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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하며 선교하는 교회 (마28:18-20)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28 : 18 - 20
80년대가 가고 21세기의 미명인 대망의 90년대가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는 우리 앞에 주어진 십 년이란 세월이 21세기의 성패를 좌우할 정도로 중요한 기간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특별히 주님의 몸된 교회의 입장에서는 새로운 세기를 맞이하는 일이 더욱 그 의미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이 땅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과 섭리가 대단히 크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이 뜻과 섭리를 더욱 잘 헤아려 그 기대에 부응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향하신 주님의 뜻과 섭리는 바로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지상 최대의 사명과 그 궤를 같이합니다. 우리가 주님의 뜻과 섭리를 잘 이해하면 주님이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주께서 부탁하신 사명을 잘 감당하면 우리를 향하신 주님의 뜻과 섭리는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 땅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은 모든 사람이 구원받는 것입니다.
인류 역사를 통하여 계속되어 온 하나님의 섭리는 이 세상을 구원하고자 하신 구속의 섭리였습니다. 이 뜻과 섭리는 교회를 통하여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주께서 이 뜻과 섭리를 이루기 위해서 교회에서 부탁하신 지상최대의 사명은 무엇입니까? 그 내용이 오늘 본문인 마태복음 28장 18절 이하에 나와 있습니다. 그것은 한 마디로 교육하며 선교하라는 것입니다. 즉 세상의 모든 족속에게 가서 교육을 통하여 제자가 되게 한 후 그들로 하여금 선교하도록 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창립 14 주년을 맞이한 우리 교회는 올해 표어를 "교육하며 선교하는 교회"라고 정했습니다.
1.교육하는 교회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무지가 인간을 멸망케 한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아시기에 자기 백성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전에 다음과 같은 명령을 하셨습니다.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아있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신 6 : 6 - 9).
오늘 본문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상에서의 사역을 마치시고 승천하시기 전에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부탁하신 말씀입니다. 신명기의 말씀이나 이 말씀이나 모두 하나님 말씀을 부지런히 가르쳐서 지키게 하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자기의 후계자인 디모데에게 부탁하기를 "네가 네 자신과 가르침을 삼가 이 일을 계속하라. 이것을 행함으로 네 자신과 네게 듣는 자를 구원하리라"고 했습니다(딤전 4 : 13, 16).
하나님의 뜻과 섭리인 이 세상 모든 사람의 구원을 위해서는 교회가 교육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이방 족속에게 멸망했던 것은 교육하지 않음으로써 백성들이 무지했기 때문입니다(호 4 : 6). 그래서 이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이스라엘은 지금 교육열이 세계 최고인 국가가 되었습니다(호 6 : 3).
로마 카톨릭이 사제들만이 읽을 수 있는 라틴어 성경만 만들어서 배포함으로 일반 성도들은 하나님 말씀을 제대로 알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로마 카톨릭은 철저하게 부패했고 급기야는 종교개혁의 물결 앞에 허물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육에 더욱 많은 힘을 쏟아야 합니다. 교육하는 교회만이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으며 21세기의 역사를 하나님 앞에서 책임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우리는 무엇을 가르쳐야 합니까?
교회교육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권세"를 가지신 분의 자녀임을 확신하도록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인 것과, 그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통하여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믿도록 해주는 것입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분은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오늘 본문을 기록한 마태는 예수님이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명하고자 이 복음서를 기록했습니다. 반면에 사단은 예수님이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진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명하지 못하게 하려고 온갖 시험과 궤계를 일삼았습니다. 즉 사단은 예수님께 계속해서 "네가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증명해 보라"고 도전했습니다(마 4 : 3, 6; 16 : 22 - 23; 26 : 63; 27 : 40, 42 - 43). 그러나 예수님은 거기에 대해서 대답하지 않으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에야 자신이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진 하나님의 아들임을 선포하셨습니다(18).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써 하나님의 자녀됨의 권세를 누리게 되었습니다(요 1 : 12).
예수님이 가지신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진 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에 대해서 분명한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이 확신이 없이는 절대로 신앙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예배, 봉사, 헌신, 선교 등 그 어떤 신앙생활도 제대로 할 수 없습니다. 설령 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거의 다 행위로 구원받기 위해서 하는 것일 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습니까? 그리고 그분을 통하여 당신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을 믿습니까? 구원의 확신, 사죄의 확신, 승리의 확신이야말로 그리스도인의 가장 중요한 믿음입니다. 이 확신들은 하나님의 자녀됨의 권세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되었음을 선포하는 것입니다(19).
마귀는 오늘도 우리에게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돌덩이로 떡덩이가 되게 해보라"고 합니다(마 4 : 3). "네가 만일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졌다면 성전 꼭대기에 뛰어내려 보라"고 합니다(마 4 : 6).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더 잘 살아야 되고, 더 건강해져야 하는데 지금 네 모습이 무엇이냐?"고 조롱합니다. "네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진 자의 아들이라고 하면서 너의 실패와 죄악과 부족함은 어찌된 것이냐?"고 도전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비록 내가 부족하고 연약하다고 할지라도, 가난하고 병들었다고 할지라도, 죄악과 실패로 쓰러져 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은 여전히 내 아버지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내가 의롭고 부족함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인 것이 아니라 우리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로 그렇게 된 것임을 믿어야 합니다. 이 세상의 어떤 것도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하나님의 자녀인 나를 끊을 수 없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롬 8 : 35). 하늘과 땅에 있는 그 어떤 권세도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롬 8 : 39)
이것이 마귀의 궤계를 이기는 길이요, 곧 교회교육의 가장 중요한 내용입니다.
교회교육에 있어서 또 다른 중요한 내용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는 것입니다(20).
예수님께서는 공생애 동안 자신의 인격과 삶을 통하여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치시고 분부하셨습니다(마 5 : 2). 하나님께서도 우리에게 계명을 주시고 말씀을 주셨습니다(출 20 : 1). 성령께서는 오늘도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을 가르쳐 주시고 생각나게 하십니다(요 14 : 26; 16 : 13)
한 나라의 장래는 그 나라의 교육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래서 흑자는 "교육하는 민족은 망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나라의 교육 실태를 보면 한심하기 그지 없습니다.
해마다 바뀌는 교육 정책은 교육 철학의 부재를 여실히 보여줍니다.
우리는 이미 학교교육이나 사회교육의 한계를 절실히 경험한 지 오래입니다. 이제 기대할 것은 교회교육밖에 없습니다. 교육은 한 인간이 바른 세계관을 갖도록 도와줌으로써 그 사람이 참된 가치관을 가지고 의미있고 가치있는 인생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해 줍니다.
그런데 학교에서나 사회에서 하는 지식이나 사상 위주의 교육은 변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인간의 인격을 변화시키고 참된 세계관을 갖도록 해 줍니다(히 4 : 12 - 13). 학교교육이나 사회교육은 인간의 육체와 정신에 영향을 주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교회교육은 인간의 영혼을 포함하여 전 인격적인 영향을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학교교육도 사회교육도 중요하지만 교회교육은 더욱 중요한 것임을 우리는 인식해야 할 것입니다.
새해에 우리 교회는 더욱 교육에 힘쓰도록 해야 합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착념하라"고 한 것처럼 새해에는 더 열심히 배우고 가르치는 교회가 되도록 합시다.
2.선교하는 교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성령의 감동하심과 교회를 통하여 이 사실을 배우고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본문 19, 20절에 나와 있는 것처럼 이제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고 주님께서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해야 합니다(19, 20). 모든 족속을 복음화해서 그리스도인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이것이 곧 선교입니다.
21세기를 눈앞에 두고 있는 이 시점에서 우리가 주목하며 긴장감을 느껴야 할 사실은 20세기에 들어와서 그리스도인의 증가율이 세계인구 증가율에 뒤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더구나 회교나 불교 및 힌두교인의 수는 기독교인의 수보다 더 많아지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교회의 존재 목적은 선교에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도 선교하는 교회가 계속 부흥 발전했습니다.
선교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하여 믿고 구원받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진 자의 자녀가 되었으므로 당연히 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할 수 있습니까?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을 증거할 수 있습니까? 돌덩이를 변하여 떡덩이가 되게 함으로 증명할 수 있습니까? 아니면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려 보임으로 증명할 수 있습니까? 오직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서만 이 사실을 증거할 수 있습니다.
본문 19절에서 "그러므로 너희는 가라"하신 주님의 명령처럼 선교는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좇아가는 삶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고 이 세상에 오신 것처럼 십자가를 지고 모든 족속에게로 가는 것이 선교입니다. 십자가 없는 선교는 선교가 아닙니다. 선교는 십자가의 희생과 대가가 수반되는 것입니다.
오늘도 마귀는 십자가를 지지 않고도 선교할 수 있다고 속삭입니다. 그러나 십자가를 외면한 채 십자가의 주님을 증가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가면 뻔히 죽을 줄 알면서도 예루살렘에 가셨습니다. 그곳에 가서 십자가에서 죽어야만 하나님의 아들임을 증명할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마 16 : 21). 사도 바울도 예루살렘에 가면 뻔히 죽을 줄 알면서도 복음을 증거하는 일에는 자기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갔습니다(행 20 : 22 - 24).
모세도 바로 앞에 가면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 줄 알면서도 하나님이 "가라!" 명하니 나아갔습니다(출 3 : 10).
에스더도 아하수에로 왕 앞에 나아가면 죽을 줄 알면서도 하나님이 기도 가운데 명하시니 "죽으면 죽으리라"하면서 나아갔습니다(에 4 : 16).
초대 교회 가운데서도 안디옥 교회는 증인이 되라고 하신 예수님의 명령(행 1 : 8)을 따라 열심히 선교하는 교회였습니다. 이 교회는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을 인하여 흩어진 자들에 의하여 시작되었고(행 11 : 1), 바나바와 바울의 가르침을 통하여 온전히 서게 되었습니다(행 11 : 24 - 26). 그리고 이 교회를 통하여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는 별명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이 교회는 바나바와 바울을 성령의 뜻에 순종하여 선교사로 파송했고(행 13 : 1 - 3), 예루살렘 교회가 어려움을 당할 때에 기쁨으로 구제에 동참했던 교회이기도 합니다(행 11 : 27 - 30). 이 교회가 자기 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들인 바나바와 바울을 선교사로 파송하였고, 자기들의 물질을 털어서 선교비를 후원했기에 기독교가 세계적으로 확산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선교는 십자가의 죽음을 각오하지 않고는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나를 죽이지 않고서는 결코 할 수 없습니다. 자기 희생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내가 죽었을 때에 물질도 몸도 하나님 앞에 선교의 제물로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또한 부활을 통하여 자신이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진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증명해 보이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부활을 통하여 선교해야 합니다. 즉 우리 삶 가운데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이 나타나도록 해야 합니다.
선교는 입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삶을 통해서 하는 것입니다. 삶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될 때에 우리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권세있는 말씀이 되어 베드로처럼 수많은 영혼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행 4 : 4).
우리 가까이에 있는 부모 형제와 이웃들 앞에서 내가 죽어지고 그리스도가 부활될 때에 선교는 시작됩니다.
선교를 돈이나 몸으로 하는 것쯤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선교는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지난 87년부터 작년까지 3년 동안 <선교하는 교회>라는 표어를 정해서 열심히 선교해 왔습니다. 올해는 창립 14주년을 맞이하여 선교하되 교육이 수반된 선교를 하자는 의미에서 <교육하며 선교하는 교회>로 표어를 정했습니다.
선교는 그리스도의 지상명령이므로 계속해야 합니다. 그러나 교육의 뒷받침이 없는 선교는 대단히 위험합니다. 즉 교육을 통하여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사실을 확신해야만 선교할 수 있는 자격이 갖추어지는 것입니다. 갈수록 학교교육과 사회교육이 그 입지를 잃어가고 있는 이 때에 교회교육의 중요성을 더욱 강조하고자 <교육하며 선교하는 교회>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교육하며 선교하는 교회>의 사명을 주셨다는 사실을 감사하며 내적으로는 교육에 힘쓰며 외적으로 선교에 힘쓰는 한 해가 되도록 합시다. 우리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을 확실히 깨닫고, 그 사실을 알지 못하는 모든 족속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도록 그리스도께로 인도합시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지막 명령을 좇아 교육하며 선교할 때에 바울과 함께 했고, 모세와 함께 했으며, 에스더와 함께 했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께서 "세상 끝날까지 항상 함께"하실 줄 믿습니다(20). 할렐루야!
출처/김충기목사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