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교회처럼  (행2:43~47)

신앙잡지 풀핏(Pulpit)의 발행인 조디아티 목사는 현대 교회의 모습을 살아있는 교회와 죽어 가는 교회로 구분합니다. "살아있는 교회는 교육시설, 주차장 등 공간의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나 죽어 가는 교회는 공간을 염려하지 않습니다. 살아있는 교회는 항상 변화하지만 죽어 가는 교회는 늘 똑같습니다. 살아있는 교회는 아이들이 재잘거리는 소리로 늘 시끄러운 반면 죽어 가는 교회는 조용합니다. 살아있는 교회는 늘 일꾼이 부족하지만 죽어 가는 교회는 일꾼을 찾을 필요가 없습니다. 살아있는 교회는 선교사업이 활발합니다. 그러나 죽어 가는 교회는 교회 안에서만 움직입니다. 살아있는 교회는 주로 주는 자들로 가득 차 있다면 죽어 가는 교회는 티내는 자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살아있는 교회는 믿음으로 움직이고 죽어 가는 교회는 인간적 판단 위에 움직입니다. 살아있는 교회는 배우고 봉사하기 위하여 바쁘다면, 죽어 가는 교회는 한가합니다. 살아있는 교회는 활발히 전도하고 죽어 가는 교회는 점점 굳어져 화석화되어 갑니다."

우리 교회는 올해로 창립 29주년을 맞이했습니다. 우리 교회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살아있는 교회입니까? 죽어 가는 교회입니까? 교회의 생명력은 교회의 관심사들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만약에 교회가 하나님이 전혀 관심 없는 일에 시간과 힘과 물질을 낭비한다면 이미 생명력을 잃어버린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는 하나님의 관심에 바로 세워져 있던 사도행전에 나타난 처음 교회의 모습을 가져야합니다. 처음 교회의 모습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처음 교회는 어떤 교회였습니까? 복잡한 조직이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여러 가지 직분이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어느 교단에 속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엄청난 재벌이 많이 출석하는 교회도 아니었습니다. 권력자가 출석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굉장한 학자가 출석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평범한 사람들뿐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에 어떤 사람이 나오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어떤 교회인가 하는 교회의 정체성이 중요합니다. 처음 교회는 성령이 충만한 교회입니다. 저들의 능력과 실력으로는 불가능한 일들을 많이 이루어내었습니다. 이는 성령이 충만하였기에 가능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가 간구 해야 할 것은 성령 충만한 처음 교회로 돌아가는 일입니다. 교회 부흥에 모두 관심이 많습니다. 그러나 교회의 부흥은 교회가 성경적 기초 위에 세워질 때 이루어짐을 알아야 합니다. 처음 교회도 양적 부흥보다 영적 부흥이 먼저 이루어졌습니다. 우리 교회도 처음 교회처럼 교회의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이루어질 때 하나님께서 부흥을 일으켜 주십니다. 그러므로 처음 교회의 모습을 회복해야 합니다. 처음 교회의 모습은,


첫째로 구원의 역사가 있는 교회입니다

영국 런던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꼭 찾고 싶어하는 곳이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유명한 웨스트민스터 사원입니다. 여행객들이 방문할 때 안내자는 교회의 역사적 내력과 안치되어 있는 지나간 세기의 유명한 인물들을 자세하게 설명하여 주었습니다. 또 현재 교회가 어떤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지도 설명하였습니다. 설명이 끝난 후에 방문객들을 향해 질문이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이 때에 한 여인이 질문을 던졌습니다. "교회에 관한 여러 가지 내용과 내력에 관해서 설명해 주신 것에 감사 드립니다. 그런데 최근에 이 교회를 통해서 구원받은 사람이 얼마나 됩니까?" 안내자는 대답을 하지 못하고 당황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질문은 우리에게도 중요합니다. 지나온 교회의 과거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교회에서 영혼 구원의 사건이 지금 일어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온 천하보다도 소중한 인간의 생명을 살리는 구원의 역사 곧 새 생명이 탄생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교회의 성도들은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거듭나 세상을 변화시키는 교인이 되어야 합니다. 또한 교회는 구원의 사건과 성령의 역사가 계속해서 일어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살아있는 교회입니다. 처음교회는 바로 이런 교회였습니다. 본문 43절은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인하여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라고 기록하였습니다. 교회는 예수를 만남으로 인한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는 증거가 있어야 합니다.

많은 이들이 교회의 위기를 말하며 걱정합니다. 레저 산업이 발달하고, 근무일이 줄어들고, 휴가를 즐기는 풍조가 되면 교회는 많은 어려움을 당한다는 것입니다. 모이는 것이 점점 어려워질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교회가 교회로서의 사명을 제대로 감당할 수 있다면,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교회는 존재 의의가 있는 것이며, 하나님께서 더욱 새롭게 하셔서 날마다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는 교회로 만들어주실 줄로 믿습니다. 그렇다면 위기가 기회가 될 줄로 믿습니다.


둘째로 마음을 같이 하는 교회입니다

'0' 이라는 숫자의 이야기입니다. '0' 은 외롭고 초라했습니다. 가진 것이 없고 곁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같이 있어 줄 친구를 찾아다니기 시작했습니다. 1, 2, 3... 모든 숫자를 만나 보았지만 그들은 가진 것이 없는 '0' 의 친구 되기를 거절하였습니다. '0' 은 좌절감에 빠집니다. 그런데 '1' 도 '0' 과 마찬가지로 친구를 찾아 헤맸지만 거만한 숫자들에게 거절당하고 맙니다. 여기에서 '1' 과 '0' 은 친구가 되어 '10'을 이루게 됩니다. 그러자 이제까지 이들을 무시했던 숫자들이 모여들어 친구 되기를 청했습니다. 아무리 작고 미약한 존재일지라도 같이하면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진리입니다. '1' 이나 '0' 은 작고 초라한 숫자입니다. 그러나 둘이 결합하여 이루어진 '10' 은 크고 우월합니다. 교회는 서로 마음을 같이하여 큰 일을 이루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서로 함께 하는 교회가 될 때 살아있는 교회가 됩니다. 본문 46절 말씀에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라고 했습니다. 처음 교회는 마음을 같이하여 모이기를 힘썼습니다. 마음을 같이하여 떡을 떼며 사랑 안에서 교제에 힘썼습니다. 마음을 같이 하여 기도하기를 힘썼습니다. 마음을 같이 하여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했습니다. 오늘의 시대는 "함께"를 상실해가고 있습니다. 짐이 무거워질 때, 병들었을 때, 슬플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함께 하는 것입니다. 마음을 같이 하는 것입니다.

처음 교회는 사랑으로 함께 했습니다. 함께 할 때 놀라운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본문 43절은 "사람마다 두려워했다" 고 증거 합니다. 이는 겁을 냈다는 뜻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속에 경건한 경외심이 생기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처음 교회는 '서로' 의 의식으로 신분을 뛰어 넘었습니다. 있고, 없고를 뛰어 넘었습니다. 배우고 못 배우고 를 뛰어 넘었습니다. 그래서 처음 교회는 높은 사람들도 있고, 종도 있지만 사랑으로 서로 교제했습니다. 배운 사람도 있고, 못 배운 사람도 있지만 서로 교제했습니다. 부자도 있고, 가난한 사람도 있지만 서로 교제했습니다. 부자는 자신의 여유 있는 것을 가지고 와서 가난한 자들에게 사랑을 베풀었습니다. 돌보아주었습니다. 건강한 사람은 약한 사람을 붙잡아 주었습니다 슬픈 사람을 찾아가 위로해 주었습니다. 먹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음식을 만들어 가지고 와서 서로 나누었습니다. 서로 마음을 같이하여 진정으로 교제하였습니다. 숯불은 모여야 더 뜨거운 열을 내고 물방울은 모여야 큰 강물을 이루고, 작은 원자도 모이면 큰 힘을 발휘하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교회도 함께 할 때 뜨거운 열이 발생합니다. 부흥이 일어납니다. 크게 발전하게 됩니다. 교회가 마음을 같이하여 하나될 때 어떤 어려운 일도 해낼 수 있는 능력 있는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셋째로 주께서 더하시는 교회입니다

어느 크리스챤 아들이 70대 노모에게 "요즘, 교회 가기가 싫다" 라고 말합니다. 도대체 왜 그러는지 이유를 물었습니다. 아들은 세 가지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우선 아침에 일어나기가 힘들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성가대의 불협화음을 들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예배가 지루하다는 것입니다. 이 소리를 듣고 있던 어머니는 그래도 교회를 가야 한다며 꼭 가야 할 세 가지 이유를 말합니다. "첫째 교회에 가는 것은 너의 선택이 아니라 필수요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이다. 둘째로 교회는 사람보고 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셋째 정말 꼭 교회에 가야 할 이유는, 네가 바로 그 교회의 담임목사이기 때문이다" 라는 것입니다. 교회는 누구나 가고 싶은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처음 교회 성도들은 늘 교회에 가고 싶었습니다. 얼마나 가고 싶었는지 그들은 모였다가 헤어질 줄을 몰랐습니다. 그러다 결국 그들은 함께 살았습니다. 이처럼 가고 싶은 교회로 만들었던 힘의 동력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성령의 역사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반드시 성령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그때 비로소 하나님께서 역사 하십니다.

본문 47절에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들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고 합니다. 여기의 '주께서' 란 의미는 구원의 주체가 예수 그리스도임을 분명히 밝히는 것입니다. '더하게 하시니라' 의 '프로세티데이' 는 미완료 과거형으로 '계속해서 더하게 하셨다' 는 의미입니다. 즉 처음 교회는 계속해서 숫자가 증가되어 갔습니다. 모든 이들에게 가고 싶은 교회가 되어 날마다 더해지는 역사가 계속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부흥은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역사입니다. 교회부흥은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교회부흥에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까? 나이아가라 폭포는 1분에 약 50만톤의 물이 떨어진다고 합니다. 그런데 1948년 3월 29일 이 폭포가 갑자기 멈춘 적이 있었습니다. 모두 지구의 종말이 왔다고 했습니다. 멈춘 이유를 조사해보니, 강추위가 위쪽에 위치한 어리호를 빙판으로 만들어 큰 얼음 덩어리가 내려오다 나이아가라 강줄기의 입구를 30시간동안 막아버린 것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우리의 차가운 무관심이 하나님의 은혜의 강줄기를 막아 버릴 수 있다는 교훈입니다. 그러므로 처음 교회로 돌아가게 하는 것은 바로 성령의 역사입니다. 교회는 무엇보다 성령 충만을 사모하여 성령의 역사가 강력히 일어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며, 마음을 같이하여 날마다 하나님께서 더하여 주시는 우리 교회 되어, 마지막 때에 사명을 감당하는 교회가 되어지도록 힘쓰는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김광일목사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