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 all night, 재롱 잔치, 흰 눈 내리는 밤, 선물 교환, 까만 김 가루가 뿌려진 흰 떡국과 갓 담은 김장김치, 그리고 카드 주고받기 등등, 아직도 눈앞에 선한 학창시절의 성탄절이었다.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 보고 싶지만 절대로 돌아갈 수 없는 세월의 속성 때문에 창밖으로 내리는 흰 눈을 바라보며 잠시 추억에 잠겨본다.

성탄의 밤은 꼬박 새는 것으로 으레히 알고 있었던 그 시절 밤은 온 동네가 고요한 밤 거룩한 밤, 기쁘다 구주 오셨네―를 부르며 새벽 송을 도는 여러 교회의 성도들로 인해 온 세상이 교회로 착각될 정도였다.

그때는 우리나라가 너무나 가난하고 먹을 것이 부족하여 허리를 졸라매던 시절이었기에 우리를 그런 가난과 고통에서 건져줄 구주가 정말 필요하였었다.

당시는 범죄 예방과 치안 유지와 특히 건전한 가정유지를 위해 통행금지 제도가 있었던 때였는데 성탄절 이브 날엔 통금이 해제되어 평소에 그 시간에 다녀보지 못했던 길을 맘껏 거닐었으며 명동을 비롯한 유흥가엔 밤새도록 음주와 가무로 시끄럽기도 하였다.

나라의 경제도 어렵고 국민의 생활이 넉넉치 않았음에도 약 한 달 전부터 교회의 종탑을 비롯하여 관공서와 시내의 건물과 상점 등엔 오색 등으로 트리 장식을 하여 성탄의 분위기를 돋구었으며 온 시내에 울려 퍼지는 캐럴 송은 시민의 발걸음을 흥겹게 하고 마음을 설레게 하였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갑자기 크리스마스가 정말 고요하고 거룩한 밤이 되어 있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눈치 채지 못하도록 서서히 식어지기 시작한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이젠 싸늘하고 냉랭한 불경기의 겨울 어느 날처럼 죽고 만 것이었다.

인류 최대의 기쁨의 소식인 구세주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고 기념하는 성탄절이 정작 우리 교회들과 성도들로부터 마저 외면을 당하고 있는 것이었다.

우리 교회도 예외가 아니어서 교회 옥상의 종탑에 트리 등을 달지 못했다. 정부 시책으로 시행중인 절전 운동의 여파도 있고 또 그 꼭대기까지 오색 등을 설치하기 위해 올라갈 사람도 마땅치 않고 제일 큰 원인은 바쁜 스케줄로 인해 지난주에야 설치에 대해 생각했으니까.......

그래도 교회 마당에서라도 안개등을 밤에 볼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세월이 어느새 흘러 이제 2012년 성탄절이 다가왔다. 누가 뭐래도 성탄절은 인류 최대의 기쁜 소식이며 이 소식을 세상에 알려야 한다.

우리라도 깨어서 이 소식을 알리자. 아무리 추워도 성탄절 저녁 재롱 잔치 후에 죽전을 돌며 예수 탄생 소식을 전하자. 온 가족이 함께 돌면서 우리의 자녀들에게 성탄절 가두 퍼레이드의 아름다운 전통을 물려주자.

오! 주여

성탄절을 반드시 기억하게 하소서.

조금 시끄러워도 성탄의 기쁜 소식을 전하게 하소서.

(주후 이천십이 년 십이 월 넷째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