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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하고 교회 (행 2:23-42)
본문을 통하여 이 시대 교회를 향하신 성령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교회를 처음부터 나중까지 지켜보시고 아시는 분은 교회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께서 시대마다 교회를 향하여 음성을 들려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에베소교회를 향해서는 “첫 사랑을 회복하라. 처음 자리로 되돌아가라”고 말씀하시고 있고, 서머나교회를 향해서는 “밖으로 고난과 안으로 가난이 있지만 네가 부요한 사람이다. 겉모습보다는 속 내용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시고 있고, 버가모교회를 향해서는 “예수 이름 붙잡고 믿음을 끝까지 지지면 저버리지 않았다”고 말씀하시고 있고, 두아디라 교회를 향해서는 “시작도 좋아야 하지만 끝이 좋아야 하며 처음도 중요하지만 마지막이 더욱 중요하다.”고 말씀하시고 있고, 사데교회를 향해서는 “살았다고 하지만 내가 보기에 죽은것 같다. 영적 무기력증을 떨쳐버리고 믿음의 생명력을 소유하라”고 말씀하시고 있고, 빌라델비아교회를 향해서는 “작은 것 가지고 충성을 다했으니 하나님이 주신 것을 마지막까지 빼앗기지 말고 소중히 지키라”고 말씀하시고 있고, 라오디게아교회를 향해서는 “세상에 물들지 말고 교만과 내적 빈곤에서 벗어나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먼저 속으로 부자가 되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초대교회는 어떤 교회였습니까? 초대교회는 영향력이 있는 교회였습니다. 초대교회는 방황하는 사람들에게 진리의 길, 구원의 길, 믿음의 길을 나아가게 했던 좋은 교회입니다. 초대교회는 120명의 성도가 모여 기도함으로 성령의 강한 임재하심 가운데 탄생한 교회였고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기도의 불이 꺼지지 않는 성령 충만한 교회였으며 교회 안에서 가르침을 잘 받고 순종하며 모이기를 힘쓰고 나아가 복음 전하고, 교인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진정한 사랑의 교제를 나누고 어려운 사람 도와주며, 지역사회에서 칭송을 듣는 좋은 교회였습니다. 그렇다면 초대교회는 어떤 교회이었는지를 함께 생각해 보면서 아름다운교회가 건강한 교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함께 은혜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본문 37절 말씀을 보십시오.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 할꼬 하거늘"
구원받을 때를 생각해보십시오. 그 전에 무엇이 있었습니까? 본문에 나오는 '찔림'이 있었습니다. 구원의 중요한 표시는 이 찔림에 있습니다. 아름다운교회, 건강한 교회를 위해서 무엇이 필요합니까? 우리들에게 이런 찔림이 있어야 합니다. 그 동안 교회를 너무 사랑하지 못한 스스로의 삶을 돌아보며 가책이 있어야 합니다. "이제 우리 어찌할꼬?"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문제는 누구에게 있습니까? 자기 자신에게 있는 줄 알아야 합니다. 모든 문제의 원인을 타인에게 찾는 사람은 미성숙한 사람이고, 자신에게서 찾는 사람은 성숙한 사람입니다. 우리가 정말로 주님을 잘 따르고 있는지, 우리의 모습이 진정 영생을 가진 자의 모습이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의 모습인지에 대한 찔림이 있어야 합니다.
어떤 교인은 "성도도 세상을 알 필요가 있다"고 하며 노래방에 갑니다. 그리고 남들처럼 흔들고 유행가를 하면 찔리니까 노래방에 가서 찬송가를 부릅니다. 그런 모습은 문화를 이해하는 교양이 아니라 분위기를 망치는 것이고 하나님의 기분도 망치는 것입니다. 찔리면 차라리 가지 말아야 합니다. 혹시 우리 중에는 그런 타협적인 모습이 없었습니까?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부족한 헌신에 대한 찔림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교회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을 것입니다.
본문 38절 말씀을 보십시오.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이 말씀을 간단하게 말하면 "구원 받으라!"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구원을 받습니까? 39절 말씀을 보십시오.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예수님을 부르고 영접하면 구원받는다 말씀입니다.
영접이 그처럼 중요합니까? 그렇습니다. 요 1:12에서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영접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신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어떤 공로보다 우리의 영접하는 모습을 가장 기뻐하십니다.
인간관계에서도 그렇습니다. 어떤 분이 잘나지는 못했지만 대화할 때 항상 상대방을 받아들이면서 대화를 합니다. "아! 예! 그렇죠!" 그렇게 상대방을 영접하는 분들은 사람 앞에서도 인정을 받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예수님을 그런 식으로 받아들이고, 말씀을 그런 식으로 받아들이는 자에게 구원의 축복을 열어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구원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구원이 얼마나 금보다 귀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천국의 시민권자입니다. 오늘날 미국 시민권자는 세계 어느 곳에서도 보호를 받습니다. 미국이 강력한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천국 시민권은 미국 시민권과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어디 가든지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켜주실 것입니다.
구원의 확신을 가지십시오. 때로 죄를 지어도 구원의 확신을 잃어서는 안됩니다. 부족해도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부족해도 하나님 안에서 자기 자신의 변화될 앞날을 믿으십시오. 그 믿음이 삶에 큰 영향력을 주고, 어떤 풍파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힘을 줍니다.
믿음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얼마 전에 "CEO“가 되는 길"이라는 베스트셀러가 있었습니다. 'CEO'란 ‘chief executive officer(최고 경영자)라는 뜻입니다. 이 책은 50명의 ‘CEO’를 집중 연구한 책인데, 그 핵심적인 내용이 바로 믿음입니다. 누군가 나를 믿어주고, 내가 나에 대한 믿음을 배반하지 않을 때 반드시 성공의 길은 열리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기업에 바르게 서기 위해서는 최고 경영자에 대한 믿음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지난 수요일자(2003.5.28) 국민일자에 난 기사를 보니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이 국내 100대 기업 홍보 실무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최고경영자(CEO)로 꼽혔다고 합니다. 또한 직장인이 가장 선호하는 기업으로 삼성그룹으로 1위로 꼽았다고 합니다. 최고경영자를 신뢰하니 그 경영자가 경영하는 기업을 선호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분명한 믿음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우리교회가 건강하고 아름다운교회, 건강한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흔들리지 않는 구원의 확신을 가진 사람들이 넘칠 때 그 교회는 반드시 하나님의 은혜를 입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기억할 것은 하나님에 대한 분명한 믿음은 교회의 영적 권위와 질서를 세우신 목회자에게 신뢰감으로 연결되어야 합니다. 물론 목회자 자신이 신뢰할 만해야 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교인들이 담임 목사를 끝까지 신뢰해 준다면 그 교회는 틀림없이 건강하고 아름다운 교회로 부흥하게 됩니다. 안디옥 교회의 성도는 바울과 바나바라는 주의 종을 신뢰할 때에 그 교회가 역동적인 역할을 감당하게 되었던 것입니다.(행 13:1-3)
본문 40절에서 베드로는 구원의 소식을 전합니다.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가로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 우리에게 베드로처럼 복음을 전하는 모습이 필요합니다. 교회가 존재하는 제일 목적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복음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구원받아 천국 시민권자가 된 성도가 바로 천국에 가지 않고 이 땅에 존재하는 제일 목적이 무엇입니까? 그것도 역시 복음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복음이 무엇입니까? 복음이라는 말은 복된 소식, 좋은 소식이라는 뜻으로 “Gospel, Good News"입니다. 복음은 인간을 구원하러 하나님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다는 좋은 소식이고 죄지은 인간은 누구든지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는 다는 좋은 소식입니다.
어떤 분은 좋은 소식은 잘 전하지 않고 나쁜 소식을 즐겨 전합니다. 복음을 들으면 졸다가 나쁜 소식이 들리면 눈이 번쩍 뜨이는 성도들이 많다면 그 교회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을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우리의 영혼을 건강케 하는 좋은 소식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 좋은 소식을 우리만 간직해서는 안되고 전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복음에는 영혼을 살리는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건강하고 아름다운교회가 되려면 복음의 능력이 살아 있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초대교회는 복음의 능력이 살아 있는 교회였습니다. 신문을 보고 TV를 보면 정말 희망적인 소식이 별로 없습니다. 어느 때에는 절망의 소식만 들립니다. 아무리 좋은 세상소식도 시간이 지나가면 새 소식이 아닙니다.
그러나 복음은 늘 새 소식입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소식들이 있지만 복음은 하나님이 주신 생명의 소식입니다. 세상 소식에는 사실 자체가 담겨 있지만 복음에는 능력이 담겨 있습니다. 왜냐하면 복음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사도 바울은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롬 1:16)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의 능력(能力)이란 ‘듀나미스’로 다이너마이트의 원어인데 폭발하는 힘을 말합니다. 복음에는 폭발적인 힘이 존재하고 생명을 구원하는 능력이 들어 있고 죄지은 사람 죽은 사람 낙심한 사람을 살리는 능력이 있으며 인생과 교회와 세상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들어 있습니다.
복음에는 고난을 이기는 능력이 들어 있습니다. 주님의 십자가 복음은 우리를 고난에서 이기게 합니다. 고난을 넘어 하나님의 축복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도록 능력을 더하십니다. 복음의 능력이 살아 있는 교회는 성령님이 역사하시는 교회입니다. 복음의 능력이 살아 있는 교회는 더 나은 길로 변화되어 나가는 교회입니다. 우리 아름다운교회가 건강하고 아름다운교회가 되려면 열심히 복음을 증거해야 합니다. 복음의 능력이 살아 있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초대교회는 세계복음화의 출발점이 된 교회였습니다. 하나님은 예루살렘교회를 통해서 날마다 구원받는 사람을 더하게 하셨습니다. 복음은 물과 같이 흘러가고 메마른 곳을 적시며 흘러갔으며 불과 같이 일어나고 죄와 불의를 태워버리며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복음은 절대로 한 곳에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복음은 내향적이지 않고 외향적입니다.
복음은 정적이지 않고 동적이고 가만있지 않고 움직입니다. “한 사람의 인생의 방황은 하나님을 만나면 끝이 나고 신앙생활의 방황은 좋은 교회를 만나면 끝납니다.”우리 아름다운교회도 한 사람의 인생의 방황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는 좋은 교회를 만들어 가야 하겠습니다. 말씀에 합당한 복음적인 좋은 교회, 하나님이 일하신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교회, 다른 사람과 지역사회와 세계를 향하여 개방적이고 자신감 있는 건강하고 아름다운교회로 만들어 나가기를 원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나쁜 소식은 열심히 전파하면서 복음은 전혀 전하지 못하지 못하는 자폐증 성도가 됩니다. 우리가 아무리 큰 복을 받는다고 할지라도 감사가 없고, 복음 전파가 없다면 그것은 아무 소용도 없는 일입니다. 겸양은 중요하지만 부끄러움은 버려야 합니다. 부끄러움이 별로 나쁜 것 같지 않지만 마귀가 그것을 이용해서 자폐증 성도로 만든다면 큰 문제입니다. "네가 무슨 기도야! 네가 무슨 전도야! 네 모습을 봐라!" 그 부끄러움이 우리의 열정을 약화시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복음을 전파할 수 있는 담대함을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본문 41절 말씀을 보면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베드로가 복음을 전파했을 때 그날에 삼천 명이 한꺼번에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 엄청난 사람들이 다 진짜 제자였다면 몇 년 되지 않아서 예루살렘은 완전히 변화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41절에 나오는 '제자'는 원어로 그냥 '사람'을 뜻합니다. 단순한 무리였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시간이 지날수록 예루살렘 교회는 힘이 약화되고 오히려 이방 지역의 교회들이 더 성장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왜냐하면 구원 이후의 삶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교인 숫자가 늘어났다고 교회가 성장한 것이 아닙니다. 민주주의는 다수가 진리지만 성경은 다수를 부정적으로 볼 때가 훨씬 많습니다. 숫자 놀음의 환상에 빠지면 안됩니다. 엉터리 교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이 바로 숫자 아닙니까? 다수 좋아하다가 망한 기록이 바로 성경의 기록입니다. 사기를 치는 사람, 돈 떼먹는 사람, 복음을 팔아 장사하는 사람, 선거철에 나타나는 사람, 바람을 피는 사람, 편하게 믿으려는 사람 등 온갖 군상들이 숫자의 그늘 밑에 숨어 있지 않습니까?
다수를 조심해야 합니다. 때로는 용기 있는 소수가 되고, 소신이 있는 소수가 되십시오. 쉽게 살려면 남들이 하는 대로 그냥 따라 살면 됩니다. 그러나 바르게 살려면 소수의 서러움도 감내하려는 용기와 결단이 필요하고, 자신의 꿈과 비전을 끝까지 지켜야 합니다. 여러분! 세상을 변화시키는 용기 있는 소수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은 휩쓸려 다니는 사람들보다 한 사람의 깨어 있는 제자를 더 원하십니다.
진짜 복이 무엇입니까? 무리에 속하지 않고 제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 제자가 되려면 무엇이 필요합니까? 가르침을 받으려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42절 말씀을 보면 초대 교회 성도들은 사도의 가르침을 받을 줄 아는 성도였습니다. 뜨거운 가슴만 있어서는 안됩니다. 냉철한 머리도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 말씀을 많이 알려고 힘써야 합니다.
그런데 가르침을 받을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이 성경 지식이 많아야 된다는 말일까요? 아닙니다. 열린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그 말씀대로 실천하며 사는 삶이 가르침을 받을 줄 아는 삶입니다. 여러분! 신앙을 패션으로 삼지 말고 교회생활을 하나의 이벤트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신앙이란 한 마디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사는 것입니다. 그런 성도들을 통해서 교회는 누룩처럼 보이지 않는 영향력을 확대해나갈 것입니다.
본문 42절과 46절에서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초대교회 성도들은 서로 교제하며 모이기를 힘썼습니다. 왜 '모이기를 힘쓰는 삶'이 중요합니까? 모임을 중시하는 사람들에게는 '나 중심적 세계관'이 깨지는 축복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복이 얼마나 큰 복인지 모릅니다. 고독의 영성도 중요하지만 공동체의 영성도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공동체의 영성을 배우지 못하면 사람은 성숙하게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손님의식을 가지기보다 주인의식을 가지십시오. 구경꾼이 되기보다 일꾼이 되십시오. 감독만 잘해서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없습니다. 배우와 모든 스텝들이 다 잘해야 합니다. 가끔 보면 교회에 깊이 빠지면 상처를 입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한 발만 걸치고 교회에 다니는 분들이 있습니다. 몸은 편하겠지만 그런 모습이 어찌 복된 모습이 되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이기를 힘쓰십시오. 특히 주일을 거룩하게 지킬 수 있기를 바랍니다. 유대인들이 전 아랍을 상대로 이긴 제 3차 중동전쟁은 6일 만에 끝났습니다. 얼마나 빨리 이집트 소유의 거대한 시나이 반도를 점령해 버렸는지 점령 속도가 탱크를 타고 지나가는 속도보다 빨랐다고 합니다. 어떻게 6일 만에 아랍 연합국을 항복시킬 수 있었습니까? 유대인들이 안식일을 지키기 위해 6일 안에 전쟁을 끝내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그런 열심을 가져야 합니다. 생사가 위태한 일이 있어도 주일만은 하나님 앞에 나와서 예배하는 삶을 살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주일을 힘써 지키는 성도를 힘써 지켜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히 10:25에서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 42절 상반 절에서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서로의 짐을 나누어야 합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떡을 뗐다"는 말은 실질적(實質的)으로 서로의 필요를 채워주며 지냈다는 뜻입니다. 그들은 서로 어려운 자들을 도왔습니다. 그처럼 선교하는 교회는 반드시 부흥할 것입니다. 그런 교회는 건강하고 아름다운교회가 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갈 6:2,5절에서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각각 자기의 짐을 질 것임이니라”고 말씀하고 있고, 롬 15:1에서 “우리 강한 자가 마땅히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목사는 성도의 짐을 함께 나누어지고, 성도는 목사의 짐을 함께 나누어질 때에 그 교회는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는 교회로 건강하게 성장하게 됩니다. 그런데 교인들처럼 서로 냉담하고 겨우 주일날이 되어서야 서로 한번 이야기하는 정도라면 그분은 문제가 있습니다.
물론 어떤 분은 솔직히 미래에 대한 불안도 있을 것입니다. 내가 특별히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닌데 "미래를 준비하지 않으면 그때는 어떻게 사나?" 하고 걱정하며 미래를 대비해서 저축하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좋은 일에 쓰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미래를 준비해주실 것입니다. 교회는 남을 위해서 존재할 때 참 교회가 되고, 교인도 남을 위해서 존재할 때 참 교인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연약한 자를 소중히 여길 수 있어야 합니다. 다윗이 사울의 손을 피해 도망쳐 아둘람 굴에 숨었을 때 그에게 4백 명은 어떤 사람들이었습니까? 환난 당한 자와 빚진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들이었습니다(삼상 22:2). 얼마나 연약한 존재들입니까? 그러나 나중에 그들이 다윗 혁명 정부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연약해 보이는 사람들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됩니다. 약하게 보이는 사람을 깔보지 마십시오. 약해 보이는 것이 더 강할 수 있고, 더 미래가 있을 수 있고, 거기에 더 하나님의 은혜가 있을 수 있습니다.
본문 42절 하반 절에서 “...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초대교회 성도들은 기도에 힘쓰는 교회였습니다. 바로 그것이 보이지 않는 부흥의 원천이었습니다. 기도는 어떤 프로젝트보다 중요하고 어떤 프로그램보다 중요합니다. 기도하지 아니하면 시험에 듭니다. 그러나 기도하면 놀라운 역사가 나타납니다. 그러기에 주님께서 시험에 들지 않도록 깨어서 기도하라고 말씀하신 것이고(마 26:41), 기도 외에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막 9:29)
정말 우리에게는 기도밖에 없습니다. 기도에 힘쓰지 않고 부흥하는 교회를 보셨습니까? 역사상 기도의 밑거름이 없이 교회부흥이 이루어진 경우는 없습니다. 간절하고 절박한 기도의 밑거름이 주입된 교회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가끔 어떤 분은 고민하며 밤을 새웁니다. 믿는 사람이 잠이 안 오는 것은 기도하라는 하나님의 뜻이 아니겠습니까? 그때 기도해보십시오. 하나님께서 기도할 기회를 주실 때 기도하면 그 기도는 더욱 능력 있는 기도가 될 것입니다. 불안해서 마음이 떨릴 때에는 기도하십시오. 다급한 기도는 하나님께서 더욱 들어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곧 잔금을 치러야 합니다. 이제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불안한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열심히 기도합시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교회를 그냥 내버려두시겠습니까? 간절히 기도합시다. 눈물 뿌려 기도합시다. "죽으면 죽으리라!"고 기도합시다. 하나님께 우리 교회를 긍휼히 여겨달라고 기도합시다.
갈등이 생길 때에도 기도하십시오. 기도하지 않으면 다 저 사람 문제로 보이면서 더 마음이 아프지만, 기도하면 내 문제가 보이기 시작하면서 마음에 신비한 평화가 깃들게 될 것입니다. 기도는 자신에게 깨달음을 주고, 회개할 마음을 주고, 평안을 줍니다. 큰 문제가 있어도 우리에게 기도만 살아 있다면 그 문제는 반드시 축복의 산실이 될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본문을 통하여 초대 교회의 건강한 요소 7가지에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교회도 초대교회처럼 항상 회개를 앞세우고, 열심히 복음을 전파하며, 아름다운 교회 공동체의 일원으로 적극 참여하고, 서로 위해주고, 서로 기도해줌으로 건강하고 아름다운교회로서의 초석을 세울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할 때에 지역 사회를 섬기는 교회, 개방적인 교회, 사회봉사에 힘쓰는 교회로 더욱 더 성장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할 때에 본문 47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지역 사회에서 칭찬받고 인정받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출처:한국교회 부흥설교 설교 정보수집 편집위원 협조와 추천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