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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를 통한 전도 개발 (요한복음 14장 13~14절)
이 신 웅 목사 (신길성결교회)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오늘 여러분들과 함께 나눌 제목의 초점은 기도에 맞추어져 있습니다. 목회자들에게 있어서 진부한 제목으로 말씀을 나눈다고 하는 것은 모험이기도 합니다. 기도하지 않는 목회자는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기도에 대한 설교도 많이 하고 기도에 대한 권면들도 많이 하시고 실제 여러분들 가운데서는 기도를 많이 하시는 분도 계실 줄 압니다.
그런데 제가 이 부분을 택하게 된 데에는 제 나름대로 특별한 계기가 있었다는 것을 먼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지금 섬기고 있는 교회는 50년이 더 된 교회입니다. 부임한 지 만4년 되는데 50년 이상된 교회 치고 성장하는 교회 보신 적 있습니까? 거의 매너리즘에 빠져서 성장이 어렵다고들 이야기합니다. 부임을 해놓고 보니까 교회 전임자가 한 2년 반정도 하고 울고는 항복하고 갔던 것입니다. 그 전임자도 대단히 훌륭한 분이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그 교회에서 30년 가까이 교회를 섬기던 원로 목사님이 계십니다. 이분은 우리 교단에서 성자라고 하시는 분입니다. 예배시간 한 시간 정도 전에 항상 교회에 나오셔서 먼저 기도하고 계십니다. 이분이 워낙 사랑이 많은 분이 되어서 근 30년 동안 사랑으로만 목회를 하셨기 때문에 채찍이 없고 책망이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좋은 면도 있지만 아주 어려운 면도 많습니다. 조금 뭐라고 하면 섭섭해하고 토라집니다. 그러니까 정말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지도록 사역하려면 얼마나 많은 장애 요인이 되어지는지 모릅니다. 조금 뭐라고 하면 과거가 좋았다고 그리고 예전 목사님은 안 그랬다고 그럽니다. 그런 구조가 되어 있으니까 목회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런데 이 목사님이 목회를 근 30년 하면서 인사권, 재정권, 행정권 등을 다 평신도에게 이양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교회에 부임을 하면 설교만 해야지 다른 것은 관여를 할 길이 없습니다. 교회를 성장시켜 보려고 하나 길이 보이지 않습니다. 또 지역적으로도 아주 어려운 조건입니다. 교인들에게
사랑만 강조하시다 보니까 헌신을 하지 않습니다. 헌신이 없는 교인들은 신앙의 어떤 기쁨도, 감격도 맛볼 수 없거니와 충성으로 끌어낼 수가 없습니다. 도무지 부흥시킬 길이 없고 이쪽으로 보나 저쪽으로 보나 막막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밖에 없구나 생각하고 택한 길이 “기도로 이교회를 이끌어 보자”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윤석전 목사님처럼 하루 8시간씩 기도하는 것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우리 부교역자들은 쉬고 싶으면 마음대로 쉬라고 합니다. 그리고 또 힘 생기면 기도하고 매달리라고 합니다. 부교역자들도 오전에는 일을 안 시킵니다. 오전에는 영적으로 충전이 필요하면 더 기도하고 책을 봐야 되겠으면 보고 연구를 해야 되겠으면 연구하고 자유롭게 자신의 영적 충전을 가질 수 있도록 해서 그들에게 하나님 섬길 수 있는 자유함을 줍니다.
그런데 만 4년 동안 하나님께서 얼마나 은혜를 주셨는지 모릅니다. 우리 교회가 한 10년 정도를 하락하고 있던 교회인데 교회가 하락되는 것이 멈추고 상향될 것을 어느 누구도 예측한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데 교회가 꿈에도 소원하던 목표를 초과달성해서 지금 계속 성장하고 있고 그런가 하면 주일날 오후 예배를 드리는데 배 이상이 나옵니다. 수요일은 세 배 정도, 심야기도회는 열 배 정도 나오고 있습니다. 재정은 세 배가 늘었습니다.
저는 신경을 별로 쓰지 않아서 몰랐는데 우리 교단에서 재정이 1위로 올라왔다고 합니다. 이런 축복을 받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있다면 바로 기도 목회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전혀 재간도 없고 길도 없고 그래서 하나님 의지한 것이 적중을 해서 홈런을 치게 된 것입니다.
제가 처음에 부임을 해서 어떤 일을 당했는가 들어보시면 깜짝 놀랄 겁니다. 처음 상면을 했는데 음식을 다 먹고 제가 마무리 기도를 했는데 어떤 장로님이 기도를 받더니 당신이 기도를 하는 겁니다. 참 당황했습니다. 뿐만 아니고 식사를 한 장소에서 나오는데 장로님이 저의 어깨에 손을 턱 걸치더니 마치 동생처럼 연인을 품에 안은 것처럼 안고서는 잘 해보자고 하는데 이것이 잘해보자고 하는 건지 겁주는 건지 도대체 분간을 못할 정도였습니다.
그럴 정도로 험한 교회였습니다. 일단은 인사권도 회복을 해야겠고 재정권 그리고 행정 관리하는 권한도 회복해야 하겠는데 어떻게든지 그 권한을 안 주려고 합니다. 하나하나 그 권한을 찾아오는데 우리 것 이제 다 빼앗겼다고 하고 독재를 한다고 하면서 별의별 소리를 다 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어떻게든지 과거에 해오던 방법대로, 자기네들이 마음대로 군림해오던 방법대로 굳히기로 들어가려고 하고 저는 어떻게 하든지 이것을 새롭게 갱신하려고 하는 엎어치기를 해야 되니 당회를 하면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얼마나 부담이 되는지 식사를 할 수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기도 줄을 붙잡으니까 하나님께서 풀어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목회를 하시다가 앞뒤좌우 사방에 길이 보이지 않으면 기도 줄을 한번 잡아 보십시오. 오늘 본문에 보면 주님께서는 우리가 기도하면 “내가 시행하리니”라고 언약하셨습니다. 주님이 직접 개입하셔서 그 문제를 처리하시겠다고 언약을 하고 계십니다.
저희 교회는 심지어 기도 부분에 재미를 봐서 어떻게까지 하는지 아십니까? 밤에 취침하는 시간, 기도하기 제일 어려운 그 시간대에는 다른 목적 없이 기도만 해주는 그것으로만 사명을 위임시켜서 생활비를 줍니다. 기도하는 것만 해달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저희 교회는 생활비 받고 취침 시간에 기도해 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기도 공급받고 사는 기도 직원이 있습니다.
여러분, 기도직원을 발상이라도 해보신 적 있습니까? 얼마나 기도의 효과와 영향력을 측량할 수 없으면 봉급까지 줘 가면서 기도를 시키겠습니까? 그래서 이 시간에 잠시 기도에 대한 논리적인 것을 시도를 해보고 실제 기도사역을 위한 방법을 다루어 보겠습니다. 방법은 필요 없는 것 같지만 방법이 필요 없다고 하는 교회에 가 보면 다른 교회보다 방법이 더 많습니다. 방법은 절대 필요합니다. 그런데 방법보다 본질이 더 필요하다고 얘기할 것입니다. 그래서 이 시간에 본질적인 것을 다루고 그 다음에 방법에 대하여 잠시 소개를 해드릴까 합니다.
먼저 기도에 있어서 왜 우리가 다른 많은 일 가운데 기도를 붙잡아야 합니까? 쭈그리고 엎드려서 주님께 매달리는 것보다 오히려 열심히 뛰고 땀흘려 노력하고 그 성과로 좋은 열매를 따려고 하지 않고 왜 굳이 기도를 해야 합니까? 이 부분이 먼저 정리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께서도 이 기도를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셨습니까? 주님이 영혼을 건지기 위해서, 전도하시기 위해서 오셨지만 사람들이 꾸역꾸역 몰려와서 전도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주어졌는데도 불구하고 주님은 때로는 어떻게 했습니까? 그 사람들을 놓아두고 그 사람들에게 접근하지 않고 조용한 곳, 한적한 곳으로 찾아 가셨습니다.
이 행동 속에서 우리는 주님의 의지를 발견할 수 있는데 주님은 사역을 중요하게 여기시지만 기도로 준비된 만큼만 사역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주님은 사역보다 기도를 더 중요하게 여기셨습니다. 사역의 성취와 열매는 기도를 바탕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주님은 당신의 삶의 모습을 통해 우리들에게 교훈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목회자들은 기도보다 사역을 우선 순위로 둡니다. 이 영적인 일은 하나에서 열까지 하나님께서 허락하셔야 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를 공급받을 수 있는 기도가 먼저 앞서야 한다는 것을 꼭 명심하셔야만 전도도, 교회성장도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몰려 왔는데도 주님은 사역을 먼저 하지 않았습니다. 때로 주님은 영적 충전을 먼저 시도하셨습니다. 그만큼 영적 충전이 우선 되어야 하고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뿐만 아닙니다. 주님은 때로는 수면을 취해야 하는 시간인데도 조용한 곳, 한적한 곳을 찾아 가셨습니다. 기도하러 가셨습니다. 때로는 수면도 필요하고 중요하지만 기도하는 과제가 주어진다면 잠자는 것보다 주님은 기도하는 쪽을 택하셨다는 것입니다. 때로 기도를 수면보다도 더 중요하게 여기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밤기도이고 철야기도입니다. 우리가 기도를 생각할 때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기도야말로 기독교에 아주 감추어진 보배 중의 보배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 제자들에게 기도하도록 부탁을 하셨습니다. 그들이 시험에 들지 않기를 위해서도 기도를 요구하셨지만 주님은 그들의 기도의 도움을 필요로 하셨던 것입니다. 멀지 않아 주님을 다 배반할 그들이었습니다. 주님은 다 알고 계셨습니다. 조금 있다가 부인하고 저주하고 주님을 모른다고 맹세할 그들을 주님은 다 알고 계셨건만 그런 제자들에게도 주님은 무엇을 부탁하셨습니까? “내가 곤고해서 죽겠으니까 기도해 달라”고 부탁하셨던 것입니다(마26:38).
여러분, 기도는 부족한 사람이 해도 보이지 않는 영의 세계에서는 놀라운 영적인 힘의 흐름이 있다는 것을 감지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께서 직접 생활 속에서 이렇게 기도를 많이 강조하셨는데 정작 이 열두 제자들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사건이 닥칠 때 실패하고 다 뿔뿔이 도망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당신의 일이었지만 기도했던 예수님은 승리하셨습니다. IMF상황 속에서 교회를 어려움 없이 잘 이끌어 나가며 오히려 축복의 기회로 만들어 나가려면 우리는 이때야말로 어느 때보다 더 기도해야 되는 때임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낙망치 않아야 할 귀한 진리를 교훈 하셨습니다. 그 비결이 무엇입니까? 바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낙망하게 됩니다. 열두 제자들은 기도하지 않다가 낙망하게 되었습니다. 기도야말로 시련을 극복할 수 있는 좋은 통로가 됩니다. 목회에 적용 하면서 경험하며 목회를 해야 할 줄로 압니다. 대부분의 모든 일들은 거의가 영적인 일입니다. 어두운 영과의 관계입니다. 어두운 영을 이길 수 있는 길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여러분, 사단의 IQ가 얼마쯤 되는지 아십니까? 모하메드 알리의 IQ를 아십니까?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쏜다고 하는 모하메드 알리의 IQ가 97입니다. 존 에프 케네디의 IQ가 얼마쯤 될까요? 미국이 오늘날도 추앙하고 존경하는 케네디의 IQ가 119입니다. 천재 정도 된다면 천재의 IQ가 어느 정도 되어야 천재라고 합니까? 120이상 140정도 되겠지요? 그런데 사단의 IQ가 어느 정도 되는지 알기 위해서 사단에 대한 모든 정보를 컴퓨터에 입력하고 엔터를 치니까 6천이 나왔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 인생들이 사단에게는 두발 벗고 덤벼도 게임이 되지 않습니다. 이길 재간이 없습니다.
이길 수 있는 길이 있다면 하나님의 도움을 받는 길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기도할 때 “내가 시행하리니!” 하셨습니다. 주님이 직접 개입하셔서 도우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니 기도는 교회에서 해야 할 사업 중에 가장 중요한 사업이고 교회에서 해야 할 방법 중에 방법입니다. 하나님이 해결해 주시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봐도 해결될 수 있는 길이 보이지 않을 때 해결될 수 있는 길은 기도를 통해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홍해 앞에 있을 때 모세가 무엇을 했습니까? 다른 것 하지 않았습니다. 바로 기도했습니다. 길이 보이지 않을 때 기도하면 길이 나타납니다. 길이 주어집니다. 나아갈 길, 살 길이 열립니다. 해결의 길들이 열립니다.
여러분,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최대의 좋은 길을 제시해 주셨건만 우리는 이 길을 붙잡지 않습니다. 내가 하는 것이 더 안전할 것 같으니까 그렇습니다.
한번은 제 선친이 섬기셨던 교회의 장로님을 뵙게 되었습니다. 이분은 대학교수 생활을 하신 분이고 좋은 가문에 많은 자녀를 두신 분이었습니다. 이분이 모든 공직에서 물러나시고 시간이 있어서 저에게 찾아오셨는데 무슨 말씀을 하시는가 하면 “당신 아버니께서 강단에서 그토록 기도에 대한 설교를 많이 하시고 그토록 기도를 많이 하시는 모습을 보고 왜 저렇게 하시는가?” 하고 처음에는 동의를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저희 선친이 기도를 얼마나 많이 하셨는가 하면 예전에 기도원이 없을 때, 삼각산 기도원이 고작일 때 굴을 파놓고 앞을 가마니로 막아 놓고 그 안에 들어가서 기도를 하셨습니다. 한여름에 기도하시러 굴에 들어가신 선친을 뵈러 가면 기도굴에서 나오시지를 않습니다. 저물도록 기다리면 나중에 나오셔서 맨 먼저 무엇을 하시냐면 옷을 텁니다. 무엇을 터는가 하면 하도 음습한 굴에서 오래도록 기도를 하시다 보면 옷에 곰팡이가 피기 때문에 곰팡이를 텁니다. 곰팡이가 필 정도로 기도해 보신 적 있습니까? 저도 이해를 못 했습니다. 선친이 금식기도 들어가시면 저희는 밥을 한 끼씩 강제로 공출을 당했습니다. 세 끼 다 찾아 먹기도 힘드니 내 인생이 참 불쌍하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습니다.
여러분이 아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서울에 아현성결교회라고 있습니다. 아현교회를 제 선친이 목회하시면서 지으셨습니다. 날마다 자고 일어나 교회에 가서 기도하고 오지 않으면 아침밥을 안 줬습니다. 그러니까, 목구멍이 살아야 되니까 할 수 없이 기도가 뭔지도 모르고 억지로 그냥 갔다오곤 했습니다. 영 가기가 싫고 꾀가 나면 시간을 재어서 이 정도면 속을 정도다 싶어 도중에 길거리에서 자다가 들어가기도 했습니다.
억지로 기도훈련을 받으면서 자랐는데 그때는 그것을 몰랐습니다. 그런데 저희 선친이 섬기셨던 교회 장로님이 이런 말을 하십니다. 그 시간에 차라리 뛰고 땀 흘리고 노력하고 비즈니스하고 오히려 로비하는 것이 더 나을 것으로 생각하고 그렇게 살아왔는데 끝내는 우리 집이 잘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도하면 잘 되는 일이 주어집니다. 기도하면 참 놀라운 일들이 생깁니다. 제가 목회를 하면서 몸을 너무 무리하게 사용해서 상체와 하체 연결부분 골반이 금이 가버렸습니다. 불구자가 되었습니다 병원에 가서 보니까 너무나 기가 막히고 앞이 캄캄했습니다. 도저히 치료가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약도, 의사도 어떤 길도 없습니다. 1982년 초였는데 그 당시 저에게 미국 비자가 있어서 미국에 가서 치료를 받으면 되겠느냐 했더니 미국에 가도 불가능하다고 했습니다. 지금도 불가능한 일입니다. 목회를 하려니 기가 막혔습니다. 설교를 할 때는 기적과 연관된 부분은 다 빼야 했습니다. “야, 너나 절뚝거리지 말고 똑바로 걸어라.” 그럴 것 같았습니다. 이 부분 말씀 빼고 저 부분 말씀 빼니까 다 빼야 됩니다. 예수님이 우리 구세주라는 것도 빼야 됩니다. 그것도 기적이니까요. 예수님을 믿는 것도 빼야 됩니다. 예수님 영접하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로 성령의 역사로 되어지는 것이니까 말입니다. 성경을 건드릴 부분이 없게 되었고 목회를 그만두어야 할 상황에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은혜를 받게 되었는데 QT하는 가운데 말씀에서 은혜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이 역사해 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주어졌습니다. 하나님의 성령님을 통해서 은혜로 말입니다. 그 날 심야 기도회 때였습니다. 열심히 기도하고 찬송하고 기도하고 찬송하고 하는 가운데 하늘에서 불이 떨어지는 겁니다. 불덩어리가 머리를 통해서 척추를 타고 내려가더니 금이 간 부분에서 멈추는 겁니다. 그리고 난 후부터는 제게서 통증이 사라지고 다시 걷게 되었습니다! 기도하면 놀라운 일이 생깁니다. 상상 못할 일이 생깁니다. 과학이 포기한 것도 기도하면 가능하게 됩니다. 이성을 초월한 하나님의 역사가 바로 이 기도의 채널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기도를 붙잡으면 낙망하지 않게 됩니다.
어떤 교회에 여자 청년이 있었는데 너무 못생겼습니다. 교회들마다 보면 못생긴 청년들은 열심히 교회도 잘 다니고 기도를 많이 하지 않습니까? 인물이 좀 나은 청년들은 거울에서 자기 인물을 보고 은혜를 받으니까 기도를 잘 안 합니다. 그래서 중매를 하려고 하면 “신앙은 괜찮은데 인물이 …”합니다. 이 못생긴 여자 청년의 나이는 서른이 넘어가고 주변의 인물 좋은 청년들은 다들 시집 잘 가서 잘사는데 이 청년은 길이 열리지가 않았습니다. 그런데 기도 많이 하는 이 자매에게 정말 놀라운 일이 생겼습니다.
그 교회의 여자 청년들이 가장 흠모하고 믿음 좋고 장래도 가장 든든한게 준비되어 있는 젊은 남자 청년이 이 피카소 그림 같은 자매에게 완전히 반한 겁니다. 그래서 프로포즈를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뒤집어지는 일이 생겼습니다. 이 자매가 그 멋진 청년의 프로포즈를 정중하게 거절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 청년이 신앙이 좋아 끝까지 기도하면서 기다리니 드디어 결혼에 골인하게 되었습니다.
기도하면 죽이는 일이 생기고 기도하면 뒤집어지는 일이 생깁니다. 낙망이 문제가 아닙니다. 내가 하나님께 매달려 기도하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문제는 우리 자신입니다. 우리도 우리 자신을 믿기 때문에 기도를 안 합니다.
제가 신길교회에 부임을 했더니 아주 큰 회사의 중요한 위치에 있는 한 장로님이 식사대접을 하면서 정중하게 뭐라고 부탁을 하는가 하면 ‘과거에 목사님이 늘상 쭈그리고 앉아 기도만 했는데 그런다고 해서 땅에서 뭐가 솟아나기를 하느냐, 차라리 그 시간에 땀을 흘리고 일을 하는 게 낫지. 목사님은 젊은 목사님이시니까 그 목사님처럼 그렇게 하지 말고 열심히 뛰고 노력하는 목사님이 되기 바란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똑똑한 사람은 자기 자신을 믿으니까 기도를 무시합니다. 하나님이 열어 놓은 길인데 그 길을 무시합니다. 그런데 영적인 일을 하나에서 열까지 기도 없이는 되지 않습니다. 영혼 건져내는 일, 전도하는 일 그것은 기도 없이는 되지 않습니다.
저는 직접 전도를 하는 편입니다. 우리 나라에 5만 교회 가운데 우리 교회가 20대 교회 안에 들어간다고 합니다. 그래도 저는 열심히 전도합니다. 우리 교회는 매주 수요일마다 아예 다른 일은 하지 못하게 하고 전도를 내보냅니다. 저도 최선을 다해서 여건이 되면 전도를 나갑니다. 전도를 하면 그것이 나를 얼마나 뜨겁게 만들고 감격하게 하고 얼마나 황홀하게 하는지 모릅니다.
제가 부임해서 전도를 하기는 해야겠는데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아는 사람이라고는 신자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기도하면 하나님이 알려주십니다. 전도는 하나님이 예비하신 자를 붙여 주시는 것이기 때문에 기도 없이는 주님이 예비한 자를 만날 수가 없습니다. 전도는 기도로부터 출발합니다. 아무리 예수 그리스도라는 해답을 가지고 있어도 기도하지 않으면 전도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간절히 저녁마다 교회에 나가서 기도하기를 “주님이 예비한자를 좀 만나게 해 주십시오. 저는 이 동네에 처음 와서 도대체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라고 했는데 주님께서 아이디어를 떠올려 주시는데 “너는 왜 전도할 사람을 못 찾아서 그러느냐” 안 믿는 사람은 아는 사람이 없다고? 한 달에 두 번씩 가는 이발소 주인 그 사람 안 믿지 않느냐?“라고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기도로 열심히 준비를 하고 이발소를 찾아 갔습니다. 그런데 전도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이발소에서 남자들 사이에서 주로 어떤 이야기가 오고갑니까?
정치 얘기, 이놈도 죽일 놈, 저놈도 죽일 놈, 온통 죽임 놈 그러는데 은혜에 대한 얘기를 할 기회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날은 전도를 하지 못하고 그냥 왔습니다. 그래서 다음에 또 갔습니다. 두 번 실패를 하고 돌아와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주님께서 그 사람을 예비하신 것 같아서 갔는데 매번 기회가 주어지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했더니 하나님께서 “야, 이 답답한 놈아, 이발소 문 닫는 시간에 찾아가면 되지 않느냐?”하고 다시 아이디어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마무리하는 시간에 찾아갔습니다. 한 달에 두 번씩 이발하는 손님이라 무시할 수 없습니다. 머리를 깎으면서 바로 정치 얘기가 나옵니다. 저는 영적으로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정치가 왜 그런 줄 아십니까? 그것은 어두운 영이 다 배후에서 장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죄 때문입니다.”그랬더니 그 사람이 하는 얘기가 “목사님, 저도 어렸을 때부터 교회를 다녔고요 청년회 회장까지 했습니다. 형님은 기도원을 하시고 어머님은 권사이시고 아내는 집사이고 아이들도 다 교회에 나가고 있는데 나만 안 나가고 있습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마침 잘 됐다 싶어서 “당신만 안 나간다고 그랬는데 왜 그런 줄 아십니까? 당신이 아무리 이발소가 바빠도 화장실도 안 가고 밥도 안 먹습니까? 청년회 회장도 하고 했지만 당신은 한 번도 예수 그리스도를 심령 속에 정말 정중하게 모셔들인 사건이 없었기 때문입니다”라고 했더니 그 사람 얼굴이 벌개지는 것입니다. 바로 인정을 하는 표시입니다. 그리고 나서 복음을 그 자리에서 전했고 그 사람은 주님을 영접하는 영접 기도를 했습니다. 그 이후 그 사람은 한 번도 빠지지 않고 교회를 열심히 나오고 있습니다. 막무가내로 이발 요금을 받지 않기 때문에 덕분에 저는 엊그제 공짜로 이발을 하고 왔습니다.
전도를 하고 나니까 제 마음이 날아갈 것 같았습니다. 설교에도 얼마나 힘이 주어지는지 모릅니다. 전도는 기도로 시작되는 것입니다. 어두운 세력에 빼앗겨 있는 그 영혼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다시 빼앗아 오는 일인데 어떻게 기도 없이 빼앗을 수가 있겠습니까? 전도와 하나님의 말씀이, 심령 속에 꽂히고 심령을 변화시키는 운동력 있는 역사는 모두 기도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기도 없이 목회하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런 목회는 한 기간만큼 헛수고의 연속이 될 것입니다.
그저 일 년 중에 52주 적당하게 기도 레퍼토리를 집어넣어서 사용할 정도의 기도가 아니라 기도의 눈이 열려야 합니다. 율법적으로 꼭 하지 않아도 되지만 적어도 목회자는 하루에 두 시간 이상 정도는 해야 하지 않겠는가 생각합니다. 저는 우리 교인들에게나 교역자들에게 강요는 많이 하지 않습니다만 기도 시간에 늦게라도 와서 하루에 적어도 두 시간은 하라고 합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깨어 기도하지 않는 것을 책망하시면서 뭐라고 하셨습니까? “너희가 한 시를 깨어 기도할 수 없더냐?” 여기에서 한 시는 한 시간입니다. 기도의 최소단위를 한 시간으로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목회자들은 더 해야 합니다.
기도는 어떤 사람이 하냐면 기도하면 응답받는다는 것을 맏는 사람이 기도를 합니다. 이것을 안 믿으니까 기도를 못 하는 것입니다.
어느 목사님이 교회를 개척하고 불과 얼마 안 되어서 골치 아픈 일이 생겼습니다. 교회 바로 앞에 술집이 생긴 것입니다. 교회에서 부흥회를 하는데 교회 앞의 술집에서 마귀 부흥회 소리가 더 큽니다. 교회 오려고 하는 신자들을 자꾸만 술집으로 끌어당기니 목회하는 데 방해가 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목사님과 성도들이 저 술집이 불이 나든지 망해서 다른 데로 이사를 가든지 하게 해달라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불과 그 기도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돼서 무슨 일이 생겼는지 아십니까? 그 술집에 정말 불이 나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끝난 것이 아니라 그 술집 주인이 목사님을 고발한 것입니다. 목사님이 법정에 피고로 서게 되었습니다. 법정에서 재판관이 물었습니다. “피고가 정말 기도해서 술집에 불이 났는가?” 그랬더니 이 피고 목사님은 “요즘 21세기로 들어가는 이 대명천지 밝은 날에 기도한다고 멀쩡한 집에 불이 납니까?”하고 대답하더랍니다. 누구 믿음이 더 좋은 것 입니까? 술집 주인의 믿음이 더 좋습니다.
여러분, 왜 우리가 기도를 안 하는지 아십니까?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기도하면 어떤 역사가 이루어지는지 우리가 인정을 하지 않기 때문에 기도하지 않는 것입니다.
목회자들은 환자를 위해 병원에 심방을 갑니다. 호흡이 거친 환자를 위해 하나님께 간절히 살려달라고 기도하고는 곧 침이 마르기도 전에 엘리베이터를 타면서 “암만 해도 안 되겠지?”합니다. 목회자들의 믿음이 이 정도입니다.
믿음 없이는 주님이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셨는데 그 정도이니 주님이 역사하실래도 역사하실 수가 없는 겁니다. 우리 목회자들이 먼저 기도에 대한 절대성, 이 부분에 대한 정리가 서야 기도할 수 있게 됩니다.
주님은 기도를 명령하셨습니다. “구하라!”는 명령입니다. 선택이 아닙니다. 명령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면 다 구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목회자들은 자기 혼자 기도하는 것으로 만족하면 안 됩니다. 전 교회를 기도할 수 있는 교회, 전 교인을 기도하는 교인으로 만들어야 하는 사명이 목회자에게 있습니다.
저는 기도를 잘 하지 않는 교회에 부임해서 어떻게 하면 기도하는 교회로 만들 수 있는가 하고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와서 보니까 연세 드신 권사님들도 기도하지 않습니다. 기도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적응할 수가 없어서 다 쫓겨 나가고 그랬답니다. 조용한 한국의 전통적인 교회의 모습을 가지고 있는데 예배송이나 가스펠송도 못 부릅니다. 음대 교수들이 포진되어 있어서 천박한 노래를 부르면 찬양의 질을 떨어뜨린다고 얼마나 제약 조건이 많은지 모릅니다.
일단 몇 사람을 포섭해서 기도팀을 만들고 기도운동을 먼저 벌였습니다. 점차 사람들이 거기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 다음에 주일날 대예배를 빼놓고는 모든 공예배 후에 5분 정도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랬더니 얼마나 많은 공격이 빗발쳤는지 모릅니다. “꼭 소리를 내야지 하나님이 들으시느냐? 하나님은 귀가 먹었느냐? 시끄럽고 요란해서 여기에 못 있겠다”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떨어져 나가기도 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를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떨어져 나가도 좋다. 기도하는 사람 한 사람이 들어오면 오히려 그 사람이 더 많은 사람을 데려 올 수 있다”하고 생각했습니다. 전략을 달리했고 실제로 하나님께서 적중시켜 주셨습니다.
예배 후에 5분 기도하던 것이 요즘에는 20분, 30분, 어떤 분은 한 시간도 기도합니다. 2년 전부터는 부교역자들 중 남자들이 앞에 죽 나와서 마이크를 잡고 부르짖으며 기도하면 전교인들이 부르짖어 기도하는데 교회가 기도원보다 더합니다. 기도원보다 더한 기도하는 처소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교회는 만민이 뭐 하는 곳이라고 했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만민’하면 어디를 생각합니까? 기도원입니다. 기도원보다 더 기도해야 할 장소가 바로 교회라는 것을 깨달으시기를 바랍니다. 교회가 정작 기도하는 집입니다.
이렇게 하다 보니까 교회에 점차 기도의 열기가 붙었습니다. 그 다음에는 기도를 통해서 교회에서 일체 부정적인 얘기는 하지 못하게 하고 긍정적인 얘기만 하게 했습니다. 부정적인 얘깃거리가 있으면 기도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성장하려면 불평 불만하는 사람이 입만 다물어 줘도 성장할 수 있고 어떤 사역도 추진력을 발휘하면서 감당할 수가 있습니다. 교회는 절대 평안구조를 만들어야 합니다. 문제의 소지가 있는 것들에 대해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부흥이 잘 되지 않습니다. 부흥되는 교회마다 다 은혜롭고 평안구조가 되어 있습니다.
평안구조가 얼마나 중요한지 아십니까? 비행기의 앞날개를 아래로 해서 활주로를 향해 죽 달리다가 보면 그 무거운 동체 무게보다 양력의 무게가 더 커지게 되고 그때야 비행기가 이륙을 하게 됩니다. 구조가 안 되면 절대 이륙이 안 됩니다.
요즈음에 우리 나라에서 구조조정이란 말을 많이 합니다. 구조가 조정이 안 되면 망하게 되어 있으니까 구조조정이라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부흥도 마찬가지고 전도도 마찬가지입니다. 구조적으로 잠재워야 할 것은 잠재워야 합니다.
그런데 교회 부흥의 구조는 절대 평안의 구조입니다. 제가 이 내용을 가지고 이번에 미국 세계한인목회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세미나를 할 때 “평안구조를 통한 교회 성장”이라는 타이틀로 발표를 했습니다. 그 평안구조를 안정화시켜 가는 가운데 한 가지 좋은 방법이 무엇이냐 하면 기도를 통해서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저희는 기도를 통해 이 평안구조를 만들어 가는데 절대 부정적인 말을 하지 않도록 합니다. 부정적인 생각이 떠오르면 얘기하지 말고 무조건 기도하라고 합니다. 기도하면 응답된다는 것을 믿으면 기도하라고 해야 합니다. 성도들이건 목회자들이건 안 좋은 얘기에 대한 것은 무조건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교회에서 부정적인 것, 비판적인 얘기들이 많이 잠재워지는 것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이것을 조금 더 보강을 했는데 담임목사만을 위한 중보기도팀을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357명 정도가 담임목사만을 위한 중보기도팀원이 되었습니다. 이런 팀들을 만들어서 운영을 하니까 누가 담임목사만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인지를 모릅니다. 입을 잘못 사용해서 담임목사 험담한 얘기가 즉각 들어갈 수 있으니까 모두가 조심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중보기도팀을 만든다면 여러분 교회에도 굉장한 유익을 줄 것입니다. 그런데 중보기도팀은 부흥회나 어떤 영적인 특별한 계기가 주어졌을 때 중보기도의 필요성을 깨닫게 해주고 기본적인 양식을 만들어 지원을 받게 되면 굉장히 많이 참여합니다. 아무때나 아무렇게나 하면 안됩니다. 은혜 많이 받고 사명도 생기고 마음의 평안도 있을 때에 지원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야 합니다.
이 중보기도팀이 잘되면 나중에는 무엇을 할 수 있게 되는가 하면 여러분의 설교를 할 때 밀실 기도팀을 또 만드는 것입니다. 저희는 지금 이 밀실 기도팀을 만들어서 운영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설교할 때 그 시간에 맞추어서 다른 방에 들어가서 설교만을 위한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밀실기도팀과 중보기도팀을 만들고 난 후 교회가 급격히 부흥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분들이 담임목사를 위해 헌신을 많이 하기 때문에 여러분이 관리도 특별히 해야 합니다. 매주 수요일 예배를 마치고 난 후 그 중보기도팀은 따로 모여서 저를 위해서 기도를 하는데 그 자리에 한 달에 두어 번은 찾아가서 메시지를 전해 주시거나 아니면 힘껏 축복기도를 해주십니다.
이분들은 담임목사에게 특별한 사랑을 받는 굉장한 기쁨과 담임목사를 위해 기도하는 사명감도 더욱 갖게 되어서 담임목사가 나중에 소신껏 일할 수 있는 울타리 역할을 해주게 됩니다. 혹시 누가 부정적인 얘기를 하더라도 이분들이 “그런 소리하지 마. 기도해”하시면 부정적인 말을 못하게 해줍니다.
그런 분위기가 만들어지면 자연적으로 담임목사가 구심점이 되어 구심력을 발휘하게 됩니다. 저 같은 경우는 원로목사님이 건강도 좋으시고 예배 시간에는 한 시간 전부터 기도하고 계시니까 담임목사가 구심점이 되어서 구심력을 발휘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인데 기도훈련을 시키니까 그 일이 잘 되었습니다. 원로목사님은 원로목사님대로 최선을 다해서 최고 예우를 해드립니다. 원로 목사님이 오히려 교회 성장에 장애요인이 될 수 있는데 잘만 하면 오히려 그분의 사랑을 받을 수 있게 됩니다.
기도운동을 열심히 해나가다 보니까 하나님께서 또 좋은 아이디어를 주셨습니다. 기도 흐름이라는 것은 항상 상향선을 긋는 것이 아니고 포물선을 그립니다. “아, 내려가는 것을 줄이고 내려갔다가 올라오는 빈도수를 줄이기 위해서 대책을 세워야 되겠구나”하는 영감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기도훈련을 집중적으로 시키기 위해서 저희는 매월 초나 매월 말에 기도 부흥회를 합니다. 기도 부흥회 때 강사로는 기도에 대한 책을 쓰신 좋은 분들이나 집회 때에 특별히 기도에 대한 말씀으로 은혜를 끼치는 분들을 모십니다. 그래서 기도가 쇠해질 만할 때 기도 부흥회를 해서 다시 세워 주는 것을 계속 반복하다 보니 요즘에는 채 5분도 기도를 못 하시던 분들이 한 시간 이상을 합니다. 처음에는 기도 부흥회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나라에서는 부흥회라고 하면 일 년에 한 번 내지 두 번 하는 것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이것을 말을 살짝 바꾸어서 매월 기도집중훈련이라고 해서 저녁에만 하는 것으로 하니까 부담을 갖지 않습니다. 사흘 정도 저녁에만 하는 것입니다.
기도에 대한 불이 서서히 붙자 이제는 어느 족으로 방향을 바꾸었는가하면 전도 쪽으로 방향을 바꾸어서 강사를 섭외하기 시작했습니다. 왜냐하면 기도의 궁극적인 목적은 전도이기 때문입니다. 기도를 자꾸 하다 보면 성령 세례를 받고 은사를 받는 사람이 늘어납니다. 그렇게 되다 보니까 전도쪽으로 방향을 바꾸기가 아주 용이해집니다. 그런 상태가 되기 때문에 전도훈련도 좋게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래서 결국 부흥회 명칭을 “기도 전도 부흥회”라고 해서 저녁에는 기도 전도 부흥회를 하고 낮에는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전도하고 돌아와서는 보고를 하도록 했습니다. 여기에서 보고를 하게 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렇게 하다 보니까 전에는 한 주에 몇 명도 등록을 안 했는데 이제는 한 주에 몇 십 명씩 등록을 합니다. 여러분, 이런 일들은 어느 교회에서든지 쉽게 할 수 있는 일들입니다.
저희 교회처럼 역사가 오래 된 교회에서 새벽기도에 승부를 건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너무 멀리 이사 가신 분들이 많아서 새벽기도가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매일 한 번 교회 들르기”운동을 벌였습니다. D-day를 설정해 놓고 동기 부여를 한 다음 한 번 교회에 와서 기도하고 가는 운동을 벌였는데 출퇴근하면서 낮에 교회에 들른 사람이 천 명이 넘었습니다. 그렇게 되니까 교회에 대한 사랑과 교역자에 대한 사랑을 가지게 되고 기도 많이 하면 결국 그것이 전도로 연결되니까 기도 많이 시켜서 손해 볼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 운동을 벌일 때 출석 체크하는 카드를 사용했기 때문에 출석상황을 다 알 수 있었는데 80%이상이 출석을 했습니다. 그래서 사업하시는 장로님들의 비싸고 좋은 회사 제품을 상으로 주었습니다.
그 다음으로 저희 교회는 다른 교회에서 하지 않는 독특한 기도 방법을 사용하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세 이레 영시 기도회”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전 교인을 다 참여시키는 기도가 아닙니다. 이 방법은 교인들 가운데서 남에게 정말 말 못할 사연이 있고 불면증에 시달릴 정도로 심각한 고통 가운데 있는 분들에 한해서만 가족의 동의하에 교회로 나오도록 하는 것입니다.
어차피 잠도 못 이루니까 그 시간에 교회에 나와서 기도를 하게 했는데 분명히 가족의 동의하에 그렇게 하도록 했습니다. 저는 30명 정도 나올 것으로 예측을 했습니다. 그런데 무려 첫날 149명이나 나왔습니다. “세이레 영시 기도회”는 밤 12시에서 새벽 4시까지 기도하는 것인데 목회자들도 하기 힘든 것입니다.
이 시간에 집중적으로 기도할 수 있도록 했던 근거 있는 메시지는 무엇이었는가 하면 불의한 재판관에게 가서 한 과부가 밤낮으로 간청했을 때 “밤낮 부르짖는 자에게 내가 속히 응답하지 않겠느냐?”(눅 18:7)하신 그 말씀을 붙잡고 낮에도 기도할 수 있도록 했고 밤 12시부터 4시까지 집중적으로 사생결단하고 기도하도록 했던 것입니다.
삼 주 동안을 그렇게 했는데 참여하는 사람이 힘들 것 같습니까? 주변에서 지켜보는 사람이 힘들 것 같습니까? 저 같은 경우는 그 기간 동안 잠은 잠대로 못 자면서 해야 할 일은 여전히 했으나 오히려 밤새 기도하지 않는 사람보다 더 힘이 펄펄 나니까 다들 놀라는 것이었습니다.
일 년 내내 하는 것도 아니고 또 성도들은 고통과 괴로움에 시달리고 있는데 목회자가 되어서 두 따리 쭉 뻗고 잠을 잘 수가 있습니까? 성도들과 함께 부르짖으며 기도해 주면 그때 성도들은 목회자의 사랑을 뜨겁게 느낍니다. 교역자는 교인을 사랑하고 교인은 교역자를 사랑하는 평안구조가 안 되면 교회는 부흥될 수가 없습니다. 삼 주 동안 “세 이레 영시 기도회”를 하면서 점점 소문이 나자 교회에 매일 5백 명이 넘는 사람들이 이 구석 저 구석에서 부르짖으며 기도하는데 기도원은 저리로 가라입니다.
그래서 제가 깨달은 것이 교회는 기도원보다 더한 ‘기도원화’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를 기도원화시키면 성도들이 기도원을 좇아다니지 않습니다.
이것을 운영해 나갈 때 목회자가 도와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새벽 2시 정도에는 졸음 때문에 기도 소리가 작아지고 흐려집니다. 그때는 목회자가 마이크를 잡고 부르짖으며 기도해야 합니다. 절박한 사람에게는 부르짖는 기도가 최고입니다. 부르짖어 기도할 때 놀라운 일들이 생깁니다. 부르짖는 기도를 하면 기도에 집중할 수 있고 기로를 방해하는 요인들이 사라지고 상상 못할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성도들이 계속 기도할 수 있도록 목회자들이 함께 돕는데 또한 분명히 기도 제목을 써서 기도하도록 합니다. 사람의 기억력은 한계가 있습니다. 사람들인 왜 기도제목을 쓰지 않고 기도하는지 아십니까? 기도해서 응답 안 되어도 좋고 되어도 좋고, 기도하다가 기억을 못 해서 기도 안 해도 좋고 해서 좋다 하는 사람들은 제목을 쓰지 않고 기도하는 사람들입니다.
반드시 기도제목을 기록해서 기도하도록 합니다. 또한 이것은 긴 기도를 할 수 있게 해줍니다. 기도의 양이 중요하지 않다고 하는데 그러지 않습니다. 근거가 되는 성경 구절들이 여러 번 나옵니다.
마지막 날에는 조금 특별한 순서를 가집니다. 힘 있게 충분히 기도할 수 있도록 한 다음 메시지를 주고 나서 응답받은 기도를 기록하게 하고 간증을 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삼 주 동안에 기도해서 응답받은 사건들이 엄청나게 많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성도들은 다음에 있을 “세이레 영시 기도회”를 기다립니다.
그 다음으로는 금식기도 릴레리와 일천 번제 제물을 드리면서 기도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일천 번제 기도는 특별히 금방 응답받는 역사가 많이 일어납니다.
이것을 하니까 성도들이 굉장히 강인해지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앞으로 세속화가 물밀 듯 들어오면 이겨낼 재간이 없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을 강하게 훈련시킬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강한 훈련을 받은 교인, 강한 훈련을 받은 목회자, 강한 훈련을 받은 선교사는 다릅니다. IMF상황 속에서 재정이 줄어들고 교인수가 떨어진다고들 하지만 성도들을 강하게 훈련을 시키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강인해야 세속화를 이겨낼 수 있습니다. 강인하게 훈련시키지 않으면 앞으로 남을 교인들이 별로 없게 됩니다. 저희 교회는 낮이건 밤이건 계속 교인들이 나와서 항상 붐빕니다. 그렇게 매일 교인들이 우글거리니까 교인들이 교회가 생기 있고 젊어지고 살아 있는 것이 느껴진다면서 굉장히 좋아합니다. 성도들을 강하게 훈련시키되 무리 없이 훈련시킬 수 있는 것이 기도훈련입니다.
모든 것은 다 영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도 없이는 안 됩니다. 제가 보기에는 기도는 방법 중의 방법이고 사업 중의 사업입니다.
꼭 새벽기도를 주장할 필요는 없습니다. 어떤 방법으로든 전 교인이 기도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할 책임이 우리 교역자들에게 있습니다. 기도에 대한 명령은 교역자들에게만 주신 것이 아니라 전 교인들과 하나님의 모든 백성들에게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겸손히 하나님을 의지해서 하나님의 방법으로 살고 하나님의 방법으로 목회하는 가운데 목회의 현장에 하나님이 주시는 풍요함이 기도의 채널을 통해서 많이 공급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