동하던 시기에 북쪽 이스라엘은 앗수르에 의해 멸망하는 위기를 맞고 있었습니다. 북쪽이 망하는 것을 보면서, 이제 곧 남쪽도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북쪽과 같이 멸망한다는 하나님의 경고를 끊임없이 선포하면서 한 시대에 하나님의 큰 일을 감당한 사람입니다.

   본문은 그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는 장면입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는 그의 뛰어난 믿음을 엿볼 수가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선적으로 주목할 것은 1절부터 4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여기에 보면 그는 먼저 하나님을 보고, 하늘나라의 영광스러운 장면을 직접 목격한 것으로 그의 간증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웃시야 왕의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라고 말합니다. 그는 하나님을 보았고, 하늘나라의 아름답고 웅장하고 거룩한 광경을 목격하였습니다. 그의 사역은 이렇게 하나님을 보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이것을 통해 우리는 중요한 그의 믿음을 찾습니다. 믿음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무엇보다도 영적인 눈을 떠서 하나님을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할 때 하나님을 볼 수가 없습니다. 알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에 대해 깨달을 수가 없고 의식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가지면서 우리는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 그가 어떤 분인지, 어떻게 나와 관련이 있는지, 어떻게 내 삶과 공동체와 역사에 관여하는지 알게 됩니다. 이것이 너무도 중요한 믿음입니다.

   하나님을 보는 믿음은 우리 삶에 2가지의 경우에서 매우 필요합니다. 우선, 우리가 범죄 할 때입니다. 우리가 죄를 지을 때 아무도 못 보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무도 보지 않는다고 해도 하나님을 속일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믿는 자가 범죄 하는 일 앞에 무엇보다도,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의식해야 합니다. 모든 범죄의 해결은 바로 여기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요셉이라는 인물이 바로 이 부분에 탁월한 사람입니다. 보디발의 아내는 요셉에게 아무도 모른다고 유혹했습니다. 너와 나만이 아는 일이기에 한번 눈감으면 문제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때 요셉은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보았고, 의식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 요셉은 하나님을 의식합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라는 것을 잊지 않았습니다. 소위 ‘코람데오의 신앙’입니다. 이것이 그를 모든 불의와 유혹과 범죄를 이기게 한 요인입니다. 이런 믿음이 우리에게도 필요합니다. 범죄의 유혹에 빠질 때, 아무도 없다고 여길 때 하나님을 의식하고 보는 코람데오의 신앙이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보는 믿음이 필요한 다른 경우는 어려움을 당할 때입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종종 고난이 옵니다. 앞에 캄캄할 때가 있고, 칠흑 같은 어두움을 통과할 때가 있습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걸어가고 거친 파도가 엄습할 때가 있습니다. 그야말로 사방으로 우겨 싸임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이런 때에 필요한 것이 바로 하나님을 바라보는 신앙입니다. 어쩌면 우리의 믿음은 바로 이런 때를 위해 필요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탈출하여 꿈에도 그리던 가나안으로 가던 중 홍해를 만납니다. 그들에게 닥친 홍해가 바로 난관이요, 문제였습니다. 큰 고난입니다. 뒤에는 바로와 군대가 따라옵니다. 앞은 홍해가 가로 막혀 있습니다. 정말 힘든 상황입니다. 이럴 때 믿음의 사람은 모세는 온 백성들을 향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는 가만히 서서 하나님의 일하시는 구원을 보라’고 선언합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앞을 보면 캄캄하고, 뒤를 보아도 불안하고, 옆을 보아도 대책이 없을 때, 그때는 위를 보아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믿음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어려움에 직면할 때 하나님을 보는 믿음이 용기를 줍니다. 낙심하거나 좌절하지 않게 합니다. 바로 그 믿음으로 우리는 다시 일어설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이 결국 승리와 회복의 길입니다. 그래서 시편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는도다..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대저 나의 소망이 저로 좇아나는도다..”

   제프 블록(Geoff Bullock) 이라는 유명한 찬양사역자가 있습니다. 그는 영국태생으로 호주에 건너가 1980년 90년대에 세계찬양사역의 획을 그은 사람입니다. 제가 영국에 있을 때 많이 불렀습니다. 그가 지은 노래 중에 ‘주께 가오니’라는 곡이 있습니다. 가사가 이렇습니다. “주께 가오니 날 새롭게 하시고 주의 은혜를 부어주소서 내 안에 발견한 나의 연약함 모두 벗어지리라 주의 사랑으로, 나의 눈 열어 주를 보게 하시고 주의 사랑을 알게 하소서 매일 나의 삶에 주 뜻 이뤄지도록 새롭게 하소서 주의 사랑으로”

   나의 눈 열어 주를 보아야 합니다. 내 영혼이 잠잠히 주님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문제에 직면할 때, 난관에 부딪쳤을 때, 앞에 캄캄할 때,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이 믿음으로 승리하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자기를 보는 믿음입니다. 계속되는 말씀을 보면, 이사야는 하나님을 보는 믿음으로 시작하여 이제 자기를 봅니다. 이것이 5절에 잘 나와 있습니다.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하였더라..” 하나님을 보는 믿음이 있었고, 그리고 자기를 보는 믿음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필연적입니다. 하나님을 보는 사람은 자기를 봅니다. 자기를 보지 못하는 사람은 아직까지 하나님을 보지 못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수록, 보면 볼수록 자기를 봅니다. 믿음은 결국 자기를 보면서 성숙한 사람, 하나님이 기뻐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자기를 보는 믿음도 역시 2가지 볼 것이 있습니다. 하나는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사야의 고백을 살펴보십시오. 그는 자신이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에 부정한 백성 중에 한사람이라고 고백합니다. 이게 무슨 말입니까?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사실 이사야는 그 시대에 의인이었습니다. 타락하고, 부정하고, 악이 성행한 그 시대에 깨끗하고 정직하게 살던 사람입니다. 결코 그는 어떤 사람과 비교해도 죄인이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죄인이라고 고백합니다. 이것이 자기를 보는 믿음에서 나타납니다. 자기를 보면 누구나 죄인임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죄인입니다. 죄를 지어서 죄인이 되기도 했지만 근본적으로 죄인입니다. 성경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의인으로 착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죄를 많이 지은 사람도 죄인이고, 죄가 없는 사람처럼 보이는 사람도 역시 하나님 앞에서는 죄인입니다. 우리의 관점에서 보면 세상 사람들의 죄가 엄청나게 보입니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우리가 스스로 안위하고, 우리는 죄인이 아니라고 자위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를 잘 믿으면 믿을수록 내가 더 죄인이라는 것을 압니다. 예수 믿기 전에 보였던 죄만이 아니라 하나님을 알고, 성경을 알수록 더 큰 죄가 보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눈은 너무도 뚜렷하게 보는 힘이 있습니다. 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이 보입니다. 구석구석까지, 밑바닥까지, 안 보이는 것까지 보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중세기의 성자들도 늘 자신을 죄인이라고 말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성자라는 칭호가 주어질 정도면 의인 중에 의인인데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알수록 죄인임을 압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죄인이라면, 아니 죄인인데 무슨 그리 할말이 많은 것입니까? 내가 죄인인데 도대체 누구를 판단하고 비판할 수 있습니까? 우리가 남을 비판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저 사람이 죄인이면, 나도 죄인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자기를 본다면 어쩌면 우리는 바울의 고백처럼 죄인중의 괴수입니다. 어떻게 남을 정죄하고 판단할 수 있겠습니까?

   자기를 보는 믿음에서 중요한 다른 교훈은 내가 죄인임을 보면서 내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라는 것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죄인인 나를 용서하였고, 내 삶에 간섭하신 것입니다. 이사야도 마찬가지입니다. 죄인이지만 하나님이 용서하십니다. 6절과 7절을 보십시오. “그 때에 그 스랍 중의 하나가 부젓가락으로 제단에서 집은 바 핀 숯을 손에 가지고 내게로 날아와서 그것을 내 입술에 대며 이르되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하더라”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죄인인 것만 알고, 자기를 학대해서는 안됩니다. 잘 안되지만 자기를 미워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의지가 약하고, 잘 안 되는 것은 지극히 정상입니다. 그렇다고 너무 하나님을 믿는 우리가 자기를 비참하게 만들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약하기에, 죄인이기에 하나님이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죄인인 우리를 의인으로 삼아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인정해 주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이시고, 우리의 주인이십니다. 나는 죄인이지만 하나님이 우리를 붙잡고 있기에, 값을 주고 산 사람이기에, 사랑하기에 너무도 소중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너무 자기를 미워하지 마십시오. 예전의 내가 아닙니다. 나는 약하지만 하나님은 강하시고, 나는 부족하지만 하나님은 능력이 많으신 분입니다. 나는 실패하지만 하나님은 실패하지 않습니다. 나를 그의 자녀로 부르시고 한번도 후회하신 적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그 하나님이 우리를 만들어 가시고, 이끌고, 붙잡고, 끌고 가실 것입니다. 오늘 이런 자기를 보는 믿음을 가지십시오. 이사야는 이런 하나님을 알았기에 백성들에게 선포했습니다. 그들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이렇게 알려주셨습니다.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고 너를 사랑하였은 즉 내가 사람을 주어 너를 바꾸며 백성들로 네 생명을 대신하리라..”

   셋째, 사람을 보는 믿음입니다. 하나님과 자기를 본 이사야는 여기에서 머물지 않고 이제 주변과 사람을 봅니다. 이것이 8절에 나타납니다.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으니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니 그 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이것이 그의 뛰어난 믿음입니다. 우리의 믿음도 여기까지 가야 합니다. 하나님을 보는 믿음이 우선적이고, 자기를 보는 믿음도 너무도 소중하지만, 주변과 사람을 보는 믿음까지 가야 온전한 믿음입니다. 이것을 위해 하나님을 부르신 것입니다. 나만 믿고 천국 가고, 나만 구원받아 행복해서는 안됩니다. 나만 잘 되는 것으로 만족해서도 안되고, 우리끼리만 잔치를 벌이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은 나를 넘어 다른 사람과 이웃으로 가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요,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사람을 보는 믿음에서 역시 2가지의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하나는 우리 주변의 많은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고 보아야 합니다. 돈이 없고, 가난하고, 못사는 사람들만 불쌍한 것이 아닙니다. 사실 돈이 많고, 권력과 명예가 있고, 잘 사는 사람도 불쌍한 것입니다. 요즘 텔레비전에서 보이는 모든 사람들이 그렇습니다. 왜 그렇게 불쌍해 보이는 지 모릅니다. 분명 우리보다 더 외적인 조건은 좋은 거 같은데 불쌍합니다. 이것이 주님이 보여 주셨던 모습입니다. 주님은 모든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주님의 사역, 능력, 기적의 역사는 불쌍히 여기는 마음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그래서 주님의 행적을 보여주는 말씀에서 눈에 띄는 것이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매..”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주님이 사람을 보는 눈이셨습니다.

   사람을 보는 믿음에서 중요한 또 다른 하나는 결국 사람을 위해 헌신하고 봉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믿음의 사람이 된 것은 다른 사람을 위한 봉사의 일을 감당하기 위함입니다. 교회가 이 땅에 주님 오실 때까지 존재하는 이유는 바로 많은 사람, 이웃, 주변과 사회를 봉사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은 혼자도 얼마든지 하실 수 있는 분이지만 우리와 함께 일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본심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위대한 일에 쓰임 받는다는 것만큼 영광스러운 일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 일을 혼자하지 않고 나를 사용하십니다. 나를 봉사의 자리로 이끄시는 분이십니다. 이 하나님의 부름 앞에 우리가 헌신하고 결단해야 합니다. 사람을 위해, 이웃을 위해, 교회를 위해, 나아가서는 나라와 민족을 위해 헌신해야 합니다. 나라와 민족을 생각하며 보내는 이 귀한 달에 우리 믿는 자가 이런 삶을 헌신해야 합니다. 믿는 자가 가장 애국자이고, 믿는 자가 나라를 위해 가장 솔선 수범해야 하고, 앞장서야 합니다. 우리의 시간과 물질과 정성과 노력과 수고와 힘을 다하여 봉사하고 섬겨야 합니다. 주님처럼 살아야 합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사야의 믿음을 생각했습니다. 그의 믿음은 하나님을 보는 믿음, 자기를 보는 믿음, 그리고 사람을 보는 믿음이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이 귀한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믿음의 길, 믿음의 삶을 향해 힘있게 출발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출처/서해원목사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