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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마 7:7-11)
똑같은 하나님을 믿고, 똑같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똑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시간에 기도하는데 어떤 사람은 응답 받고 어떤 사람은 응답을 받지 못하는 것은 왜일까요?
그것은 기도에 관하여 잘못 알고,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고, 기도에 대한 마음가짐이 잘못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가복음 18장에서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에 관하여 말씀하시면서 어떤 기도가 응답 받는 기도인가를 가르치셨습니다.
즉, 자신을 의롭다고 자칭하면서 외형적, 율법적 죄를 범치 않은 것을 자랑으로 알고 타인과 비교하여 자기를 나타내는 기도는 하나님이 응답하시지 않고, 자신이 죄인이며 무가치한 자임을 인식하고 타인과 자기를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발견하고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사람의 기도를 응답하시는 것을 깨우치신 교훈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기도에 관하여 먼저 확실히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는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나는 평생 기도했는데 하나님이 들어 주시지 않았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계시는데 하나님은 우리 기도를 들어주시되 하나님의 방법대로 들어 주시기 때문에 우리 인간 편에서 생각하면 기도의 응답이 되지 않았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내가 구하는 것이 하나님이 보실 때에 옳지 못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어떤 경우는 기도하는 제목과는 다른 방법으로 들어주시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어린아이가 엄마에게 칼을 달라고 할 때 울면서 요구한다고 날이 선 칼을 준다면 어린아이는 다치기 쉽기 때문에 칼을 주지 않거나 주되 무딘, 전혀 사용될 수 없는 칼을 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헬라인들에게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새벽의 여신 오로라가 죽을 운명에 있는 사람 티토누스를 사랑하여 사랑에 빠졌습니다. 제우스는 오로라에게 애인에게 줄 선물을 요구하라고 하여 오로라는 티토누스가 영원히 죽지 않는 생명을 구합니다.
이 기도를 하면서 오로라는 한 가지를 잊어버린 것이 있는데 티토누스가 영원히 죽지 않는 생명을 가지되 늙지 않고 항상 젊고 아름다움을 함께 가지고 있기를 구하는 것을 잊었습니다. 오로라가 구한 기도의 내용은 티토누스에게 축복이 아니라 저주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설령 우리가 잘못 구하였을지라도 우리가 구한 대로만 주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사람의 자리 자리마다 아름답고 행복하게 응답을 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다시 말하면 필요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이시면서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이 그 사랑하시는 자들에게 필요에 따라 좋은 것으로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인도와 도우심을 간구하는 구체적인 방법으로 삼중적(Threefold) 기도법으로 되어 있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가르치신 본문의 삼중적 간구는 동일한 목적을 지닌 것이지만 내용상으로는 뒤로 갈수록 점점 더 강조되고 적극적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본문이 뜻하는 본래적 의미는 무엇인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1. 구하라! 우리의 필요에 응답하시는 하나님께 우리의 소원을 아뢰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외모를 보시지 않고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이십니다.(삼상 16:7) 형식적으로 아무리 기도한다 할지라도 마음 중심에 응답을 받아야겠다는 강력한 소원이 불타지 않으면 응답을 하시지를 않습니다.
아무리 오랜 신앙 경험이 있다 할지라도, 교회에서 중직의 직분을 수행한다 할지라도 중심이 서지 않으면 안됩니다.
여기의 “구하라”는 말씀의 헬라어는 ‘아이테오’(αϊτεω)인데 이 말의 뜻은 “하나님의 은혜에서만 얻어질 수 있는 어떤 대상에 대한 강렬한 소망”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 “구하라”는 동사의 원어에 담긴 깊은 뜻은 몇 가지로 정리할 수 있는데 첫째는 겸손과 필요에 대한 의식을 암시합니다. 이것은 낮은 자가 높은 자에게 호소, 또는 탄원하는 것과 관계된 단어입니다. 둘째는 사람이 교제를 나눌 수 있는 인격적인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전제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응답을 기대하는 것을 뜻하는데 기대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응답하실 능력이 있고 실제로 응답하시며, 응답을 주실 하나님을 믿는 믿음과 관계된 단어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나의 기도를 들어주신다는 확신을 가지고 응답을 받아야겠다는 기대를 가진 사람에게 하나님은 그 중심을 보시고 응답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저 마지못해 시간이나 채우는 기도, 사람들의 귀에 들려지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기도, 목적도 잊고 중언부언하는 기도는 하나님의 마음을 웁직이지 못합니다.
한 마디 기도를 드릴지라도 하나님이 들으실 때 “그렇다 내가 응답하지 않을 수 없구나”라는 마음이 일어나는 진실된 기도를 할 수 있을 때 하나님의 응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고보서 4:2-3에서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 29:13에서도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고 했습니다.
예레미야 33:3에서는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고 했습니다.
2. 찾으라! 즉, 하나님께 기도한 내용에 합당하게 열심을 가지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기도만 해 놓고 가만히 앉아 있으면 그것은 참된 기도가 아닙니다. 내가 기도한 내용이 이루어지도록,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내가 기도한 대로 나에게 응답하셔서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이 이루어지도록 열심을 가져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찾으라”는 헬라어 ‘제테오’(ζητεω)는 끊임없이 그리고 신실하게 추구해야 할 것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찾는다는 것은 구하는 것에 행동을 더하는 것입니다. 호소만으로 충분치 못하여 힘써 행동하는 것입니다.
예컨대 깊은 성경 지식을 얻기 위하여 기도하는 사람은 열심히 성경을 상고하여야 하고(요5:59, 행 17:11), 모이기를 힘써야 하고(히 10:25),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기를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마 7:21-25)
훌륭한 목사가 되기를 원하여 기도하였다면 성실하게 목회에 관심을 두고 최선을 다하는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물질 축복을 기도하였으면 사치하지 않고 근검 절약하면서 열심히 일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장학생이 되기를 원하여 기도했다면 더욱 열심히 공부를 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 부흥을 원하여 기도했다면 열심히 모이기를 힘쓰고 전도하고 교회 부흥을 위하여 힘써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열심히 하는데 교회 출석도, 봉사도, 헌신도, 전도도 하지 않는 사람이 어찌 하나님에게 기도한 내용의 응답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전도 대상을 두고 기도만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그 기도에 합당하게 열심을 가지고 노력하는 것이 “찾으라”는 말씀의 본래 의미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기도에 남다른 열심을 가진 사람은 천지를 주재하시고 모든 것에 능하시고 우리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다 갖고 계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이 윤택해지도록 우리가 필요한 모든 것을 이루어 주시는 줄 믿습니다.
오늘날 교회나 사회나 어디서나 열심 있는 사람이 앞서 갑니다. 자기가 맡은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도움을 받습니다.
찾으라는 주님의 말씀을 바르게 이해한다면 우리는 기도에 합당하게 열심히 힘써 노력하는 삶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응답받는 비결입니다.
3. 두드리라! 즉, 인내심을 갖고 하나님이 기도에 응답할 때까지 간구하는 것입니다.
성질 급한 사람은 금방 기도해 놓고 응답받아야 좋은 줄 아는데 하나님의 응답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기도하는 것은 우리의 일이지만 응답은 하나님의 일입니다. 내가 기도해 놓고 내가 기도한 내용 그대로 받는다는 것은 영적 착각입니다. 내가 아무리 모든 것을 구하였다 할지라도 응답의 주권은 하나님에게 있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또한 기도하는 가운데 응답이 늦다고 쉽게 포기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응답은 분명하다는 확신을 갖고 응답이 될 때까지 인내하면서 간구하는 자세가 필요한 것입니다.
“두드리라”는 헬라어 ‘크루오’(κρουω)는 “단번에 응답되지 않는 것에 대한 인내로서 추구해야 할 것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즉, 구하는 것에 행동을 더하고 그 위에 참는 것을 더한 것입니다.
히브리서 10:38의 말씀입니다.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그렇습니다.
누가복음 18장의 한 과부의 억울한 사연을 호소하는 그 인내의 간구로 웅답받는 것과, 마태복음 15장의 가나안 여인의 귀신 들린 딸을 고쳐 달라고 했을 때 개 같은 여자로 취급을 받으면서도 끝까지 인내하여 기도의 응답을 받은 것과, 다니엘 10장의 세 이레(21일)의 기도로 응답받은 다니엘의 사건은 기도하는데 있어서 확신과 함께 열심, 그리고 인내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깨우치는 교훈적인 사건입니다.
빌립보서 4:6-7의 말씀입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이 말씀은 오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기도의 헌장이라 불려지는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는 말씀의 실천적인 의미입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의 헬라어 ‘메덴 메림나테’(μηδεν μεριμνατε)는 금지를 나타낸 현재 명령법으로 “염려를 중단하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기도하는 마음 자세는 불필요한 관심을 버리고 당면한 문제에 초조하거나 걱정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염려의 해결책은 기도와 간구뿐입니다.
“기도”의 헬라어 ‘프로슈케’(προσευκη)는 “기도하는 사람의 마음 자세가 하나님을 향해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간구”의 헬라어 ‘데에세이’(δεησει)는 “필요한 것을 하나님께 아뢰는 것”을 뜻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이루는 가장 중요한 마지막 내용이 “감사함으로”인데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메타 유카리스티아스’(μετα ευκαριστιας)입니다. 이는 그리스도인의 모든 기도에 반드시 수반되어야 할 요소로서 기도하는 자가 모든 것을 선하게 이루어 주실 것을 확신하며 하나님의 뜻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기도는 우리의 몫이고 응답은 하나님의 몫입니다.
내가 기도하고 내가 응답하는 착각을 해서는 안됩니다.
구하는 자가 얻고, 찾는 자가 찾고, 두드리는 자에게 열리게 되는 응답을 받게 되는 내용을 구체적으로 말씀하신 주님은 9-10절에서 더욱 그 실상을 설명하시면서 11절에서 결정적인 결론의 말씀을 선언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구하는 자에게 반드시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녀들이 하나님께 기도하는 생활을 하기를 요구하시는 것이며 기도하는 자에게는 반드시 응답의 기쁨을 주신다는 성도에게 있어서 더 없는 축복인 것입니다.
성도에게 있어서 기도하기를 쉬는 것은 죄가 됨을 깨달아(삼상 12:23) 기도하기를 쉬지 않는 은혜 안에 살아야 합니다.(살전 5:17)
필요를 채우고, 잃은 것을 찾으며, 맺힌 것을 풀 수 있는 것은 기도이며, 이는 성도의 특권임을 깨달아 은혜의 날을 노래하면서 믿음 생활하시기를 바랍니다.
출처/박청호목사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