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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귐이 있는 교회 (요한일서 1:1-10)
본문의 주제는 사귐입니다. 사귐이라는 헬라말은 ‘코이노니아’(koinonia)인데, 그 뜻은 교제(fellowship), 연합(association), 공동체(community), 일체(communion), 참여(participation), 그리고 동질(intercourse)입니다. 코이노니아는 신학에서 기독교회의 3대 사명 중의 하나라고 합니다. 기독교에서 사귐이라고 하면 성부 하나님과의 사귐, 성자 예수님과의 사귐, 성령 하나님과의 사귐, 그리고 성도들 간의 사귐을 의미합니다. 우리 교회는 이같은 사귐이 있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의하면 기독교의 사귐에는 그 특징이 있습니다.
1. 기독교의 사귐은 생명의 사귐입니다.
오늘 본문 첫 머리에서 예수님(Logos)께서 생명임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과의 사귐은 바로 생명의 사귐입니다. 사귐의 뜻을 이미 말씀 드렸습니다. 그러나 이를 요약하면 다음의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서로 나누는 것(to share)입니다. 예수님이 생명이시니 예수님과의 사귐은 곧 그의 생명을 나누는 것이요, 그 생명이 영생하는 생명(joyeh)입니다. 둘째는 참여(participate)입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아들, 딸이 되고, 그의 모든 고난과 축복과 영광, 그리고 그의 부활에 까지 참여하는 것입니다. 셋째는 일치(intercourse)입니다. 이것은 부부관계와 같은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과의 사귐은 예수님과 우리들이 부부관계와 같이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과의 사귐은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요, 따라서 죽음을 이기고, 죽음의 두려움과 고통을 극복하는 것입니다. 미국의 엘리자베스 로스(Elizabeth K. Ross)는 그의 책(Death and Dyning)에서 죽음을 앞둔 인간의 심리적 변화를 연구 발표하였습니다. 그는 책에서 죽음을 앞둔 사람은 먼저 그 죽음을 부정하고, 다음은 분노하고, 그 가음은 타협하고, 그리고 낙심하다가 결국 받아들이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죽음을 이겼습니다(요 14:1 이하). 바울 사도도 죽음을 이기고(빌 1:21~23) 소망있는 죽음을 기다렸습니다(살전 4:13, 딤후 4:8). 예수님과의 사귐은 그의 모든 것을 나누고 참여하고, 그와 하나가 되지만, 특히 예수님과의 생명의 사귐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그리스도인의 사귐은 빛의 사귐입니다.
본문 5절에 “하나님은 빛이시라”고 하였습니다. 빛 가운데 행하는 자여야 사귐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빛은 어두움을 전제합니다. 빛과 어두움을 대조해서 이것을 종교화한 것이 바로 바로 조로아스터교입니다. 이때 빛은 적극적인 사고와 창조적인 역할입니다. 빛은 진리요, 의요, 사랑이요, 소망이요, 기쁨이며, 감사입니다. 대신에 어두움은 죄요, 죽음이며, 절망이요, 시기, 질투, 전쟁입니다. 이 세상은 어두움입니다. 철학자 사르트르는 이 세대야 말로 인간의 무조화(human dilemma)의 돌출구가 없다고 했습니다. 까뮤는 “현대야 말로 빛이 없는 어두움의 세대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미국의 어느 작가는 이 시대야 말로 남편은 버리고, 그리고 그것도 모르는 채 달리는 부인과 같다고 실화를 들어 꼬집고 있습니다. 이같은 세대에 그리스도인은 빛되신 하나님과 사귐이 있는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도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마 5:13)라고 하였습니다. 빛처럼 행함으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 될 수가 있습니다. 본문에서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3. 그리스도인의 사귐은 대속의 사귐입니다.
9절 말씀에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신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 스스로는 십자가를 져야할 죄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이것이 대속사역입니다. 그 예수님과의 사귐은 우리 죄를 없이 하신 일에 우리도 함께 할 뿐 아니라, 우리들도 남의 고통을 대신 져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유대 격언에도 “세상에서 가장 현명한 사람은 모든 사람에게 항상 배우는 사람이요, 가장 강한 자는 자기자신을 이기는 자이며, 가장 부유한 자는 만족할줄 아는 자이며, 그리고 가장 존경받는 자는 남의 고통을 대신 지는 사람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도 예수님과의 사귐이 있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예수님의 고난에 참여하는 복음전파에 매진해야 합니다. 그리해야 참된 그리스도인이요, 하나님과 사귐이 있고, 성령과의 사귐이 있고, 그리고 예수님과의 사귐이 있는 성도가 될 수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사귐은 이와같이 생명의 사귐이며, 빛의 사귐이며, 더 나아가서 대속의 사귐입니다. 그리하면 예수님의 영광과 축복, 그리고 그 은혜에 동참하게 될 것입니다.
출처/강동수목사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