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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께서 쓰시겠다 하라 (마 21:1~9)
본문에 보면 예수님께서 영광의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에 스가랴 선지자의 예언대로 나귀 새끼를 타시고 입성하시는 광경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감람산 벳바게에 이르렀을 때에 두 제자에게 저 건너편 마을에 가면 나귀와 나귀 새끼가 함께 매여 있을 것이니 풀어서 끌고 오라고 말씀했습니다. 그 때 누가 무슨 말을 하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의 의미를 생각하면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여기에서 ‘예수님께서’라고 하지 않고 ‘주께서’라고 하신 의미가 무엇일까요? ‘주’라는 말은 주인이라는 말이고, 창조주의 권위를 나타내고, 나의 모든 전체를 소유하신 분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주께서 쓰시겠다는 것은 우리의 생애가 주께서 쓰시는 순간부터는 존귀한 자로서 하나님 앞에 귀한 삶이 이어지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나귀 새끼를 타고 입성하신 것은 스가랴 9장 9절에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공의로우며 구원을 베풀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새끼니라”고 예언하신 말씀 그대로 하나님께서 미리 하신 말씀을 주님이 이루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신적 권위를 여기에서 나타낸 것입니다. 그러면 “주께서 쓰시겠다 하라”고 하신 말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첫째,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다 주님의 것임을 알려 줍니다.
예수님은 창조주로서 이 세상 모든 만물의 주인이시고 소유자이십니다.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대상 29:14) 우리는 단지 주님이 맡기신 것을 관리하는 청지기일 뿐입니다. 사람이 태어나고 죽는 것도 주의 손에 달려있습니다. 전도서 5:15에 보면 “저가 모태에서 벌거벗고 나왔은즉 그 나온 대로 돌아가고, 수고하여 얻은 것을 아무것도 손에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의 생명 자체도 우리의 것이 아니라 주님의 것입니다. 주님이 주셨으니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이 주신 이 생명, 주님이 주신 이 삶을 오직 주님만을 위하여 살아야 합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이 주님의 것임을 알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몸도 주님의 것이기 때문에 소중히 여기고 살아야 합니다. 매일 매일의 삶 가운데 오직 주님의 뜻대로 행케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의식주 생활은 물론 물 한 모금 마실 때도 주님의 것임을 알고 감사할 줄 알아야 되고, 하나님이 주신 우주 공간에서 마음껏 공기를 마시며 살게 해주신 것도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둘째, 주님께 쓰임 받는 것이 곧 축복임을 보여줍니다.
주님이 여러분에게 사명을 맡겨주셔서 하나님의 몸된 교회를 받들어 충성하게 된 것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쓰신 나귀는 많은 나귀들 중에 선택받은 나귀였습니다. 주님께 쓰임 받는 순간 그 나귀는 위치가 달라지고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유대 나라는 비가 잘 오지 않기 때문에 손님들이 제일 불편한 것이 발에 먼지가 묻으니까 손님이 오시면 제일 먼저 하는 대접이 대야에 발을 씻으라고 물을 떠다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큰 대접은 팔을 걷고 손님의 발을 씻어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최고의 예우는 자기의 겉옷을 벗어서 길에 깔아주는 것입니다. 나귀가 홀로 있을 때는 구유에 매여서 등에 채찍이나 맞을지 모르지만 예수님을 태우니까 그 때부터 먼지 나는 길이 아니라 예수님을 존경하는 분들이 깔아놓은 겉옷을 밟고 걷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호산나’하고 환영하는 인파속을 걷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귀한 위치에 있었습니까?
우리가 주님께 쓰임 받는 것은 곧 축복입니다. 주님께 쓰임 받는 순간부터 영광의 길, 승리의 길, 축복의 길, 행복의 길이 열리기 때문입니다. 주님께 쓰임 받는 그릇이 되려면 항상 자기를 깨끗하게 해야 합니다. “큰 집에는 금과 은의 그릇이 있을 뿐 아니요, 나무와 질그릇도 있어 귀히 쓰는 것도 있고 천히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딤후 2:20,21)
셋째, 주께 쓰임 받는 자는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야 됩니다.
나귀가 먼지 나는 길을 걷지 아니하고 겉옷과 나뭇가지가 깔린 길을 많은 사람들의 환영을 받으며 걸을 수 있었던 것은 주께 쓰임 받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타지 아니한 나귀에게 누가 옷을 깔아주고 환영을 해주겠습니까? 보잘것없고 천한 나귀인데 말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 쓰임 받은 우리는 이 생명 다할 때까지 예수님을 모시고 살고,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며 살아야 합니다. 사도행전 12:23에 보면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아니하는 고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충이 먹어 죽으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사람이 교만하면 다른 사람이 다 나보다 못하게 여겨지고 눈에 보이는 것이 없어집니다. 형제도 안보이고, 이웃도 안보이고, 나중에는 주님도 안보이는 것입니다. 우리는 온유하고 겸손하신 주님의 마음을 본받아 항상 겸손하게 살아야 합니다. 주님은 겸손한 지도자, 겸손한 정치가, 겸손한 교육자, 겸손한 신앙의 지도자, 겸손한 교회의 직분자를 크게 들어 쓰십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절대 교만해서는 안됩니다. 바울처럼 주님의 십자가만 자랑하면서 온 세상 만민들 앞에 주의 영광을 나타내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넷째, 주께 쓰임 받는 자는 충성을 다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태운 나귀는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시기까지 끝까지 충성했습니다. 힘들다고 중간에 예수님을 내려놓고 딴 길로 갔다는 그런 기록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시기까지 끝까지 사역을 잘 감당했습니다. 짐승이지만 예수님을 모시고 끝까지 갈 길을 다 갔습니다. 주께 쓰임 받은 우리는 무엇을 맡았든지 맡은 일에 끝까지 충성을 다해야 됩니다(고전 4:2). 주님께서는 끝까지 충성하는 자에게 지혜도 주시고, 감당할 수 있는 능력도 주시며(막 9:23), 더 많은 것으로 맡기시고(마 25:21), 생명의 면류관을 주십니다(계 2:10).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의 모든 것은 다 주님의 것임을 알고 감사하면서, 주님께 쓰임 받는 것이 곧 축복임을 깨달아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며, 주님이 오시는 그날까지 충성을 다하여 주님께 더욱 크게 쓰임 받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피종진목사 설교자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