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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나라를 다스려 주소서 (겔 37: 15-22)
제가 1986년 3월에 독일을 방문했을 때 독일에서 한인 목회를 하고 계시는 목사님들과 함께 베를린 동서독을 막고 있는 철의 장벽 앞에 서서 동서독의 분단이 마치 우리의 분단인 것만 같아 “우리 민족의 장벽인 3·8선과 함께 독일의 이 장벽을 무너뜨려 주시옵소서”하는 기도를 하고 돌아온 일이 있습니다. 제가 그런 기도를 마치고 돌아온 지 4년이 채 안된 1989년 가을에 독일은 통일되어 분단을 극복하고 나라가 하나가 되었다는 기쁨이 마치 거대한 분수가 솟구쳐 올라오듯 하였습니다.
제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나라인 독일은 유럽 전체의 평화를 위협하는 나라로 지목받고 분단이 오히려 유럽의 평화에 기여할 것이라고 판단되어 세계 열강은 강압적으로 동서독으로 양분시켜 분단을 고착화 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세계가 그들의 분단을 고착화 시키려고 노력하는 중에 갑자기 분단의 벽이 갈라져 버렸습니다.
그러나 독일의 통일은 그렇게 갑자기 온 것 같았지만 그들의 평화를 위한 피나는 기도와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하였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아직도 분단된 채 통일의 가능성이 전혀 보이지 않는 가운데 해방 후 62년이 지났습니다. 독일이 통일된 것이 독일 교회의 피나는 기도와 노력에 의해 가능하였듯이 우리나라의 통일도 우리 한국 교회의 피나는 기도와 노력에 의해 가능할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남북 교회는 모두 다 절실하게 깨닫고 이번 주일을 남북 교회가 함께 민족통일을 위해 기도하는 주일로 정하였습니다.
바벨론은 BC 605년에 남유다를 일차로 침입하였는데 이 때 다니엘이 바벨론으로 잡혀갔습니다. 바벨론은 이차로 BC 597년에 이차로 유다를 침입하였는데 이 때 여호와긴 왕과 에스겔이 사로잡혀 그발강 가로 옮겨졌습니다. 본문 말씀은 남유다가 바벨론 느부갓네살 임금의 침입으로 초토화되어 많은 사람들이 바벨론 포로로 끌려갔을 때, 거기에 섞여 포로로 끌려간 제사장 출신 에스겔에게 임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에스겔은 새로운 지도자, 땅의 회복, 성읍의 재건, 메시아 왕국의 풍요로움 등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청사진을 제시했지만 백성들의 반응은 회의적이었습니다. 많은 포로들 중에는 예루살렘의 멸망과 그들을 끌어온 바벨론의 왕성함을 보고 실망과 좌절에 빠져 버렸습니다. “왜 의로우신 하나님이 이런 일을 허락하시었는가?” “정말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가?” 이렇게 그들은 자조 섞인 질문과 한탄을 하였습니다.
이런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골짜기의 마른 뼈들이 부활하는 환상(겔 37:1-14)을 통하여 그리고 오늘의 본문 말씀인 두 막대기를 하나로 연합시키는 상징적인 행위를 통하여 에스겔은 불가능을 가능케 하시는 하나님의 위대하신 능력을 발견하여 절망에 빠진 백성들에게서 회복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담대하게 이스라엘의 회복을 선포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두 막대기중 하나에는 유다와 그 짝 이스라엘 이라고 쓰고 다른 하나에는 요셉과 그 짝 이스라엘이라고 써서 그 막대기를 서로 연합하여 둘이 하나가 되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 시대에 나라가 남유다와 북이스라엘로 분단되었고, 이 두 나라 중 북이스라엘은 BC 722년 앗수르에게, 남유다는 바벨론에게 예루살렘이 함락되어 BC 586년 망했습니다. 이처럼 국가가 망하여 백성들이 좌절해 있을 때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두 막대기를 하나로 합치라고 명령하여 이스라엘의 통일을 계시함으로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소망을 주었습니다.
분단이 50년이 넘게 지속되어 왔기 때문에 지금 우리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오래된 분단 때문에 통일에 대한 희망을 버리고 있고, 또 어떤 사람들은 통일 비용 때문에 서독의 경제가 무너지는 것을 보고 경제력의 차이가 엄청난 북한과 통일하는 것은 우리나라를 후진국으로 가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통일을 반대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비관적인 생각이 있기는 하지만 우리 민족 거의 모두는 통일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번 주일은 이러한 통일에 대한 염원을 되새기는 날입니다. 오늘 에스겔에게 임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통일을 염원하는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임하길 바랍니다.
1. 모든 일은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분단된 후 정부의 주도하에 통일 운동을 지속적으로 시행하여 민족 분단을 극복하려고 노력해 왔지만 정부 주도하의 통일 운동은 많은 한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합법성과 정통성을 인정받지 못한 많은 정치지도자들이 분단을 그들의 정권을 유지하거나 강화시키는 이데올로기로 사용해서 통일 운동은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였습니다. 그들은 본질적으로 통일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분단되어 있는 것이 그들의 군사정권을 유지하는 데 훨씬 도움이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분단 초기에는 한국전쟁이라는 엄청난 경험을 하였기 때문에 서로 간에 군사적인 차원에서 현대식 무기를 개발하여 군사력을 강화하였습니다. 따라서 통일운동은 말조차도 꺼낼 수 없었습니다. 당연히 이러한 소모적인 군비 경쟁은 남북 간에 더 큰 대립과 반목을 조장하였습니다.
군사정권은 이러한 소모적인 군비경쟁을 더욱 더 가속화했고 분단을 정권유지의 한 수단으로 삼았습니다. 그래서 민주화 운동이나 통일 운동은 그들 정권의 정당성을 위협하는 가장 큰 적이었습니다. 그래서 군사정권은 민주화 운동이나 통일 운동을 철저히 억눌렀습니다. 따라서 간간이 발표되는 성명서는 실현가능성 없는 화려한 독백에 불과한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정치적으로 밀사를 보내고 특명을 내리고 특단의 조처를 내려 보았지만 그러한 시도들이 사상과 이념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계속하여 갈등을 심화시킨 것은 당연한 역사적 결과라고 하겠습니다. 그들이 북한과 합의하여 선언한 합의서는 법적인 구속력이 전혀 없는 말장난에 불과한 것이었습니다. 오히려 ‘믿는 도끼에 발등찍힌다’고, 약속을 해 놓고 북한이 그 약속을 파기하는 바람에 이용만 당하고 뒤통수만 맞는 꼴이 되고만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은 정치인들이 해 낼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정치인들의 통일 운동은 순수하지가 않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통일 운동은 정치적 집권을 창출하는 수단이기 쉽습니다. 인도적인 차원에서 통일을 바라보기에는 정치인들은 너무나 말 그대로 정치적입니다.
우리나라는 분단 된지 62년이 지났지만 세계의 갈등지역으로 더 부각될 뿐 통일의 문은 열릴 기대를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통일이 우리 남북한 만의 문제라면 그래도 기대해 볼 수 있는데, 러시아, 중국, 미국 그리고 일본의 정치적 입장과도 얽혀 있어, 우리의 통일 문제는 국내문제가 아니라 골치아픈 국제문제가 된지 오래입니다. 통일을 둘러싼 문제가 이러한지라 통일만 생각하면 우리들의 마음은 답답함으로 가득찹니다. 적어도 중국과 미국이 타협할 수 없는 한 통일은 불가능할 것 같아 그만 포기해 버리고만 싶어집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우리들의 생각이지 하나님의 뜻은 아닙니다. 상황이 이처럼 어려울수록 우리는 겸손하게 우리의 지혜와 힘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하나님께 고백하고 오직 하나님만이 이 문제를 해결해 주신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2. 먼저 교회가 하나 되어야 합니다.
본문에서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그 막대기들을 서로 연합하여 하나가 되게 하라. 네 손에서 둘이 하나가 되리라”(17절)고 하셨습니다. 그 두 막대기가 ‘네 손에서’ 하나가 되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손’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일을 책임적으로 수행하는 사람이나 모임을 의미합니다. 바벨론 포로기 시절 에스겔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좌절에 빠진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로하고 희망을 주어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를 통일시키려고 했던 하나님의 ‘손’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상황 속에서 그 손은 교회를 의미합니다. 한국 교회가 우리 민족을 통일시키는데 책임지고 앞장서라는 것입니다. 정부, 학계 또는 민간단체가 아니라 교회가 민족의 통일을 위해 기도하고 준비하라는 것입니다. 이 점에서 민족 통일은 한민족 각자의 사명임과 동시에 우리 교회의 사명입니다.
독일 통일을 당시 서독의 콜(Kohl) 총리와 동독의 호네커(Honecker) 총리는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독일 교회의 노력은 두드러졌습니다. 독일이 분단되었을 때 동서독 교회는 하나의 연합체(EKD)를 분열시키지 않았습니다. 교회는 어느 이데올로기도 편들지 않고 영구분단을 반대하고 서독 교회의 헌금을 동독 교회에 제공하여 파트너 관계를 계속 유지시켜 일체성, 공동체성을 끝까지 공유하였고, 통일을 위한 기도를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동서독 교회가 공동체적 마음을 가지고 통일을 위해 여러 가지로 노력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통일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반도의 상황은 독일과 너무나 다릅니다. 독일은 공동체적 마음이 있었지만 한국은 그런 마음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우선, 남한의 교회와 북한의 교회 사이에 공동체적 마음이 없습니다. 이는 무엇보다도 정치적 원인에 기인합니다. 남북이 분단되면서 북한의 교회는 김일성 정권의 수많은 핍박으로 교회가 거의 폐쇄되었습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얼마 전 봉수교회와 칠골 교회가 겨우 문을 열어 남북한이 신앙적으로 조금이나마 교류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남북한 교회의 일치를 위해 이것은 작지만 매우 소중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북에 있는 교회가 작은 교회에 불과하지만 남한 교회와 일정한 교류를 할 수 있게 됨으로써 남한 교회와 북한 교회의 공동체성 회복을 위해 중요한 계기를 마련했지만, 이 보다 더 큰 문제는 남한의 교회가 수 없이 많은 교파로 분열되어 아직도 연합과 일치를 이루지 못하고 있어서 통일을 위해 기도할 때도 한 목소리를 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무엇이 그렇게 자신의 교파가 옳은지 자신의 교파의 우월성만 내세우고 다른 교파의 교회는 이단시하고 있으니, 이렇게 서로를 믿지 못하고 있는 처지에 어떻게 한마음으로 민족 통일을 위해 기도할 수 있는지 위선이 아닐 수 없습니다. 먼저 교회들이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가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것은 교회가 단일 교파로 통일되어야 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각각의 교파의 전통을 무시하고 하나의 교파로 통일시키자는 것은 독재주의적 사고입니다. 각각의 교파의 역사적 전통들은 최대한 존중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한국의 수많은 교파들은 그러한 교파의 성립이 성서적 근거에 기인한다기보다는 교파정치적 권력 싸움에 기인한 것이기에 합법성이 인정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최소한 사도신경을 똑같이 고백하고, 예수를 그리스도라 고백하는 교회들이 그들 자신의 각각의 전통들을 소유하면서도 공통된 고백으로서 그들을 묶을 수 있는 하나의 연합체라도 만들어서 복음의 전파와 민족통일 문제와 신앙문제를 함께 해결해 나가자는 것입니다. 여기에 하나님께서 역사해 주실 것입니다.
3. 결국 하나님께서 이 민족에 통일을 주실 것입니다.
본문에서 두 막대기가 에스겔 손에서 하나가 되는 것처럼 한국 민족의 통일은 교회 안에서 될 것입니다. 이는 한국 교회가 능력 있어서 통일을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달린 것입니다. 에스겔이 하나님의 손에 붙잡혀야 되는 것처럼 한국교회가 하나님의 손에 붙잡혀야 합니다.
“그 고토로 돌아가게 하고”(21절)하는 것은 이스라엘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바벨론에 나라를 강탈당하여 포로로 끌려간 힘없는 이스라엘이 어떻게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까? 이스라엘이 스스로의 힘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까? 아니면 다른 그 누군가에 의해 돌아가게 된다는 것입니까? 성서는 분명하게 후자라고 못 박고 있습니다. “내가 ... 돌아가게 하고”(21절). 귀환은 오직 하나님의 손에 의해서만 가능합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그 땅 이스라엘 모든 산에서 그들로 한 나라를 이루어서 한 임금이 모두 다스리게 하리니”(22절). 하나님이 세우신 이 왕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하나님은 “내 종 다윗이 영원히 그 왕이 되리라”(25절)고 하셨는데 여기서 다윗은 곧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 나라는 곧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가 다스리는 메시야 왕국을 말합니다. 그 나라를 이루시는 분이며, 이스라엘을 통일시키시는 분이며, 바벨론 포로에서 고국으로 돌아오게 하신 분이신 하나님이 분열된 이스라엘을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야 왕국에서 하나로 통일시키십니다.
결국 이스라엘을 통일시키는 것은 이스라엘 자신이 아닌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나라의 통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교만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인간적인 생각을 내려놓고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음을 고백해야 합니다. 우리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께 의지해 우리는 민족의 통일을 위해 기도하고 전 민족이 복음화 되도록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복음으로 이 나라가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복음 전파는 단순히 교회 성장의 측면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 나라 민족 통일과도 연관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귀한 말씀으로써 우리나라가 먼저 복음화 된다면 통일은 더욱 더 빨리 이루어질 것입니다. 민족의 복음화가 우리를 진정으로 하나 되게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민족을 하나님이 다스려 주기를 기도하고, 진정한 통일의 전제조건인 복음으로 우리나라가 통일되기를 염원하며, 이 나라의 미래를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통일은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통일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우리는 이 점을 명심하고 교만하여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통일 운동을 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통일 운동의 주체는 바로 교회입니다. 한국 교회가 일치되지 않고서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통일 운동을 할 수 없습니다. 우리 성도가 먼저 교회의 일치를 위해 기도하며 통일 운동을 앞장 서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길 바랍니다.
출처/전병금목사 설교 중에서
제가 1986년 3월에 독일을 방문했을 때 독일에서 한인 목회를 하고 계시는 목사님들과 함께 베를린 동서독을 막고 있는 철의 장벽 앞에 서서 동서독의 분단이 마치 우리의 분단인 것만 같아 “우리 민족의 장벽인 3·8선과 함께 독일의 이 장벽을 무너뜨려 주시옵소서”하는 기도를 하고 돌아온 일이 있습니다. 제가 그런 기도를 마치고 돌아온 지 4년이 채 안된 1989년 가을에 독일은 통일되어 분단을 극복하고 나라가 하나가 되었다는 기쁨이 마치 거대한 분수가 솟구쳐 올라오듯 하였습니다.
제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나라인 독일은 유럽 전체의 평화를 위협하는 나라로 지목받고 분단이 오히려 유럽의 평화에 기여할 것이라고 판단되어 세계 열강은 강압적으로 동서독으로 양분시켜 분단을 고착화 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세계가 그들의 분단을 고착화 시키려고 노력하는 중에 갑자기 분단의 벽이 갈라져 버렸습니다.
그러나 독일의 통일은 그렇게 갑자기 온 것 같았지만 그들의 평화를 위한 피나는 기도와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하였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아직도 분단된 채 통일의 가능성이 전혀 보이지 않는 가운데 해방 후 62년이 지났습니다. 독일이 통일된 것이 독일 교회의 피나는 기도와 노력에 의해 가능하였듯이 우리나라의 통일도 우리 한국 교회의 피나는 기도와 노력에 의해 가능할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남북 교회는 모두 다 절실하게 깨닫고 이번 주일을 남북 교회가 함께 민족통일을 위해 기도하는 주일로 정하였습니다.
바벨론은 BC 605년에 남유다를 일차로 침입하였는데 이 때 다니엘이 바벨론으로 잡혀갔습니다. 바벨론은 이차로 BC 597년에 이차로 유다를 침입하였는데 이 때 여호와긴 왕과 에스겔이 사로잡혀 그발강 가로 옮겨졌습니다. 본문 말씀은 남유다가 바벨론 느부갓네살 임금의 침입으로 초토화되어 많은 사람들이 바벨론 포로로 끌려갔을 때, 거기에 섞여 포로로 끌려간 제사장 출신 에스겔에게 임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에스겔은 새로운 지도자, 땅의 회복, 성읍의 재건, 메시아 왕국의 풍요로움 등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청사진을 제시했지만 백성들의 반응은 회의적이었습니다. 많은 포로들 중에는 예루살렘의 멸망과 그들을 끌어온 바벨론의 왕성함을 보고 실망과 좌절에 빠져 버렸습니다. “왜 의로우신 하나님이 이런 일을 허락하시었는가?” “정말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가?” 이렇게 그들은 자조 섞인 질문과 한탄을 하였습니다.
이런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골짜기의 마른 뼈들이 부활하는 환상(겔 37:1-14)을 통하여 그리고 오늘의 본문 말씀인 두 막대기를 하나로 연합시키는 상징적인 행위를 통하여 에스겔은 불가능을 가능케 하시는 하나님의 위대하신 능력을 발견하여 절망에 빠진 백성들에게서 회복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담대하게 이스라엘의 회복을 선포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두 막대기중 하나에는 유다와 그 짝 이스라엘 이라고 쓰고 다른 하나에는 요셉과 그 짝 이스라엘이라고 써서 그 막대기를 서로 연합하여 둘이 하나가 되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 시대에 나라가 남유다와 북이스라엘로 분단되었고, 이 두 나라 중 북이스라엘은 BC 722년 앗수르에게, 남유다는 바벨론에게 예루살렘이 함락되어 BC 586년 망했습니다. 이처럼 국가가 망하여 백성들이 좌절해 있을 때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두 막대기를 하나로 합치라고 명령하여 이스라엘의 통일을 계시함으로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소망을 주었습니다.
분단이 50년이 넘게 지속되어 왔기 때문에 지금 우리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오래된 분단 때문에 통일에 대한 희망을 버리고 있고, 또 어떤 사람들은 통일 비용 때문에 서독의 경제가 무너지는 것을 보고 경제력의 차이가 엄청난 북한과 통일하는 것은 우리나라를 후진국으로 가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통일을 반대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비관적인 생각이 있기는 하지만 우리 민족 거의 모두는 통일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번 주일은 이러한 통일에 대한 염원을 되새기는 날입니다. 오늘 에스겔에게 임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통일을 염원하는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임하길 바랍니다.
1. 모든 일은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분단된 후 정부의 주도하에 통일 운동을 지속적으로 시행하여 민족 분단을 극복하려고 노력해 왔지만 정부 주도하의 통일 운동은 많은 한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합법성과 정통성을 인정받지 못한 많은 정치지도자들이 분단을 그들의 정권을 유지하거나 강화시키는 이데올로기로 사용해서 통일 운동은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였습니다. 그들은 본질적으로 통일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분단되어 있는 것이 그들의 군사정권을 유지하는 데 훨씬 도움이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분단 초기에는 한국전쟁이라는 엄청난 경험을 하였기 때문에 서로 간에 군사적인 차원에서 현대식 무기를 개발하여 군사력을 강화하였습니다. 따라서 통일운동은 말조차도 꺼낼 수 없었습니다. 당연히 이러한 소모적인 군비 경쟁은 남북 간에 더 큰 대립과 반목을 조장하였습니다.
군사정권은 이러한 소모적인 군비경쟁을 더욱 더 가속화했고 분단을 정권유지의 한 수단으로 삼았습니다. 그래서 민주화 운동이나 통일 운동은 그들 정권의 정당성을 위협하는 가장 큰 적이었습니다. 그래서 군사정권은 민주화 운동이나 통일 운동을 철저히 억눌렀습니다. 따라서 간간이 발표되는 성명서는 실현가능성 없는 화려한 독백에 불과한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정치적으로 밀사를 보내고 특명을 내리고 특단의 조처를 내려 보았지만 그러한 시도들이 사상과 이념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계속하여 갈등을 심화시킨 것은 당연한 역사적 결과라고 하겠습니다. 그들이 북한과 합의하여 선언한 합의서는 법적인 구속력이 전혀 없는 말장난에 불과한 것이었습니다. 오히려 ‘믿는 도끼에 발등찍힌다’고, 약속을 해 놓고 북한이 그 약속을 파기하는 바람에 이용만 당하고 뒤통수만 맞는 꼴이 되고만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은 정치인들이 해 낼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정치인들의 통일 운동은 순수하지가 않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통일 운동은 정치적 집권을 창출하는 수단이기 쉽습니다. 인도적인 차원에서 통일을 바라보기에는 정치인들은 너무나 말 그대로 정치적입니다.
우리나라는 분단 된지 62년이 지났지만 세계의 갈등지역으로 더 부각될 뿐 통일의 문은 열릴 기대를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통일이 우리 남북한 만의 문제라면 그래도 기대해 볼 수 있는데, 러시아, 중국, 미국 그리고 일본의 정치적 입장과도 얽혀 있어, 우리의 통일 문제는 국내문제가 아니라 골치아픈 국제문제가 된지 오래입니다. 통일을 둘러싼 문제가 이러한지라 통일만 생각하면 우리들의 마음은 답답함으로 가득찹니다. 적어도 중국과 미국이 타협할 수 없는 한 통일은 불가능할 것 같아 그만 포기해 버리고만 싶어집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우리들의 생각이지 하나님의 뜻은 아닙니다. 상황이 이처럼 어려울수록 우리는 겸손하게 우리의 지혜와 힘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하나님께 고백하고 오직 하나님만이 이 문제를 해결해 주신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2. 먼저 교회가 하나 되어야 합니다.
본문에서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그 막대기들을 서로 연합하여 하나가 되게 하라. 네 손에서 둘이 하나가 되리라”(17절)고 하셨습니다. 그 두 막대기가 ‘네 손에서’ 하나가 되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손’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일을 책임적으로 수행하는 사람이나 모임을 의미합니다. 바벨론 포로기 시절 에스겔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좌절에 빠진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로하고 희망을 주어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를 통일시키려고 했던 하나님의 ‘손’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상황 속에서 그 손은 교회를 의미합니다. 한국 교회가 우리 민족을 통일시키는데 책임지고 앞장서라는 것입니다. 정부, 학계 또는 민간단체가 아니라 교회가 민족의 통일을 위해 기도하고 준비하라는 것입니다. 이 점에서 민족 통일은 한민족 각자의 사명임과 동시에 우리 교회의 사명입니다.
독일 통일을 당시 서독의 콜(Kohl) 총리와 동독의 호네커(Honecker) 총리는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독일 교회의 노력은 두드러졌습니다. 독일이 분단되었을 때 동서독 교회는 하나의 연합체(EKD)를 분열시키지 않았습니다. 교회는 어느 이데올로기도 편들지 않고 영구분단을 반대하고 서독 교회의 헌금을 동독 교회에 제공하여 파트너 관계를 계속 유지시켜 일체성, 공동체성을 끝까지 공유하였고, 통일을 위한 기도를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동서독 교회가 공동체적 마음을 가지고 통일을 위해 여러 가지로 노력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통일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반도의 상황은 독일과 너무나 다릅니다. 독일은 공동체적 마음이 있었지만 한국은 그런 마음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우선, 남한의 교회와 북한의 교회 사이에 공동체적 마음이 없습니다. 이는 무엇보다도 정치적 원인에 기인합니다. 남북이 분단되면서 북한의 교회는 김일성 정권의 수많은 핍박으로 교회가 거의 폐쇄되었습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얼마 전 봉수교회와 칠골 교회가 겨우 문을 열어 남북한이 신앙적으로 조금이나마 교류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남북한 교회의 일치를 위해 이것은 작지만 매우 소중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북에 있는 교회가 작은 교회에 불과하지만 남한 교회와 일정한 교류를 할 수 있게 됨으로써 남한 교회와 북한 교회의 공동체성 회복을 위해 중요한 계기를 마련했지만, 이 보다 더 큰 문제는 남한의 교회가 수 없이 많은 교파로 분열되어 아직도 연합과 일치를 이루지 못하고 있어서 통일을 위해 기도할 때도 한 목소리를 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무엇이 그렇게 자신의 교파가 옳은지 자신의 교파의 우월성만 내세우고 다른 교파의 교회는 이단시하고 있으니, 이렇게 서로를 믿지 못하고 있는 처지에 어떻게 한마음으로 민족 통일을 위해 기도할 수 있는지 위선이 아닐 수 없습니다. 먼저 교회들이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가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것은 교회가 단일 교파로 통일되어야 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각각의 교파의 전통을 무시하고 하나의 교파로 통일시키자는 것은 독재주의적 사고입니다. 각각의 교파의 역사적 전통들은 최대한 존중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한국의 수많은 교파들은 그러한 교파의 성립이 성서적 근거에 기인한다기보다는 교파정치적 권력 싸움에 기인한 것이기에 합법성이 인정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최소한 사도신경을 똑같이 고백하고, 예수를 그리스도라 고백하는 교회들이 그들 자신의 각각의 전통들을 소유하면서도 공통된 고백으로서 그들을 묶을 수 있는 하나의 연합체라도 만들어서 복음의 전파와 민족통일 문제와 신앙문제를 함께 해결해 나가자는 것입니다. 여기에 하나님께서 역사해 주실 것입니다.
3. 결국 하나님께서 이 민족에 통일을 주실 것입니다.
본문에서 두 막대기가 에스겔 손에서 하나가 되는 것처럼 한국 민족의 통일은 교회 안에서 될 것입니다. 이는 한국 교회가 능력 있어서 통일을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달린 것입니다. 에스겔이 하나님의 손에 붙잡혀야 되는 것처럼 한국교회가 하나님의 손에 붙잡혀야 합니다.
“그 고토로 돌아가게 하고”(21절)하는 것은 이스라엘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바벨론에 나라를 강탈당하여 포로로 끌려간 힘없는 이스라엘이 어떻게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까? 이스라엘이 스스로의 힘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까? 아니면 다른 그 누군가에 의해 돌아가게 된다는 것입니까? 성서는 분명하게 후자라고 못 박고 있습니다. “내가 ... 돌아가게 하고”(21절). 귀환은 오직 하나님의 손에 의해서만 가능합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그 땅 이스라엘 모든 산에서 그들로 한 나라를 이루어서 한 임금이 모두 다스리게 하리니”(22절). 하나님이 세우신 이 왕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하나님은 “내 종 다윗이 영원히 그 왕이 되리라”(25절)고 하셨는데 여기서 다윗은 곧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 나라는 곧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가 다스리는 메시야 왕국을 말합니다. 그 나라를 이루시는 분이며, 이스라엘을 통일시키시는 분이며, 바벨론 포로에서 고국으로 돌아오게 하신 분이신 하나님이 분열된 이스라엘을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야 왕국에서 하나로 통일시키십니다.
결국 이스라엘을 통일시키는 것은 이스라엘 자신이 아닌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나라의 통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교만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인간적인 생각을 내려놓고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음을 고백해야 합니다. 우리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께 의지해 우리는 민족의 통일을 위해 기도하고 전 민족이 복음화 되도록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복음으로 이 나라가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복음 전파는 단순히 교회 성장의 측면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 나라 민족 통일과도 연관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귀한 말씀으로써 우리나라가 먼저 복음화 된다면 통일은 더욱 더 빨리 이루어질 것입니다. 민족의 복음화가 우리를 진정으로 하나 되게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민족을 하나님이 다스려 주기를 기도하고, 진정한 통일의 전제조건인 복음으로 우리나라가 통일되기를 염원하며, 이 나라의 미래를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통일은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통일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우리는 이 점을 명심하고 교만하여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통일 운동을 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통일 운동의 주체는 바로 교회입니다. 한국 교회가 일치되지 않고서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통일 운동을 할 수 없습니다. 우리 성도가 먼저 교회의 일치를 위해 기도하며 통일 운동을 앞장 서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길 바랍니다.
출처/전병금목사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