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 사람은 …   (본문 마13:44-46)


어찌하여 예수가 인류의 구세주가 되는가? 어찌하여 예수가 인류의 영원한 기쁨과 소망이 되는가? 어찌하여 예수가 인류의 영원한 황제가 되는가? 과연 예수는 21세기에도 세계를 지배하는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것인가?
우리의 확실한 대답은 그러하다는 것입니다. 그 많은 이유 가운데 하나는 그가 바로 이 세상에 있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가지고 왔기 때문입니다.
예수는 그의 성역 초두에도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했습니다. 성역 가운데도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했습니다. 그리고 성역 말기에도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였고, 또 우리에게 부탁하였습니다. 이것이 천국복음이었습니다(마 13: , 24:14, 막 1:14, 막 16:15). 부활 이후에도 예수께서 전한 복음의 주제는 하늘나라였습니다(행 1:3).
마태복음 13장은 천국을 일곱 가지 비유로 나타낸 저 유명한 7대 천국 복음론입니다.

Ⅰ. 천국은 보화와 진주와 같다고 비유하였습니다.

마태복음 13장 44절에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라고 하였습니다. 45절에는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보화’나 ‘진주’는 희귀한 것, 값진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을 소유한 자의 부(富)성, 명예성, 존귀성을 생각하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그것을 소유한 자의 소수(少數)성, 특수성을 생각하게 됩니다.
로이 엥겔이란 사람이 미국 국립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희망의 다이아몬드’를 구경하게 되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푸른 다이아몬드의 형언할 수 없는 광채는 그 옆에 전시되어 있는 또 다른 많은 보석과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훌륭하였습니다.
한참 동안 넋을 잃고 그 다이아몬드를 바라보고 있다가 안내원에게 “이 다이아몬드는 값이 얼마나 될까요?”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안내원은 자랑스러운 듯이 “이 다이아몬드의 값어치는 돈으로 매길 수가 없습니다. 이 세상의 그 어떤 것으로도 이 보석의 놀라운 값어치를 정할 수가 없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께서 ‘천국’을 밭에 감추인 보화나 좋은 진주 즉 값진 진주에 비유한 것은, 예수께서 우리에게 가지고 오신 천국은 그 무엇으로도 값을 측정하거나 설명할 수 없는 무비의 것임을 알려주는 말입니다.

Ⅱ. 천국 사람은 보화와 진주를 발견한 은혜를 입은 자들입니다.

밭에서 감추인 보화를 발견한 농부나(마 13:44), 극히 값진 진주를 구하는 상인은(마 13:45-46) 동일합니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이 다른 것은 밭에 감추인 보화를 발견한 경우는 예견치 못한 결과이고, 값진 진주를 찾은 경우는 이미 예견하고 있는 것을 꾸준한 탐구로 발견한 결과입니다.
밭에 감추인 보화를 발견한 경우는 구원의 복음에 대해서 무관심하고, 죄를 사랑하고, 세상을 사랑하고, 자기 고집대로 살던 자의 경우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하나님께서 그를 결정적으로 거듭나게 하고 회심시켜 주심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발견하고 영접하게 되는 경우입니다.
값진 진주를 소유하는 경우는 이미 중생의 씨가 그 마음에 떨어진 자의 경우입니다. 그는 이미 그 진주의 귀함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그것을 자기 것으로 소유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 진주를 애써 찾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그 찾던 진주를 만났다고 하였습니다. 중생의 씨가 떨어진 사람에게도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는 데까지는 애를 쓰고 노력하는 일정기간이 걸리는 경우를 가리킵니다.
다시 말하면 중생의 씨(거듭남의 은혜)를 받은 사람 가운데는 주저없이 즉시로 주님을 영접하는 경우도 있고, 반대로 진주를 찾고 구하듯이 구도자의 몸부림치는 노력을 지나서 주님을 영접하는 경우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중요한 결론은 두 가지 경우 다 하나님의 나라(천국)를 발견하게 되는 것은 거절할 수 없는 하나님의 불가항력적 은혜라는 사실입니다.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요 3:3).

Ⅲ. 천국 사람은 보화와 진주를 추구하는 자들입니다.

뜻밖에 밭에서 보화를 발견한 농부와 진주를 구하는 상인의 경우, 그 보화를 접하게 되는 순간까지는 다른 면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똑같이 보화와 진주를 접하는 결과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 후에 저들이 발견한 보화와 진주를 자기 소유로 만드는데 있어 저들의 생각과 행동은 일치하였습니다.

1. 먼저 보화와 진주의 가치를 동일하게 인식하였습니다.
진주를 찾는 상인의 경우는 이미 그 진주의 가치를 인식하고 있었습니다(마 13:45-46). 그래서 그것을 구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농부의 경우는 예기치 못한 경우였습니다. 그럼에도 보화를 발견한 후에는 그것을 숨겨두고, 그 보화가 묻혀 있는 밭을 모조리 사들이고 마는 생각과 행동을 볼 때 그도 그 보화의 가치를 인식하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새로운 인식입니다. 가치인식에 대한 새로운 변화입니다.
이런 경우는 복음의 가치성, 복음의 귀중성, 복음의 생명성, 복음의 존귀성을 바로 인식했다는 사실입니다. 복음의 유일성, 복음의 유독성을 바로 인식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주성을 바로 인식한 축복입니다(요 4:42, 14:6, 행 4:12).

2. 보화와 진주를 인식함(발견)에 따라오는 기쁨입니다.
예기치 못한 경우에 발견된 밭에 감추어져 있던 보화도(마 13:44), 예견하며 찾고 있는 그 진주도(마 13:45-46) 예외없이 그 농부와 상인에게 큰 기쁨을 주었습니다. 그것은 충격적인 기쁨이었습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어떤 난관도 가리지 않고 보화만 추구할 수 있는 힘을 불러일으키는 기쁨이었습니다. 이것은 세상이 주는 기쁨과는 비교할 수 없는 기쁨이었습니다.

3. 보화와 진주를 소유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마태복음 13장 44절에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돌아가서 …다 팔아…」라고 하는 경우는 그것을 소유하기 위한 그의 강한 결심과 행동을 보여줍니다.
진주를 구하는 상인의 경우도 「…만나매 가서 …다 팔아…」라고 한 경우를 봅니다(마 13:46).
즉각적인 결심, 즉각적인 행동을 뜻합니다. 주저하거나 머뭇머뭇함이 없었습니다. 새로운 결심입니다. 현재보다 더 좋은 미래를 추구하는 결심입니다. 자원적이요 희망적인 결심입니다. 새로운 삶의 궤도를 향하는 비약적인 결심입니다.

4.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버리는 결단입니다.
천국을 추구하는 농부와 상인에게는 보화와 진주에 대한 가치인식의 변화가 있었습니다. 그것을 소유하고 싶은 결심이 있었습니다. 마침내 그것을 소유하기 위한 과감한 결단의 행동을 하고 맙니다.
그것은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버리는 행동입니다. 여기 ‘자기 소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복음을 받아들이는데 일어나는 모든 장애물들을 가리킵니다.
그것은 ① 자기 자신을 믿는 자기 의나 선입견, 자신의 주장이나 사상 같은 것입니다. ② 이미 믿어오던 잘못된 신이나 이방 종교일 수도 있습니다. ③ 혈통이나 육정일 수도 있습니다. 집이나 전토, 조상숭배나 가문의 전통일 수도 있습니다. ④ 세상의 명예와 재물일 수도 있습니다. ⑤ 어떤 세속적 습관이나 즐거움 같은 것일 수도 있습니다. ⑥ 그리고 세상의 친구나 다른 어떤 종류의 그룹일 수도 있습니다.
말하자면 자기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10장 29-30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고 한 경우입니다.

5. 마침내 그 보화와 진주를 소유하고야 말았습니다.
「…그 밭을 샀느니라」고 하였습니다(마 13:44). 「…그 진주를 샀느니라」(마 13:46)고 하였습니다.
밭에 감추인 보화를 발견한 농부와 좋은 진주를 구하던 상인은, 마침내 그들이 원하는 바를 자기 것으로 소유하고야 말았습니다. 저들이 원하던 바를 획득하고야 말았습니다.
바로 이러한 저들의 행위는 ‘믿음의 결과’를 말하는 것입니다. 보화요 진주와 같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은 믿음을 통해서 나의 소유가 되는 것입니다. 그 구원(보화, 진주)을 내 것으로 점유하는 유일한 방법이 믿음이라는 사실입니다.
그 믿음에는 지적인 요소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복음(보화, 진주)의 진리를 바로 깨닫는 것, 곧 인식하는 것입니다. 또한 그 믿음에는 정(마음)적인 요소가 있습니다. 바로 그 구원(보화, 진주)을 즐거워하며 기뻐하고, 그것을 소유하고 싶은 결심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에는 의지적인 요소가 있습니다. 바로 그것을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하여 결심하고 행동하는 결단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천국 비유 중에 그리스도인을 밭에서 일하는 농부에 비유하기도 하고, 장사하는 상인에 비유하기도 하였습니다. 저들은 이 세상의 수다한 인생들과 함께 사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저들에게는 천재일우(千載一遇)의 결정적인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일하던 생활현장(밭)에서 보화를 발견하게 되고, 장사하는 세상 중에서 극히 값진 진주를 알게 되는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이것이 바로 수다한 창생들 중에서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선택적이요 주권적 은혜였습니다.
이 세상이 아닌 보화 같은 천국, 지극히 값진 진주 같은 천국의 복음을 알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혈통적인 산물도 아니고, 육정의 산물도 아니고, 자기 개인의 산물도 아닌 오직 하나님께로 말미암은 은혜의 선물이었습니다(요 1:12-13).
죄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는 백성이 되는 것은 보화 발견, 진주 발견과 같은 충격적인 축복의 사건이라는 말입니다.
저들은 그 보화와 진주에 대한 새로운 가치인식의 변화가 있었습니다. 그 결과 너무 기뻤습니다. 마침내 그것을 소유하기로 결심하고, 자기 소유를 다 팔아 그 보화와 진주를 자기 소유로 삼아버리는 대단한 행동을 하고 말았습니다. 바로 이것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천국 사람들의 생활 특징들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의 국적을 가지면서도 천국, 곧 하나님의 나라의 국적을 가지고 살아가는 특수한 백성들입니다. 천국의 보화를 가지고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그 천국의 보화가 바로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한 자입니다. 그렇다면 천국의 보화란 예수께서 베푸신 구원입니다.
천국 사람은 그 구원과 천국을 마치 보화와 진주 같이 여기고, 소유하고, 즐기며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그렇다면 저들의 부요가 어떠한가? 이것은 특별한 부요입니다. 영적인 부요입니다. 생명의 부요입니다. 현재에서 미래로 향하는 점진적인 부요입니다. 저들의 행복이 어떠한가? 저들의 기쁨과 감사가 어떠한가? 30배, 60배, 100배가 아니겠는가?
역사상 가장 많은 보석으로 몸을 치장했던 여자는, 훗날에 미쳐버린 로마 황제 까리그라의 세 번째 아내가 된 로리아 파우리나였다고 합니다. 그녀는 나중에 황후의 자리에서 쫓겨났지만, 그녀의 할아버지의 막대한 재산의 상속자가 되었습니다. 온몸에 치장한 보석의 빛나는 광채가 늘 그녀를 감싸고 있었습니다. 그녀가 한번 몸을 장식하는 보석의 액수는 그 당시 화폐로 4000만 세스타세즈였다고 합니다. 오늘날에 약 1100만불 상당에 해당되는 에메랄드와 진주로 그 몸을 장식하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녀 곁에는 항상 그 보석이 가짜가 아니고 진짜임을 증명해주는 보석 감정 전문가와 그 보석 값이 적혀 있는 영수증을 가지고 있는 경리가 따라다녔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보석의 여왕이라는 칭호를 받던 로리아는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사라져버린 지 오래되었습니다.
그러나 천국의 사람 그리스도인들이 지니고 사는 보화는 보석 감정이나 보석 값의 영수증이 따라다니는 그런 류의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성령이 친히 보증하는(롬 8:14-15) 영원한 보화를 가지고 사는 자들입니다. 썩지 않는 보화, 쇠하지 않는 보화, 하늘에 간직된 보화, 영원한 생명의 보화, 구원의 보화, 영생의 보화를 받아가지고 살고 있는 자들입니다. 이 보화와 진주는 각자 각자가 개인적으로 소유한 개인 구원입니다.
천국 사람은 그리스도 안에서 궁핍함을 얻기 위하여 부르심을 받은 것이 아니라, 지극한 영적 부요인 구원의 보화를 얻기 위하여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천국 사람은 실망을 얻기 위하여 부르심을 받은 것이 아니라, 소망의 성취를 얻기 위하여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천국 사람은 슬퍼하기 위하여 부르심을 받은 것이 아니라, 소유할 보화와 진주 때문에 기뻐하기 위하여 부름받았습니다. 그 보화가 무비의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 보화가 구원일진대, 어찌 부요의 찬가를 부르지 않겠습니까?


출처/석원태목사 설교자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