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에 아내를 먼저 떠나 보낸 후 빈소를 지키던 중에 생긴 일이라고 한다. 문상객들이 몰리던 밤에 갑자기 정전이 되어 깜깜해지니 문상을 받던 남편이 아내의 영정을 향해 ‘여보, 초가 어딨어요?’ 하더라는 것이었다.

웃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인데 불이 들어오고 보니 그 곳에 모인 문상객들의 눈가에 눈물이 흥건히 고여 있다는 것이었다.

1979년 아내와 결혼 후, 내가 열흘씩 또는 이십여일씩 집과 아내를 떠난 적은 있었어도 아내가 열흘씩 집을 떠나본 것은 이번이 처음인것 같다.

‘엄마 울지마’ 의 저자요 미국 이민사회에서 남편도 없는 열악한 상황에서 세 자녀를 백만불 장학금을 받으며 하바드, 보스턴, 스텐퍼드 대학과 대학원을 졸업시켜 성공적인 자녀로 양육시킨 황경애 사모님의 초청으로 지난 목요일 미국 아틀랜타로 아내를 출장(?) 보내니 오랜만에 허전함이 느껴지는 것이었다.

원래 지난 월요일 에 출국 예정이었으나 나를 혼자 두고 가는 것이 맘에 걸렸는지 별일도 아닌데 안 가겠다며 좋아했는데 그 사모님이 스케줄도 바꾸며 기다리고 있다고 하여 가까스로 내가 설득하여 다시 출발하게 된 것이었다.

결혼 후 삼십 여년을 철저한 아내의 내조와 보살핌으로 살아 오느라 냉장고 문도 잘 열어 보지 않고 챙겨주는 식탁과 빨래 등등을 불편함 없이 살아온 내가 이제 이런 모든 일을 스스로 해야 하는 상황이 생긴 것이었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반찬은 많은 것 같은데 무얼 꺼내 먹어야 하는지 정리가 안 되고 남겨놓은 밥 한 그릇을 전자레인지에 몇 번을 돌려서 가까스로 뎁혀 먹으니 당장 다음 끼 먹을 밥을 하는 것도 문제가 되었다.

그렇다고 가깝게 사는 며느리들이 와서 차려 주는 것도 불편하여 맘을 강하게 먹고 스스로의 힘으로 살기로 결심하고 쌀을 찾아 씻어 물을 손등까지 차게 하여 압력솥에 백미취사 버튼을 누르니 얼마 후 ‘취사를 종료한다’는 친절한 안내멘트가 나오니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게다가 지금은 우리 교회를 다니지 않는 권사님께서 갑자기 간장게장과 각종 나물무침을 보내 주셔서 지금까지 그것으로 잘 해결하고 있어 스스로 생각해도 기특할 뿐이다.

다행히 이번 주일부터 며칠간 지방엘 내려가고 그 후 삼일만 잘 버티면 내겐 없어서는 안될 꼭 필요한 아내가 비서로 복귀한다.

세월이 지나고 나이를 더 먹어 갈수록 아내의 귀함과 필요함이 더 간절해 지는 것 같다. 그러니 내가 조금이라도 빨리 천국엘 가야겠다는 생각이 절실해 진다.

잘못하면 나도 초가 어딨냐고 그럴지도 모르니까.....

오! 주여

제 비서아내가 건강하게 잘 돌아오게 하소서

제 아내는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입니다. (주후 이천십이년 이월 셋째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