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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의생활 (골3:15-17)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평강을 위하여 너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또한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골 3:15-17
출애굽기 23:14-17까지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매년 3차 절기를 지키라고 명령하시면서 무교병의 절기인 유월절을 지키어 애굽에서 구원받은 것을 기념하고 첫 열매를 드리는 맥추절과 연말에 밭에서 거둔 것을 저축하여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수장절을 지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수장절이 오늘날 지키는 추수감사절입니다.
요즈음 각 교회에서 지키는 추수감사의 절기는 미국에서 유래되어 전 세계적으로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19세기 영국에서 신앙의 자유를 찾아 떠난 청교도들이 미국의 신대륙에 도착하여 경직된 땅을 갈고 씨를 뿌린 후에 열매가 맺히니 그 열매를 추수하여 하나님 앞에 먼저 감사드린 것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추수감사절에 도시인들은 농사도 안 지었는데 무엇으로 감사를 하느냐고 할 지 모르나 복잡하고 위험한 도시 생활 속에서도 1년 동안 보호하시고 지켜 주셔서 오늘까지 인도해 주신 것을 감사해야 될 줄 믿습니다.
이제 하나님을 나의 구주로 믿고 하나님 자녀로서 교회에 다니며 신앙 생활을 하시는 성도라면 반드시 하나님께 감사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전서 5:17에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고 권면하면서 이것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라고 했습니다. 쉬지 말고 감사하는 것은 기쁜 일이 있을 때나 슬픈 일이 있을 때나 늘 감사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바울은 정말 많은 역경을 겪으며 고난을 받았는데도 불구하고 그 환경과 형편에서도 감사했습니다.
우리 신앙인은 좋은 일이든 좋지 않은 일이든 무슨 문제가 생길 때 어떠한 각도에서 보느냐에 따라서 그 문제가 원망과 불평과 불만이 될 수도 있고, 감사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바울 사도와 같이 어떠한 경우에서라도 신앙적인 안목으로 보고 감사함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될 줄 믿습니다.
골로새서 3장은 주님을 영접하여 구주로 모신 성도는 주님을 생활의 주인으로 모시고 생활 속에서 감사의 조건을 찾아서 감사 생활을 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지난 10월은 감사의 달이었고, 또 이 달은 추수감사절이 있는 달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사는 것이 감사의 생활이며, 왜 성도는 감사의 생활을 해야 하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1. 감사의 생활은 성도의 신앙 생활의 근본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 땅에서 구원함을 입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향하여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는 배가 고플 때는 만나로 먹이시고, 목이 마를 때는 물을 주시고, 추운 밤에는 불 기둥으로, 더운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인도하여 가나안 땅까지 들어갈 수 있는 축복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께 감사치 아니하고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원망하므로 하나님께서 특별히 택하여 애굽에서 불러내신 이스라엘 백성을 40년 긴 세월 동안 광야에서 유리 방황하게 하신 것을 우리는 성서를 통하여 잘 알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택함을 입은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 감사를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감사치 아니하므로 오히려 시련과 연단의 과정 속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제가 아는 어떤 분은 돈도 많고 권력도 있고 학문도 높은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친구의 전도를 받고 교회를 다니면서 봉사도 열심히 하고 기도도 잘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교만했습니다. 그는 다른 신자들과 다르다는 우월감에서 항상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여 만족스럽게 교회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택하신 그 자녀의 삶을 간섭하시기 시작했습니다. 갑자기 되는 일이 없었습니다. 그 좋은 고급 주택도, 비싼 자가용도 모두 없어지고 말할 수 없이 전락된 생활을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그가 누렸던 부, 그가 누렸던 권력, 그가 배웠던 지식이 모두 어디로부터 왔습니까?
죄악 가운데서 헤매며 영원한 사망 속에 있던 우리를 택하여 불러 주신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는 것을 게을리하지 맙시다. 감사의 생활은 택하심을 입은 성도의 근본이므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본문에서 ‘감사하라’는 말씀을 세 번씩이나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부르심을 입고 죄와 사망에서 건져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성도가 되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고, 하나님의 더 크신 축복 속에 생활하시기 바랍니다.
2. 감사의 생활을 참된 기쁨을 창조합니다.
강사의 생활은 주는 생활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할 때 우리는 시간을 드리게 되어 봉사하며 물질을 드림으로 헌금 생활을 하게 되고 몸과 마음을 드림으로 의의 병기로 쓰임을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몸과 마음을 드려 감사의 생활을 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 마음속에 참된 기쁨을 창조해 주십니다. 고린도후서 9:1 이하에 보면 마게도냐 교인들은 은혜를 받은 후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도 넘치는 기쁨을 가졌다고 했습니다. 또한 그들은 극한 가난 속에서도 풍성한 연보를 넘치게 드리며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드렸다고 했습니다. 왜? 마게도냐 교회는 그러한 어려운 생활과 악조건 속에서도 기쁨으로 넘치게 자기들의 것을 드리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자기 자신을 먼저 하나님께 드렸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번 추수감사 절기를 맞이하여 우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릴 때 하나님께서는 여러분 심령 속에 넘치는 참된 기쁨을 창조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분명히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 말 듣고 지키는 자에게 기쁨을 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심령 속에 세상에서 얻지 못하는 기쁨과 세상 누구에게라도 빼앗기지 않을 참된 기쁨을 가지려면 먼저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3. 감사하는 생활은 축복받는 비결입니다.
감사의 생활은 드리는 생활이며, 동시에 축복받는 비결이 되기도 합니다. 성경에 “받는 자보다 주는 자가 더 복되도다”하는 말씀이 사도행전 20:35에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놀라운 영적인 은혜와 더불어 범사에 육신이 잘되는 축복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감사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더욱 넘치는 축복으로 채워주시리라 믿습니다. 예수님께서 누가복음 6:38에서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약속의 말씀을 믿고 감사하는 생활, 드리는 생활을 할 때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이 여러분의 심령 속에 차고 넘치며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평강의 길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몸으로 감사의 생활을 할 때 하나님께서는 건강의 축복으로 채워 주시고 물질을 드려 감사할 때 경제적인 축복을 주셔서 생활에 부족함이 없는 윤택한 삶을 살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생활하려고 노력할 때에 건강과 물질을 더해 주십니다. 마태복음 6:33에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하셨고, 요한삼서 2절에도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해진다”는 말씀이 있듯이 기독교 신앙은 우리가 하나님 말씀에 바로 설 때 모든 것을 더 얻게 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4장에는 어린이가 예수님께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를 드릴 때 오천 명이 먹고도 열 두 광주리가 남은 역사가 나타났고, 열왕기상 17:8 이하에 보면 이스라엘 땅에 가뭄이 들어 3년 6개월 동안 비가 오지 아니할 때 하나님의 사람인 엘리야를 대접한 사르밧의 과부집에는 비가 내리는 그날까지 기름병과 양식통에 기름과 양식이 끊이지 아니하는 축복이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우리는 범사에 항상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우리 심령 속에 그리스도의 평강이 주장하는 참된 기쁨을 소유하고, 또한 그리스도의 풍성한 말씀에 거하여 시와 신령한 노래로 주님을 찬양하는 삶을 살아야겠습니다. 이제 우리 모두 하나님께 감사하는 성장되어 부르심을 입은 자답게 신앙의 근본이 되는 감사의 생활을 함으로써 기쁨을 창조하는 삶 속에서 위로부터 내리는 놀라운 축복을 받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김충기목사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