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전, 나와 함께 신앙생활을 하다가 얼떨결에 휩쓸려 기흥에 있는 H교회로 옮겨간 안수집사 세 사람이 개인적 친분관계에 있는 성도의 자녀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우리 교회를 방문 하였다.

식사 후에 인사를 하겠다며 내 사무실로 찾아와서 오랜만에 옛 정을 나누게 되었다. 사실 이들은 우리 교회를 통해 구원을 받거나 잘 양육된 성도들로서 분당 매화마을 때부터 함께 생활했던 영적 자녀들이었다.

십수년을 양육 받아 바른 신앙생활을 통해 안수집사까지 되고 어려웠던 삶도 안정되어 물질의 축복도 많이 받고 교회의 기둥처럼 나의 목회를 잘 돕고 순종했던 이들로서, 나는 이들이 우리 교회와 내 곁을 떠나리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별일도 아닌것 갖고 자기네끼리의 사적인 모임을 위주로 관계를 맺다가 그 중 한 사람이 교회의 치리를 받으니까 그냥 얼떨결에 어울려서 교회를 떠났었던 성도들이었다.

지금은 세월이 지나 속상했던 감정도 모두 삭혀지고 잊혀졌지만 사실 그 일로 인해 그들과 개인적으로 사적 친분을 갖고 있던 수십명의 성도들이 한꺼번에 빠져나가는 바람에 얼마동안 교회가 약간의 어려움을 겪기도 했었다.

그러나 원래 나는 무슨 이유로든지 교회를 떠난 사람들에 대해선 그 순간부터 일절 언급하지 않고 되도록 좋게 생각하고 기억 속에서 잊어 버리는 능력(?)으로 그런 상처를 속히 치유하며 목회를 해 왔기에 다시 이들을 만났음에도 전혀 다른 감정 없이 그전처럼 편하게 대할 수 있었다.

“목사님에게 워낙 철저하게 신앙훈련을 받아서 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수지산성교회에서 하던 것의 50%도 충성을 안하는데도 교회와 목사님에게 인정받아 최측근으로 헌신하고 있습니다.”

“아, 그래? 잘 되었구먼. 그런데 목사님의 최측근으로 쓰임 받으려면 혹 목사님의 실수까지도 이해하고 포용하고 변호할 수 있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되는데 그럴 자신 있나?” “아유, 목사님이 실수하시면 안되지요”

“아냐, 목사님도 연약한 사람이야, 멀리서 보면 약점이 잘 안 보여도 가까이 그것도 최측근이 되면 보일 수도 있지. 그렇기 때문에 최측근이 될려면 장세동씨처럼 철저하게 목사님을 보필하고 어떤 경우에서도 목사님 편에 서야 되는거야.

만일 그럴 자신이 없으면 적당한 거리에서 보필하고 충성하는 것이 본인들의 영적 생활에 유익하지. 이젠 그 교회에서 끝까지 충성해서 장로가 되어야 해. 그리고 앞으로는 자주 놀러 와요. 아이들 결혼 때도 꼭 연락하구...” 지금은 다른 교회 교인이 된 지 오년 정도가 됐지만 그렇다고 저들을 내가 잊을 수 없다.

아마 저들도 수지산성교회와 나를 잊지 못할 것이다. 이곳은 영적인 고향이요 친정같은 곳이기 때문일 것이다. 들려오는 소리로는 우리 수지산성교회를 다니다가 다른 교회로 옮긴 성도들이, 섬기는 교회는 달라도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고 있다는데 향우회처럼 동창회 한번 소집 해볼까?

오! 주여

제게 초연할 수 있는 맘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른 교회로 옮긴 성도들을 축복해 주셔서

끝까지 영적 성공자들이 되게 하옵소서. (주후 이천십이년 유월 둘째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