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 돌의 의미 (여호수아 4장 1 ~ 9절)

  여호수아서는 하나님께서 모세의 후계자로 여호수아를 세우시는 이야기로부터 시작하고 있습니다. 여호수아를 부르시고 해야 할 일을 명하셨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사적인 약속을 하셨습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1:5)

   여호수아서는 여호수아 개인적인 관점에서 볼 때 하나님께서 이 약속을 지키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호수아가 도무지 돌파할 수 없는 장애물을 만날 때마다 그리고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만날 때마다 하나님께서 친히 나타나셔서 하나님의 방법으로 장애물을 극복하게 하셨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여호수아서는 그 어떤 성경 각권보다 놀라운 하나님의 이적이 많이 기록되어있습니다.

   수 3장은 이 놀라운 하나님의 이적의 첫 번째 사건을 기록해 놓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으로 진군해 들어가고자 할 때 앞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있었습니다. 바로 요단강입니다. 물이 깊어서 걸어서 건널 수 없는 형편입니다. 그렇다고 다리를 놓을 상황도 아닙니다. 장정만 60만이 넘는 지라 배를 만들어 타고 건널 수도 없습니다. 여호수아로서는 시작부터 어찌할 수 없는 장애물을 만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처럼 함께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방법으로 요단강 물줄기를 멈추게 하셨습니다. 마치 보이지 않는 댐이 건설된 것처럼 강 위편 물이 막혀 가득했지만 강 아래편은 물이 사해 쪽으로 다 흘러 가버렸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평지 건너듯이 손쉽게 건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서 놀라운 이적으로 여호수아로 하여금 장애물을 극복할 수 있게 해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4장에 와 보면 하나님께서 뜻밖의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강을 마지막까지 다 건넜습니다. 아직 제사장들은 법궤를 멘 채 요단강 한 가운데 서있습니다. 이제 저들만 요단강을 건너오면 모든 것이 끝이 날 상황입니다.

   하나님께서 갑자기 각 지파에서 한 명씩 뽑아서 제사장들이 법궤를 메고 서 있는 강 한 가운데로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돌 12 개를 쌓게 하셨고, 또 12개를 메고 나와서 그들이 머무르게 될 길갈로 가져오게 하셨습니다.

   여호수아가 하나님의 명을 전했고, 이스라엘 백성이 순종했습니다. 그래서 요단강 한 가운데 제사장들이 법궤를 메고 섰던 자리에 12개 돌로 기념비가 세워지게 되었고, 역시 저들이 머무르게 될 길갈에 12개 돌로 기념비가 세워지게 된 것입니다. 이 일이 끝나자 마침내 법궤를 멘 제사장들도 요단강을 건널 수 있게 돼서 요단강 도하 사건이 끝이 나게 됩니다.

   본문을 자세히 살펴보면 쉽게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있습니다. 12돌로 세운 기념비에 대한 부분입니다. 우선 왜 제사장들이 섰던 강바닥에 기념비를 세우라 하셨을까요? 4:18절을 보면 제사장들이 요단강에서 나와 가나안 땅을 밟자마자 요단강물이 다시 흘러 원래 강물모습 그대로 됐습니다. 이것은 강바닥에 세워둔 12 돌 기념비는 강물에 잠겨서 보이지 않게 되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기념비를 세우면 누구나 늘 잘 볼 수 있게 해야 할 텐데 왜 물에 잠겨서 보이지 않게 될 기념비를 세우라 하셨을까요? 쉽게 납득하기 힘듭니다. 요한 칼빈은 이렇게 해석했습니다. “이 기념비는 비록 보이지는 않을 지라도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 가운데 세워진 것과 같은 효과를 거두게 되었다. 저들이 요단강을 볼 때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그 안에 세워져있을 기념비를 마음의 눈으로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간혹 건기 때 수심이 낮아져 그 기념비의 꼭대기가 보이게 되면 그 효과를 배가 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일리가 있는 해석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신 것은 눈에 보이는 기념비 자체보다도 이스라엘 백성 마음속에 기념비를 세우고자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신 그 놀라운 역사를 마음속에 두고두고 담아두게 하시고자 하신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왜 기념비를 세워도 그렇게 초라하게 세우라 하셨을까요? 강바닥에 그렇게 큰 돌들이 많이 있을 리 없고, 그리고 한 사람이 어깨에 멜 정도의 돌이면 그렇게 큰 돌이 아닙니다. 그저 작으면 농구공 정도 좀 크면 자동차 타이어 정도일 것입니다. 이 정도 크기의 돌 12개를 쌓아 봐야 얼마나 되겠습니까?

   재미 삼아서 생각해 봤습니다. 12개를 하나씩 쌓지는 않았을 것이고, [4-3-2-1-1-1] 형태로 쌓았다고 할 때 높이는 그저 사람 한 길 보다 조금 더 높은 정도 수준일 것이고, 그 폭도 반경이 1미터를 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어림잡아 사람 서너 명이 부둥켜안고 있는 정도의 크기일 것입니다. 이집트의 피라밋이나 이란 이라크에 있는 지구라트와는 정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작고 초라한 것입니다. 가까이 가서나 누군가가 돌을 세워놓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이고, 아는 사람들이나 기념비라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입니다.

   그러면 왜 이렇게 초라한 기념비를 세우라 하셨을까요? 만일 거대한 기념비를 세웠다면 그것을 세운 사람의 업적이 두드러지게 나타날 것입니다. 그 위용이 대단하게 되면 그 자체가 우상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념비를 세우되 소박하고 초라할 정도로 세우게 하신 것은 기념비 자체보다 그 안에 담겨있는 의미를 중요하게 생각하셨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두고두고 그 의미를 새기도록 하기 위해서 일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속에 두고두고 새기게 하신 이 열두 돌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이 기념비를 세우게 하신 목적이 무엇일까요?


1. 표징의 의미

   4:6을 보면 “이것이 너희 중에 표징이 되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표징”이라는 말은 히브리어 원어 “오트”(Oth)를 번역한 것입니다. 이 “오트”란 말은 표시, 증거, 징조 등의 뜻으로 쓰인 말입니다.

   구약성경에 이 오트라는 말이 여러 번 나오는데 한 예를 들면 창 17:11입니다. “너희는 포피를 베어라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니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앞으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후손 곧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이 되시고, 또한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의 백성이 될 것이라는 언약입니다. 이 언약을 마치고 표징으로 할례를 받게 하셨습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들 몸에 이 언약의 표징을 지니게 된 것입니다. 할례 받은 자기 몸을 보면서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고 나는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사실을 마음속에 깊이 다짐하게 된 것입니다. 여기에 표징의 의미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제 이 열두 돌의 기념비를 바라보게 됩니다. 이 돌 하나하나가 저 시퍼렇게 흐르는 요단강 깊은 바닥에 있던 것들입니다. 누가 저렇게 흐르는 물 깊은 바닥에서 어깨에 멜 정도의 큰 돌을 그것도 12개씩이나 가지고 나올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흐르는 요단강물을 멈추게 하셨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 열두 돌을 바라볼 때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친히 요단강물을 멈추게 하셔서 자기들의 앞길의 장애물을 제거해 주셨음을 다시금 확인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요단강물을 멈추게 하셨던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지금도 자기들과 함께 하셔서 앞길을 인도하시고 계심을 믿고 고백했을 것입니다. 바로 이 열두 돌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표징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스라엘 백성이 두려운 마음으로 가나안 땅에 들어섰습니다. 위대한 지도자 모세가 없는 상황입니다. 아직 지도자로서 검증되지 못한 여호수아의 영도를 받아 가나안 땅에 들어왔습니다. 이 표징은 여호수아를 믿고 따라도 될 모세와 같은 지도자라는 것을 확인해 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가나안 땅에 들어왔지만 가나안 7족속들이 목숨을 걸고 저항하는 상황입니다. 난공불락의 성을 지어놓고 결사항전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자기들 힘으로는 도저히 어찌해 볼 수 없는 상황입니다. 이 표징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들이 가나안 땅을 점령할 수 있다는 확신을 주고 있습니다. 요단강을 멈추게 하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이런 믿음의 표징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하신다는 확신을 갖게 해 주는 표징이 있어야 합니다. 내 앞을 가로막는 그 어떤 장애물도 극복해 갈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해 주는 표징이 필요합니다.

   여러분에게는 어떤 표징이 있습니까? 우선 말씀의 표징이 있어야 합니다.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20) 그리고 체험의 표징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셔서 내게 체험한 사건들 그 기억을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2. 기념의 의미

   본문 4:7을 보면 “이 돌들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영원히 기념이 되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기념”이라는 말은 히브리어 원어 “지카론”(Zikaron)을 번역한 것입니다. 이 말은 어떤 사실을 마음에 떠오르게 하거나 나타내는 대상이나 행위를 뜻합니다.

   구약성경에 이 지카론이라는 말이 여러 번 나오는데 한 예를 들면 출 12:14입니다. “너희는 이 날을 기념하여 여호와의 절기를 삼아 영원한 규례로 대대로 지킬지니라” 하나님께서 저 놀라운 출애굽의 역사를 일으켜 주신 것을 기념하기 위해 유월절을 지키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이스라엘 백성은 유월절을 지금까지 지키고 있습니다. 유월절을 지키면서 수천년 전 일어났던 저 출애굽 사건을 기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출애굽 사건을 기념하면서 자기들이 누구이고 또한 어떻게 살아야 할 지 새삼 다짐하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기념이라는 말은 신앙을 다음 세대에 전수하게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기념이라는 말을 설명하시면서 앞으로 오고 오는 이스라엘의 후손들을 염두에 두라 하셨습니다. 장차 이스라엘 후손들이 이 돌 앞에 와서 “이 돌들은 무슨 뜻입니까?”라고 묻게 하고 이에 이렇게 답을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마른 땅을 밟고 이 요단을 건넜음이라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요단 물을 너희 앞에서 마르게 하사 너희를 건너게 하신 것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 앞에 홍해를 말리시고 우리를 건너게 하심과 같았나니” 후손들에게 여호와 하나님을 어떻게 믿고 섬기며 살아야 할 지를 잘 가르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도 우리 자녀들에게 우리의 믿음을 기념하게 해야 합니다. 우리 가정이 대를 이어 믿음의 가정으로 든든히 서게 해야 합니다. 우리 가문이 믿음의 명문 가문이 되게 해야 합니다.


  한 번은 한 가정 행사에 초대를 받은 일이 있습니다. 뜻 밖에 참석한 인원이 너무 많아서 놀랐습니다. 이 분의 형제들은 물론이고 그 형제들의 자녀들까지 수십 명이 족히 넘었습니다. 선친께서 이북에서 처음 예수를 믿게 되셨는데 이 어른께서 유언을 남기셨답니다. 자기 가문에 복음이 처음 들어온 날을 기념하고 소중하게 지키라 하셨다는 것입니다. 지금 4대째 예수를 믿고 있는데 외국에 나간 사람들만 빼고는 아무리 바빠도 전 가문이 다 모이고 있답니다.

  그래서인지 그 가문에 주의 종이 이미 여럿 나왔습니다. 장로, 권사, 안수 집사 대부분이 직분자들이었습니다. 경향 각지에 흩어져 살지만 여러 교회에 나뉘어 섬기고 있지만 설이나 추석 때 못 모여도 이 날 만큼은 꼭 모인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다음 세대로 잘 전수되어야 하겠습니다. 무엇을 유산으로 물려주시겠습니까? 재산만 유산이 아니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재산보다 더 중요한 유산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바로 믿음의 유산입니다. 자녀들에게 두고두고 기념할 만한 믿음의 유산을 마련하시기 바랍니다.


3. 선포의 의미

   본문 4:24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땅의 모든 백성에게 여호와의 손이 강하신 것을 알게 하며...” 여기서 알게 하라는 말은 히브리어 원어 “다아트”(Da-at)라는 말을 번역한 것입니다. 이 말은 가르쳐주다 선포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12 돌로 기념비를 세우라 하신 뜻 가운데 당시 가나안 땅의 백성들이 이것을 보고 요단강을 멈추게 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알게 하려는 것도 있다는 것입니다. 가나안 땅 7족속들에게 이 12 돌의 기념비를 통해서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을 선포하고 그 하나님의 능력의 손이 지금 이스라엘과 함께 하심을 선포하려는 뜻도 있다는 것입니다.


  최근에 한국 지성을 대표하는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께서 예수 믿고 세례를 받았다고 해서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이 전 장관이 기독교에 귀의하겠다고 마음먹은 배경에는 딸 민아(47)씨가 체험한 하나님의 능력의 손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이민아씨는 미국으로 유학을 가 어렵게 공부한 끝에 변호사가 됐고, 한때 로스앤젤레스 지방 검사로 활약하면서 청소년 마약 문제를 다룰 정도로 아버지에게는 자랑스러운 딸, 교민사회에선 성공한 한인이자 전도가 양양한 유망주였습니다. 그러던 그에게 시련이 찾아왔습니다. 1992년 갑상선암 판정을 받고 수술을 했지만 1996년과 1999년 두 차례나 암이 재발했습니다. 게다가 망막이 파열되어 시력까지 잃게 되었습니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이어령씨는 딸을 한국으로 데려왔습니다. 놀랍게도 한국에 와서 확인해 보니 망막이 낳았다는 것입니다. 병이 깨끗하게 치유된 것입니다. 눈물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치유해 주신 것입니다.

  이 전 장관은 "딸의 고통 앞에서 아버지가 해준 것은 아무 것도 없었지만 딸이 오랫동안 믿어온 하나님은 기쁨을 주고 상처를 치유해줬다"면서 "딸이 믿는 대상에 대해 지성이 아닌 경배의 대상으로 다가가고 그런 믿음을 딸과 함께 공유하고 싶다"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저는 십여 년전 이분의 모친 장례식에서 이분과 잠시 대화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얼마나 마음의 문이 단단히 닫혀 있었던지요? 지성의 교만이 마음의 문의 빗장을 단단히 잠그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러던 그분이 딸의 고난 속에 쌓여진 12 돌의 기념비를 본 것입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손이 강하신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겸손히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게 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아직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능력을 선포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삶 속에서 체험한 하나님의 능력을 선포할 때 저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도 12 돌의 기념비를 쌓아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아직 믿지 않는 사람들이 이 기념비를 보고 두려워하며 주께로 돌아올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도 기념비를 세워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체험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의 증거를 기념비로 세워야 하겠습니다. 그 기념비를 보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의 표징을 삼아야 하겠습니다. 그 기념비를 통해서 우리 자녀들에게 믿음을 심어주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기념비를 보여주며 아직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하겠습니다.

출처/박봉수 목사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