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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무한 인생 (야고보서 4: 14- 16)
헤밍웨이가 쓴 「노인과 바다」라는 책에는 바다에서 물고기 한 마리를 잡기 위해 온갖 고생을 다하는 노인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는 바다에서 많은 날들을 기다리다가 천신만고 끝에 커다란 물고기를 잡았습니다. 그래서 노인은 그 물고기를 배에 매달고 항구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돌아와서 건져보니 오직 앙상한 뼈만 남아 있었습니다. 상어떼들이 습격하여 물고기를 다 뜯어먹어 버렸던 것입니다. 노인은 심한 허탈감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헛된 목표를 정하여 살아가는 우리 인간들의 허무한 삶을 상징적으로 말해주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라도 그가 일생을 바쳐 헌신한 일의 결과는 앙상한 물고기의 뼈와 같이 아무런 유익이 없을 뿐더러 허무하기까지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혼신의 힘을 다해 목숨을 걸고 직장과 사업터에서 생존 경쟁을 치르지만 그 결과는 잠시 있다가 사라지는 물거품과 같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자처하면서도 이런 헛된 세상적 목표를 향해 줄달음질 치면서 신앙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세상적인 거창한 목표를 달성하고자 애씁니다. 그러나 그 목적이 하나님의 뜻을 벗어나 자기 뜻과 자신의 목적대로 사는 인생은 결국 노인처럼 후회와 실망이 가득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돌이켜 유익하게도 못하며 구원하지도 못하는 헛된 것을 좇지 말라 그들은 헛되니라"(삼상12:21)
과거 러시아의 수도인 페체르부르크에 아까끼에비치라는 노인이 살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그 노인에게 “당신의 평생 소원이 무엇입니까?” 라고 묻기라도 하면 그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매번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내 인생의 목표는 아주 고급 외투를 갖는 것이오.” 그 노인은 인생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평생 동안 일하고 저축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그는 80 루블의 돈을 저축하여 꿈에 그리던 그 외투를 샀습니다. 그 날은 노인에게 성공한 날이자 목적을 이룬 날이었기에 큰 기대감과 흥분된 마음으로 가득 찼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는 외투를 사 가지고 집으로 돌아오다가 그만 강도를 만나서 비싼 고급 외투를 강탈당했습니다. 그 노인은 매우 절망했습니다. 단순히 고급 외투를 강탈당한 것이 아니라 그는 그의 성공을 강탈당하고 그의 행복을 강탈당했습니다. 그 날 이후 그 노인은 좌절의 늪에 빠졌고 너무 속상한 나머지 시름시름 앓다가 결국 죽고 말았습니다.
이 이야기는 고골리라는 사람이 쓴 단편소설 「외투」라는 소설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이 노인의 목표는 고급 외투였지만 좋은 아파트, 고급 승용차, 사회의 높은 자리 등 소유에서 인생의 행복을 찾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에리히 프롬이라는 심리학자는 “소유에 행복이 없다. 행복은 존재에 있다”고 말했습니다. 소유가 결코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하는데도 우리는 계속 속고 사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생각이 허무함을 아시느니라"(시94:11)
'스웨덴의 나이팅게일'이라 불려지는 제니 린드는 한때 오페라 가수로서 크게 성공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최정상의 자리에서 활동하고 있던 어느 날, 그녀는 홀연히 무대를 떠난 후 다시는 무대에 서지 않았습니다. 은퇴한 후 그녀는 많은 돈과 명성과 그리고 수많은 청중들의 갈채를 잃어버렸으나 혼자 사는 것에 만족했습니다.
어느 날 한 영국인 친구가 해변 모래사장에 앉아 있는 그녀를 발견했습니다. 그녀는 무릎에 성경을 펴놓고 석양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제니, 어떻게 당신은 그 최전성기에 무대에서 떠났나요?"
제니는 조용한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그때 나는 성경을 통해 매일 매일의 생활에서 내 자신에게 무엇인가 부족한 것이 있다고 느꼈어요."
제니는 성경 위에 손을 올려놓으며 이렇게 말한 후, 다시 말을 이었습니다.
"결국 나는 그와 같은 생활이 저 지는 해와 같다는 결론을 내렸어요. 그러니 제가 더 이상 무대에 설 수 있었겠어요?"
그녀는 손으로 지는 해를 가리키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인생은 지는 해와 같고 하나님이 없는 삶은 허무할 뿐입니다.
"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전1:2,3)
무역업을 크게 하는 남편을 둔 어떤 자매님의 이야기입니다.
“목사님, 우리 부부는 초년에는 숱한 고생을 했지만 이제는 살 만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한 달이면 열흘 이상을 외국에 나가 있고, 집에 돌아오더라도 너무나 바빠서 함께 대화를 나눈다든지 취미 생활을 한다든지 할 만한 여유가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혼자 있는 시간이 너무 많아, 남편이 외국에만 나가고 나면 마음이 허전해지고 바람기가 일어납니다. 이럴 때면 친구들이 전화를 걸어 오는데, 화투치러 모이자느니 춤추러 가자느니 하고 꾑니다.”
서울 시내에는 외국인 남자 클럽이 있는데, 이 사람들과는 아무리 바람을 피워도 소문이 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 사람들은 한국을 떠나면 그만이기 때문에 수많은 유한 부인들이 마음놓고 그들과 놀아납니다. 아무리 그들의 행위를 지탄한다 해도, 그들에게 참된 신앙이 없는 한 이런 사람들은 얼마든지 생겨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참신앙을 얻지 못한 사람들의 실상입니다. 믿는 자라 할지라도 뜨거운 신앙으로 주님의 뒤를 좇지 않는다면, 불분명한 신앙 태도로 인해 세상과 타협하게 됩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항상 우리의 신앙 상태를 점검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악인의 삯은 허무하되 의를 뿌린 자의 상은 확실하니라"(잠11:18)
미국 역사 중에 미국인들의 경종을 울렸던 사건이 하나 있었습니다. 1923년 어느 날 시카고에 있는 에드워드 비치호텔에서 그 당시 미국 최고의 부자라고 불리는 7명의 사람이 모였습니다. 그들의 부는 그들의 전 재산을 모두 합칠 때 미국 전체의 국고를 능가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신문 기자가 시카고에 모였던 그 날로 시작해서 정확히 25년이 지난 후의 그들의 생애가 어떻게 되었는지 추적하여 발표했습니다.
"첫 번째 사람이었던 강철회사 사장, 찰스 슈업은 25년 후 무일푼의 거지가 되어 죽었습니다.
두 번째 사람인 알써 카튼은 밀농사로 거부가 된 사업가였는데 그 역시 파산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쓸쓸하고 고독한 가운데 혼자 임종을 맞이했습니다.
세 번째 사람인 리차드 위트니는 뉴욕 은행의 총재였지만 자기를 둘러싼 여러 가지 상황이 잘못되어 감옥에서 고독하게 여생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네 번째 사람인 엘버트 홀은 미국이 재무장관까지 지냈지만 감옥에서 막 풀려 나와 집에서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다섯 번째 사람인 웰스프트의 회장이었던 J.C. 리버모아는 인생의 끝을 자살로 마쳤습니다.
여섯 번째 사람인 국제은행 총재였던 리온 프레이져 역시 자살로 자신의 삶을 마쳤습니다.
일곱 번째 사람인 이반 크루컬은 부동산 업계의 거부였지만 자살 미수로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인생은 미국인들에게 부의 허무를 알려주는 커다란 충격과 교훈이 되었습니다.
"죄악에 눈이 어두운 사람은 부자가 되는 데에만 바빠서, 언제 궁핍이 자기에게 들이닥칠지를 알지 못한다."(잠28:22)
미국의 대부호로 알려진 하워드 휴즈라는 분이 있었습니다. 이 분은 영화사, 방송국, 비행기 회사, 호텔, 도박장 등 50개 업체를 가진 경제계의 실력자이었습니다. 한 때는 헐리웃 영화배우들과 염문을 뿌리면서 많은 가십거리를 남기기도 했습니다. 그 배우들 가운데는 에바 가드너라는 당시 최고의 여배우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휴즈가 죽기 십 수년 전부터 결벽증을 앓게 되었습니다. 그는 심한 결벽증 때문에 사람들을 가까이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는 십 년 동안 무균 상태의 유리관을 만들어 놓고 외부와 차단된 채 그 안에서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 증세는 더욱 악화되어 자가용 비행기로 병원으로 가던 중에 사망을 했다고 합니다. 그는 1977년에 사망하면서 남긴 유산은 우리 돈으로 2조 4천억 원 정도로 그 당시에는 아무도 따를 수 없는 거액이었습니다.
휴즈가 남긴 마지막 말 한 마디는 너무나 유명합니다.
"Nothing. Nothing“(아무 것도 아니야. 아무 것도 아니야).
이 말을 반복하면서 그는 숨을 거두었습니다. 돈도, 미녀도, 명예도 죽어 가는 그에게는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네가 어찌 허무한 것에 주목하겠느냐 정녕히 재물은 날개를 내어 하늘에 나는 독수리처럼 날아가리라"(잠23:5)
탈세로 고발한 빌 휴즈씨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30년간 조선창에서 직공으로 일했습니다. 그러면서 16,800파운드를 저축했다고 합니다. 적은 봉급 생활로 이만한 저축을 하기 위하여 그가 살아 온 길을 보면, 과자를 산 일도 없고, 담배나 술도 안 했으며, 여자를 데리고 데이트도 안 했고, 면도는 형의 면도기를 사용하고 친할머니에게 돈을 꾸어주고 이자를 요구했으며, 밤일을 나갈 때에는 아버지의 구두를 신고 갔고, 꽃은 평생에 사본 일이 없으며, 간식도 안하고 영화구경은 평생에 꼭 한번만 갔었다고 합니다. 정말 한심한 사람입니다. 생명을 받은 목적이 어디에 있는지를 전혀 생각하지 않고, 은행의 저금통장 한 개만이 그의 인생이었으니 허무한 한평생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평생을 살면서 내 마음에 예수님을 담지 않는 인생은 허무한 인생입니다.
"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같이 다니고 헛된 일에 분요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취할는지 알지 멋하나이다"(시39:6)
서울시에 있는 어느 병원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입니다. 새벽에 몸집이 좋은 신사 한 사람이 심장마비로 병원에 실려 왔습니다. 친구들에 의해 업혀 온 이 신사를 급히 응급실로 옮겼지만 의사는 이미 심장마비로 죽었다고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의사는 죽어있는 이 사람을 보면서 의아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죽을 때는 일반적으로 손을 펴고 죽는데 이 시신은 오른손을 펴고 왼손은 꼭 쥔 상태였습니다. 죽은 사람을 싣고 온 친구들이 집으로 전화를 하고 부산을 떠는 동안 의사가 조용히 시신에게로 다가가 움켜쥔 손의 손가락을 하나씩 펴기 시작했습니다. 시신의 마지막 손가락이 의사에 의해서 펼쳐질 때 그의 손에서 화투 두 장이 떨어졌습니다. 그 두 장을 보는 순간 의사는 자신도 모르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어, 삼팔광땡이네" 사연은 이러했습니다. 이미 고인이 된 이 남자는 초상집에 가서 친구들과 어울려 밤새도록 화투를 쳤습니다. 새벽녘 가지고 간 돈을 모두 잃어갈 즈음 판돈이 잔뜩 쌓였는데 화투 두 장을 받아들고 살며시 펼쳐보니 삼팔광땡이었습니다. 일설에 의하면 이런 패가 나오면 약조에 따라서 이미 건 판돈의 세 배 이상을 거둬들이게 된다고 합니다. 그는 너무나 감격하고 놀란 나머지 화투 두 장을 미처 펼치지도 못한 채 "삼, 삼..."하다가 쇼크로 죽고만 것입니다. 아마 많은 사람들은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웃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들이 바로 이런 삶을 일상적으로 살아갈 때가 있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자신의 모습이며 하나님과 관계없이 살아가는 이 세상 사람들의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화투 두 장을 들고 말을 더듬다가 심장마비로 죽는 것이나, 화투보다 좀더 큰 땅 문서 서너 장을 들고 아등바등대다 유언도 못하고 죽는 것이나 다를 게 무엇입니까. 눈에 불을 켜고 판돈을 노려보며 자기 앞으로 던져지는 두 장의 화투장에 가슴을 두근대는 것이나, 좀더 편안하고 안락한 미래를 위하여 이 도시에서 장사하고 저 도시에서 물건을 팔아 이익을 보리라고 생각하며 잠못 이루는 것이 도대체 무슨 차이가 있단 말입니까?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숫군의 경성함이 허사로다"(시127:1)
본문에 보면 허탄한 자랑을 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자랑하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I. 성도의 세상 자랑
야고보서는 믿음으로 의롭게되는 의화의 삶보다 믿고난 이후 변화되어야 하는 성화의 삶에 초점을 맞추어 교훈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가운데 성화되어야 하는 것 중의 하나가 교회 안에서 세상자랑을 지나치게 하는 것입니다. 야고보는 이 세상사의 모든 허탄한 자랑은 악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우리의 생명은 이 땅위에서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와 같은 존재입니다. 이짧은 인생을 값있게 살기 위해서 우리가 꼭 명심해야 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허탄한 자랑을 삼가는 것입니다.
"자랑하는 자는 주안에서 자랑할찌니라"(고후 10: 17)
2. 허탄한 자랑을 극복하는 길
첫째, 내일이 당연히 나의 날인 것처럼 자랑하지 말 것
전도서 3장 1절에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습니다'. 날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오는 것과 가는 것은 우리의 뜻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뜻으로 왔다가 가는 것입니다. 내일은 나의 날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허락해 주시는 날입니다, 우리가 내일의 계획을 세울 때 내일의 주인되시는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겸손히 주님의 뜻을 물어보시는 성도가 되시길 바랍니다.
둘째, 나의 생각이 최고인 것인 양 자랑하지 말 것
성도는 나의 생각보다도 주님의 뜻을 먼저 찾아보아야 합니다. 어떤 계획을 세워도 '이것이 주의 뜻이면 내가 살기도 하고 이것을 행하리라'고 말해야 합니다. 이제까지는 주께서 허락하시든지 안 하시든지, 내 고집과 내 생각대로 살았다면 이제부터는 "주님이 허락하시면"이라는 전제하에 내일의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겸손한 사람은 매일매일 계획을 세우면서 나보다 먼저 주님을 생각합니다. 그리고 주님이 허락하시지 않는다는 확신이 올때는 아무리 그 일이 좋아 보여도 포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셋째, 이 세상의 모든 허탄한 자랑은 그 모양이라도 버릴 것
여기서 말하는 '허탄한 자랑'은 '현재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과장'해서 말하는 것입니다. 내일이 우리에게 있을지 확실치 않는데 내일까지 빌려서 자랑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허탄한 자랑은 언제나 그 속에 하나님이 빠져있고, 인간의 교만이 그 중심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십니다. 우리가 올바른 성화의 삶, 주님을 닮아 가는 삶을 살려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의 온전하심 같이 우리도 온전하도록"성화의 목표를 높이 세워야 합니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지혜로운 자는 그 지혜를 자랑치 말라 용사는 그 용맹을 자랑치 말라 부자는 그 부함을 자랑치 말라"(렘9: 23)
서울이 물난리를 겪었을 때의 일입니다. 어떤 크리스천 교수가 잠을 자다가 집안에 물이 쏟아져 들어오는 바람에 화들짝 잠에서 깨어 가족들과 밖으로 피했습니다. 너무나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미처 집안의 가구나 식기 옷가지 귀중품을 갖고 나올 여유가 전혀 없었습니다. 밖으로 나온 이 교수는 허탈한 마음으로 집을 바라보다가 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아, 죽음도 이렇게 맞겠구나. 세상에서 소유하고 있던 물질을 다 챙겨 가는 것이 아니라, 빈손으로 하나님 앞에 서겠구나"
사랑하는 이여, 이 세상의 헛된 것들을 추구하지 말고 영원한 길을 찾으세요.
"사람은 헛것 같고 그의 날은 지나가는 그림자 같으니이다"(시144:4)
세계를 지배하던 로마에서 15년을 왕위에 있던 네로 황제. 그가 살던 왕궁은 복도의 길이만도 1마일이나 되는 호화찬란한 궁성이었습니다. 집안의 모든 벽은 상아와 자개로 장식되었고 천정은 특별한 샤워장치가 붙어있어서 찾아오는 손님에게는 향수가 이슬처럼 포근히 뿌려지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네로 황제가 머리에 쓰고 있던 왕관은 오늘날의 미국 돈으로 10만 달러가 넘는 것이었고, 그가 사용하던 노새와 조롱 말은 은으로 장식된 신발을 신겼습니다. 그가 한 번 정식으로 출타할 때면 천명 정도의 군사와 마차와 말들이 뒤따랐으며, 네로 임금이 낚시질을 할 때에는 금으로 만든 낚시 바늘을 썼다고 합니다. 값비싸고 좋은 옷이 너무나 즐비하게 많았기 때문에 한 번 입었던 옷은 두 번 다시 입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처럼 세상의 극치의 부귀영화를 다 누렸지만 네로 황제는 결코 행복하거나 만족한 생활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렇기에 이 네로 임금은 허무와 공포 가운데서 스스로의 생명을 끊는 자살로 일생을 마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인생이란 안개와 같은 것입니다.
"속이는 말로 재물을 모으는 것은 죽음을 구하는 것이라 곧 불려다니는 안개니라"(잠21:6)
화무십일홍(化無十日紅)이란 말이 있습니다. 아무리 아름다운 꽃도 열흘 이상 그 자태를 유지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우리네 인생의 이치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절세가인일지라도 그 아름다움은 젊은 날의 순간이며 그 어떤 영웅호걸도 한때일 뿐입니다. 인생의 영광은 떨어지는 꽃과 같으며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다 지나가는 것들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영원한 것이 있습니다. 세상의 어떤 것과 비교할 수 없는 절대가치를 지닌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주님의 말씀(벧전 1:24)과 그 말씀대로 사는 성도(요일 2:17)입니다. 잠시 머무를 세상사람들과는 달리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영원한 삶을 살며 그 가치를 지닌 존재들입니다. 순간의 즐거움을 떠나 영원한 세계를 사모하며 살아야겠습니다. 영원을 준비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오늘도 인생의 모습을 바르게 보고 아름답게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한태완목사 설교 중에서
헤밍웨이가 쓴 「노인과 바다」라는 책에는 바다에서 물고기 한 마리를 잡기 위해 온갖 고생을 다하는 노인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는 바다에서 많은 날들을 기다리다가 천신만고 끝에 커다란 물고기를 잡았습니다. 그래서 노인은 그 물고기를 배에 매달고 항구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돌아와서 건져보니 오직 앙상한 뼈만 남아 있었습니다. 상어떼들이 습격하여 물고기를 다 뜯어먹어 버렸던 것입니다. 노인은 심한 허탈감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헛된 목표를 정하여 살아가는 우리 인간들의 허무한 삶을 상징적으로 말해주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라도 그가 일생을 바쳐 헌신한 일의 결과는 앙상한 물고기의 뼈와 같이 아무런 유익이 없을 뿐더러 허무하기까지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혼신의 힘을 다해 목숨을 걸고 직장과 사업터에서 생존 경쟁을 치르지만 그 결과는 잠시 있다가 사라지는 물거품과 같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자처하면서도 이런 헛된 세상적 목표를 향해 줄달음질 치면서 신앙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세상적인 거창한 목표를 달성하고자 애씁니다. 그러나 그 목적이 하나님의 뜻을 벗어나 자기 뜻과 자신의 목적대로 사는 인생은 결국 노인처럼 후회와 실망이 가득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돌이켜 유익하게도 못하며 구원하지도 못하는 헛된 것을 좇지 말라 그들은 헛되니라"(삼상12:21)
과거 러시아의 수도인 페체르부르크에 아까끼에비치라는 노인이 살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그 노인에게 “당신의 평생 소원이 무엇입니까?” 라고 묻기라도 하면 그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매번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내 인생의 목표는 아주 고급 외투를 갖는 것이오.” 그 노인은 인생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평생 동안 일하고 저축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그는 80 루블의 돈을 저축하여 꿈에 그리던 그 외투를 샀습니다. 그 날은 노인에게 성공한 날이자 목적을 이룬 날이었기에 큰 기대감과 흥분된 마음으로 가득 찼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는 외투를 사 가지고 집으로 돌아오다가 그만 강도를 만나서 비싼 고급 외투를 강탈당했습니다. 그 노인은 매우 절망했습니다. 단순히 고급 외투를 강탈당한 것이 아니라 그는 그의 성공을 강탈당하고 그의 행복을 강탈당했습니다. 그 날 이후 그 노인은 좌절의 늪에 빠졌고 너무 속상한 나머지 시름시름 앓다가 결국 죽고 말았습니다.
이 이야기는 고골리라는 사람이 쓴 단편소설 「외투」라는 소설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이 노인의 목표는 고급 외투였지만 좋은 아파트, 고급 승용차, 사회의 높은 자리 등 소유에서 인생의 행복을 찾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에리히 프롬이라는 심리학자는 “소유에 행복이 없다. 행복은 존재에 있다”고 말했습니다. 소유가 결코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하는데도 우리는 계속 속고 사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생각이 허무함을 아시느니라"(시94:11)
'스웨덴의 나이팅게일'이라 불려지는 제니 린드는 한때 오페라 가수로서 크게 성공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최정상의 자리에서 활동하고 있던 어느 날, 그녀는 홀연히 무대를 떠난 후 다시는 무대에 서지 않았습니다. 은퇴한 후 그녀는 많은 돈과 명성과 그리고 수많은 청중들의 갈채를 잃어버렸으나 혼자 사는 것에 만족했습니다.
어느 날 한 영국인 친구가 해변 모래사장에 앉아 있는 그녀를 발견했습니다. 그녀는 무릎에 성경을 펴놓고 석양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제니, 어떻게 당신은 그 최전성기에 무대에서 떠났나요?"
제니는 조용한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그때 나는 성경을 통해 매일 매일의 생활에서 내 자신에게 무엇인가 부족한 것이 있다고 느꼈어요."
제니는 성경 위에 손을 올려놓으며 이렇게 말한 후, 다시 말을 이었습니다.
"결국 나는 그와 같은 생활이 저 지는 해와 같다는 결론을 내렸어요. 그러니 제가 더 이상 무대에 설 수 있었겠어요?"
그녀는 손으로 지는 해를 가리키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인생은 지는 해와 같고 하나님이 없는 삶은 허무할 뿐입니다.
"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전1:2,3)
무역업을 크게 하는 남편을 둔 어떤 자매님의 이야기입니다.
“목사님, 우리 부부는 초년에는 숱한 고생을 했지만 이제는 살 만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한 달이면 열흘 이상을 외국에 나가 있고, 집에 돌아오더라도 너무나 바빠서 함께 대화를 나눈다든지 취미 생활을 한다든지 할 만한 여유가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혼자 있는 시간이 너무 많아, 남편이 외국에만 나가고 나면 마음이 허전해지고 바람기가 일어납니다. 이럴 때면 친구들이 전화를 걸어 오는데, 화투치러 모이자느니 춤추러 가자느니 하고 꾑니다.”
서울 시내에는 외국인 남자 클럽이 있는데, 이 사람들과는 아무리 바람을 피워도 소문이 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 사람들은 한국을 떠나면 그만이기 때문에 수많은 유한 부인들이 마음놓고 그들과 놀아납니다. 아무리 그들의 행위를 지탄한다 해도, 그들에게 참된 신앙이 없는 한 이런 사람들은 얼마든지 생겨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참신앙을 얻지 못한 사람들의 실상입니다. 믿는 자라 할지라도 뜨거운 신앙으로 주님의 뒤를 좇지 않는다면, 불분명한 신앙 태도로 인해 세상과 타협하게 됩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항상 우리의 신앙 상태를 점검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악인의 삯은 허무하되 의를 뿌린 자의 상은 확실하니라"(잠11:18)
미국 역사 중에 미국인들의 경종을 울렸던 사건이 하나 있었습니다. 1923년 어느 날 시카고에 있는 에드워드 비치호텔에서 그 당시 미국 최고의 부자라고 불리는 7명의 사람이 모였습니다. 그들의 부는 그들의 전 재산을 모두 합칠 때 미국 전체의 국고를 능가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신문 기자가 시카고에 모였던 그 날로 시작해서 정확히 25년이 지난 후의 그들의 생애가 어떻게 되었는지 추적하여 발표했습니다.
"첫 번째 사람이었던 강철회사 사장, 찰스 슈업은 25년 후 무일푼의 거지가 되어 죽었습니다.
두 번째 사람인 알써 카튼은 밀농사로 거부가 된 사업가였는데 그 역시 파산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쓸쓸하고 고독한 가운데 혼자 임종을 맞이했습니다.
세 번째 사람인 리차드 위트니는 뉴욕 은행의 총재였지만 자기를 둘러싼 여러 가지 상황이 잘못되어 감옥에서 고독하게 여생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네 번째 사람인 엘버트 홀은 미국이 재무장관까지 지냈지만 감옥에서 막 풀려 나와 집에서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다섯 번째 사람인 웰스프트의 회장이었던 J.C. 리버모아는 인생의 끝을 자살로 마쳤습니다.
여섯 번째 사람인 국제은행 총재였던 리온 프레이져 역시 자살로 자신의 삶을 마쳤습니다.
일곱 번째 사람인 이반 크루컬은 부동산 업계의 거부였지만 자살 미수로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인생은 미국인들에게 부의 허무를 알려주는 커다란 충격과 교훈이 되었습니다.
"죄악에 눈이 어두운 사람은 부자가 되는 데에만 바빠서, 언제 궁핍이 자기에게 들이닥칠지를 알지 못한다."(잠28:22)
미국의 대부호로 알려진 하워드 휴즈라는 분이 있었습니다. 이 분은 영화사, 방송국, 비행기 회사, 호텔, 도박장 등 50개 업체를 가진 경제계의 실력자이었습니다. 한 때는 헐리웃 영화배우들과 염문을 뿌리면서 많은 가십거리를 남기기도 했습니다. 그 배우들 가운데는 에바 가드너라는 당시 최고의 여배우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휴즈가 죽기 십 수년 전부터 결벽증을 앓게 되었습니다. 그는 심한 결벽증 때문에 사람들을 가까이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는 십 년 동안 무균 상태의 유리관을 만들어 놓고 외부와 차단된 채 그 안에서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 증세는 더욱 악화되어 자가용 비행기로 병원으로 가던 중에 사망을 했다고 합니다. 그는 1977년에 사망하면서 남긴 유산은 우리 돈으로 2조 4천억 원 정도로 그 당시에는 아무도 따를 수 없는 거액이었습니다.
휴즈가 남긴 마지막 말 한 마디는 너무나 유명합니다.
"Nothing. Nothing“(아무 것도 아니야. 아무 것도 아니야).
이 말을 반복하면서 그는 숨을 거두었습니다. 돈도, 미녀도, 명예도 죽어 가는 그에게는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네가 어찌 허무한 것에 주목하겠느냐 정녕히 재물은 날개를 내어 하늘에 나는 독수리처럼 날아가리라"(잠23:5)
탈세로 고발한 빌 휴즈씨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30년간 조선창에서 직공으로 일했습니다. 그러면서 16,800파운드를 저축했다고 합니다. 적은 봉급 생활로 이만한 저축을 하기 위하여 그가 살아 온 길을 보면, 과자를 산 일도 없고, 담배나 술도 안 했으며, 여자를 데리고 데이트도 안 했고, 면도는 형의 면도기를 사용하고 친할머니에게 돈을 꾸어주고 이자를 요구했으며, 밤일을 나갈 때에는 아버지의 구두를 신고 갔고, 꽃은 평생에 사본 일이 없으며, 간식도 안하고 영화구경은 평생에 꼭 한번만 갔었다고 합니다. 정말 한심한 사람입니다. 생명을 받은 목적이 어디에 있는지를 전혀 생각하지 않고, 은행의 저금통장 한 개만이 그의 인생이었으니 허무한 한평생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평생을 살면서 내 마음에 예수님을 담지 않는 인생은 허무한 인생입니다.
"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같이 다니고 헛된 일에 분요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취할는지 알지 멋하나이다"(시39:6)
서울시에 있는 어느 병원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입니다. 새벽에 몸집이 좋은 신사 한 사람이 심장마비로 병원에 실려 왔습니다. 친구들에 의해 업혀 온 이 신사를 급히 응급실로 옮겼지만 의사는 이미 심장마비로 죽었다고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의사는 죽어있는 이 사람을 보면서 의아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죽을 때는 일반적으로 손을 펴고 죽는데 이 시신은 오른손을 펴고 왼손은 꼭 쥔 상태였습니다. 죽은 사람을 싣고 온 친구들이 집으로 전화를 하고 부산을 떠는 동안 의사가 조용히 시신에게로 다가가 움켜쥔 손의 손가락을 하나씩 펴기 시작했습니다. 시신의 마지막 손가락이 의사에 의해서 펼쳐질 때 그의 손에서 화투 두 장이 떨어졌습니다. 그 두 장을 보는 순간 의사는 자신도 모르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어, 삼팔광땡이네" 사연은 이러했습니다. 이미 고인이 된 이 남자는 초상집에 가서 친구들과 어울려 밤새도록 화투를 쳤습니다. 새벽녘 가지고 간 돈을 모두 잃어갈 즈음 판돈이 잔뜩 쌓였는데 화투 두 장을 받아들고 살며시 펼쳐보니 삼팔광땡이었습니다. 일설에 의하면 이런 패가 나오면 약조에 따라서 이미 건 판돈의 세 배 이상을 거둬들이게 된다고 합니다. 그는 너무나 감격하고 놀란 나머지 화투 두 장을 미처 펼치지도 못한 채 "삼, 삼..."하다가 쇼크로 죽고만 것입니다. 아마 많은 사람들은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웃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들이 바로 이런 삶을 일상적으로 살아갈 때가 있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자신의 모습이며 하나님과 관계없이 살아가는 이 세상 사람들의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화투 두 장을 들고 말을 더듬다가 심장마비로 죽는 것이나, 화투보다 좀더 큰 땅 문서 서너 장을 들고 아등바등대다 유언도 못하고 죽는 것이나 다를 게 무엇입니까. 눈에 불을 켜고 판돈을 노려보며 자기 앞으로 던져지는 두 장의 화투장에 가슴을 두근대는 것이나, 좀더 편안하고 안락한 미래를 위하여 이 도시에서 장사하고 저 도시에서 물건을 팔아 이익을 보리라고 생각하며 잠못 이루는 것이 도대체 무슨 차이가 있단 말입니까?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숫군의 경성함이 허사로다"(시127:1)
본문에 보면 허탄한 자랑을 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자랑하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I. 성도의 세상 자랑
야고보서는 믿음으로 의롭게되는 의화의 삶보다 믿고난 이후 변화되어야 하는 성화의 삶에 초점을 맞추어 교훈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가운데 성화되어야 하는 것 중의 하나가 교회 안에서 세상자랑을 지나치게 하는 것입니다. 야고보는 이 세상사의 모든 허탄한 자랑은 악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우리의 생명은 이 땅위에서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와 같은 존재입니다. 이짧은 인생을 값있게 살기 위해서 우리가 꼭 명심해야 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허탄한 자랑을 삼가는 것입니다.
"자랑하는 자는 주안에서 자랑할찌니라"(고후 10: 17)
2. 허탄한 자랑을 극복하는 길
첫째, 내일이 당연히 나의 날인 것처럼 자랑하지 말 것
전도서 3장 1절에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습니다'. 날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오는 것과 가는 것은 우리의 뜻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뜻으로 왔다가 가는 것입니다. 내일은 나의 날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허락해 주시는 날입니다, 우리가 내일의 계획을 세울 때 내일의 주인되시는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겸손히 주님의 뜻을 물어보시는 성도가 되시길 바랍니다.
둘째, 나의 생각이 최고인 것인 양 자랑하지 말 것
성도는 나의 생각보다도 주님의 뜻을 먼저 찾아보아야 합니다. 어떤 계획을 세워도 '이것이 주의 뜻이면 내가 살기도 하고 이것을 행하리라'고 말해야 합니다. 이제까지는 주께서 허락하시든지 안 하시든지, 내 고집과 내 생각대로 살았다면 이제부터는 "주님이 허락하시면"이라는 전제하에 내일의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겸손한 사람은 매일매일 계획을 세우면서 나보다 먼저 주님을 생각합니다. 그리고 주님이 허락하시지 않는다는 확신이 올때는 아무리 그 일이 좋아 보여도 포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셋째, 이 세상의 모든 허탄한 자랑은 그 모양이라도 버릴 것
여기서 말하는 '허탄한 자랑'은 '현재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과장'해서 말하는 것입니다. 내일이 우리에게 있을지 확실치 않는데 내일까지 빌려서 자랑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허탄한 자랑은 언제나 그 속에 하나님이 빠져있고, 인간의 교만이 그 중심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십니다. 우리가 올바른 성화의 삶, 주님을 닮아 가는 삶을 살려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의 온전하심 같이 우리도 온전하도록"성화의 목표를 높이 세워야 합니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지혜로운 자는 그 지혜를 자랑치 말라 용사는 그 용맹을 자랑치 말라 부자는 그 부함을 자랑치 말라"(렘9: 23)
서울이 물난리를 겪었을 때의 일입니다. 어떤 크리스천 교수가 잠을 자다가 집안에 물이 쏟아져 들어오는 바람에 화들짝 잠에서 깨어 가족들과 밖으로 피했습니다. 너무나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미처 집안의 가구나 식기 옷가지 귀중품을 갖고 나올 여유가 전혀 없었습니다. 밖으로 나온 이 교수는 허탈한 마음으로 집을 바라보다가 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아, 죽음도 이렇게 맞겠구나. 세상에서 소유하고 있던 물질을 다 챙겨 가는 것이 아니라, 빈손으로 하나님 앞에 서겠구나"
사랑하는 이여, 이 세상의 헛된 것들을 추구하지 말고 영원한 길을 찾으세요.
"사람은 헛것 같고 그의 날은 지나가는 그림자 같으니이다"(시144:4)
세계를 지배하던 로마에서 15년을 왕위에 있던 네로 황제. 그가 살던 왕궁은 복도의 길이만도 1마일이나 되는 호화찬란한 궁성이었습니다. 집안의 모든 벽은 상아와 자개로 장식되었고 천정은 특별한 샤워장치가 붙어있어서 찾아오는 손님에게는 향수가 이슬처럼 포근히 뿌려지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네로 황제가 머리에 쓰고 있던 왕관은 오늘날의 미국 돈으로 10만 달러가 넘는 것이었고, 그가 사용하던 노새와 조롱 말은 은으로 장식된 신발을 신겼습니다. 그가 한 번 정식으로 출타할 때면 천명 정도의 군사와 마차와 말들이 뒤따랐으며, 네로 임금이 낚시질을 할 때에는 금으로 만든 낚시 바늘을 썼다고 합니다. 값비싸고 좋은 옷이 너무나 즐비하게 많았기 때문에 한 번 입었던 옷은 두 번 다시 입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처럼 세상의 극치의 부귀영화를 다 누렸지만 네로 황제는 결코 행복하거나 만족한 생활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렇기에 이 네로 임금은 허무와 공포 가운데서 스스로의 생명을 끊는 자살로 일생을 마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인생이란 안개와 같은 것입니다.
"속이는 말로 재물을 모으는 것은 죽음을 구하는 것이라 곧 불려다니는 안개니라"(잠21:6)
화무십일홍(化無十日紅)이란 말이 있습니다. 아무리 아름다운 꽃도 열흘 이상 그 자태를 유지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우리네 인생의 이치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절세가인일지라도 그 아름다움은 젊은 날의 순간이며 그 어떤 영웅호걸도 한때일 뿐입니다. 인생의 영광은 떨어지는 꽃과 같으며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다 지나가는 것들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영원한 것이 있습니다. 세상의 어떤 것과 비교할 수 없는 절대가치를 지닌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주님의 말씀(벧전 1:24)과 그 말씀대로 사는 성도(요일 2:17)입니다. 잠시 머무를 세상사람들과는 달리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영원한 삶을 살며 그 가치를 지닌 존재들입니다. 순간의 즐거움을 떠나 영원한 세계를 사모하며 살아야겠습니다. 영원을 준비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오늘도 인생의 모습을 바르게 보고 아름답게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한태완목사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