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년 전 쯤으로 기억되는 년 말이 가까이 오는 어느 날, 전라남도 무안의 마산교회에서 시무하는 목사님의 진솔한 선교협력 편지를 받고 전화통화를 했었다.

그 당시 설립 된지 이십 년 쯤 되는 교회에 6년 전 부임하여 온갖 고난과 핍박을 견디며 아내와 어린 두 딸과 함께 힘겹게 목회를 하고 있으니 자그마한 도움이라도 달라는 부탁이었다.

마산리라는 씨족사회로 형성된 오래된 시골마을에 세워진 교회가 마을 사람들의 핍박과 열악한 교회 환경으로 인해 자신이 부임하기 전 십사년 동안 여섯 명의 목회자가 떠나가고 결국 교회 폐쇄가 된 그곳에서 6년간 무릎 꿇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에게 이렇게 물었다. ‘목사님, 그곳에서 끝까지 뼈를 묻을 수 있겠습니까?’- 지금 생각해도 너무 잔인하고 가혹한 질문이었다.

앞이 보이지 않는 그곳에서 뼈를 묻을 수 있느냐는 갑작스런 질문에 그는 잠시 후에 그렇게 하겠노라고 대답하였다. 며칠 후, 그 교회를 방문해 보니 정말 열악하기 그지없었다.

마을 언덕위에 세워진 교회는 허름하였고 앞에 있는 사택은 헛간 같았다. 그런 만남으로 시작된 교회가 올해로 세워진지 삼십년이 되었고 그 기념으로 나를 초청하여 기념 신년축복사경회를 하게 된 것이었다.

그 동안 일주일에 한 번씩 우리교회에 와서 기드온 성경 대학을 수강하고 계속해서 칠 년 동안 기드온 성경대학원을 수강하면서 목회의 생기를 찾은 목사님은 오랜 당뇨로 인해 잃었던 건강도 회복하였고 특히 말씀의 권세와 능력을 회복하여 왕성한 목회 활동을 통해 교회도 어느덧 예전보다 안정을 찾게 되었고 마을 사람들과의 신뢰관계도 갖게 되어 존경받는 목회자의 위치에 서게 되었다.

그 동안 지역사회 교회의 도움으로 교회 내부를 새롭게 리모델링을 하였으며 헛간 같은 사택을 헐고 전원주택을 지어 카페 같은 집으로 변모하였다. 두 딸도 믿음 안에서 아름답게 성장하여 중고등학생이 되었고 사모님도 목포극동방송에서 사역자로 즐겁게 헌신하고 있었다.

주일 예배를 마친 후, 졸음을 쫓으며 달려와 첫 집회를 갖는데, 그 동안 목포극동방송에서 매주 화요일 오전 8시에 내 설교를 듣는 마니아(?)들이 많이 참석해줘서 분위기가 훨씬 따뜻하였다.

설교를 마치고 교회 앞마당에 나와 하늘을 보니 흰 보석이 가득하였다. 그 동안 여러 차례, 좀 더 큰 교회로의 청빙제의가 왔었음에도 마산교회를 끝까지 지켜준 목사님과 사모님 그리고 어린 두 딸이 너무 고마웠다.

오! 주여

우리 무안마산교회를 지켜 주시고

목사님의 가족을 축복해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주후 이천십삼 년 정월 셋째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