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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위를 옳게 하는 사람들 (시 50:16-23)
"악인에게는 하나님이 이르시되 네가 어찌 내 율례를 전하며 내 언약을 네 입에 두느냐 네가 교훈을 미워하고 내 말을 네 뒤로 던지며 도적을 본즉 연합하고 간음하는 자와 동류가 되며 네 입을 악에게 주고 네 혀로 궤사를 지으며 앉아서 네 형제를 공박하며 네 어미의 아들을 비방하는도다 네가 이 일을 행하여도 내가 잠잠하였더니 네가 나를 너와 같은 줄로 생각하였도다 그러나 내가 너를 책망하여 네 죄를 네 목전에 차례로 베풀리라 하시는도다 하나님을 잊어버린 너희여 이제 이를 생각하라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희를 찢으리니 건질 자 없으리라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시편 50:16-23)
중국 정부는 친밀 정도를 따라 외교적 용어가 다르다고 합니다. 중국 정부의 경우 외교 용어 가운데 제일 많이 쓰는 말이 「동반자」라는 말이라고 합니다. 동반자는 세 가지 특징을 갖는데 ① 서로 대항하지 않는다 ② 같은 것을 추구하고 생각이 다른 것은 일단 제쳐둔다(求同存異) ③ 어느 특정한 제삼국을 겨냥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동반자 가운데 ① 전면 전략적 동반자관계 = 프랑스, 이탈리아 ② 전략적 협력 동반자관계 = 러시아 ③ 전략적 동반자관계 = 영국, 독일, 캐나다, 브라질 ④ 전면적 합작 동반자관계(인도) ⑤ 건설적 협력 동반자관계(미국) ⑥ 협력 동반자관계(한국) ⑦ 선린우호관계(한국) ⑧ 단순수교 등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제일 친밀한 관계는 혈맹이고 그 다음이 전통적 우호관계인데 북한이 그 대상국이라는 것입니다. 본래 북한과 중국은 혈맹관계였는데 한국과 중국의 수교이후 전통적 우호 협력관계로 수정되었다고 합니다.
저는 여기서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너는 내 아들이다. 내가 너를 낳았다. 내가 너를 조성했다.” “너는 내 백성이라. 내가 너를 도우리라 지키리라 떠나지 아니 하리라…”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는 부자관계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지으셨고 나를 낳으신 분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은 이 관계를 마다하고 계속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그때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찾아오셔서 깨닫게 하시고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이 사실을 바울은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다”고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의 피로 연결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외교용어로 말하면 혈맹이 되게 해 주신 것입니다. 시편 50편은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자녀가 취할 행위가 어떤 것인가를 밝히고 있습니다. 몇 가지만 살펴보겠습니다.
1. 감사의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14절을 보면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극히 높으신 자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라고 했습니다. 23절에서도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수를 셀 수 없는 제사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문제는 진심으로 드리지 않고 마음에 없는 형식적 제사를 드린 것입니다.
이사야 1:11을 보면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냐 나는 수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기뻐하지 아니하노라”고 했고, 1:12에서는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오니…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고 했고, 1:13을 보면 “더 이상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고 했습니다. 마음도 없고, 생각도 없고, 뜻도 없는 제사에 싫증이 났다는 것입니다. 그런 제사는 천만번 드려도 받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제사는 예배입니다. 여기서 우리의 예배를 점검해야 합니다. 출석성적이 좋은 사람의 경우 년간 새벽기도 360일 주일 낮, 주일 저녁, 수요일 예배를 합하면 510회 교회에 나와 예배를 드리게 됩니다. 그 예배마다 생명력이 넘치고 성령이 역사하시고 신령과 진정이 살아 숨쉬고 감동과 감격이 넘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들처럼 체면치레로 형식에 얽매어 예배를 드린다면 즉시 예배 태도를 바꿔야 합니다. 그래서 본문은 “감사로 제사를 드리라”고 한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소리내어 기도할 수 있고 찬송할 수 있는 것, 귀를 기울여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고, 깨닫고 감동하는 것 이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것을 감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배는 감사함으로 드려야 합니다. 그러니까 예배드리기 전에 마음부터 정리하고 정돈해야 합니다. 원망하는 마음, 불평하는 마음, 다투는 마음, 시기하는 마음, 미워하는 마음, 성난 마음을 다스려 감사하는 마음으로 바꿔야 합니다. 그 후에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2. 서원을 갚아야 합니다
14절을 보면 “지극히 높으신 자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 수많은 서원을 남발하고 지키지 않았습니다. 말이 많은 수다쟁이일수록 약속을 지키지 않습니다. 그러나 신실한 사람은 자기가 한 말과 약속을 책임지고 실행합니다.
신명기 23:21을 보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 서원하거든 갚기를 더디하지 말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반드시 그것을 네게 요구하시리니 더디면 네게 죄라”고 했습니다.
시편 15:4을 보면 “그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치 아니하며”라고 했습니다. 서원은 반드시 갚으라. 하나님이 요구하신다. 서원 불이행은 죄다. 자기에게 해롭더라도 변치 말라는 엄중한 경고를 주시해야 합니다.
대부분의 서원은 어려울 때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한 것들입니다. 그러나 그 어려움이 해결되고 편안해지면 서원은 잊어버리거나 이행하지 않게 됩니다. 그러나 나에게 손해가 오고 불이익이 오더라도 하겠다고 한 것은 하라는 것입니다. 드리겠다고 한 것은 드리라는 것입니다.
1985년 5월 어느날 어떤 사람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그의 말에 의하면 1970년까지 충신교회를 다니다가 지방 어느 교회로 이사를 간 교인이었습니다. 충신교회 다닐 때 교회 건축을 위해 헌금을 작정했지만 사업이 어려워 지방으로 이사를 하게 됐고 작정했던 헌금은 교회는 다 같은 교회니까 사업이 다시 성공하면 다니는 교회에 하겠다고 마음을 정리했습니다.
그런데 충신교회를 떠난 지 15년 동안 서울을 생각하면 충신교회가 떠오르고, 충신교회가 떠오르면 작정했던 헌금이 떠올라 15년을 고민하다가 헌금을 가지고 왔노라며 봉투를 내놓았습니다.
그는 서원을 이행한 사람이었습니다. 거는 그를 위해 이런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한 평생 서원을 갚는 신앙으로 살게 해 주시고 넘치는 복으로 채워 주옵소서”라고.
우리에겐 크고 작은 서원이 있습니다. 이롭던지 해롭던지, 엊그제 것이든 오랜 옛날 것이든 그 서원을 갚도록 합시다.
3. 하나님을 불러야 합니다
15절을 보면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어려울 때, 힘들 때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반드시 들으시고, 건지시고, 영광을 받으시겠다는 것입니다.
기도는 위대한 폭발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환난도, 위험도, 어려움도, 걱정도, 고민도 다 폭발시켜 버립니다. 사단의 권세도 폭파시켜 버립니다. 그러나 기도하는 나에게는 엄청난 힘이 되고 위로가 되고 응답이 되는 것입니다.
여자들이면 누구나 한번쯤 손톱에 발랐을 매니큐어의 주성분은 폭약의 주성분이라고 합니다. 매니큐어 원료는 미사일이나 대포에 쓰이는 주원료인 「니트로셀룰로오스」라는 물질이고, 매니큐어를 지울 때 쓰는 아세톤도 폭약을 만드는데 없어서는 안될 원료라고 합니다. 폭약의 원료가 되는 니트로셀룰로오스는 손톱의 수분 증발을 막아주고 산소를 잘 흡수하기 때문에 손톱을 상하게 하지 않고 예쁘게 유지시켜 준다는 것입니다.
협심증으로 심장에 통증이 있을 때 응급약으로 사용하는 것이 니트로글리세린이라는 것인데 이것을 소량 혀 밑에 넣고 녹이면 그것이 혈관을 타고 들어가 심장이나 뇌의 혈액순환을 좋게 만든다고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니트로글리세린은 다이나마이트의 주원료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폭약을 손톱에 바르고 다이나마이트를 혀 밑에 넣게되는 셈입니다.
기도의 능력은 원수 마귀에게는 치명타를 주는 폭탄이 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승리의 무기가 되고 해결의 열쇠가 되는 것입니다. 환난을 당한 사람, 문제가 앞을 가로막고 있는 사람, 길이 막혀 꼼짝못하는 사람은 이 말씀 믿고 기도합시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아멘.
4. 말을 조심해야 합니다
19-20절을 보면 “네 입을 악에게 주고 네 혀로 궤사를 지으며 앉아서 네 형제를 공박하며 네 어미의 아들을 비방하는도다”라고 했습니다. 혀를 악한도구로 쓰고 남을 비방하고 형제를 비판한다는 것입니다. 즉 혀를 바로 쓰지 못하고 말을 절제하지 못하는 것을 책망하고 있습니다. 두려운 것은 21절입니다. “네가 이 일을 행하여도 내가 잠잠하였더니 네가 나를 너와 같은 줄로 생각하였도다 그러니 내가 너를 책망하여 네 죄를 네 목전에 차례로 베풀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더 이상 침묵하지 않으시겠다는 것입니다. 차례대로 심판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야고보서를 보면 말에 대한 교훈이 더 구체화되고 있습니다.
야고보서 3:2을 보면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온전한 사람이라”고 했고, 3:6을 보면“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고 했고, 3:8을 보면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않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고 했고, 3:10에서는 “한 입으로 찬송과 저주가 나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치 아니하니라”고 했습니다. 3:11에서는 “샘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물과 쓴물을 내겠느뇨”라고 했습니다. 짐작컨대 야고보 당시 교인들 가운데도 말의 덕을 세우지 못하고 말 때문에 형제에게 상처를 주고 교회에 덕을 끼치지 못하고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말의 입에 재갈 물려 순종하게 하는 것처럼 사람 혀도 재갈 물려 시도 때도 없이 터져 나오는 말을 어거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만 「언어」라는 선물을 주셨습니다. 짐승은 말을 할 줄 모릅니다. 그렇다면 그토록 귀한 선물인 말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기도하고, 복음을 전하고, 형제를 위로하고, 격려하고, 칭찬하는데 사용합시다. 야고보 사도의 경고대로 혀를 잘못 쓰다가 심판 받지 맙시다. 선한 도구, 좋은 도구가 되게 합시다.
5. 행위를 옳게 해야 합니다
23절을 보면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고 했습니다. 「행위를 옳게 하는 자」라는 것은 바른 신앙, 바른 삶을 뜻합니다. 평소 저의 지론은 바로 믿고 바로 살자는 것입니다. 잘 믿으려 하지말고 바로 믿어야 합니다. 잘사는 것보다 바르게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동차를 예로 들겠습니다. 독일 같은 경우는 속도제한이 없어서 최신형 벤츠를 몰면 시속 200-300킬로를 달린다고 합니다. 자동차는 전진페달을 밟으면 어느 차나 200-300킬로를 달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고의 원인이 됩니다. 바른 운전습관을 배우고 바르게 운전하고 달려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신앙생활도 예수를 잘 믿노라고 떠벌리고 큰소리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이 문제입니다. 잘 믿는다는 사람들이 문제아가 됩니다. 그러나 바로 믿는 사람들은 겸손합니다. 말이 많지 않습니다. 안전운전을 하기 위해 교통법규를 지키고 난폭 운전을 하지 않습니다. 바로 믿고 바로 살기 때문입니다.
야고보서의 교훈은 행위를 강조합니다. 바울 서신의 교훈은 믿음을 강조합니다. 두 사도의 조화는 바로 믿고, 바로 살라는 것으로 가능해 집니다. 바울은 바로 믿으라고 강조하고, 야고보는 바로 살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내 행위가 어떠한가로 내 믿음은 측정되고 평가되는 것입니다. 그 동안의 내 믿음과 행위를 점검해봅시다. 점수를 매긴다면 몇 점이나 될 수 있을까요? 점수나 평가는 다른 사람이 하는 것입니다. 몇 점이나 받을 수 있을까요?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평가입니다.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심판의 날 하나님이 내리실 평점을 기다립시다. 바로 믿고, 바로 삽시다. 행위를 옳게 합시다.
출처/박종순목사 설교자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