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가 해야 할 공부  (본문 대상29:10-22)


I.하나님 공부(10-13절)

1.선택의 하나님(10절)

다윗이 예루살렘에 성전을 짓겠다고 하니 백성들이 성전 짓는 데 필요한 온갖 예물을 다 가지고 옵니다. 짓고도 남을 만큼 되었을 때 다윗이 그 백성들 앞에서 하나님을 찬송하며 기도하는 소리가 바로 이 말씀입니다. '우리 조상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하나님은 조상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란 말은 무슨 뜻이냐 하면 이스라엘의 본래 이름은 야곱입니다. 이삭이 쌍둥이를 낳습니다. 그런데 쌍둥이 중에 형은 에서고 동생은 야곱이고 야곱이 나중에 이름을 바꿔 이스라엘이 되었습니다. 이 쌍둥이 중 하나님께서는 동생을 선택해서 자기의 사람, 자기 민족으로 만들고 형 에서는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조상 야곱의 하나님이여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하는 말은 내가 선택 받은 자손입니다. 혹은 우리가 선택 받은 자손입니다 또 선택은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그래서 선택하시는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한 번은 예수님께서 제자들 보고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희들이 나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다"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 신들이 있는 중에서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 신을 선택해놓고 "당신 내 하나님 합시다"하고 우리가 하나님을 선택한 것이 아닙니다. 많은 민족들 가운데, 세상 많은 사람들 가운데 하나님이 우리를 하나하나 선택하여 자기의 자녀 삼으시고 백성 삼으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하여 주셨다는 것이 성경에 쓰여진 내용입니다. 선택할 때는 선택하는 사람이 반드시 주권을 가집니다. 내가 여러 신들 중에 하나님을 선택했다면 버리고 택하는 권한은 내게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했다면 선택하고 버리는 권한이 하나님께 있습니다. 성경에는 반드시 하나님께 선택권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선택하시게 되면 반드시 책임을 지고 구원하십니다. 선택받은 사람은 어떤 방법으로든지 하나님께 꼭 구원하시고 맙니다. 선택한 사람은 꼭 불러내십니다. 전도라는 방법으로 불러내십니다. 젊어서 빨리 나와 하나님께 충성하면 좋은데 아무리 불러도 안 나옵니다. 늙어 죽을 만큼 되었을 때에도 안 나옵니다. 그럴 때엔 하나님께 그 몸을 병들게 만들어 놓고라도 불러내십니다. 어떤 방법으로든지 구원하십니다. 이 선택의 교리에 대해서 우리 장로교회 창설자인 칼빈이 성경을 요약해서 우리들에게 잘 설명해 줍니다. 다섯 가지로 우리 들에게 설명을 해 주는 내용은,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우리 인류의 조상 아담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대 따먹은 죄 때문에, 인류는 전적으로 타락했고, 그래서 우리들 자력으로는 구원 얻을수 없었으므로 하나님이 선택을 합니다. 선택을 할 때에 그 사람이 조건을 갖추었으니까 선택을 하는 것이 아니라 조건이 전혀 갖추어지지 못했는데도 '무조건 선택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요즘 학교에서 학생들 모집을 많이 하는데 시험을 쳐 놓고 자기 학교에 적합하다는 조건을 갖춘 학생들을 뽑습니다. 내가 원하는 학교에 조건을 갖춰 시험을 쳐서 합격됐다고하게 되면 내가 조건을 갖춰서 선택받았으니까 영광을 누구에게도 돌릴 것 없습니다. 내가 영광을 가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조건을 전혀 못 갖췄는데도 나를 학생으로 뽑아줬다면 누구에게 영광 돌려야 됩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 되고 하나님의 아들 딸 되는 것이 내가 조건을 충분히 갖췄는데 너 우리 아들 삼자 그랬다면 누구에게 영광 돌릴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조건을 전혀 갖추지 못했고 무자격자인데 하나님이 선택해서 아들 딸 삼아 줬으니 이것은 감사할 일이요 영광을 돌려야 할 일입니다. 천하만민 모두 다 선택해서 자기의 백성 삼아 주는데 나도 한 몫 끼워서 함께 택해줬다면 감사할 일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극히 적은 수가 구원을 얻고 선택 받는데 나를 끼워 주셨다고하는 그런 제한적 구원이라고 할 때 고맙고 감사할 일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소수가 하나님께 선택함을 받은 다음에는 하나님이 불가항력적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아무리 반항해야 반항할 수 없는 은혜를 주십니다. 그래서 그로 하여금 어떻게든지 예수 믿고 구원 얻게 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렇게 책임지고 구원하기 때문에 그 구원은 보장된 것이고 완전한 것이기에 누가 빼앗지 못합니다. 그래서 선택 받은자가 그 불가항력적 은혜를 받게 되면 그 권능을 지키고, 구원에 이르고, 구원을 누리게 된다고 우리들에게 이야기 해 줍니다. 우리가 오늘 그 속에 들어서, 선택 받은 자녀가 되었다는 것은 얼마나 기쁜 일이며 큰 영광인지 모릅니다. 선택 받은 여러분인줄 믿고 항상 기뻐하며 영광 돌리시기 바랍니다.


2.주되신 하나님(11-12절)

이 말씀을 한마디로 말하면 천지에 있는 것,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은 다 주님께 속했고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천상 천하에 있는 모든 권세, 능력, 영과, 이기게 하심과 광대하심, 그리고 부와 귀, 이 모든 것이 전부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주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은 주인이다, 하나님은 창조주이다, 나는 창조함을 받은 피조물이다라고 인색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바로 주인이라는 것을 공부하는 사람만이 내가 무엇인지 바로 압니다. 그래야 믿음을 바로 가지게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만유의 주재이신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시고 많은 것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땅을 정복하라고도 하셨고,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게도 하셨습니다. 주인이 자기의 관리권을 잠시 종에게 맡기신 것입니다. 행여 착각하고 자기가 주인인 양 위임받은 권한을 마구 휘두르다가는 큰 변 납니다.

우리의 아들 딸을 내가 낳았다고 내것이라 생각하면 안 됩니다. 내 마음대로 해서는 더욱 안 됩니다. 그 생명 하나님이 주신 하나님 자녀입니다, 주인 되시는 하나님의 뜻을 잘 헤아려 그 마음과 뜻에 합당하게 양육해야 합니다.

약한 이웃나라 쳐 들어가 주권을 빼앗아서도 안됩니다. 그 나라의 주권, 인권,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자연도 우리 마음대로 파괴하고 훼손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도, 내 이웃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주인이십니다. 내 마음대로 하거나 함부로 해서는 안되는, 모든 것이 귀하고 소중한 것입니다.

천지에 있는 모든 것을 아끼고 존중해주고 또 사랑하여 주인 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합니다.


3.우리의 하나님(13절)

내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해서 나만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내가 독점해서 내 것만으로 만들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어느 누구 한 사람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나는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하지만, 나 아닌 다른 사람도 자기의 하나님이라 고백합니다. 그렇습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요, 엘리야의 하나님이 바로 나의 하나님입니다. 우리 모두의 하나님이십니다. 능력과 축복으로 우리를 다스리시는 우리 하나님을 바로 공부하고 바로 믿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II.마음 공부(14-19절)

1.즐거운 마음(14-16절)

둘째 공부는 마음 공부를 바로 해야겠습니다. 사람은 마음이 참 중요합니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을 할 경우에는, 내가 온갖 것을 주면서도 좋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없으면 받으면서도 싫습니다. 묘합니다. 사람은 마음이 그만큼 중요한 것입니다. 옆에 같이 살면서도 마음이 없으면 남이되고, 천리 만리 떨어져 있어도 마음만 있으면 통하지 않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마음이 중요합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즐거운 마음을 가지고 살고, 평생을 즐겁게 살아야 합니다.

긍정주의자와 부정주의자, 낙관주의와 비관주의, 인생을 즐겁게 살아가는 사람하고 항상 슬프게 살아가는 사람, 이런 두 가지 종류의 사람이 있는데, 영국의 극작가 버나드 쇼가 자기 응접실 책장 위에다가 포도주 반 병짜리를 갖다 놓았습니다. 한 친구가 그를 찾아와서 포도주 반 병을 보고 좋아합니다. 처음 친구는 먹을 것이 있다고 그렇게 좋아합니다. 두 번째 온 친구는 뭐라고 말하는 하니 '반 병밖에 없잔아. 반 병밖에.' 무엇인가 시무룩해지더랍니다. 그때 버다느쇼가 깨닫고 '아! 바로 이거구나. 똑같은 것을 갖다 놓고 보는데도 왜 이렇게 말이 다르냐. 왜 태도가 이렇게 다르냐? 그것은 보는 마음의 태도에 따라 그렇게 되는 것이 구나!'하고 깨달았습니다. 반 병이니까 절반은 포도주가 있고 절반은 비어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처음에 들어온 친구는 포도주 반 병있는 부분을 보고서, 좋다고 그러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있는 부분을 보는 사람은 항상 즐겁게 산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없는 부분, 비어 있는 부분만 보니까 '없잔아 없잔아'하면서, 자꾸 불평하고 시무룩해서 비관하면서 산다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있는 것을 보고 나면 참 감사하고 즐거운 일이 많습니다. 나는 우리 집에서 함께 기도할 때 그런 소리 안 하지만 나 혼자 엎드려 기도 할 때는 '하나님 내 아내 주신 것 고맙습니다. 하나님 내가 돈주고서 사오려면 나는 지금도 장가 못갔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잘 키워서 나에게 거저 보내 주시니 보기만해도 감사합니다. 거기다가 아들딸까지 더 얹어 주시니 너무너무 감사합니다.'고 합니다. 내가 궁궐 같은 집을 짓고 살면서도 아직도 장가 못가고 혼자서 늙어 간다면 그것이 무슨 복인가요? 그러니 사실상 하나하나 보면 인생이 너무 즐거운 일이 많고 감사할 일이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여기 '이 모든 것 다 하나님께로부터 왔습니다, 나는 잠깐 살다 가는 나그네에 불과한 자입니다.' 이런 믿음 가지니 즐거워진다 그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 즐거운 믿음 가지고 인생을 즐겁게 살기를 바랍니다.


2.정직한 마음(17절)

이 정직한 마음이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야샬'인데 이는 우리 한국 사람들이 말하는 정직의 뜻은 아닙니다. 우리 한국 사람들은 거짓말 좀 안 하면 저 사람 정직하다 그러는데, 성경에는 그것으로 정직하다 하지 않습니다. '야샬'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됐다 그 말입니다. 그런 사람을 정직하다 그럽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제쳐놓고, 나가서 거짓말 안 한다고 정직하다고 하지를 않습니다. 성경이 정직하다 하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된 것,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알고, 모시고 섬기고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나나 거짓말하지 못합니다. 그렇게 때문에 하나님을 바로 알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가진 사람이 성경이 말하는 정직한 마음을 가진 교인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3.정성된 마음(18-19절)

여기 이 정성된 마음이라 하는 말은 무슨 말이냐 하면 갈라지지 않는 마음입니다. 마음이 갈라지면 안 됩니다. 갈라지지 않는 마음이라야 하나가 된 마음이고 방황하지 않게 됩니다. 이리저리 마음이 방황하면 안됩니다. 마음이 한 곳에 정착이 되어 정성을 The아 붓는 마음을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예를 들면 내 아내에게 절반을 뚝 잘라서 내 마음을 주고 또 남의 아내에게 마음 절반 뚝 잘라 줘버리고 만다면 그 마음이 뭐가 되겠습니까? 마음은 한데다 쏟아 부으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한다'고 말씀하지 않았습니까? 이 시간 나와서 우리가 예배할 대에는 마음을 하나로 묶어서 하나님 앞에 정착을 시키고 쏟아 부어야지, 마음 절반은 여기 와 있고 절반은 딴데 가 있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내 마음을 완전히 하나로 묶어 쏟아 부을 때, 그게 바로 정성된 마음입니다. 그래서 예배할 때에는 예배에 쏟아 붓고, 가정에 가게 되면 가정에 쏟아 붇고, 직장에 나가면 직장에다 쏟아 붓고 그렇게 해야 되지 않습니까? 그래야 그 일이 정성스럽게 되는 것입니다. 정성된 마음, 우리 성도들이 가져야 할 마음이고 우리 성도들이 배워야 할 마음인 줄 압니다.


III.믿음 공부(20-22절)

1. 찬송하는 믿음(20절)

우리가 웃어른에게, 높은 사람에게 무엇인가 찬양을 하고 축하를 하려고 하면 예물을 드려서 축하를 하는 경우가 있고, 노래를 불러서 축하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여기 송축이라는 말은 찬송을 불러서 -하나님 앞에 예물을 드려서 축하가 아니라- 축하한다는 뜻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송축이란 찬송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말로는 찬송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왜 찬송하는 믿음이 되어야 하는고 하니 아마 여기 앉은 사람들 중에 일 주일에 찬송 한 장도 안 부르고 사는 사람 적지 않을 것입니다. 찬송 부를 시간 다 지나 와서 설교만 듣고 축도하기 전에 빠져나가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찬송 부를 때 마음이 열립니다. 바울을 보십시오. 빌립보에 가서 귀신 들린 여자에게서 귀신 쫓아내고 고쳐줬다가 오히려 그 주인에게 잡혀가 매맞고 옥에 갇히지 않았습니까? 그렇지만 그 옥에서 얼마나 간절하게 뜨겁게 찬송을 불렀던지, 옥에 갇힌 사람들이 전부 다 듣고 찬송하는 중에 옥터가 움직이더니 문이라는 문이 다 열렸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간수가 책임 때문에 자결하려고 할 때, 우리가 여기 있다고 오히려 안심시켜 주니, 거기서 예수 믿고 바울을 불러다가 잘 대접하고 온 식구가 세례받은 일을 다 아시지요? 찬송 부르니까 문이라는 문은 다 열리고, 나를 감시하고 괴롭히던 그 사람의 마음 문까지 열리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찬송할때에 내 사없의 문도 열립니다. 하늘의 문도 열리고, 내 마음의 문도 열리고 문이라는 문은 다 열립니다. 그래서 우리 성도들은 찬송을 뜨겁게 부르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감사의 마음을 찬양으로 노래하고 하나님 사랑의 마음을, 정성된 마음을 찬양으로 올리는 기쁨의 나날이 되시기 바랍니다.


2.예배하는 믿음(21절)

번제란 말은 제사로서 으뜸가는 제사인데 예배에 해당됩니다. 번제는 양이나 송아지나 이런 것으로 드릴 때에, 반드시 가죽을 벗기고 각을 뜨고 내장을 전부 들어낸 다음에 전부 깨끗이 씻어 냅니다. 깨끗이 물로 씻은 후에 제단 위에 놓고 완전히 태우는 제사입니다. 태워버릴 때 뭐 꼭 씻어서 해야 되나 태우는 것 그냥 태우면 되지 않나 생각해도 절대 그것이 아닙니다. 깨끗이 씻은 후에 태우라는 것입니다. 본래 이 번제는 우리의 헌신을 가리키는데 제단에서 불로 태워지는 것처럼, 내가 이 제단에서 하나님을 위해서 내 몸 불태우겠습니다라는 뜻인데, 우리의 모든 것을, 뒤집을 것은 뒤집고 씻을 것은 깨끗이 씻어 가지고 회개하고, 죄사함받고, 의로 칭함 받은 그 몸을 갖다가 하나님 앞에 드리라는 뜻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예배에 출석하는 것 즉, 내가 이 몸을 이 제단 위 하나님께 바쳐, 바로 불태우며 충성하겠습니다에 해당되는 뜻입니다. 그러자면 우리가 먼저 하나님과 해결할 것은 다 해결하여, 깨끗한 심령을 바쳐야 합니다.


3. 친교하는 믿음(22상반절)

우리의 이웃에게 어렵고 힘든 일이 있을 때 찾아가 위로하고 그 고난을 함께 나눕니다. 나에게 기쁘고 좋은 일이 있으면 우리의 이웃을 초대하여 그 기쁨을 함께 나누면 그 즐거움이 더욱 커집니다. 우리의 삶에는 나 혼자가 아닌 이웃과의 사귐이 있어야만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먹고 마셨다 함은 하나님 앞에서 생활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 삶에서 사람과의 사귐이나 정을 나누고자 할 때는 초대하여 주로 음식을 함께 먹습니다. 기뻐하여 먹고 마시는 일, 하나님 앞에서 서로 서로 막힌 담을 헐고, 친교하며 사랑을 나누는 일이 얼마나 귀합니까. 하나님 앞에서의 이런 친교 하는 믿음 배우고 가져야 할 믿음입니다.


출처/김창인목사 설교자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