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대하다 보면 자신을 가꾸고 사는 게 얼마나 중요한 가를 알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외모가 출중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가꾸지 않아 호감을 사지 못하는가 하면 또 어떤 사람은 외모가 평범함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에게 호감을 사는 경우가 있는 것 같다.

현재 지구상에는 약 70억에 가까운 인구가 살고 있다. 하지만 그 많은 사람들 중에 비슷한 사람은 많아도 똑같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것은 창조주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로써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사람의 기준과 달리 「다름」의 원칙으로 이렇게 하셨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인종과 피부색과 혈통과 민족 등의 여러 조건을 통해 이 세상에 수많은 사람을 태어나게 하시는 것은 오직 창조주이시고 전능자이신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영역이리라.

그러나 이렇게 다르게 태어나서 자기 자신을 가꾸는 것은 각자의 노력 여하에 따라 달라지는 것으로서 어떻게 가꾸느냐에 따라 자신의 가치와 평가와 인생의 품격이 달라짐을 알 수 있다.

어떤 지식을 어떻게 담느냐에 따라 달라지고 어떤 성품과 인격을 소유하느냐에 따라 또 달라지고 또 자신의 외모를 위해 어떤 의상과 헤어스타일을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고 자신의 몸매를 어떻게 관리 하느냐에 따라 자신에 대한 가치와 평가가 달라지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육체적인 것을 어떻게 관리하고 가꾸는가에 따라 자신의 가치가 결정되기도 하는 것처럼 영적인 면에서도 어떤 종교를 접하고 믿느냐에 따라 달라짐을 알 수 있다.

며칠 전, 이슬람권에 있는 아프가니스탄 여성이 탈레반에 의해 공개 총살되는 것을 뉴스를 통해 보면서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었다.

이런 종교에서의 여성의 가치는 자신을 아무리 가꾼다 해도 기본적인 인권과 인격이 무시되기에 인간 이하의 삶을 살 수 밖에 없다.

아니 두 남자가 서로 소유하려다가 안될 것 같으니까 차라리 그 여자를 없애는 것이 서로를 위해서 좋다고 판단한 나머지 억울한 누명을 씌워서 총으로 공개 처형을 했으니 이런 천인공로할 일이 또 어디 있단 말인가.

이런 일을 볼 때마다 내가 자유대한민국에 태어나 이렇게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간다는 게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른다.

더구나 목회자로 불러 주셔서 하나님의 성역을 감당케 하시고 수지산성교회를 통해 하나님을 섬기고 또 사랑스런 성도들과 함께 천국을 향해 함께 가고 있음이 너무 행복할 뿐이다.

사실 하나님께서 나를 불러 주시지 않았으면 나의 가치는 아무 보잘 것도 없이 아침 안개와 이름 없는 들풀처럼 잠시 있다가 사라지는 존재에 불과 했을텐데 하나님께 속해 있다는 그 은혜 한 가지 때문에 이렇게 고평가(?)된 삶과 대우를 받고 있으니 그 은혜가 감지덕지하다.

그러나 여기에 만족할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자기 자신의 가치 상승을 위해 육적으로나 영적으로나 잘 가꾸고 보살피고 관리해서 끝까지 하나님 앞에 귀하고 소중한 존재로 쓰임 받아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그리고 이것은 나만의 바램이 아니고 나와 함께 영원한 식구가 된 우리 수지산성가족 모두가 함께 추구하며 귀한 삶을 살기를 소망해 본다.

오! 주여

지금의 위치에 만족하여 안주하지 말고

끊임없는 노력으로 영육 간의 고평가된 삶을 살게 하소서

(주후 이천십이년 칠월 셋째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