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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그네의 감사기도 (역대상 29:10~19)
나는 고작 이 세상에서 하나의 나그네 / 한 가닥 편로(遍路)에 지나지 못한다. / 그대들인들 이밖에 더 무엇이겠는가?’라고 하였습니다(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중에서). 오늘 우리는 위대한 구약의 신앙영웅 다윗의 인생고백과 감사를 만나게 됩니다. 그의 나그네 인생의 실존(實存)이 감사의 뜨거움으로 넘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Ⅰ. 인생은 머무름이 없는 나그네라고 하였습니다.
역대상 29장 15절에 「주 앞에서는 우리가 우리 열조와 다름이 없이 나그네와 우거한 자라 세상에 있는 날이 그림자 같아서 머무름이 없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자기 열조와 같은 길을 걷고 있는 나그네라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바로 저들 믿음의 조상 야곱이 애굽의 왕 바로 앞에서 나타낸 나그네 인생 고백을 두고 한 말입니다. 야곱은 바로 앞에서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일백삼십 년이니이다 나의 연세가 얼마 못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세월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창 47:9)라고 한 바 있습니다. 야곱은 그의 아버지 이삭과 할아버지 아브라함도 이 세상을 나그네로 살았다고 하였습니다. 자기도 그 조상의 나그네 길을 걷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야곱은 그 조상의 나그네 길의 세월에 미치지 못하지마는 이 세상 자신의 나그네 여로가 험했다고 하였습니다. 지금 다윗은 이러한 그의 조상들의 나그네 정서를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주 앞에서는 우리가 우리 열조와 다름이 없이 나그네와 우거한 자」(대상 29:15)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나그네’는 ‘외국인’ 또는 ‘외인’을 뜻합니다. ‘우거한 자’는 ‘이국 거주자’를 뜻합니다. 사도 베드로는 그리스도인을 가리켜 ‘나그네와 행인’이라고 하였습니다(벧전 2:11). 그럼에도 나그네 여로의 날들(시간)은 그림자 같아서 머무름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세상에 있는 나그네 된 인생이 받은 날을 ‘그림자’ 같다고 하였습니다(욥 8:9, 시 90:9~10, 102:11, 144:4). 지금 머무름이 없는 나그네 인생고백을 하는 자가 누구였던가? 성군 다윗이 아니던가? 사방의 적들을 정복하고 대 제국을 건설한 당대의 호걸이 아니던가? 가나안 땅의 영웅이 아니던가? 그럼에도 다윗 자신은 하나님 앞에서 이 세상의 나그네요, 행인이요, 우거자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이 세상에서 영원 자존자가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이 세상으로 보냄받은 피조자요, 유한자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잠시 머물고 있는 거류자라고 하였습니다. 언젠가는 반드시 본래 왔던 곳으로 되돌아가야 할 이 세상에서의 외국인이라고 하였습니다. 임시 거주자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저자는 말하기를 「우리가 여기는 영구한 도성이 없고 오직 장차 올 것을 찾나니…」(히 13:14)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다윗은 이 세상에서의 자기 실존적 상황을 지나가는 나그네, 잠시 우거하는 자, 머물지 아니하는 행인으로 고백하였습니다.
Ⅱ. 나그네 된 인생은 하나님께 받은 것으로 살아가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역대상 29장 14절 중에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라고 하였습니다. 16절 중에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가 주의 거룩한 이름을 위하여 전을 건축하려고 미리 저축한 이 모든 물건이 다 주의 손에서 왔사오니 다 주의 것이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지금 다윗은 이 세상에서 나그네 인생으로 살아가는 자신과 자신의 백성들은, 살아가고 있다는 생존 그 자체가 모두 하나님의 손에서 받아가지고 살며 숨쉬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 하나님은 바로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라고 하였습니다(대상 29:10). 이는 언약의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그분은 실로 광대하심과 권능과 높으심과(대상 29:11), 만유의 주재가 되신다고 하였습니다(대상 29:11). 영광과 이김과 위엄의 하나님이라고 하였습니다(대상 29:11). 말하자면 절대하신 주권의 하나님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분의 손에서 ① 만물을 받았다고 하였습니다(대상 29:11). ② 주권(통치권)도 받았다고 하였습니다(대상 29:11). ③ 부와 귀와 권세와 능력이 다 주의 손으로부터 받았다고 하였습니다(대상 29:12). 결코 이 세상을 살아가는 나그네 된 인생은 우연의 산물이 아닌 필연적인 하나님의 산물이라고 하였습니다. 동시에 그 나그네 된 인생여로에 주어진 모든 생존의 여건들이 하나도 예외없이 하나님 자신께로부터 주어진, 얻어진, 받아진 은사의 산물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손에서 모든 나그네 인생 실존의 여건들이 주어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약 1:17)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롬 11:36)고 하였습니다. 바로 이러한 다윗의 고백은, 하나님은 나그네 된 인생의 주인이요, 또 하나님은 나그네 된 인생이 살고 있는 물질적 생존세계의 주인도 되신다는 고백입니다. 결코 다윗은 나그네로서의 자기의 인생여로를 우연이나 맹목에 돌리지 않았습니다. 절대하신 필연의 하나님, 주권의 하나님께 돌렸습니다. ‘모든 것’이 ‘다’ 주께로부터 왔다고 하였습니다. 결코 자신에게 자신이 주인이 되거나 자신이 만물의 주인이란 생각은 꿈에도 없었습니다.
Ⅲ. 나그네 된 인생의 존재적 의미를 감사하였습니다.
역대상 29장 13절에 「우리 하나님이여 이제 우리가 주께 감사하오며 주의 영화로운 이름을 찬양하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람 다윗은 왕위에 등극하자마자 국권을 회복하였습니다. 그리고 잃어버린 국토를 무수한 전쟁을 통하여 회복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땅에 평화를 정착시켰습니다. 그 후에 그는 하나님의 성전을 지으려고 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그가 저 기럇여아림에 있는 하나님의 법궤를 다윗 성으로 옮겨놓은 장본인이었기 때문입니다(대상 13장, 15장, 삼하 6장). 그래서 그는 새 성전을 지어, 아직 휘장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법궤를 그 가운데 모시기를 원했습니다(삼하 7장). 그러나 하나님은 다윗이 아닌 그 아들 솔로몬에게 성전을 허락하였습니다(대상 28:10).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깨달은 다윗은 자기가 숨쉬고 살 나그네 인생 어간에 무엇을 해야 될 사람인가를 알았습니다. 자기가 받은 통치 어간에, 평화를 받은 그 어간에 무엇을 하고 가야 할 것인가를 깨달았습니다. 바로 그것이 그 아들 솔로몬이 지을 성전을 위한 모든 준비였습니다. 그는 「성신의 가르치신 모든 식양」(대상 28:12)대로 성전준비에 만전을 기했습니다. 먼저 다윗 자신이 최선을 다하여 헌물을 드렸습니다(대상 29:1~5). 곧 오빌의 금 삼천 달란트와 천은 칠천 달란트를 드렸다고 하였습니다(대상 29:4). 그 다음 모든 족장 곧 이스라엘 모든 지파의 어른과 천부장과 백부장과 왕의 사무 감독들이 금 오천 달란트와 금 다릭 일만과 은 일만 달란트와 놋 일만 팔천 달란트와 철 십만 달란트를 드렸습니다(대상 29:6~7). 실로 막대한 헌물들이었습니다. 이 놀라운 헌물들 앞에는 왕과 온 백성들이 ‘즐거이 드렸다’는 말이 반복해서 나옵니다(대상 29:6, 9, 17). 기뻐하였다는 말이 반복되어 나옵니다(대상 29:9, 17). 힘을 다했다는 말이 나옵니다(대상 29:2).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을 위한 것이라는 말이 나옵니다(대상 29:1). 하나님의 전을 위하여 드렸다는 말이 나옵니다(대상 29:2, 3).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다고 하였습니다(대상 29:14). 다윗의 마음에 있는 하나님의 전을 사모함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대상 29:3). 정직한 마음으로 드렸다고 하였습니다(대상 29:17). 그것은 신앙의 마음을 뜻합니다. 이 모든 것은 그 어느 하나도 인생 자신의 행위가 아니고,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을 드렸을 뿐이라고 한 사실입니다. 역대상 29장 14절 중에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라고 감사하였습니다. 실로 물질관에 대한 다윗의 청지기 의식의 확고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인생은 물질의 주인이 아닌 그 물질의 청지기라는 감사의 고백이었습니다. 말하자면 다윗은 나그네로서 자신의 생존의미가 무엇임을 깨달은 자였습니다. 자신이 받은 시간과 공간 안에서 자신이 무엇을 하고 가야 할 사람인가 하는 생존의 참 의미와 내용과 목적을 직감하고 살았던 실로 멋있는 인생 나그네였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솔로몬이 지을 성전준비를 완료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벌써 2002년 11월 첫 주일을 맞고 있습니다. 그 누구도, 그 무슨 이유로도 이러한 시간의 표식 앞에 서지 않을 피조물은 아무도 없습니다. 생각해 보면 정말 내 인생이 바쁘게, 또 바쁘게 시간의 재촉을 받으면서 숨가쁜 달음질을 하고 있는 경주 마당의 사람 같습니다. 아닌게 아니라 바울은 자신의 인생여로를 회고하면서 「내가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딤후 4:7)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은 자기의 조부들처럼 예외없이 이 세상을 지나가는 나그네요, 행인이요, 임시 거류자라고 하였습니다. 그림자처럼 머무를 수 없는 나그네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정하신 천정의 법칙입니다. 그럼에도 사람들 가운데는, 자신은 나그네가 아니고 이 세상의 주인이요 제왕인 것처럼 착각을 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시간을 역행하고 돌고 있는 지구를 역행하면서, 하나님을 도전하는 괴짜 인생들을 많이 봅니다. 진시 황제 같은 자는 지나가는 나그네가 되지 않으려고 동방에 불사의 명약을 구하러 보낸 일도 있었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럼에도 이 세상을 살아갔던 모든 지난날의 영웅들과 호걸들과 가인들과 재사들과 모사들이 예외없이 잠깐 머물다가 지나가 버린 나그네 인생이 아니었던가! 뿐만 아니라 다윗은, 나그네 된 자기는 이 세상을 지나갈 동안 하나님의 손에 있는 모든 것을 받아가지고 살고 있다고 고백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하늘과 하늘의 햇빛, 별빛, 달빛을 받아 가지고 살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땅과 그 가운데 모든 생명자원을 받아 가지고 살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바다와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것을 받아 가지고 살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태양의 열량을 먹고, 하나님이 주신 이른비와 늦은비를 마셨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무진장의 대기자원 속에서 나그네의 삶을 살았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꽃피는 봄을 노래하고, 하나님이 주신 신록의 여름을 함께 나누고, 하나님이 주신 가을의 성찬 앞에 춤을 추고, 하나님이 주신 백설의 겨울 속에서 지난날을 회고하면서 평안히 잠을 자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 어느 것 하나 하나님의 손에서 받지 않고, 하나님의 손에서 얻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하나도 없다고 하였습니다. 나그네 생존에 따라 오는 온갖 것들이 다 주의 손에서 받았고, 얻어 살았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솔로몬도, 욥도 적신으로 온 인생이었기에 모든 것을 하나님의 손에서 받아가지고 채운다고 고백하였습니다(욥 1:21, 전 5:15). 그렇기에 나그네 된 다윗에게는 마땅히 하나님께 올리는 감사의 기도가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바로 그것은 무의미한 나그네 삶이 아닌 의미의 삶, 맹목의 삶이 아닌 목적의 삶에 대한 감사였습니다. 다윗과 그 백성의 경우는 솔로몬 왕이 지을 성전을 위한 완벽한 준비였습니다. 그래서 왕과 백성들은 기쁜 마음, 정직한 마음, 즐거운 마음, 자원하는 마음, 감격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성전을 위하여, 주께 받은 그것으로 힘을 다하여 헌심하고, 헌신하고, 헌물하였음을 감사한 것입니다. 말하자면 하나님께로부터 이 땅에 보냄을 받은 나그네 인생이 하나님의 손으로부터 받은 것으로, 하나님의 전을 위하여 자신들의 생존의 의미와 내용과 목적을 다하였다는 사실입니다. 이 땅에 나그네로 잠시 머물 동안, 하나님의 은혜로 받은 것을 가지고 하나님을 위하여 살았다는 사실을 하나님께 감사한 것입니다. 바로 나그네 경향인의 감사기도가 아닌가! 여기에 모인 우리 모두는 확실히 이 세상에서 나그네들입니다. 저도 나그네요, 여러분도 나그네들입니다. 우리는 금년 한 해 동안도 주의 손에 있는 것으로 받아 숨쉬고 기동하였습니다. 그 어느 것 하나도 내 것으로 살았다고 생각하지 아니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가정과 건강 그리고 여러 달란트들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실로 은혜로만 살아온 삶이었습니다. 그리고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의 일을 하였습니다. 교회운동, 헌당운동, 선교운동, 신학교운동… 등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겨주신 복음운동의 사명을 감당하였습니다. 우리 함께 다윗과 그 백성들처럼 이 사실을 주께 감사하고 기도합시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죽고자 하는 우리의 삶에는 언제나 영광된 승리의 축복이 약속되어 있음을 감사합시다. - 아 멘
출처/석원태목사 설교 중에서
나는 고작 이 세상에서 하나의 나그네 / 한 가닥 편로(遍路)에 지나지 못한다. / 그대들인들 이밖에 더 무엇이겠는가?’라고 하였습니다(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중에서). 오늘 우리는 위대한 구약의 신앙영웅 다윗의 인생고백과 감사를 만나게 됩니다. 그의 나그네 인생의 실존(實存)이 감사의 뜨거움으로 넘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Ⅰ. 인생은 머무름이 없는 나그네라고 하였습니다.
역대상 29장 15절에 「주 앞에서는 우리가 우리 열조와 다름이 없이 나그네와 우거한 자라 세상에 있는 날이 그림자 같아서 머무름이 없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자기 열조와 같은 길을 걷고 있는 나그네라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바로 저들 믿음의 조상 야곱이 애굽의 왕 바로 앞에서 나타낸 나그네 인생 고백을 두고 한 말입니다. 야곱은 바로 앞에서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일백삼십 년이니이다 나의 연세가 얼마 못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세월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창 47:9)라고 한 바 있습니다. 야곱은 그의 아버지 이삭과 할아버지 아브라함도 이 세상을 나그네로 살았다고 하였습니다. 자기도 그 조상의 나그네 길을 걷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야곱은 그 조상의 나그네 길의 세월에 미치지 못하지마는 이 세상 자신의 나그네 여로가 험했다고 하였습니다. 지금 다윗은 이러한 그의 조상들의 나그네 정서를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주 앞에서는 우리가 우리 열조와 다름이 없이 나그네와 우거한 자」(대상 29:15)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나그네’는 ‘외국인’ 또는 ‘외인’을 뜻합니다. ‘우거한 자’는 ‘이국 거주자’를 뜻합니다. 사도 베드로는 그리스도인을 가리켜 ‘나그네와 행인’이라고 하였습니다(벧전 2:11). 그럼에도 나그네 여로의 날들(시간)은 그림자 같아서 머무름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세상에 있는 나그네 된 인생이 받은 날을 ‘그림자’ 같다고 하였습니다(욥 8:9, 시 90:9~10, 102:11, 144:4). 지금 머무름이 없는 나그네 인생고백을 하는 자가 누구였던가? 성군 다윗이 아니던가? 사방의 적들을 정복하고 대 제국을 건설한 당대의 호걸이 아니던가? 가나안 땅의 영웅이 아니던가? 그럼에도 다윗 자신은 하나님 앞에서 이 세상의 나그네요, 행인이요, 우거자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이 세상에서 영원 자존자가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이 세상으로 보냄받은 피조자요, 유한자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잠시 머물고 있는 거류자라고 하였습니다. 언젠가는 반드시 본래 왔던 곳으로 되돌아가야 할 이 세상에서의 외국인이라고 하였습니다. 임시 거주자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저자는 말하기를 「우리가 여기는 영구한 도성이 없고 오직 장차 올 것을 찾나니…」(히 13:14)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다윗은 이 세상에서의 자기 실존적 상황을 지나가는 나그네, 잠시 우거하는 자, 머물지 아니하는 행인으로 고백하였습니다.
Ⅱ. 나그네 된 인생은 하나님께 받은 것으로 살아가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역대상 29장 14절 중에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라고 하였습니다. 16절 중에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가 주의 거룩한 이름을 위하여 전을 건축하려고 미리 저축한 이 모든 물건이 다 주의 손에서 왔사오니 다 주의 것이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지금 다윗은 이 세상에서 나그네 인생으로 살아가는 자신과 자신의 백성들은, 살아가고 있다는 생존 그 자체가 모두 하나님의 손에서 받아가지고 살며 숨쉬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 하나님은 바로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라고 하였습니다(대상 29:10). 이는 언약의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그분은 실로 광대하심과 권능과 높으심과(대상 29:11), 만유의 주재가 되신다고 하였습니다(대상 29:11). 영광과 이김과 위엄의 하나님이라고 하였습니다(대상 29:11). 말하자면 절대하신 주권의 하나님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분의 손에서 ① 만물을 받았다고 하였습니다(대상 29:11). ② 주권(통치권)도 받았다고 하였습니다(대상 29:11). ③ 부와 귀와 권세와 능력이 다 주의 손으로부터 받았다고 하였습니다(대상 29:12). 결코 이 세상을 살아가는 나그네 된 인생은 우연의 산물이 아닌 필연적인 하나님의 산물이라고 하였습니다. 동시에 그 나그네 된 인생여로에 주어진 모든 생존의 여건들이 하나도 예외없이 하나님 자신께로부터 주어진, 얻어진, 받아진 은사의 산물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손에서 모든 나그네 인생 실존의 여건들이 주어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약 1:17)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롬 11:36)고 하였습니다. 바로 이러한 다윗의 고백은, 하나님은 나그네 된 인생의 주인이요, 또 하나님은 나그네 된 인생이 살고 있는 물질적 생존세계의 주인도 되신다는 고백입니다. 결코 다윗은 나그네로서의 자기의 인생여로를 우연이나 맹목에 돌리지 않았습니다. 절대하신 필연의 하나님, 주권의 하나님께 돌렸습니다. ‘모든 것’이 ‘다’ 주께로부터 왔다고 하였습니다. 결코 자신에게 자신이 주인이 되거나 자신이 만물의 주인이란 생각은 꿈에도 없었습니다.
Ⅲ. 나그네 된 인생의 존재적 의미를 감사하였습니다.
역대상 29장 13절에 「우리 하나님이여 이제 우리가 주께 감사하오며 주의 영화로운 이름을 찬양하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람 다윗은 왕위에 등극하자마자 국권을 회복하였습니다. 그리고 잃어버린 국토를 무수한 전쟁을 통하여 회복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땅에 평화를 정착시켰습니다. 그 후에 그는 하나님의 성전을 지으려고 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그가 저 기럇여아림에 있는 하나님의 법궤를 다윗 성으로 옮겨놓은 장본인이었기 때문입니다(대상 13장, 15장, 삼하 6장). 그래서 그는 새 성전을 지어, 아직 휘장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법궤를 그 가운데 모시기를 원했습니다(삼하 7장). 그러나 하나님은 다윗이 아닌 그 아들 솔로몬에게 성전을 허락하였습니다(대상 28:10).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깨달은 다윗은 자기가 숨쉬고 살 나그네 인생 어간에 무엇을 해야 될 사람인가를 알았습니다. 자기가 받은 통치 어간에, 평화를 받은 그 어간에 무엇을 하고 가야 할 것인가를 깨달았습니다. 바로 그것이 그 아들 솔로몬이 지을 성전을 위한 모든 준비였습니다. 그는 「성신의 가르치신 모든 식양」(대상 28:12)대로 성전준비에 만전을 기했습니다. 먼저 다윗 자신이 최선을 다하여 헌물을 드렸습니다(대상 29:1~5). 곧 오빌의 금 삼천 달란트와 천은 칠천 달란트를 드렸다고 하였습니다(대상 29:4). 그 다음 모든 족장 곧 이스라엘 모든 지파의 어른과 천부장과 백부장과 왕의 사무 감독들이 금 오천 달란트와 금 다릭 일만과 은 일만 달란트와 놋 일만 팔천 달란트와 철 십만 달란트를 드렸습니다(대상 29:6~7). 실로 막대한 헌물들이었습니다. 이 놀라운 헌물들 앞에는 왕과 온 백성들이 ‘즐거이 드렸다’는 말이 반복해서 나옵니다(대상 29:6, 9, 17). 기뻐하였다는 말이 반복되어 나옵니다(대상 29:9, 17). 힘을 다했다는 말이 나옵니다(대상 29:2).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을 위한 것이라는 말이 나옵니다(대상 29:1). 하나님의 전을 위하여 드렸다는 말이 나옵니다(대상 29:2, 3).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다고 하였습니다(대상 29:14). 다윗의 마음에 있는 하나님의 전을 사모함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대상 29:3). 정직한 마음으로 드렸다고 하였습니다(대상 29:17). 그것은 신앙의 마음을 뜻합니다. 이 모든 것은 그 어느 하나도 인생 자신의 행위가 아니고,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을 드렸을 뿐이라고 한 사실입니다. 역대상 29장 14절 중에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라고 감사하였습니다. 실로 물질관에 대한 다윗의 청지기 의식의 확고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인생은 물질의 주인이 아닌 그 물질의 청지기라는 감사의 고백이었습니다. 말하자면 다윗은 나그네로서 자신의 생존의미가 무엇임을 깨달은 자였습니다. 자신이 받은 시간과 공간 안에서 자신이 무엇을 하고 가야 할 사람인가 하는 생존의 참 의미와 내용과 목적을 직감하고 살았던 실로 멋있는 인생 나그네였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솔로몬이 지을 성전준비를 완료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벌써 2002년 11월 첫 주일을 맞고 있습니다. 그 누구도, 그 무슨 이유로도 이러한 시간의 표식 앞에 서지 않을 피조물은 아무도 없습니다. 생각해 보면 정말 내 인생이 바쁘게, 또 바쁘게 시간의 재촉을 받으면서 숨가쁜 달음질을 하고 있는 경주 마당의 사람 같습니다. 아닌게 아니라 바울은 자신의 인생여로를 회고하면서 「내가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딤후 4:7)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은 자기의 조부들처럼 예외없이 이 세상을 지나가는 나그네요, 행인이요, 임시 거류자라고 하였습니다. 그림자처럼 머무를 수 없는 나그네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정하신 천정의 법칙입니다. 그럼에도 사람들 가운데는, 자신은 나그네가 아니고 이 세상의 주인이요 제왕인 것처럼 착각을 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시간을 역행하고 돌고 있는 지구를 역행하면서, 하나님을 도전하는 괴짜 인생들을 많이 봅니다. 진시 황제 같은 자는 지나가는 나그네가 되지 않으려고 동방에 불사의 명약을 구하러 보낸 일도 있었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럼에도 이 세상을 살아갔던 모든 지난날의 영웅들과 호걸들과 가인들과 재사들과 모사들이 예외없이 잠깐 머물다가 지나가 버린 나그네 인생이 아니었던가! 뿐만 아니라 다윗은, 나그네 된 자기는 이 세상을 지나갈 동안 하나님의 손에 있는 모든 것을 받아가지고 살고 있다고 고백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하늘과 하늘의 햇빛, 별빛, 달빛을 받아 가지고 살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땅과 그 가운데 모든 생명자원을 받아 가지고 살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바다와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것을 받아 가지고 살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태양의 열량을 먹고, 하나님이 주신 이른비와 늦은비를 마셨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무진장의 대기자원 속에서 나그네의 삶을 살았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꽃피는 봄을 노래하고, 하나님이 주신 신록의 여름을 함께 나누고, 하나님이 주신 가을의 성찬 앞에 춤을 추고, 하나님이 주신 백설의 겨울 속에서 지난날을 회고하면서 평안히 잠을 자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 어느 것 하나 하나님의 손에서 받지 않고, 하나님의 손에서 얻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하나도 없다고 하였습니다. 나그네 생존에 따라 오는 온갖 것들이 다 주의 손에서 받았고, 얻어 살았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솔로몬도, 욥도 적신으로 온 인생이었기에 모든 것을 하나님의 손에서 받아가지고 채운다고 고백하였습니다(욥 1:21, 전 5:15). 그렇기에 나그네 된 다윗에게는 마땅히 하나님께 올리는 감사의 기도가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바로 그것은 무의미한 나그네 삶이 아닌 의미의 삶, 맹목의 삶이 아닌 목적의 삶에 대한 감사였습니다. 다윗과 그 백성의 경우는 솔로몬 왕이 지을 성전을 위한 완벽한 준비였습니다. 그래서 왕과 백성들은 기쁜 마음, 정직한 마음, 즐거운 마음, 자원하는 마음, 감격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성전을 위하여, 주께 받은 그것으로 힘을 다하여 헌심하고, 헌신하고, 헌물하였음을 감사한 것입니다. 말하자면 하나님께로부터 이 땅에 보냄을 받은 나그네 인생이 하나님의 손으로부터 받은 것으로, 하나님의 전을 위하여 자신들의 생존의 의미와 내용과 목적을 다하였다는 사실입니다. 이 땅에 나그네로 잠시 머물 동안, 하나님의 은혜로 받은 것을 가지고 하나님을 위하여 살았다는 사실을 하나님께 감사한 것입니다. 바로 나그네 경향인의 감사기도가 아닌가! 여기에 모인 우리 모두는 확실히 이 세상에서 나그네들입니다. 저도 나그네요, 여러분도 나그네들입니다. 우리는 금년 한 해 동안도 주의 손에 있는 것으로 받아 숨쉬고 기동하였습니다. 그 어느 것 하나도 내 것으로 살았다고 생각하지 아니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가정과 건강 그리고 여러 달란트들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실로 은혜로만 살아온 삶이었습니다. 그리고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의 일을 하였습니다. 교회운동, 헌당운동, 선교운동, 신학교운동… 등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겨주신 복음운동의 사명을 감당하였습니다. 우리 함께 다윗과 그 백성들처럼 이 사실을 주께 감사하고 기도합시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죽고자 하는 우리의 삶에는 언제나 영광된 승리의 축복이 약속되어 있음을 감사합시다. - 아 멘
출처/석원태목사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