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에서 목회하시는 어느 목사님께서 목회 칼럼집을 보내 달라고 요청하셔서 1990~1992까지의 목회 고백을 엮은 제1권 겉표지에 싸인을 하면서 무심코 읽게 되었다.

이 글을 쓴지가 이십여년이 지난 지금, 그 때의 목회 고백을 읽노라니 마치 남의 글을 읽는것 같았다.

너무너무 순수했던 마음, 주님을 향한 간절한 마음, 자신을 한 달란트 받은 종으로 생각하며 이것 마저 빼앗기지 않게 해 달라고 간구하는 겸손한 마음, 얼마되지 않는 성도들을 사랑하는 애절한 마음, 금식과 기도로 매달리는 애타는 마음 그러면서도 「자그마한 텃밭엔 과실나무를 심고 한쪽엔 닭도 키우고 꿩도 키우고 토끼도 키우고 싶다.

그리고 그 안에 빨간 벽돌로 된 넓은 공간이 있는 집을 지어 놓고, 여름엔 옥수수를 먹으며 겨울엔 통나무때는 난롯가에 둘러앉아 찬양을 하며, 또 간증도 하며 기도하며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도 아울러 하고 싶다-」는 소망을 담은 목회 칼럼 등이 나의 마음을 설레게 하였다.

그러면서도 혹시 그때 내가 하나님 앞에 고백했던 다짐들과 다른 삶을 살고 있진 않은지 염려가 되어 조심스런 마음으로 계속 읽어 나갔다.

그러나 읽으면 읽을수록 이 고백의 글이 내가 한 것이 아니고 누군가 다른 목회자가 한 것 이라는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 이유인즉, 그 때 이 칼럼을 쓸 때의 나와 지금의 내가 너무 많이 변해있기 때문이었다. 그뿐 아니고 목회고백 옆에 실린 생명의 양식의 설교요지를 읽으면서 너무 감동을 받게 되고 ‘이게 정말 그때 내가 한 설교인가-’하는 의아심이 들 정도였다.

그 동안 목회칼럼 시리즈 일곱권을 원하는 많은 목사님들에게 무료로 보내드렸다. 그런데 가끔 내게 전화를 걸거나 어쩌다 만나게 된 목사님들이 ‘이 책을 너무 감명 깊게 읽었다’며 인사를 하고 또 ‘이렇게 훌륭한 목사님을 뵙게 되어 영광’이라고까지 말씀하시는 걸 들을 때 너무 무안하고 쑥스러웠는데 혹시 그 분들이 지금도 내가 그 시절의 순수함을 갖고 있는 목회자로 생각하고 있지 않을까- 하여 너무 부끄럽고 죄송스런 맘이 든다.

그러나 내가 이 책을 다시 앍게 된 것이 우연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일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면서 다시 한 번 나의 변한 모습을 찾아보며 그때 그 순수했던 초심으로 돌아가도록 노력해야겠다고 다짐을 해본다.

그러면서도 혹시 지금 이 책을 읽는 지금의 성도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 하는 염려가 된다. 사람이 책을 써서 남긴다는 것이 너무 조심스러운 일이요 세월이 지난 자신에 대한 평가자료가 될 수 있음을 생각하니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오! 주여

그 때 그렇게 순수했던 그 모습이 변치않게 하소서.

제가 쓴 책에 대한 책임을 지게 하소서.

(주후 이천십이년 오월 둘째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