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다니던 우수가 기성회비를 내지 못해 벌을 서다가, 부모님을 모시고 오라는 선생님의 말씀에 교실을 뛰쳐나가 강가에서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을 향해 원망하는 모습을 볼 때 내 가슴이 막히며 눈가에 진한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끈적끈적한 눈물이 볼을 타고 아주 천천히 흘러 내리면서 순간 나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아! 그랬었지. 나도 저런 때가 있었지... 난 고아는 아니었지만 집안이 너무 가난해서 한 번도 제 때에 기성회비와 등록금 등을 내 본적이 없어 늘 담임선생님에게 호출되어 다그침을 받다가 어느 날엔 집으로 수업 도중에 돌아온 적도 있었고 그러다 어느 날엔 학교 가기가 싫어서 길가를 배회한 적도 있었지...’

철가방 우수씨 영화를 보면서 오랜만에 나의 어린 옛 시절을 돌아볼 수 있어서 마음이 찡하였다. 세상을 비관하여 분신자살을 하려다가 감옥에 들어간 그가 그곳에서 어린이 재단에서 발행하는 사과나무라는 월간지를 통해 불우한 어린 아이를 도우려는 결심을 하게 되고 결국 출소 후에 사랑의 나눔의 삶을 살게 되는 그 모습이 내겐 많은 공감이 되었다.

가난한 삶을 사는 나의 소원은 선생님과 자선사업가가 되어 등록금을 못내는 학생들을 격려하고 때로는 학비도 대신 내주는 선생님이 되고도 싶었고 그런가 하면 돈을 많이 벌어 자선사업을 통해 어려운 이웃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고도 싶었었다.

하지만 선생님과 자선사업가 이 두 가지의 꿈을 이루는 것이 현실적으론 불가능한 일이었다. 자선사업가는 그래도 자기 재산이 많아야 되는데 선생님은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세월이 많이 지난 어느 날, 목회자가 되고나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 두 가지 일을 다 하고 있음을 알게 된 것이었다.

그러고 보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어렵고 힘든 이웃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나누고 베푸는 것을 정말 좋아하시는가 보다.

그러니 철없이 막연하게 생각했던 선생님과 자선 사업가의 꿈을 동시에 이뤄 주시기 위해 이 두 가지를 할 수 있는 목회자로 나를 세워 주신 것이 아닐까?

철가방 우수씨 영화를 정말 많은 사람들이 관람했으면 좋겠다. 나눔이라는 것은, 쓰고 남는 것을 나누는 게 아니고 내가 덜 쓰고 덜 먹고 아껴야지만 할 수 있는 것임을 깨닫고 이 땅에 이런 선한 나눔이 확산되면 너무 좋겠다는 소원을 품어본다.

그래서 이 세상이 나보다 남을 한 번쯤 생각해볼 수 있는 아름다운 세상이 되기를 소망해 본다.

오! 주여

이 어두운 세상에

사랑의 불꽃이 활활 타오르게 하소서.

이 일에 철가방 우수씨 영화가 쓰임받게 하소서. (주후 이천십이년 십이월 첫째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