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2학년, 열심히 다니던 교회에서 중등부 회장을 뽑는 선거가 있었다. 당시 회장 입후보 자격중에 세례를 받아야 하는 조건이 있어서 담당 전도사님에게 물었다.

‘세례를 받으면 어떻게 살아야 하나요?’ ‘으응, 이제 죄를 지으면 안되는 거야’- 나는 고민에 빠지기 시작했다.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세례 받은 후에 평생을 죄를 안 짓고 살수있는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결국 세례 받기를 포기하였다. 하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나는 그해에 학생회장이 되었지만 그 이후 세례는 내게 있어 속세를 떠나 神의 세계로 들어가는 입례식과 같이 인식되었다.

청년때에 교회를 떠나 죄악속에 살다가 오랜 세월후에 하나님의 강권적인 부르심으로 다시 신앙을 찾은 나는 그때부터 성경을 읽다가 벧전3:21의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는 말씀을 깨닫고 세례를 받게 되었다.

세례를 받은 후에 죄를 전혀 안짓고 사는것이 아니고 이젠 죄를 질때마다 양심의 가책을 느껴 죄를 인식하면서 점점 죄를 덜 지으려고 노력하는 삶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 이후부터 과거 불신앙때의 잘못된 모든 삶을 끊고 하나님의 자녀로 살기위해 직장도 바꾸고 취미도 바꾸고 나쁜 습관도 바꾸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했었다.

세례를 받으면 속세의 삶을 떠나 神의 세계로 들어가야 되는 것으로 인식되었던 그 생각 때문이었다.

그렇게 살려고 노력하는 내 모습이 갸륵해 보였는지 아니면 세상 직업을 갖고 살면 도저히 그렇게 살 수 없음을 아셨는지 하나님께서는 나 같이 부족한 것을 부르셔서 목회자라는 성직의 삶을 살게 하셨다.

가만히 돌이켜보니 어린시절에 세례를 받으면 죄를 지으면 안된다고 가르쳐준 전도사님의 말씀이 결국 오늘의 나를 목회자로 살게한 계기가 되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지금도 너무 너무 부족해서 하나님 앞에 회개를 많이 하고 산다. 육체를 갖고 살기에 때로는 공의를 빙자한 미움도 있고 특히 종북주의자들의 행태를 보면 분노가 나서 이들을 모두 북한으로 보내어 한번 살아보게 해야 한다고 열을 내기도 한다.

그 외에도 하나님과 나만이 아는 은밀한 부끄러움은 평생 기도와 회개를 하며 살아야 하는 연약함도 있다. 어쩌면 남들에게는 하나도 부끄럽지 않은 일들도 내게는 선한 양심의 가책으로 느껴지니 어찌 예수님의 보혈과 은혜를 의지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오! 주여

늘 부끄럽고 떨리는 맘으로 주 앞에 서나이다.

주 앞에 가는 날까지

어찌하든지 덜 부끄럽게 하소서.

(주후 이천십이년 삼월 넷째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