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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의 예배 (본문 마2:1-12)
미국에서 어떤 교수가 학생 40명에게 크리스마스라는 단어를 주고 생각나는 것 하나씩 적으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많은 학생들이 크리스마스 트리, 산타클로스, 선물, 캐롤, 카드라고 대답을 하였는데 예수님의 생일이라고 대답하는 학생은 한 사람도 없었다고 합니다.
이렇듯, 오늘날에 이르러 성탄절은 상업주의, 감상주의, 쾌락주의에 밀려서 그 본질을 잃어 가고 있는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사실 여러분, 세계에서 1년 중 제일 교통사고가 많은 때가 언제인지 아십니까? 크리스마스입니다. 1년 중 절도, 강도 등 범죄가 가장 많은 때도 크리스마스입니다. 심지어 1년 중 사생아가 가장 많이 생기는 때도 크리스마스라고 합니다.
이쯤 되고 보면,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가 주기도문을 가리켜 '최대의 순교자'라고 했는데그것은 많은 사람들이 의미없이 주기도문을 외워댄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20세기에 이르러 성탄절이야말로 최대의 순교자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래서 John David라는 사람은 12월에 두 개의 크리스마스가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는 성도들이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예배하는 크리스마스요, 다른 하나는 X-Mas 라고 했습니다. 이 X라는 기호는 그리스도의 약자이기도 합니다만, 수학에서는 미지수를 나타내는 약자입니다. 오늘날 이 땅 위에 많은 사람들이 크리스마스를 X-Mas로 지키면서 자기 욕망을 채우기 위한 변절된 X-Mas가 판을 치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성탄절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아기 예수가 이 땅에 온 것을 축하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축하하는 가장 바른 태도는 무엇일까요?
저는 그것이 예배드리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탄절이 되면 모여서 예배를 드립니다.
내일도 오전 9시부터 3부로 성탄절 예배를 드립니다.
처음에는 2부로 예배드렸는데 사람이 많아서 지난해부터는 3부로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다른 교회에서는 성탄절 예배를 2부, 3부로 드리지 않고 한번만 드린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그래도 우리 교회 성도들은 성탄절의 의미를 알지 않는가 라는 위로를 받습니다.
그런데 이런 성탄절 예배를 제일 처음 드린 사람들이 있습니다.
물론 예수님 태어난 당일에는 양을 치던 목자들이 찾아와 예배를 드렸습니다만 정식으로 격식을 갖추어 예배를 드린 일은 오늘 본문에 나온 동방박사들의 예배일 것입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동방, 그러니까 당시 바벨론 혹은 페르샤 지역, 오늘날로 하면, 이란 이락 지역에서 별을 연구하던 점성가들이었습니다.
그들이 별을 보고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있다는 것을 알고 그에게 경배하려고 예루살렘까지 찾아 왔습니다.
그들은 아마 자기들이 살고 있던 곳의 유대인들을 통해 장차 유대인들과 온 인류를 구원하실 메시아 왕이 올 것이라는 말을 전해 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특별한 별을 보고 저 별이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의 별이라고 확신하여 그곳까지 찾아 온 것입니다. 결국 아기 예수를 찾아서 만나고 예배를 드리고 갔습니다.
오늘 우리는 그들의 예배를 통해서 우리들이 이 성탄절 계절에, 또 앞으로도 계속해서 드려야 할 진정한 예배의 모범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서 성탄절을 하루 앞둔 오늘, 우리의 성탄절 예배가 어떠해야 하는가, 그리고 우리가 드릴 예배들이 어떠해야 할 지를 동방박사들을 통해 배우기 원합니다.
그러면, 그들의 예배를 통해서 배울 것이 무엇입니까?
첫째로, 우리는 그들의 바른 지식에 근거한 예배를 배워야 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왕인 것을 알았습니다. 별을 통해 알았습니다.
그래서 유대 땅에 찾아와서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 당시 가이사의 영에 따라 호적하러 베들레헴에 갔다가 구유에 누이신 아기 예수님을 아무도 그렇게 알지 못했던 그 때에, 그들은 비록 별을 보고 알았지만 유대 땅에 왕으로 나신 이가 있는 것을 알고 경배하러 왔습니다.
오늘 우리도 진정한 예배를 드리려면 예배의 대상에 대한 바른 지식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예배를 시작할 때마다 선언하는 말이 있는데,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라는 말씀입니다.
어떤 분은 '신령과 진리'라고 하는 분도 있습니다.
여기 '진정'이라는 말의 원래 뜻이 '진리'입니다. 영어로 Truth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믿음이 약한 사람들은 성경말씀을 마음대로 바꾸어도 되는 것처럼 오해할까봐 성경에 있는 대로 '신령과 진정으로'라고 합니다만, 원래 뜻은 '진리'입니다.
하나님께 예배하러 나갈 때마다 영이신 하나님을 바로 알고 하나님에 대한 바른 지식, 진리를 가지고 나가 예배를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2천년 전에 유대 땅 베들레헴에 태어나신 이가 누구인지 알아야 합니다. 그는 동방박사들이 알았던 것처럼 유대인의 왕일 뿐 아니라 만 왕의 왕이었습니다.
왕은 어떤 존재입니까? 그 당시 사람들에게 왕은 절대적인 존재입니다.
그 당시 로마에는 아우구스투수 황제가 있었고 유대 땅에는 헤롯이라는 왕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권세는 대단했습니다. 나르는 새도 떨어뜨리는 엄청난 권세와 힘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왕이시라는 말은 예수님에게도 그런 권세가 있다는 말입니다.
실제로 예수님께서 부활하고 승천하시기 직전에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길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이 땅에서 그 분의 결재없이 되어지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런 분이 2천년 전 이 땅에 어린 아이의 몸으로 오셨습니다.
당시 동방박사들은 그것을 별을 보고 알았습니다.
오늘 우리들은 별보다 더 분명한 기록된 말씀, 성경을 통해 압니다.
또한 성경은 말합니다. 왕으로 오신 그 분이 우리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죽은 지 사흘만에 다시 살아 나셔서 승천하셨고 지금은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 간구하고 계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그분이 언젠가는 이 땅에 다시 오실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배를 드릴 때마다 이런 지식을 가지고 드려야 합니다.
비록 그 당시 동방박사들은 우리처럼 완벽한 지식은 아니었지만 지식을 가지고 예배를 드렸던 것처럼 우리도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이 영이라는 사실과 진리라는 것을 알면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바른 지식에 입각한 예배를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우리는 그들의 헌신을 배워야 합니다.
그들은 이런 지식을 가지고 왕께 예배드리기 위해서 많은 수고를 했습니다.
동방에서 왔다고 했으니 얼마나 먼 길을 왔겠습니까?
어림 잡아도 약 1,600Km 나 되는 거리를 걸어서, 또한 나귀를 타고 왔습니다.
그런 길을 오직 한 가지 목적, 왕으로 나신 이에게 경배하기 위해서 왔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썼겠습니까?
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한 40일 정도 소요되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얼마나 많은 경비를 들였겠습니까? 얼마나 피곤했겠습니까?
거기다가 오면서 얼마나 위험한 일을 많이 겪었겠습니까?
그들의 예배는 이런 헌신이 깃들인 예배였습니다.
오늘 우리도 왕으로 오신 아기 예수를 경배하기 위해서 이런 헌신이 있어야 합니다.
시간을 내야 합니다. 돈도 좀 써야 합니다. 피곤하더라도 힘을 내야 합니다.
심지어 예배드리기 위해선 손해 볼 각오, 위험을 겪을 각오도 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진정한 예배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의 예배를 보면 이런 헌신하는 표시가 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비가 오거나 날이 안 좋으면 예배 빼먹는 사람이 많습니다.
좀 피곤하면 드러 누워버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길이 막힌다고 예배 오다가 돌아가 버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교회 와서 주차장이 좀 불편하면 화가 나서 돌아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금년 초에 우리 교회가 예배 질서 확립을 위해서 예배 5분전에 나오는 훈련을 했습니다.
예배가 시작되기까지는 아래층 앞에서부터 앉고 예배가 시작되면 아래층 문은 닫고 2층으로 가도록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것 때문에 시험을 받아 아예 교회 안 나오는 사람도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제가 느낀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아, 요즘 사람들은 성급하구나. 그리고 조금의 불편도 감수하지 않으려고 하며 예배를 위해서 전혀 희생할 생각이 없구나'
우리가 예배를 드리러 나오는 것은 안락한 의자에 앉아서 감사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 우리가 이렇게 앉아서 예배를 드리지만 원래는 무릎을 꿇고 하나님 앞에 예배드려야 합니다.
그런데 조그만 불편도 감수치 못하는 자세 - 시험철이라고 예배 안 나오는 학생들, 휴가철이라고 예배 안 나오는 직장인들, 바쁘다고 예배 안 나오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의 예배를 하나님께서 어떻게 받으시겠습니까?
물론 하나님이 보실 때는 그런 사람이라도 어떻게든 예배에 나오면 기대를 갖기는 하겠지만 아직까지 예배를 드렸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아직 철이 없어서 봐주시기는 하겠지만 예배를 드리는 자세는 되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예배를 드릴 때는 반드시 헌신이 있어야 합니다.
다윗이 그런 말을 하지 않았습니까? "내가 결단코 값 없이는 여호와께 제사 드리지 않겠노라" 그는 남이 갖다준 제물과 나무로 제사를 드리려 하지 않았습니다. 내 손으로, 내 돈을 드려서 값있는 제사를 드렸습니다
여러분들이 하나님 앞에 나올 때마다 이런 값있는 예배를 드리시기 바랍니다.
이번 성탄절에도 아기 예수를 경배키 위해 값을 지불하시기 바랍니다. 헌신이 있는 예배, 이것이 진정한 예배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멀리에서 예배드리러 나오시는 분들을 존경합니다.
우리 교회는 가까운 교회 나가서 예배드리는 것을 장려합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또 예배드리는 모습을 보니 멀리서 오시는 분들이 예배드리는 태도가 다릅니다.
그분들에게는 무언가 희생과 헌신이 있습니다. 멀리 오는 분들이 늦는 법은 별로 없습니다. 집이 가까운 사람들이 다 늦습니다. 그리고 예배드리는 자리에 나오기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는 모습, 하나님이 어떤 예배를 더 귀하게 보시겠습니까?
하나님을 위해서는 우리가 경제적으로 예배드리는 것 아닙니다. 경제논리로 예배를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서는 얼마든지 많이 희생하고 허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사는 목적입니다. 우리를 위해서 하나님이 계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우리가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이 성탄절을 기해서 예배의 자세가 달라지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아기 예수를 경배하기 위해 먼 곳에서 온 동방박사를 보면 나의 예배는 어떤가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세 번째로, 우리는 그들의 예물을 드리는 마음을 배워야 합니다.
오늘 말씀에 보니, 그들이 자기들의 보배 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려 경배했습니다.
당시 황금과 유향과 몰약은 값비싼 귀중품들이었습니다.
이는 왕과 같은 귀한 분들에게 합당한 예물입니다.
그런 귀중품들을 아기 예수께 예물로 드렸다는 것은 그들의 예배가 얼마나 진정이었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우리도 예수님께, 또 하나님께 진정으로 예배를 드린다면 마음의 표현이 있어야 합니다.
무언가 감사하기 위해서 드리는 예물이 있습니다.
그 종류가 무엇이든, 그 양이 어떻든지 간에 예물을 드리는 예배와 예물이 없는 예배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배를 드릴 때마다 헌금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헌금을 억지로 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또 외식으로 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뒤에 함을 놓고 자발적으로 하게 합니다.
그런데 솔직히 목회자의 마음으로는 걱정이 있습니다.
이런 방법 때문에 성도들이 하나님께 나아 오면서 예물 드리는 일을 소홀히 하고 그렇게 함으로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배가 소홀해지지 않겠는가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성도들이 하나님께 정성껏 예물 드리는 것을 보고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이런 성도들이 있기에 우리 교회가 재정적으로는 걱정이 없습니다. 금년도 결산을 보면 성도들이 힘껏 드린 것을 가지고 1년 동안 맡겨주신 사역을 잘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교회 재정의 문제가 아니라 성도들의 예배 태도를 위해서 하나님 앞에 드리는 정성, 하나님 앞에 나올 때마다 예물을 준비하는 마음을 결코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진정한 예배가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그들의 순종을 배워야 합니다.
여기 마 2:12에 보니, "꿈에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말라 지시하심을 받아 다른 길로 고국에 돌아가니라"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들이 처음에 예루살렘에 왔을 때 유대인의 왕이니까 왕궁에서 났을 줄로 알았습니다.
그래서 당시 유대의 왕인 헤롯을 찾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나중에 서기관들의 말이 유대 땅 베들레헴에서 나실 것이라는 예언이 있는 것을 알고 베들레헴에 가서 아기 예수를 만났는데, 그들이 길을 떠날 때 헤롯이 그들에게 말하기를 가서 찾거든 와서 자기에게도 알려 달라고 자기도 가서 경배하겠다고 했습니다.
실상은 그가 아기가 태어난 것을 알면 죽이려고 한 것입니다.
그랬는데 동방박사들이 아기 예수를 발견하고 경배를 하고 돌아가려고 할 때에 하나님이 꿈으로 지시하시기를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말고 다른 길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랬을 때 그들은 영문을 알지 못했습니다. 왕에게 알려서 그도 경배하도록 했으면 좋겠는데, 하나님께서는 다른 길로 가라는 것입니다. 이 때 동방박사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헤롯의 말을 듣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아기 예수가 헤롯의 손에 죽지 않게 되었던 것입니다.
예배란 이렇게 순종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왕이신 예수님, 하나님을 바로 경배하고 또 헌신하여 경배하며 예물을 드려 경배한다 해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그래서 사무엘이 말하기를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을 드리는 것보다 듣는 것이 낫다"고 했습니다.
오늘 우리들의 삶을 보면 예배드리는 시간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일주일에도 몇 번씩 예배를 드립니다.
그러나 예배를 드리는 것에 비해 그 예배에서 들은 말씀을 순종하기 위해서 애쓰는 것은 너무 적습니다.
이 크리스마스도 그렇습니다. 성탄절에 많은 예배를 드립니다. 그 이유는 성탄절의 가장 뜻있는 방법이 예배드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런 예배를 드리면서도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얼마나 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성탄절 예배의 말씀을 들으면서 무언가 우리의 생애가 달라지기를 바랍니다.
마치 동방박사들이 아기 예수께 경배하고 돌아가는 길이 달라진 것처럼 우리의 말과 행동, 삶이 달라지는 행동의 실천이 드러나기를 바랍니다
예배를 5년 드리고, 10년 드리고, 수십년을 드렸어도 무언가 달라지는 것이 없고 삶의 실천이 없다면 그것이 무슨 예배가 되겠습니까?
오늘날 우리 한국교회의 문제가 여기에 있습니다. 아니 오늘날 우리의 문제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배를 그렇게 열심히 드리는 것만큼 달라지는 것이 뭐가 있습니까?
하나님은 예배시간마다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 음성을 들으십니까? 이 말씀에 순종하십니까? 하나님은 오늘도 말씀하십니다. 진정한 예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예배를 드릴 때마다 하나님이 영이시며, 여기 계셔서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는 이심을 믿으십니까?
항상 이것을 믿고 2000년 전 이 땅에 오신 아기 예수가 나를 위해서, 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 오신 구세주인 것을 믿으면서 예배에 참석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헌신을 하십시오. 너무 편리주의에 파묻혀 살지 마십시오. 우리는 예배를 드리는 데 있어서도 쉽고 편한 것을 찾으며 조금 불편한 것도 참지 못합니다.
나의 것을 바치면서 예배를 드리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가, 하나님 앞에 나오면서 늘 정성된 예물을 준비하는가, 예배시간마다 말씀을 듣고 한 주간동안 실천할 것을 발견해서 한 가지라도 행하면서 예배에 참석하는 우리가 되어 금년 성탄절도 의미있는 예배를 드리고 이를 계기로 우리가 앞으로 드려지는 모든 예배가 달라지길 바랍니다.
주님은 이것을 원하십니다. 우리가 성탄절을 모르는 것이 아닙니다. 축하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 성탄절에 우리가 꼭 배워야 할 것, 동방박사들을 통해 진정한 예배를 드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이철목사 설교자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