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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사도행전 2:37~41)
예루살렘 초대 교회는 성령 받은 사도들의 활동으로 놀라운 부흥을 거듭하였습니다. 오순절날 다락방에 모인 성도들은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 또는 불의 혀와 같이 강렬한 성령의 역사를 체험하였습니다. 그들은 곧바로 거리에 나가서 담대하게 복음을 전했고,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방언을 하며 각종 신유의 은사를 동반한 표적을 행하기도 하였습니다. 이처럼 성령의 강권적인 역사 앞에 사람들은 신기해하기도 하고 어리둥절 하는 표정이지만 그중에 많은 사람들은 베드로의 설교를 통하여 양심의 가책을 느꼈습니다.
본문 말씀 37절에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에 베드로는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라고 하였습니다. 41절에는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고 하였습니다.
오늘날 건전한 그리스도의 교회가 예수님을 영접하고 신앙고백을 하는 사람에게 세례를 베풀게 됩니다. 이것은 초대교회 이후 그리스도 교회의 전통입니다.
오늘 우리교회가 예수를 믿고 신앙을 고백하는 사람들과 성도의 자녀들에게 세례를 베풀면서 이 의식에 대한 신령한 뜻을 살펴보고 은혜를 받기 원합니다.
I. 세례의 의미
구약시대 아브라함의 자손들은 난지 팔일 만에 할례를 받았습니다. 이는 구별된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증표로 그 의미가 있습니다(창 17:9-14). 신약시대에는 언어나 종족이나 국경에 차별 없이 예수를 주님으로 영접한 사람이면 세례를 받습니다. 이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신분상의 증표가 되는 것입니다.
(1) 신약 교회의 표증(表證)입니다.
신약의 복음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과 관련하여 세례의 의미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공적사역을 시작하기 직전 요단강에서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았습니다(마 3:16). 그 예수님께서 사역을 마치시고 하늘로 올라가시면서 최후로 당부하신 말씀 가운데 제자들에게 세례 줄 것을 명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8:19에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오순절 이후 예루살렘에서 시작되는 신약교회는 사도들이 전파하는 복음을 받고 그리스도에게로 돌아오는 사람들에게 세례를 받게 하였습니다. 이후에도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어디서나 그리스도께로 돌아오고 신앙고백을 하는 사람에게 세례를 베풀어 신자가 되는 확증을 갖게 하였습니다(행 8:36-39, 16:15, 33).
(2) 죄 사함의 의미가 있습니다.
본문 말씀 38절에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고 하였습니다. 베드로는 그의 설교를 듣고 양심이 찔려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하고 부르짖는 무리들에게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 받을 것을 권했습니다.
여기에는 회개와 죄 사함과 성령의 선물이 함께 나타나지고 있습니다. 곧 자기의 죄를 자백하고 회개하는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되는데(요1서 1:9), 세례는 그것을 증거하는 의식이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물 세례” 또는 “불 세례”라는 말이 있습니다(마 3:11). 여기서 물과 불은 더러움을 깨끗하게 한다는 상징적 의미를 가집니다.
구약시대 하나님의 백성을 성결케 하는 예식(潔禮) 중 어떤 부정한 것에 접촉되었거나 몸에 더러운 것이 묻었을 경우 그 옷을 물로 씻으라고 하였습니다(레 11:25). 그러나 악성 문둥병에 접촉되었을 경우 모두 불에 태우도록 하였습니다(레 13:52). 이런 의식은 더러움을 깨끗하게 하는 것으로써 성도의 거룩한 성품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5:26에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3) 그리스도와 연합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죄는 연합을 깨고 흩어지게 하거나(창 11:6-9) 분열을 가져옵니다.
죄가 들어온 후 사람이 하나님과 단절되었고 사람과 사람사이에도 갈등의 장벽이 가로막혔습니다(엡 2:15). 그러나 회개하여 죄 사함을 받은 자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화목된 자요 하나님의 권속으로서 형제자매가 됩니다(엡 2:18-19).
그렇다면 무엇으로 이 사실을 증명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가 생깁니다. 여기에 세례의 의식이 나옵니다. 세례 받는 자가 먼저 자기는 죄로 말미암아 멸망 받을 수밖에 없는 자라는 것을 인정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 구원받게 되었다는 사실을 입으로 시인하는 신앙고백을 하여야 됩니다. 그렇게 될 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 그것을 인증하는 의식을 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8:26-39에는 에디오피아에서 온 간다게 여왕의 내시가 빌립에게 세례 받은 사건이 기록되었습니다. 빌립의 전도를 받은 내시는 물 있는 곳에 이르자 “보라 물이 있으니 내가 세례를 받음에 무슨 거리낌이 있느뇨”하고 물었습니다. 다른 사본에 보면 “빌립이 네가 마음으로 온전히 믿으면 가하니라”고 했고, 이에 내시는 “내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인줄 믿노라”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세례는 나의 신앙고백을 통하여 그리스도와 연합된 것을 인증하는 표식입니다.
II. 물 세례와 성령 세례
신약의 복음 운동은 세례 요한의 등장함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마가복음 1:1절에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시작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어서 “세례 요한이 이르러 광야에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라고 했습니다(막 1:4). 여기 대하여 요한 자신은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주었거니와 그는 성령으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시리라”고 하였습니다(막 1:8). 그는 물 세례와 성령 세례의 다른 의미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1) 세례의 의식
오늘날 교회가 신자들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고백을 하게하고 공회 앞에서 세례를 행하게 되는데 이는 교회의 머리 되신 예수님의 분부를 따르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시기 직전 마지막으로 당부하신 지상명령으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하였습니다(마 28:19-20).
이에 따라 교회에서는 목사가 세례자의 머리에 물을 얹고 “예수를 믿는 ○○○에게 내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노라”하고 선언하게 됩니다. 이렇게 머리에 물을 얹는 것 외에 세례 받는 자를 물속에 잠기게 하는 침례를 거행하기도 합니다. 베드로전서 3:21에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고 하였습니다. 머리에 물을 얹는 약식 세례는 죄 씻음의 의미가 있다면, 물속에 잠겼다가 다시 올라오는 침례는 옛사람 곧 죄의 사람은 죽고, 의의 사람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았다는 의미를 지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 물 세례와 성령 세례
물 세례와 성령 세례는 주체가 다릅니다. 세례요한은 자신이 주는 세례를 물 세례라 하고, 예수님은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시는 분이라고 하였습니다(마 3:11). 물 세례는 사도들이나 오늘날 교회의 목사가 주는 것이지만, 성령 세례는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지는 것입니다.
본문 말씀 38절에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볼 때 물 세례는 성령 세례의 전 단계요 성령 세례에 이르게 하는 과정이 되는 것입니다. 물 세례를 받았다고 반드시 성령 세례를 받는 것은 아닙니다. 사도행전 19:2-3에 보면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가로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하였노라 바울이 가로되 그러면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 대답하되 요한의 세례로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말씀에도 성령을 「선물」이라고 하였습니다. 회개하고 세례 받은 자에게 하나님께서 강권적으로 부어주시는 선물이요 은사입니다(행 11:16).
(3) 성령 세례의 증거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그의 제자들에게 당부하신 말씀 중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고 하였습니다(행 1:4-5). 이 말씀대로 제자들은 마가 요한의 다락방에서 열흘 동안 기도하며 기다렸습니다. 드디어 오순절날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와 불의 혀와 같은 모양으로 성령이 강림하였습니다(행 2:1-3). 이 때 성령의 세례를 받은 사람들은 그 즉시 거리로 뛰쳐나가 만나는 사람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들은 모두 성령의 말하게 하심에 따라서 각각 다른 방언으로 말하였습니다(행 2:4). 그 외에도 여러 가지 표적과 기사를 행하였습니다(행 2:43).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사람은 성령의 은사를 통하여 여러 가지 신비로운 사건들을 체험합니다. 고린도전서 12:4에 보면 한 성령이라도 여러 가지 사역을 하게 한다고 하였습니다. 여기 대하여 예수님께서는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고 하였습니다(행 3:8).
Ⅲ. 세례 받은 자의 신분
교회를 그리스도인의 공동체라고 하는데 세례를 받은 사람은 이 공동체의 정회원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고 하였습니다(요 15:5).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정점으로 하여 거기 연결된 사람의 집단입니다. 세례 받은 사람은 그리스도와 한 몸이요 불가분리의 관계임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의 소유된 자라는 뜻입니다.
(1) 목적 있는 삶을 사는 자입니다.
디모데후서 2:4에 “군사로 다니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군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의 존재 목적이 오직 그리스도에게 있음을 고백하였습니다. 빌립보서 1:20-21에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모름지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는 자입니다. 고린도전서 10:31에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하였습니다. 세례를 받은 사람은 그리스도에게 소유된 사람으로서 하나님 중심, 말씀 중심, 교회 중심의 생활원리를 가지고 그의 삶을 가름하는 자들입니다.
(2) 헌신자의 삶을 사는 자입니다.
그리스도에게 바쳐진 자의 삶입니다. 이것은 「사명」이라는 차원에서 생각하는 말입니다. 사도 바울이 2차 전도여행을 할 때 마게도냐의 첫 성인 빌립보에서 루디아를 만났습니다(행 16:14). 그는 당시 소아시아와 유럽지역을 오가며 사업을 하였고, 많은 재산을 가진 사람입니다. 사도행전 16:14-15에 “두아디라성의 자주 장사로서 하나님을 공경하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들었는데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청종하게 하신지라 저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고 우리에게 청하여 가로되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 하고 강권하여 있게 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후 바울과 그의 일행은 루디아의 헌신으로 그 집에 거하며 그곳을 전도의 거점으로 삼고 유럽과 세계 선교의 문을 열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이상은 전적으로 그리스도에게 헌신된 자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제게 있는 모든 것을 오직 주와 복음을 위하여 값지게 쓰여지는 것을 최상의 영광으로 생각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이런 사람들을 통해서 확장되고 이루어가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겐그리아 교회의 일군인 뵈뵈를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천거하면서 “그가 여러 사람과 나의 보호자가 되었음이니라”고하였습니다(롬 16:1-2).
(3) 축복의 증거자가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에게 할례를 행하라고 명령하였습니다(창 17:23-27). 할례는 구약시대 하나님의 백성의 표로서 할례를 받으므로 구별된 자가 되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아브라함 이후 이스라엘 백성은 난지 팔일 만에 할례를 행하였습니다. 창세기 18:18-19에 “아브라함은 강대한 나라가 되고 천하 만민은 그를 인하여 복을 받게 될 것이 아니냐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라고 하였습니다. 곧 할례 받은 아브라함과 그 후손은 세상 사람들 중에 하나님의 계명을 좇아 의와 공도의 표본으로 삼는다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이들에게 자자손손 복을 주어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복을 받는 사람들이 얼마나 형통케 되는 가를 증거로 삼겠다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그리스도에게 연합하여 믿음의 생활을 잘하고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에 진력하는 사람과 그 후손들이 하나님의 축복을 행사하는 모범이 되는 것입니다. 다니엘 12:3에 있는 말씀처럼 궁창의 빛과 같고 밤하늘의 별과 같이 영롱하게 빛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출처/손상률목사 설교자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