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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과 헌신 (창41:46~57)
인생은 누구에게나 단 한 번뿐입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누구라도 인생을 두 번, 세 번 살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람은 누구나 인생을 잘 살아보려고 애를 씁니다. 그런데 잘 산다는 게 과연 무엇일까요? 많은 사람들은 단지 세상에서 성공하고 잘 사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보다 많은 재물을 모으고, 보다 높은 권세를 차지하고, 보다 화려한 명성을 얻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물론 이런 게 “무조건 나쁘다!” 이렇게 말씀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런 것들만 갖고 인생을 잘 살았다, 못 살았다고 판단할 수는 없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그런 성공을 했다 할지라도 인생이 잘못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입니다.
인생을 잘 살았다면 적어도 후회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도 나중에 가서 “어, 이게 아닌데 ... ”하면서 후회한다면 결코 잘 산 인생은 아닐 겁니다. 그래서 저는 인생을 잘 살았다는 것은 ‘후회 없는 인생’을 말하고, 그것은 세속적인 성공과 구분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성공’이란 말 대신 ‘승리’라는 말을 선호합니다. 말하자면 ‘성공한 인생’보다 ‘승리한 인생’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승리한 인생은 혹시 소박하다는 아쉬움은 있을지 몰라도 최소한 후회가 없는 인생입니다.
그러면 과연 어떤 인생이 후회 없는 인생, 승리의 인생일까요? 적어도 세 가지 요소- 영생, 기쁨, 보람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만일 세상에서 아무리 성공해도 영생을 얻지 못하고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면 후회 막심한 인생입니다. 아무리 남 보기에 화려해 보여도 기쁨이 없다면 불행한 겁니다. 참 기쁨이 있어야 행복한 인생(Happy Life)입니다.
그리고 아무리 많은 것을 소유했다 해도 보람이 없으면 허무한 인생입니다. 인생의 보람이 있어야 의미있는 인생(Meaningful Life)입니다. 영생을 얻고, 행복한 인생 의미있는 인생을 살아야 비로소 승리한 인생이요 후회없는 인생이 되는 겁니다.
요셉이 바로 그런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는 한 번뿐인 소중한 인생을 정말 잘 살았습니다. 그리고 승리했습니다. 그러면 과연 요셉이 어떻게 그런 인생을 살 수 있었을까요? 믿음으로 살았기 때문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지적하면 믿음으로 헌신의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헌신하는 인생이 승리의 인생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이 원리를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헌신하는 인생을 배우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영원히 후회없는 승리의 인생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1] 요셉의 성공 : 권세와 부귀영화
요셉은 세상적인 기준으로 볼 때 분명 성공한 사람이었습니다. 소싯적에는 고생을 많이 했지만, 나중에는 세상에서 권세도 얻었고 부귀영화도 누렸습니다. 그가 애굽의 총리가 되었다는 사실 한 가지만으로도 넉넉히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당시 애굽은 강대국 중에 초강대국입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미국 같은 나라라고 보면 됩니다. 그런 나라의 총리가 됐는데, 그때 나이가 30세였습니다. 46절. “요셉이 애굽 왕 바로 앞에 설 때에 삼십 세라 그가 바로 앞을 떠나 애굽 온 땅을 순찰하니”
더욱이 요셉은 그냥 총리가 아니라, ‘실세 총리’요 ‘종신 총리’였습니다. 바로 왕이 있었지만 실권은 요셉에게 넘어갔습니다. 그는 천하를 호령하면서 30세부터 110세까지 무려 80년을 그렇게 살았습니다. 성공도 보통 성공이 아닙니다.
성경은 요셉의 권세와 부귀영화가 얼마나 대단한 것이었는지 증거합니다. 창41:39~45에 요셉이 애굽을 총리로서 누렸던 권세와 부귀영화가 묘사되어 있습니다. 40절. “ ... 내가 너보다 높은 것은 내 왕좌뿐이니라” 바로 왕이 자기는 상징적 존재에 불과하고 실권은 요셉에게 있다고 선언한 겁니다. 42절. “자기의 인장 반지를 빼어 요셉의 손에 끼우고 그에게 세마포 옷을 입히고 금 사슬을 목에 걸고” 인장 반지는 옥쇄 같은 건데 바로 왕이 요셉에게 넘겨줍니다. 그리고 최고급 세마포 옷을 입혀 주고, 금사슬을 목에 걸어줍니다. 43절. “자기에게 있는 버금 수레에 그를 태우매 무리가 그의 앞에서 소리 지르기를 엎드리라 하더라 ... ” 버금 수레는 요즘으로 말하면 왕이 타는 승용차와 동종의 자동차(2호차)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요셉이 행차하면 모든 백성이 엎드려 절합니다. 45절. “그가 요셉의 이름을 사브낫바네아라 하고 또 온의 제사장 보디베라의 딸 아스낫을 그에게 주어 아내로 삼게 하니라 ... ” 바로왕은 요셉에게 애굽식 이름을 하사하고, 애굽 최고 명문가의 규수와 결혼시켜서 가정을 이루게 했습니다.
여러분, 어떻습니까? 정말 대단하지 않습니까? 세상에 누가 과연 이보다 더 큰 권세와 더 화려한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겠습니까? 엄청난 성공의 인생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명심할 게 있습니다. 성경에 그의 인생이 기록된 것은 이런 성공 스토리 때문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거듭 말씀드리거니와 세속적인 성공이 무조건 인생 승리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요셉이 성공한 게 나쁘지 않지만, 만일 그가 그 성공을 갖고 인생을 잘못 살았다면 별 게 아니었을 겁니다. 그 권세를 갖고 영생을 얻지 못했다면, 그 부귀영화를 가지고 기쁨과 보람을 얻지 못했다면, 그래서 행복한 인생 의미있는 인생을 살지 못했다면 결코 승리한 인생이 아니었을 겁니다. 차라리 세상에서 성공하지 못하고 소박한 모습으로 살았다 할지라도 행복하고 의미있는 인생을 사는 편이 훨씬 나은 것입니다.
[2] 요셉의 승리 : 감사와 헌신 - 행복한 인생, 의미있는 인생
많은 사람들이 세상에서 성공하고서도 인생에서 실패하는 경우를 자주 봅니다. 심지어 신앙인들 중에도 그런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다행히 요셉은 고난의 때에도 신앙을 지켰고, 세상에서 성공한 후에도 신앙을 잘 지켰습니다. 말하자면 요셉의 신앙은 환경의 변화에 휘둘리지 않는 ‘전천후 신앙’(All-Weather Faith)이었습니다.
잠언 30장을 보면 유명한 ‘아굴의 기도’가 나옵니다. 이 기도를 보면 환경 조건에 따라 신앙이 흔들릴 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어쩌면 성공했을 때 신앙이 잘못되는 경우가 가 많을지도 모릅니다. 잠30:8~9 “8 ...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 9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둑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 아굴은 풍요의 때나 궁핍의 때나 믿음을 지킬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
요셉은 아굴의 기도를 이룬 사람입니다. 어떤 환경과 조건에서도 신앙이 흔들리거나 변질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또 바울이 증거한 바 ‘자족(自足)의 신앙’과 일맥상통하는 겁니다. 빌4:11~12 “11 ...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12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① 감사의 삶 - 행복한 인생 :
요셉은 성공한 후에도 늘 감사하는 신앙을 갖고 살았습니다. 교만해지거나 우쭐대지 않았습니다. 그가 가정을 이루고 낳은 두 아들의 이름을 보면 그의 성숙한 신앙을 엿볼 수 있습니다.
51절. “요셉이 그의 장남의 이름을 므낫세라 하였으니 하나님이 내게 내 모든 고난과 내 아버지의 온 집 일을 잊어버리게 하셨다 함이요” 그의 장남 이름이 므낫세인데, ‘잊어버리다'(to forget)라는 뜻으로 명명된 이름입니다. 그는 장남을 낳고 과거의 모든 고난을 잊어버렸습니다. 괴롭혔던 사람들 다 용서하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했습니다.
52절. “차남의 이름을 에브라임이라 하였으니 하나님이 나를 내가 수고한 땅에서 번성하게 하셨다 함이었더라” 그의 차님의 이름은 에브라임인데, ‘번성’ ‘풍성’(fruitful)이란 뜻으로 명명된 이름입니다. 그는 차남을 낳고 그토록 축복하시고 번성하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했습니다.
이러한 감사 신앙이 요셉이 행복한 인생을 살았다는 증거입니다. 사람이 행복한 것은 환경 조건으로 되는 게 아닙니다. 감사할 때에 행복해집니다. 아무리 좋은 환경과 조건을 갖고 성공한 사람이라도 감사할 줄 모르면 여전히 불행합니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습니다. 감사하지 못하고 욕심이 계속 커지면 아무리 큰 성공을 거둔 사람도 결코 행복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감사의 신앙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늘 행복한 인생을 사시기 바랍니다.
② 헌신의 삶 - 행복한 인생 & 의미있는 인생 :
행복한 인생이 좋지만, 인간은 그보다 더 높은 가치를 추구하는 존재입니다. 즉 보람 있는 인생 의미있는 인생을 추구합니다. 그래서 인간을 가리켜 ‘의미 지향적 존재’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인생을 위해서는 감사의 삶을 넘어 헌신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요셉은 감사하는 신앙이 있었지만 거기서 머물지 않았습니다. 그는 헌신의 신앙을 갖고 살았습니다. 그가 총리가 된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총리가 된 후 그 권세를 갖고 하나님께 헌신했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그가 부자가 된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부자가 된 후에 그 재물을 갖고 하나님께 헌신했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요셉은 바로 왕의 꿈을 통해 파악한 대로 7년 풍년, 7년 흉년을 잘 대비했습니다. 풍년의 때에 양식을 많이 저장해 두었습니다. 그 후 흉년이 닥치자 그 양식을 방출해서 애굽의 백성들, 심지어 주변의 많은 나라의 백성들에게 싼 값에 공급해 주었습니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정부미를 방출한 겁니다. 56절~57절. “56 온 지면에 기근이 있으매 요셉이 모든 창고를 열고 애굽 백성에게 팔새 애굽 땅에 기근이 심하며 57 각국 백성도 양식을 사려고 애굽으로 들어와 요셉에게 이르렀으니 기근이 온 세상에 심함이었더라”
더욱 중요한 것은 가나안 땅에 거주하던 동족 이스라엘을 흉년으로부터 구원해 준 것입니다. 그리고 애굽 이민을 배려한 것입니다. 창47:27 “이스라엘 족속이 애굽 고센 땅에 거주하며 거기서 생업을 얻어 생육하고 번성하였더라” 요셉은 이스라엘이 고센 땅에 머물도록 조치했는데, 그곳에서 번성할 뿐 아니라 장차 출애굽을 통해 민족 국가를 이루도록 준비한 것입니다. 총리의 권세를 갖고 하나님의 선한 뜻을 위해 멋지게 헌신했던 것입니다.
요셉은 결코 권세를 이용해서 더 큰 권세나 재산을 끌어 모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백성들을 섬겼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선한 뜻이었습니다. ‘헌신의 삶’이 바로 그런 겁니다. 사리사욕만 채우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뜻을 위해 자신의 소유(권세, 재물, 시간, 재능)를 선용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헌신의 삶을 살 때 인간은 기뻐할 수 있고 보람을 느끼게 됩니다. 이게 진정 행복한 인생 의미있는 인생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여러분 중에도 들어보신 분이 있겠지만, 테레사 효과(Teresa Effect)라는 게 있습니다.
인도 캘커타에서 빈민 선교에 헌신했던 마더 테레사의 이름을 따서 명명한 의학적 효과를 말합니다. 하버드대에서 이런 실험을 했답니다. 의대생들에게 봉사 활동을 시킨 후 검사해 보니까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인체 속에 바이러스와 싸우는 면역 기능이 향상되었다는 겁니다. 봉사 활동을 하고, 심지어 그런 장면을 보거나 그런 이야기를 듣기만 해도, 심지어 연상만 해도 어느 정도 그런 효과가 나타난다는 사실입니다. 헌신의 삶을 살면 기쁨이 넘친다는 사실을 증명해 주는 연구 결과입니다.
또한 미국의 석유 재벌 록펠러(John Davison Rockefeller 1839∼1937)의 이야기도 이런 사실을 증거해 줍니다. 그는 53세에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55세에 불치병으로 사형 선고를 받게 됩니다. 앞으로 1년 정도밖에 살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세상의 성공을 위해 줄기차게 달려왔는데, 그리고 이제 성취했는데 이게 뭔가 하는 회한이 밀려와 괴로워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검진을 받으러 휠체어 타고 병원 복도를 지나가다 벽에 걸린 액자에 적혀 있는 성구(聖句)를 보게 됩니다. “받는 자보다 주는 자가 복이 있도다!” 그 말씀을 보는 순간 마음에 전율이 느껴지고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그 때 마침 소란한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알아보니까 병원비가 없는 소녀 환자의 어머니가 병원 직원에게 울며불며 통사정을 하는 소리였습니다. 너무 딱해서 비서를 시켜 은밀하게 병원비를 지불해 줍니다. 그 후 소녀가 회복되어 퇴원하는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며 그는 매우 기뻐합니다. 그런 기쁨은 평생 처음이었습니다. 회고해 보니 자신이 어려서부터 신앙생활을 해 왔지만, 지금까지 축복만 구하며 달려왔지 남에게 베푸는 헌신의 삶이 없었습니다. 이때부터 그의 자선 사업이 왕성하게 시작됩니다. 교회를 세우고, 학교와 병원, 사회복지 기관을 세우는 등 엄청난 기부 활동을 합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헌신의 삶을 추구하면서 불치병이 완전히 치유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 후 98세까지 건강하게 장수했습니다. 후일 그는 자서전에 이렇게 기록합니다. . “내 인생 전반에는 쫓기며 살았다. 그러나 후반에는 너무 행복하고 보람있는 인생을 살았다.” 헌신의 삶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 깨우쳐 주는 일화입니다.
[3] 승리의 인생을 위한 신앙 자세
우리는 요셉처럼 여러 신앙의 선배들처럼 헌신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신앙생활이 여기까지 이르러야 합니다. 그저 개인적으로 편하게 안일하게 살다가 천국 가는 게 능사가 아닙니다.
① 청지기임을 명심하십시오!
벧전4:10 “각각 은사(gift)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as good stewards - KJV) 서로 봉사하라" 이 말씀대로 우리는 청지기입니다.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모든 것들은 하나님께서 잠시 위탁하신 겁니다. 언젠가 회수할 날이 있을 겁니다. 인간은 청지기에 불과합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소유권은 업고 관리권만 있는 겁니다. 그러므로 청지기로서 하나님의 선한 뜻을 위해 충성을 다해야 합니다. 이게 곧 청지기 정신(Stewardship)입니다. 이런 청지기 정신을 가지고 늘 감사하고, 하나님의 선한 뜻 즉 복음 전파와 사랑 실천 등을 위해 헌신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② 소유를 선용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소유에는 크게 세 가지가 있습니다. 재물(Treasure), 시간(Time), 재능(Talent) 등입니다.(3 T's) 이런 것들은 인생의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요 도구에 불과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여기서 착오를 일으킵니다. 수단을 목적으로 오해하고 이런 것들을 줄기차게 달려갑니다. 그것을 성취하면 성취하는 대로 행복하지 못하고, 성취하지 못하면 못하는 대로 행복하지 못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인간은 하나님 앞에 감사하며 헌신할 때 기뻐할 수 있습니다. 보람을 느낍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생 가운데 하나님의 선한 뜻을 위해 쓰임 받는 게 중요합니다. 롬6:13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instruments)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instruments)로 하나님께 드리라” 우리의 몸과 마음 전 소유가 하나님의 무기 곧 하나님의 선한 도구로 쓰여야 된다는 말씀입니다.
잘 생각해 보면 정말 그렇습니다. 모든 것은 그것을 소유하는 것 자체보다 어떤 목적에 쓰이느냐에 따라 그 가치가 결정됩니다. 말하자면 소유 가치는 허상입니다. 진짜 가치는 사용 가치입니다. 예를 들어 피아노 한 대 있다고 합시다. 만일 그냥 두고 쓰지 않으면 어떻습니까? 가구만도 못하죠. 잘못 연주하면 소음입니다. 오직 좋은 연주자가 좋은 음악을 연주할 때 비로소 가치가 있는 겁니다.
아무리 많은 것을 소유해도 사용하지 않으면(不用) 헛것입니다. 오용(誤用)하거나 남용(濫用)하면 해가 됩니다. 오직 선용(善用)할 때 가치가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모든 소유는 언젠가 평가되고 심판받게 됩니다. 그런 점에서 소유는 축복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사명이요 책임입니다.
에스더를 보면 이런 사실이 강조되어 있습니다. 에스더는 당시 바사 왕국의 왕비입니다. 본래 고아 출신으로 사촌 오빠 모르드개의 보호 아래 잘랐습니다. 그런데 간신 하만의 흉계로 유다 민족이 학살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그 때 모르드개는 사람을 보내 에스더에게 부탁합니다. 왕을 찾아가 위기를 해결해 보라고 촉구한 것입니다. 그런데 당시 국법 상 왕비라도 왕이 부르지 않은 가운데 찾아 갔다 밉보이면 죽임을 당할 수도 있었습니다. 에스더는 망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자 모르드개가 에스더에게 뭐라고 도전합니까? 에4:14 “ ...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네가 잘 나서 왕비 됐냐?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혼자서 호의호식하고 떵떵거리며 살라는 거냐? 그게 아니다. 이럴 때 하나님을 위해 민족을 위해 던져야 한다! 그런 뜻입니다. 결국 에스더는 결단했고 승리를 거둡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진짜 축복은 소유 자체가 아닙니다. 그것을 선용하는 지혜까지 얻어야 진짜 축복이 되는 겁니다. 그래야 진정 승리하는 인생이 될 수 있습니다.
③ 영원한 이름을 위해 사십시오!
사람은 이 세상에서만 사는 게 아닙니다. 영원한 내세가 있습니다. 그러기에 예수 믿고 천국에 가야합니다. 그런데 똑같이 천국에 들어가도 지상에서 인생을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 ‘영원한 이름’이 각각 다릅니다. 진짜 승리는 영원한 이름이 빛나는 겁니다. 세상에서 반짝 하는 건 별 게 아닙니다. 다 흘러가고 사라지는 겁니다. 단12:3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
그러므로 우리는 기왕에 신앙생활 하는 것인데 영원히 빛나는 이름을 위해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오직 헌신의 삶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요셉이 성경에 소개되고 천국에서 빛나는 이름이 된 것은 그가 세상에서 성공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헌신의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봉천동 슈바이처’ 윤주홍 장로님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본래 국문과를 졸업했는데, 특별한 기회에 소명을 받아 의사가 된 분입니다. 30여년 전 청계천 철거민들이 봉천동에 이주해서 판자촌을 이루고 살았습니다. 병원도 없고 돈도 없는 동네였습니다. 그런데 그는 그 사실을 전혀 몰랐는데 어느 날 버스를 타고 가다 타이어에 펑크가 나서 중간에 내렸는데 바로 그런 동네였던 겁니다. 사방이 판자집인데, 박스로 만든 어느 집에 사람의 발이 나와 있어 죽은 사람인 줄 알고 놀랐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까 쪽방에 다섯 식구가 자고 있는데, 키 큰 아들의 발이 나와 있었던 겁니다. 그 광경을 보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는 그때 결단합니다. “지금까지는 나를 위해 살았는데, 앞으로는 남을 위해서도 살자.” 그는 의대에 편입했고 졸업 후 그 동네에 의원을 세웠습니다. 저렴한 비용으로 치료해 주고, 가난한 주민에게는 무료로 진료를 해주었습니다. 정기적으로 서해안 섬들을 순회하며 진료 봉사를 하고, 나중에는 장학회를 설립해서 가난한 학생들을 후원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의료계에서 명성 있는 의사는 아닐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시기에 영원히 빛나는 이름을 가진 인생일 겁니다. 우리 각자에 각계각층에서 형편에 맞게 최선을 다해 이와 같은 헌신의 삶을 살 때 영원히 빛나는 이름을 갖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는 인생을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무엇을 위해 살고 있습니까? 세상의 성공을 위해 살지 마십시오. 승리의 인생을 위해 사십시오! 하나님의 선한 뜻을 위해 헌신의 삶을 사십시오! 세상에서 화려하게 성공할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후회 없는 인생이 될 겁니다. 행복한 인생, 그리고 의미있는 인생이 될 겁니다. 부디 이런 신앙, 이런 삶으로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출처/홍문수 목사 설교 중에서
인생은 누구에게나 단 한 번뿐입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누구라도 인생을 두 번, 세 번 살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람은 누구나 인생을 잘 살아보려고 애를 씁니다. 그런데 잘 산다는 게 과연 무엇일까요? 많은 사람들은 단지 세상에서 성공하고 잘 사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보다 많은 재물을 모으고, 보다 높은 권세를 차지하고, 보다 화려한 명성을 얻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물론 이런 게 “무조건 나쁘다!” 이렇게 말씀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런 것들만 갖고 인생을 잘 살았다, 못 살았다고 판단할 수는 없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그런 성공을 했다 할지라도 인생이 잘못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입니다.
인생을 잘 살았다면 적어도 후회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도 나중에 가서 “어, 이게 아닌데 ... ”하면서 후회한다면 결코 잘 산 인생은 아닐 겁니다. 그래서 저는 인생을 잘 살았다는 것은 ‘후회 없는 인생’을 말하고, 그것은 세속적인 성공과 구분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성공’이란 말 대신 ‘승리’라는 말을 선호합니다. 말하자면 ‘성공한 인생’보다 ‘승리한 인생’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승리한 인생은 혹시 소박하다는 아쉬움은 있을지 몰라도 최소한 후회가 없는 인생입니다.
그러면 과연 어떤 인생이 후회 없는 인생, 승리의 인생일까요? 적어도 세 가지 요소- 영생, 기쁨, 보람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만일 세상에서 아무리 성공해도 영생을 얻지 못하고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면 후회 막심한 인생입니다. 아무리 남 보기에 화려해 보여도 기쁨이 없다면 불행한 겁니다. 참 기쁨이 있어야 행복한 인생(Happy Life)입니다.
그리고 아무리 많은 것을 소유했다 해도 보람이 없으면 허무한 인생입니다. 인생의 보람이 있어야 의미있는 인생(Meaningful Life)입니다. 영생을 얻고, 행복한 인생 의미있는 인생을 살아야 비로소 승리한 인생이요 후회없는 인생이 되는 겁니다.
요셉이 바로 그런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는 한 번뿐인 소중한 인생을 정말 잘 살았습니다. 그리고 승리했습니다. 그러면 과연 요셉이 어떻게 그런 인생을 살 수 있었을까요? 믿음으로 살았기 때문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지적하면 믿음으로 헌신의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헌신하는 인생이 승리의 인생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이 원리를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헌신하는 인생을 배우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영원히 후회없는 승리의 인생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1] 요셉의 성공 : 권세와 부귀영화
요셉은 세상적인 기준으로 볼 때 분명 성공한 사람이었습니다. 소싯적에는 고생을 많이 했지만, 나중에는 세상에서 권세도 얻었고 부귀영화도 누렸습니다. 그가 애굽의 총리가 되었다는 사실 한 가지만으로도 넉넉히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당시 애굽은 강대국 중에 초강대국입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미국 같은 나라라고 보면 됩니다. 그런 나라의 총리가 됐는데, 그때 나이가 30세였습니다. 46절. “요셉이 애굽 왕 바로 앞에 설 때에 삼십 세라 그가 바로 앞을 떠나 애굽 온 땅을 순찰하니”
더욱이 요셉은 그냥 총리가 아니라, ‘실세 총리’요 ‘종신 총리’였습니다. 바로 왕이 있었지만 실권은 요셉에게 넘어갔습니다. 그는 천하를 호령하면서 30세부터 110세까지 무려 80년을 그렇게 살았습니다. 성공도 보통 성공이 아닙니다.
성경은 요셉의 권세와 부귀영화가 얼마나 대단한 것이었는지 증거합니다. 창41:39~45에 요셉이 애굽을 총리로서 누렸던 권세와 부귀영화가 묘사되어 있습니다. 40절. “ ... 내가 너보다 높은 것은 내 왕좌뿐이니라” 바로 왕이 자기는 상징적 존재에 불과하고 실권은 요셉에게 있다고 선언한 겁니다. 42절. “자기의 인장 반지를 빼어 요셉의 손에 끼우고 그에게 세마포 옷을 입히고 금 사슬을 목에 걸고” 인장 반지는 옥쇄 같은 건데 바로 왕이 요셉에게 넘겨줍니다. 그리고 최고급 세마포 옷을 입혀 주고, 금사슬을 목에 걸어줍니다. 43절. “자기에게 있는 버금 수레에 그를 태우매 무리가 그의 앞에서 소리 지르기를 엎드리라 하더라 ... ” 버금 수레는 요즘으로 말하면 왕이 타는 승용차와 동종의 자동차(2호차)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요셉이 행차하면 모든 백성이 엎드려 절합니다. 45절. “그가 요셉의 이름을 사브낫바네아라 하고 또 온의 제사장 보디베라의 딸 아스낫을 그에게 주어 아내로 삼게 하니라 ... ” 바로왕은 요셉에게 애굽식 이름을 하사하고, 애굽 최고 명문가의 규수와 결혼시켜서 가정을 이루게 했습니다.
여러분, 어떻습니까? 정말 대단하지 않습니까? 세상에 누가 과연 이보다 더 큰 권세와 더 화려한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겠습니까? 엄청난 성공의 인생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명심할 게 있습니다. 성경에 그의 인생이 기록된 것은 이런 성공 스토리 때문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거듭 말씀드리거니와 세속적인 성공이 무조건 인생 승리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요셉이 성공한 게 나쁘지 않지만, 만일 그가 그 성공을 갖고 인생을 잘못 살았다면 별 게 아니었을 겁니다. 그 권세를 갖고 영생을 얻지 못했다면, 그 부귀영화를 가지고 기쁨과 보람을 얻지 못했다면, 그래서 행복한 인생 의미있는 인생을 살지 못했다면 결코 승리한 인생이 아니었을 겁니다. 차라리 세상에서 성공하지 못하고 소박한 모습으로 살았다 할지라도 행복하고 의미있는 인생을 사는 편이 훨씬 나은 것입니다.
[2] 요셉의 승리 : 감사와 헌신 - 행복한 인생, 의미있는 인생
많은 사람들이 세상에서 성공하고서도 인생에서 실패하는 경우를 자주 봅니다. 심지어 신앙인들 중에도 그런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다행히 요셉은 고난의 때에도 신앙을 지켰고, 세상에서 성공한 후에도 신앙을 잘 지켰습니다. 말하자면 요셉의 신앙은 환경의 변화에 휘둘리지 않는 ‘전천후 신앙’(All-Weather Faith)이었습니다.
잠언 30장을 보면 유명한 ‘아굴의 기도’가 나옵니다. 이 기도를 보면 환경 조건에 따라 신앙이 흔들릴 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어쩌면 성공했을 때 신앙이 잘못되는 경우가 가 많을지도 모릅니다. 잠30:8~9 “8 ...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 9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둑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 아굴은 풍요의 때나 궁핍의 때나 믿음을 지킬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
요셉은 아굴의 기도를 이룬 사람입니다. 어떤 환경과 조건에서도 신앙이 흔들리거나 변질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또 바울이 증거한 바 ‘자족(自足)의 신앙’과 일맥상통하는 겁니다. 빌4:11~12 “11 ...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12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① 감사의 삶 - 행복한 인생 :
요셉은 성공한 후에도 늘 감사하는 신앙을 갖고 살았습니다. 교만해지거나 우쭐대지 않았습니다. 그가 가정을 이루고 낳은 두 아들의 이름을 보면 그의 성숙한 신앙을 엿볼 수 있습니다.
51절. “요셉이 그의 장남의 이름을 므낫세라 하였으니 하나님이 내게 내 모든 고난과 내 아버지의 온 집 일을 잊어버리게 하셨다 함이요” 그의 장남 이름이 므낫세인데, ‘잊어버리다'(to forget)라는 뜻으로 명명된 이름입니다. 그는 장남을 낳고 과거의 모든 고난을 잊어버렸습니다. 괴롭혔던 사람들 다 용서하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했습니다.
52절. “차남의 이름을 에브라임이라 하였으니 하나님이 나를 내가 수고한 땅에서 번성하게 하셨다 함이었더라” 그의 차님의 이름은 에브라임인데, ‘번성’ ‘풍성’(fruitful)이란 뜻으로 명명된 이름입니다. 그는 차남을 낳고 그토록 축복하시고 번성하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했습니다.
이러한 감사 신앙이 요셉이 행복한 인생을 살았다는 증거입니다. 사람이 행복한 것은 환경 조건으로 되는 게 아닙니다. 감사할 때에 행복해집니다. 아무리 좋은 환경과 조건을 갖고 성공한 사람이라도 감사할 줄 모르면 여전히 불행합니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습니다. 감사하지 못하고 욕심이 계속 커지면 아무리 큰 성공을 거둔 사람도 결코 행복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감사의 신앙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늘 행복한 인생을 사시기 바랍니다.
② 헌신의 삶 - 행복한 인생 & 의미있는 인생 :
행복한 인생이 좋지만, 인간은 그보다 더 높은 가치를 추구하는 존재입니다. 즉 보람 있는 인생 의미있는 인생을 추구합니다. 그래서 인간을 가리켜 ‘의미 지향적 존재’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인생을 위해서는 감사의 삶을 넘어 헌신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요셉은 감사하는 신앙이 있었지만 거기서 머물지 않았습니다. 그는 헌신의 신앙을 갖고 살았습니다. 그가 총리가 된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총리가 된 후 그 권세를 갖고 하나님께 헌신했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그가 부자가 된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부자가 된 후에 그 재물을 갖고 하나님께 헌신했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요셉은 바로 왕의 꿈을 통해 파악한 대로 7년 풍년, 7년 흉년을 잘 대비했습니다. 풍년의 때에 양식을 많이 저장해 두었습니다. 그 후 흉년이 닥치자 그 양식을 방출해서 애굽의 백성들, 심지어 주변의 많은 나라의 백성들에게 싼 값에 공급해 주었습니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정부미를 방출한 겁니다. 56절~57절. “56 온 지면에 기근이 있으매 요셉이 모든 창고를 열고 애굽 백성에게 팔새 애굽 땅에 기근이 심하며 57 각국 백성도 양식을 사려고 애굽으로 들어와 요셉에게 이르렀으니 기근이 온 세상에 심함이었더라”
더욱 중요한 것은 가나안 땅에 거주하던 동족 이스라엘을 흉년으로부터 구원해 준 것입니다. 그리고 애굽 이민을 배려한 것입니다. 창47:27 “이스라엘 족속이 애굽 고센 땅에 거주하며 거기서 생업을 얻어 생육하고 번성하였더라” 요셉은 이스라엘이 고센 땅에 머물도록 조치했는데, 그곳에서 번성할 뿐 아니라 장차 출애굽을 통해 민족 국가를 이루도록 준비한 것입니다. 총리의 권세를 갖고 하나님의 선한 뜻을 위해 멋지게 헌신했던 것입니다.
요셉은 결코 권세를 이용해서 더 큰 권세나 재산을 끌어 모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백성들을 섬겼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선한 뜻이었습니다. ‘헌신의 삶’이 바로 그런 겁니다. 사리사욕만 채우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뜻을 위해 자신의 소유(권세, 재물, 시간, 재능)를 선용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헌신의 삶을 살 때 인간은 기뻐할 수 있고 보람을 느끼게 됩니다. 이게 진정 행복한 인생 의미있는 인생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여러분 중에도 들어보신 분이 있겠지만, 테레사 효과(Teresa Effect)라는 게 있습니다.
인도 캘커타에서 빈민 선교에 헌신했던 마더 테레사의 이름을 따서 명명한 의학적 효과를 말합니다. 하버드대에서 이런 실험을 했답니다. 의대생들에게 봉사 활동을 시킨 후 검사해 보니까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인체 속에 바이러스와 싸우는 면역 기능이 향상되었다는 겁니다. 봉사 활동을 하고, 심지어 그런 장면을 보거나 그런 이야기를 듣기만 해도, 심지어 연상만 해도 어느 정도 그런 효과가 나타난다는 사실입니다. 헌신의 삶을 살면 기쁨이 넘친다는 사실을 증명해 주는 연구 결과입니다.
또한 미국의 석유 재벌 록펠러(John Davison Rockefeller 1839∼1937)의 이야기도 이런 사실을 증거해 줍니다. 그는 53세에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55세에 불치병으로 사형 선고를 받게 됩니다. 앞으로 1년 정도밖에 살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세상의 성공을 위해 줄기차게 달려왔는데, 그리고 이제 성취했는데 이게 뭔가 하는 회한이 밀려와 괴로워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검진을 받으러 휠체어 타고 병원 복도를 지나가다 벽에 걸린 액자에 적혀 있는 성구(聖句)를 보게 됩니다. “받는 자보다 주는 자가 복이 있도다!” 그 말씀을 보는 순간 마음에 전율이 느껴지고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그 때 마침 소란한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알아보니까 병원비가 없는 소녀 환자의 어머니가 병원 직원에게 울며불며 통사정을 하는 소리였습니다. 너무 딱해서 비서를 시켜 은밀하게 병원비를 지불해 줍니다. 그 후 소녀가 회복되어 퇴원하는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며 그는 매우 기뻐합니다. 그런 기쁨은 평생 처음이었습니다. 회고해 보니 자신이 어려서부터 신앙생활을 해 왔지만, 지금까지 축복만 구하며 달려왔지 남에게 베푸는 헌신의 삶이 없었습니다. 이때부터 그의 자선 사업이 왕성하게 시작됩니다. 교회를 세우고, 학교와 병원, 사회복지 기관을 세우는 등 엄청난 기부 활동을 합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헌신의 삶을 추구하면서 불치병이 완전히 치유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 후 98세까지 건강하게 장수했습니다. 후일 그는 자서전에 이렇게 기록합니다. . “내 인생 전반에는 쫓기며 살았다. 그러나 후반에는 너무 행복하고 보람있는 인생을 살았다.” 헌신의 삶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 깨우쳐 주는 일화입니다.
[3] 승리의 인생을 위한 신앙 자세
우리는 요셉처럼 여러 신앙의 선배들처럼 헌신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신앙생활이 여기까지 이르러야 합니다. 그저 개인적으로 편하게 안일하게 살다가 천국 가는 게 능사가 아닙니다.
① 청지기임을 명심하십시오!
벧전4:10 “각각 은사(gift)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as good stewards - KJV) 서로 봉사하라" 이 말씀대로 우리는 청지기입니다.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모든 것들은 하나님께서 잠시 위탁하신 겁니다. 언젠가 회수할 날이 있을 겁니다. 인간은 청지기에 불과합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소유권은 업고 관리권만 있는 겁니다. 그러므로 청지기로서 하나님의 선한 뜻을 위해 충성을 다해야 합니다. 이게 곧 청지기 정신(Stewardship)입니다. 이런 청지기 정신을 가지고 늘 감사하고, 하나님의 선한 뜻 즉 복음 전파와 사랑 실천 등을 위해 헌신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② 소유를 선용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소유에는 크게 세 가지가 있습니다. 재물(Treasure), 시간(Time), 재능(Talent) 등입니다.(3 T's) 이런 것들은 인생의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요 도구에 불과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여기서 착오를 일으킵니다. 수단을 목적으로 오해하고 이런 것들을 줄기차게 달려갑니다. 그것을 성취하면 성취하는 대로 행복하지 못하고, 성취하지 못하면 못하는 대로 행복하지 못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인간은 하나님 앞에 감사하며 헌신할 때 기뻐할 수 있습니다. 보람을 느낍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생 가운데 하나님의 선한 뜻을 위해 쓰임 받는 게 중요합니다. 롬6:13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instruments)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instruments)로 하나님께 드리라” 우리의 몸과 마음 전 소유가 하나님의 무기 곧 하나님의 선한 도구로 쓰여야 된다는 말씀입니다.
잘 생각해 보면 정말 그렇습니다. 모든 것은 그것을 소유하는 것 자체보다 어떤 목적에 쓰이느냐에 따라 그 가치가 결정됩니다. 말하자면 소유 가치는 허상입니다. 진짜 가치는 사용 가치입니다. 예를 들어 피아노 한 대 있다고 합시다. 만일 그냥 두고 쓰지 않으면 어떻습니까? 가구만도 못하죠. 잘못 연주하면 소음입니다. 오직 좋은 연주자가 좋은 음악을 연주할 때 비로소 가치가 있는 겁니다.
아무리 많은 것을 소유해도 사용하지 않으면(不用) 헛것입니다. 오용(誤用)하거나 남용(濫用)하면 해가 됩니다. 오직 선용(善用)할 때 가치가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모든 소유는 언젠가 평가되고 심판받게 됩니다. 그런 점에서 소유는 축복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사명이요 책임입니다.
에스더를 보면 이런 사실이 강조되어 있습니다. 에스더는 당시 바사 왕국의 왕비입니다. 본래 고아 출신으로 사촌 오빠 모르드개의 보호 아래 잘랐습니다. 그런데 간신 하만의 흉계로 유다 민족이 학살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그 때 모르드개는 사람을 보내 에스더에게 부탁합니다. 왕을 찾아가 위기를 해결해 보라고 촉구한 것입니다. 그런데 당시 국법 상 왕비라도 왕이 부르지 않은 가운데 찾아 갔다 밉보이면 죽임을 당할 수도 있었습니다. 에스더는 망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자 모르드개가 에스더에게 뭐라고 도전합니까? 에4:14 “ ...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네가 잘 나서 왕비 됐냐?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혼자서 호의호식하고 떵떵거리며 살라는 거냐? 그게 아니다. 이럴 때 하나님을 위해 민족을 위해 던져야 한다! 그런 뜻입니다. 결국 에스더는 결단했고 승리를 거둡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진짜 축복은 소유 자체가 아닙니다. 그것을 선용하는 지혜까지 얻어야 진짜 축복이 되는 겁니다. 그래야 진정 승리하는 인생이 될 수 있습니다.
③ 영원한 이름을 위해 사십시오!
사람은 이 세상에서만 사는 게 아닙니다. 영원한 내세가 있습니다. 그러기에 예수 믿고 천국에 가야합니다. 그런데 똑같이 천국에 들어가도 지상에서 인생을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 ‘영원한 이름’이 각각 다릅니다. 진짜 승리는 영원한 이름이 빛나는 겁니다. 세상에서 반짝 하는 건 별 게 아닙니다. 다 흘러가고 사라지는 겁니다. 단12:3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
그러므로 우리는 기왕에 신앙생활 하는 것인데 영원히 빛나는 이름을 위해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오직 헌신의 삶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요셉이 성경에 소개되고 천국에서 빛나는 이름이 된 것은 그가 세상에서 성공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헌신의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봉천동 슈바이처’ 윤주홍 장로님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본래 국문과를 졸업했는데, 특별한 기회에 소명을 받아 의사가 된 분입니다. 30여년 전 청계천 철거민들이 봉천동에 이주해서 판자촌을 이루고 살았습니다. 병원도 없고 돈도 없는 동네였습니다. 그런데 그는 그 사실을 전혀 몰랐는데 어느 날 버스를 타고 가다 타이어에 펑크가 나서 중간에 내렸는데 바로 그런 동네였던 겁니다. 사방이 판자집인데, 박스로 만든 어느 집에 사람의 발이 나와 있어 죽은 사람인 줄 알고 놀랐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까 쪽방에 다섯 식구가 자고 있는데, 키 큰 아들의 발이 나와 있었던 겁니다. 그 광경을 보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는 그때 결단합니다. “지금까지는 나를 위해 살았는데, 앞으로는 남을 위해서도 살자.” 그는 의대에 편입했고 졸업 후 그 동네에 의원을 세웠습니다. 저렴한 비용으로 치료해 주고, 가난한 주민에게는 무료로 진료를 해주었습니다. 정기적으로 서해안 섬들을 순회하며 진료 봉사를 하고, 나중에는 장학회를 설립해서 가난한 학생들을 후원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의료계에서 명성 있는 의사는 아닐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시기에 영원히 빛나는 이름을 가진 인생일 겁니다. 우리 각자에 각계각층에서 형편에 맞게 최선을 다해 이와 같은 헌신의 삶을 살 때 영원히 빛나는 이름을 갖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는 인생을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무엇을 위해 살고 있습니까? 세상의 성공을 위해 살지 마십시오. 승리의 인생을 위해 사십시오! 하나님의 선한 뜻을 위해 헌신의 삶을 사십시오! 세상에서 화려하게 성공할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후회 없는 인생이 될 겁니다. 행복한 인생, 그리고 의미있는 인생이 될 겁니다. 부디 이런 신앙, 이런 삶으로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출처/홍문수 목사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