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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한 것들을 자랑하라 (고린도후서 12:9)
<本文>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고후12:9)
<序言>
사자는 용감하고 강한 것으로만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사자를 오랫동안 연구한 사람의 발표를 보면 상식을 깨는 내용들이 있습니다. 적지 않은 사자가 굶어 죽는다고 합니다. 또 나무에 걸어둔 표범의 먹이를 곧잘 훔쳐 먹는고 그러다가 간혹 나무에서 미끄러져서 거꾸로 걸려 죽음을 당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또 사자가 사냥하는 대상이 결코 덩치 큰 짐승이 아니라고 합니다. 전체적으로는 5%내외인데 그것도 큰 짐승은 그들이 부상 중이거나 새끼를 배었을 때라고 합니다. 또 사냥감을 달리며 몰아서 잡는 것은 극히 드물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경우 물가에 숨어 있다가 물을 먹는 짐승을 단숨에 공격하여 잡거나 물가 습지 늪에 발이 빠진 짐승 등을 건져 먹는다고 합니다. 또 사냥 중에 적잖게 죽기도 하며 심각한 부상을 입는다고 합니다. 사냥감의 뿔에 받쳐서 내장이 터지기도 하고 사냥감의 뒷발 또는 앞발의 공격으로 뼈가 부러지거나 내장이 터지기도 하고 달리는 중에 발을 헛디뎌 앞발 뼈가 부러지기도 하고 큰 짐승에 깔려 죽기도 하고 짐승 떼에 휘말려 밟혀 죽기도 한다고 합니다.
아프리카에는 '뱀잡이수리'라는 아주 특이한 새가 있다고 합니다. 이 새는 평소에는 잘 날아다니다가도 어느 순간 고통을 감지하거나 위험한 것을 느끼면 갑자기 날 수 있는 능력을 망각하고 맙다고 합니다. 날 수 있는 능력을 망각한 새는 땅을 기어 다니다가 끝내는 목숨을 잃어버리거나 다치게 되는 특이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인간은 강한 것 같으면서도 약한 면을 가지고 있고 그 약한 부분이 크게 드러나면 살 의욕을 잃어버리기 일쑤입니다.
바울은 자랑할만한 조건들이 많았습니다. 출신성분은 히브리인이며 이스라엘 사람이며 아브라함의 후손이었습니다. 가말리엘 문하에서 율법을 배웠습니다. 로마 시민권을 가졌습니다.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 그리스도를 직접 만났습니다. 천국에 갔다왔고 하나님께 받은 계시가 너무도 큽니다. 그가 사역을 할 때 많은 사람이 구원을 받았고 표적이 일어났습니다 (고후11:22, 행22:3, 고후12:1-3, 행14:8-12). 그러나 그를 낙심케 하는 약한 부분들도 있었습니다. 그 약한 부분들 때문에 힘을 잃을 때도 많았습니다.
<本論>
1. 바울은 질병 때문에 고통스러워 했습니다.
바울은 육체의 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학자 요세프스에 의하면 바울은 작은 키에 대머리에 일자 눈썹에 오똑코에 안짱다리였다고 합니다. 거기에 바울은 간질병과 풍토병과 전염병에 노출되어 있었습니다. 특히 심한 눈병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보고 3일 동안 보지 못하다가 아나니아에게 안수를 받고 눈의 비늘이 벗어지기는 했으나 그 후유증으로 만성질환의 눈병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공회에서 대제사장 아나니아를 식별하지 못했고 (행23:5),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편지를 쓸 때 대필하게 했고 (갈6:11), 고린도 교인들에게 편지를 쓸 때도 대필하게 했습니다 (고후16:21). 그 눈병은 바울을 대적하는 사람들에게 큰 비방거리가 되었습니다 (고후10:10).
바울은 질병으로 고통이 너무 심했습니다. 그 고통이 너무 커서 '육체의 가시' 라고 했습니다 (고후12:7). '가시'의 헬라어 스콜로프(σκολοψ)는 심문을 할 때 쓰는 말뚝이나 파편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바울은 육체의 질병이 사역을 방해했고 대적자들의 공격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단의 사자(使者)'라고 했습니다 (고후12:7). 그 고통이 너무 커서 하나님께 낫게 해 달라고 간절히 세 번이나 기도했으나 낫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그로 인하여 약해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2. 바울은 교회를 핍박한 일 때문에 고통스러워 했습니다.
바울이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에는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유대교의 신봉자로서 예수 믿는 자들을 핍박했습니다. 그는 군대 장교로서 그리스도인들을 유대교에 대치되는 이단이라고 생각하고 그들을 핍박하는 데 앞장섰습니다. 예루살렘에서 뿐 아니라 외국성 다메섹에까지 가서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다가 강제로 그리스도를 모독하게 하고 때리고 옥에 가두고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성령에 충만하여 복음을 전하던 스데반 집사를 죽이는데 가표를 던지고 앞장섰던 사건은 대표적인 사건이었습니다 (행7:54-58, 8:1-3, 9:1-2).
바울은 그런 일들을 오랫동안 기억하므로 마음의 아픔으로 자리했습니다. 후에 예수를 믿은 다음에 복음을 전하다가 예루살렘에서 유대인에게 붙잡혔을 때에도 기억하고 천부장에게 이 일을 얘기했습니다 (행22:19-21). 또 아그립바 왕을 만났을 때에도 그 사실을 고백했습니다 (행26:9-12). 복음 사역을 할 때에 교인들에게도 고백했습니다 (갈1:13, 빌3:6). 이는 그가 평생 복음 사역을 하면서도 늘 스데반을 죽인 죄, 성도를 핍박한 죄, 교회를 잔해한 죄를 기억하고 다녔다는 증거입니다. 바울은 그로 인해 약해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어떤 청년의 고백입니다. 처음 교회에 출석하지 3년 동안은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단순히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신(神)을 숭배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교회 나간지 얼마 되지 않은 저에게 청년회 총무와 회장이라는 중임을 맡겼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에 갑자기 담임 목사님이 기도부탁을 하셨습니다. 그 날 따라 매일 가지고 다니던 기도문도 없었기 때문에 저는 매우 당혹스러웠습니다. 그러나 기도 하나 못해서 자존심 깎이기는 싫었습니다. 그리고 가능하면 멋지게 기도해서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길 원했습니다. 한참 고민하다가 갑자기 영감처럼 떠오른 말이 있어서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오! 미지의 신이시여." 지금 생각해도 그렇게 부끄러울 수가 없다고 합니다.
3. 바울은 죄성 때문에 고통스러워 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부패한 죄성(罪性)의 강한 지배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경험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온전하게 살기를 원했지만 속에 있는 부패한 죄악의 성품이 날마다 죄악의 구렁텅이로 끌고 가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자기 속에 선을 행하려는 마음이 있으나 또 악을 행하려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알았고, 자기 속에서 선을 행하려는 마음과 악을 행하려는 마음이 싸우는 것을 알았고, 결과적으로 악을 행하려는 마음이 이겨서 자기를 죄를 행하게 하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롬7:15-23). 그 과정은 하나의 싸이클이 되었고 그 악을 행하려는 마음인 죄성은 자기 속에 이길 수 없는 세력과 권세로 자리하고 있음을 경험했습니다.
바울은 그 죄성과 피흘리기까지 싸웠지만 결과는 항상 실패임을 경험했습니다. 그 죄성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려 하면 할수록 더 강하게 일어남을 경험하고 있었습니다. 그로 인하여 그는 영적인 곤고함을 느끼고 있었고 절망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래서 로마서7:24에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고 절규했습니다. '나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나 스스로는 죄에서 해방될 수 없습니다. 내 힘으로는 의에 이를 수 없습니다'는 의미로 절규한 것입니다. 바울은 그것 때문에 약해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結言>
바울은 육체의 질병 때문에 약해졌고, 과거에 교회를 잔해한 죄 때문에 약해졌고, 속에 있는 죄성 때문에 약해졌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 약한 것들을 자랑한다고 했습니다. 그것들 때문에 자신이 스스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전적으로 부패하고 무능한 존재라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간절히 구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또 그로 인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이 머물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그 약한 것들을 허락하신 목적이었습니다 (고후15:9, 딤후1:13-15, 고후12:9). 바울은 자기의 약한 부분들에 대해 사단이 원한 대로 반응하지 않고 하나님이 원하는 대로 반응했습니다. 약한 것들로 인하여 더욱 온전케 되고 하나님의 은혜를 느끼게 되고 그리스도의 능력이 머물게 했습니다. 그래서 본문에서는 그런 것들을 부끄러워 하지 않고 자랑한다고 했습니다. 약한 것을 자랑하는 사람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출처/차용철 목사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