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는 성경을 풀어서 가르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선포하는 명령이다. 그러므로 설교자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그대로 읽어 선포하는 것이 제일 좋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본래 하나님을 잘 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경을 읽기만 해도 알아 듣기에 실제로 현 유대인들이 안식일에 회당에 모여 집회를 할때 랍비가 율법 즉 토라를 그냥 읽어주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을 몰랐던 이방인으로서 구원받은 우리들은 지금의 설교라는 방식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 몇 구절을 이해하기 위해 목사님들로부터 설교를 듣는다.

우리가 읽고 있는 신약성경 중 서신서 21권이 바로 그런 목적의 설교이다. 사도바울은 전도자요 설교자로서 여러 교회를 순회하며 설교를 하기도 하고 또 편지로 하나님의 뜻을 전했다.

특히 데살로니가 교회에 보낸 첫 번째 편지 2장13절에 보면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쉬지 않고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하느니라’-하며 기쁨으로 칭찬한 말씀이 나온다. 당시 초대교회때는 정말 설교자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가 흔하지 않아 말씀에 갈증이 나고 목말라 있었다.

그래서 그때의 성도들이 이렇게 사모함으로 말씀을 듣고 순종했을까? - 요즘의 한국교회는 말씀의 홍수시대로서 한국교회성도들은 TV,인터넷,신앙서적,스마트폰 그리고 전화설교등으로부터 무제한적인 설교를 들을 수 있는 축복의 시대에 살고 있어 자신이 원하기만 하면 주제별로 입맛에 맞춰 들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성도들의 귀는 커질대로 커졌고 지식적으로는 웬만한 목사님들 보다 더 성경에 해박한 평신도들도 생기게 되었다.

그러나 심각한 문제는 설교를 듣는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지 아니하고 사람의 말로 받거나 그냥 일회성 절차의 순서로 듣고 마는 안타까운 영적 막힘의 현상이 만연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설교를 듣긴 들었으나 자신의 삶속에 그 말씀대로 살아야 할 상황에서 전혀 의식하지도 않고 자기 맘대로 사는게 문제인 것이다.

지난 주 부활주일에‘부활의 증인이 되어 우리의 삶 속에서 예수 부활을 경험하는 성도가 되라’고 설교를 했는데 과연 이 말씀대로 살기 위해 인격적인 변화와 영적 변화된 예수 부활의 증인으로 살려고 몸부림 친 성도가 과연 얼마나 될까?

‘더욱 모이기에 힘쓰는 성도가 되자!’ ‘내 평생 예수 부활의 증인 되리라!’하며 주먹을 쥐고 세번씩이나 외치며 다짐했건만 이렇게 하려고 몸을 움직이는 성도가 과연 얼마나 될까?

오! 주여

설교를 사람의 말로 받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는 성도가 되게 하소서.

(주후 이천십이년 사월 셋쨋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