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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출애굽기 3:1~5)
옛날이나 지금이나 하나님의 일꾼으로 선택된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기대가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하나님의 특별한 가호를 받으면서 하나님께로부터 공급되는 은사와 능력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그들에게 주어진 사명이 막중하다는 뜻입니다. 그 대신 평생동안 자기 몸을 자기 마음대로 쓰는 자가 아니요 오직 하나님의 의지에 따라 헌신하며 사는 자들입니다.
출애굽의 영도자 모세는 이런 면에서 참으로 모범 된 하나님의 일꾼입니다. 그는 평생동안 하나님의 뜻에 따라 자기 백성을 위해 헌신하면서 온갖 고생을 다했지만 묵묵히 순종하면서 자기 소임에 충실하였습니다. 오히려 그는 지난날을 회고하며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자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뇨”하고 스스로 행복한 삶이었음을 과시하였습니다(신 33:29).
오늘 본문 말씀에는 모세가 처음 하나님의 일꾼으로 부름을 받는 장면이 소개되었습니다. 미디안 광야에서 이드로의 양을 먹이던 모세가 호렙산 불꽃 앞에서 그 신비로운 광경에 매료되어 있는 순간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너의 선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오늘날도 하나님의 일꾼으로 부름 받아 그의 종으로 살고자 하는 사람에게 내리시는 하나님의 분부입니다.
Ⅰ. 호렙산의 불꽃
본문 말씀 1절에는 모세가 이드로의 양무리를 이끌고 광야 서편에 있는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렀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호렙산은 훗날 모세가 십계명을 받은 산의 다른 이름일 것으로 봅니다. 이산은 지금 시내 반도 최남단에 위치한 해발 2,300m의 「에벨무사」(Ebel Musa-모세의 산)라고 불리는 산입니다.
한편 「떨기나무」에 대해서는 그 당시 시내 광야 전역에서 흔하게 볼 수 있었으나 지금은 거의 멸종된 상태이고 다만 호렙산 중턱에 있는 케더린(st. Catherine) 수도원 경내 「모세의 우물」옆에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습니다. 사도행전 7s;30에는 이를 “가시나무떨기 불꽃”이라고 하였습니다.
(1) 신비로운 불꽃입니다.
모세는 떨기나무 숲에 불이 붙었으나 그 나무가 사라지지 않는 모습을 보고 크게 호기심을 가졌습니다. 본문 3절에 “이에 가로되 내가 돌이켜 가서 이 큰 광경을 보리라 떨기나무가 어찌하여 타지 아니하는고…”라고 하였습니다. 모세가 보고 “이 큰 광경”이라고 말할 만큼 그것은 장관이었습니다. 나무숲에 큰불이 붙었으나 나무는 타지 않고 그대로 있는 것이 그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것은 분명히 이적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신비로운 사건입니다. 세상에는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신비가 나타나곤 합니다. 사람들은 자기들의 상식이나 합리적 지식만으로 설명이 안 되는 신비적 사실에 직면하면 의아해하고 당황할 때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성령의 감동을 받은 사람은 이를 쉽게 분별합니다(마 13:11). 이런 경우를 알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의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의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고전 2:13).
(2) 하나님께서 임재하신 표징입니다.
호렙산 떨기나무의 불꽃은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인간의 눈에 보일 수 있도록 현장에 임재하신 모습입니다. 1절에 그곳을 가리켜 “여호와의 산”이라고 하였습니다. 2절에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5절에는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의 산이라고 이름 불리는 장소에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났고 바로 그곳을 하나님께서 “거룩한 땅”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한 마디로 말해서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말입니다. 떨기나무에 타오르는 불꽃은 초자연적인 불이며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환상입니다. 그 어디에나 하나님께서 임재하신 곳에는 하나님의 위엄과 영광을 나타내는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가령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분부대로 광야에서 회막을 지었을 때 그 위에 구름이 덮이며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났고(출 40:34), 솔로몬이 예루살렘에 성전을 짓고 헌당식을 할 때도 하늘의 불이 내려와서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하였습니다(대하 7:1-2).
(3) 계시의 싸인(Sign)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의 뜻을 사람에게 나타내 보이시는 방법을 계시라고 합니다. 구약시대에는 하나님의 사자가 사람의 형상을 하고 나타나는 경우도 있었고(창 18:2), 때로는 음성으로 들려주기도 하고(왕상 19:12), 환상으로 보여주기도 하였습니다(사 6:1-5). 그 외에도 꿈으로나 우림과 둠밈과 같은 특수한 방법을 통해서 계시하셨습니다(삼상 28:6). 여기에도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시고 그에게 중요한 임무를 맡기시기 위해서 그를 하나님께서 임재하신 곳으로 부르셨습니다. 떨기나무에 불이 타는 특별한 계시 방법을 그에게 나타내신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고 하였습니다(6절). 12절에는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고 하였습니다.
Ⅱ. 불꽃 앞에 선 모세
하나님께서 신비로운 방법으로 자기를 나타내실 때는 하나님께서 의도하시는 특별한 목적이 있습니다. 기드온을 사사로 부르실 때도(삿 6:36-40), 엘리야에게 사명을 맡기실 때도(왕상 19:11-14),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이적적인 방법으로 자기의 뜻을 계시해 주셨습니다. 거기에는 하나님의 깊으신 섭리와 의지가 담겨져 있었습니다. 곧 적절한 시기에 행하여야 할 일과 거기에 맞는 마땅한 인물을 불러서 쓰시는 것입니다. 모세도 역시 하나님의 필요에 따라 부름을 받은 인물입니다. 본인의 의사와는 전혀 상관없이 주권자 하나님의 요구에 따라 세우심을 받는 것입니다.
(1) 지식과 경륜이 있는 사람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특별하신 섭리 가운데 출생하였으며 그의 성장 배경도 매우 극적이고 은혜로운 면을 지니고 있습니다. 모세가 출생할 당시 애굽 왕은 가나안 땅에서 그곳으로 이주해 온 이스라엘 사람들을 혹독하게 박해하였습니다. 출애굽기 1:8에 보면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라고 하였는데 이 사람이 아시아에서 온 족속을 축출하고 새 왕조(18왕조)를 세운 아멘호텝2세(AmenhotepⅡ, BC1450-1425)라고 말합니다. 그 왕이 히브리인이 아이를 낳았을 때 남자이면 강물에 던져 죽게 하라고 명령하였습니다(출 1:22).
그때 모세는 레위지파 사람 중 아므람과 요게벳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그 부모가 석달 동안 집에서 숨겨 키웠으나 더 어찌 할 수 없다고 판단되었을 때 갈대 상자에 담아 물에 떠내려보냈습니다. 마침 시녀들과 함께 강가에 나왔던 바로의 딸이 그 상자를 발견하였고 그 안에서 울고 있는 모세를 데려다가 자기의 아들로 삼았습니다(출 2:1-10). 그는 어릴 때 친어머니인 요게벳의 젖을 먹고 자라면서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민족정신을 길렀고, 훗날 바로의 궁중에 들어가서는 당대 최고의 학문과 지식을 배워 지도자로서의 경륜을 쌓았습니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자기의 일꾼으로 만들기 위해서 배려해 주신 특별한 은혜입니다.
(2) 인생의 쓴맛을 경험하였습니다.
본문 말씀 1절에 “모세가 그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무리를 치더니…”라고 하였습니다. 얼마 전까지 바로의 궁중에서 공주의 아들 신분으로 장차 왕위를 물려받기 위한 수업을 하고 있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광야에서 양을 먹이는 목동으로 전락해 버렸습니다. 히브리서 11:24에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였다”고 했습니다.
그는 밖에서 노예생활로 고난 당하는 자기 민족을 생각하는 나머지 애굽 사람을 때려 죽였습니다(출 2:12). 이 일이 탄로 나자 왕궁을 빠져나와 미디안 광야로 망명하였고 드디어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집에서 데릴사위 노릇을 하며 양무리를 끌고 다니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말하자면 인생의 단맛과 쓴맛을 골고루 다 보면서 세상을 알고 자신을 아는 경륜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의 궁중에서 꿈과 야망을 키우던 시절보다 쓸쓸한 광야에서 실의에 빠져 있는 그 시절의 모세를 완숙한 사람으로 여기셨던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손에 붙들렸습니다.
애굽에 내려가서 바로 왕에게 속박 당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어 내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았을 때 모세는 이를 거부하였습니다. 출애굽기 3:11에 “모세가 하나님께 고하되 내가 누구관대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하고 물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고 하였습니다(3:12). 그래도 모세는 “그러나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하며 내 말을 듣지 아니하고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네게 나타나지 아니하셨다 하리이다”고 하였습니다(출 4:1). 그때 하나님께서는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셨고, 모세는 “지팡이니이다”하고 대답하였습니다(출4:2). 하나님께서 “그것을 땅에 던지라”고 하여 땅에 던졌을 때 그것이 곧 뱀이 되었습니다.
훗날 그 지팡이를 가지고 바로 왕 앞에서 온갖 이적을 행하였습니다. 그리고 광야 여행길에는 홍해를 가르고 반석을 쳐서 샘물이 나게도 하였습니다(출 14:16, 17:6). 모세는 마른 막대기인 지팡이 하나를 가지고 온갖 능력을 행사 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신 증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마른 막대기와 같은 모세를 하나님의 손에 붙잡으시고 일을 하신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일꾼을 자기 손에 꼭 붙잡으시고 그를 통하여 자기의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계 1:20).
Ⅲ.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모세는 멀리서 떨기나무의 불꽃을 보는 순간 굉장한 호기심을 가지고 “내가 가서 이 큰 광경을 보리라”고하며 현장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모세야 모세야”하고 그 이름을 부르셨습니다. 모세는 즉각 “내가 여기 있나이다”하고 대답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향하여 “이리로 가까이 하지 말라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고 하였습니다(5절). 하나님께서 출애굽의 중차대한 사명을 맡기려는 순간 모세에게 신을 벗으라고 분부하신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1) 거룩한 삶을 요구하신 것입니다.
본문 말씀 5절에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고 하였습니다. “거룩한 땅”이란 하나님께서 임재하신 곳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계시는 곳은 거룩한 곳입니다. 세상에서도 왕이나 고관이 있는 자리를 위엄 있게 생각합니다. 더욱이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서게 되는 사람은 그의 권위와 영광에 걸맞도록 구별된 모습을 취하여야 됩니다.
하나님께 부름 받고 그의 일을 수종드는 사람은 날마다 자기를 다스리는 경건생활의 훈련을 통하여 거룩한 삶을 살아야됩니다. 모세의 발에 신겨져 있는 흙이 묻은 신발은 더러움을 상징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하였습니다(레 11:45). 스가랴 3:3-4에 보면 대제사장 여호수아가 더러운 옷을 입고 하나님 앞에 섰는데 하나님께서는 천사를 시켜 그 더러운 옷을 벗기고 아름다운 옷을 입혔다고 하였습니다. 계시록 19:8에는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고 하였습니다.
(2) 충성스러운 종이 되라는 것입니다.
발에서 신을 벗는 것은 종의 모습을 뜻합니다. 당시 로마 사회에서 귀족이나 고관들은 허벅지에까지 올라오는 부츠와 같은 화려한 신발을 신고 자기의 신분과 지위를 과시하였지만 종들은 신을 신지 못하고 맨발로 다녔습니다. 그렇지만 주인의 명령이 떨어지면 무조건 복종을 하였습니다. 아무런 자유도 권리도 없었고 오직 주인을 위하여 살고 주인을 위하여 죽는 것을 삶의 전부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선 모세, 그도 지금 영락없는 하나님의 종으로 세움을 입었습니다. 평생을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그대로실천하며 살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를 향하여 온갖 불평과 원망을 다 늘어놓았지만 모세는 그 어떤 경우에도 누구를 향해서도 불평한마디 하지 못하고 묵묵히 순종하며 헌신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고 하였습니다(롬 14:7-8).
(3) 겸손한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하나님께 쓰임을 받는 사람은 겸손하여야만 됩니다. 다윗과 같은 사람은 하나님께서 요긴하게 들어 쓰신 사람으로서 매우 겸손한 인물입니다. 사도행전 13:22에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은 사울 왕이 자기를 죽이려 하여도 하나님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손댈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삼상 24:6). 시므이가 저를 저주하는 억울한 상황에서도 “저가 저주하는 것은 여호와께서 저에게 다윗을 저주하라 하심이니 네가 어찌 그리하였느냐 할 자가 누구겠느냐”하고 이를 수용하였습니다(삼하 16:10). 그가 밧세바를 범하고 나단 선지자로부터 준엄한 책망을 받았을 때도 “내가 여호와께 범죄하였노라”하고 겸손히 회개하였습니다(삼하 12:13).
어느 때나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자를 높이 들어 쓰시지만 교만한 자는 반드시 꺾으십니다(약 4:6). 솔로몬은 그의 잠언 가운데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고 하였습니다(잠 18:12). 우리는 하나님께 많은 은혜를 받고 크게 쓰임을 받았다가 교만하므로 멸망한 사람을 수없이 보아왔습니다. 우리가 받는 복은 하나님의 은혜로 되었으나 그것을 지키는 비결은 오직 겸손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됩니다.
하나님 앞에서 발에 신을 벗은 모세 그는 평생동안 겸손한 모습으로 하나님을 섬겼고 또 백성을 위하여 봉사하였습니다. 신명기 34:10절에 “그 후에는 이스라엘에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일어나지 못하였나니 모세는 여호와께서 대면하여 아시던 자”라고 하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이라고 기록하였습니다.
출처/손상률목사 설교자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