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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을 듣고 지키는 사람들 (누가복음 11:24~28)
오늘 본문 첫 절 바로 앞에 있는 23절에 보면 "나와 함께 하지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귀신들을 쫓아내시자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을 바알세불 즉 귀신의 왕 혹은 마귀를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자라고 몰아세운 적이 있습니다(눅11:15).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말이 거짓이고 논리적으로 모순임을 지적하시며 그들을 공박하시고 자신을 오히려 바알세불을 굴복시키시고 무장해제하시는 더 강한 이로서 그와 대립하는 위치에 세우셨습니다(눅11:17-22). 그리고 하신 말씀이 바로 23절의 말씀입니다.
"나와 함께 하지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 하신 것은 마귀의 세력과 이를 물리치시는 예수님 사이에서 중립적인 위치는 없다는 말씀입니다. "나는 예수님편도 아니고 그렇다고 마귀편도 아니다"라는 말은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마귀의 권세에 맞서 싸우지 않는 자는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 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거역하고 사탄에 협력하는 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며 따름으로써 하나님나라의 백성을 모으는 그리스도의 구원사역에 합력하지 않으면 곧 하나님나라 백성을 흩어지게 하여 하나님나라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려는 마귀의 역사에 동참하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 24-26절은 예수님께서 23절 말씀의 의미를 다시 비유적으로 설명하신 것입니다. 즉 어떤 사람에게서 쫓겨 나간 더러운 귀신이 자기가 거할 만한 곳을 찾아다니다가 찾지 못하면 스스로에게 말하기를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는 와서 보고, 그 집이 깨끗이 청소되고 수리되기는 했는데 거기 들어와 사는 사람이 아무도 없으면 자기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와 살게 될 것이며, 그렇게 되면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 나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의 요점이 무엇입니까? 사람의 마음은 중립지대로 머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그리스도께서 거하시지 않으면 사탄이 차지하게 되는 것이지 그냥 비어있을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을 향해 마음을 열지 않으면 더러운 귀신을 다시 불러들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때에는 한 귀신이 아니라 일곱 귀신 즉 온갖 귀신이 함께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과 삶의 상태는 전보다 더 악화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논리적으로 대단히 설득력 있고 적대자들의 주장을 단숨에 무너뜨리는 파괴력이 큰 말씀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듣고 감동 받은 한 여인이 무리 중에서 소리쳤습니다: "당신을 밴 태와 당신을 먹인 젖이 복이 있나이다." 쉬운 말로 하면 "뉘 집 아들이신지 참 훌륭하십니다. 선생님의 어머님은 얼마나 행복하시겠습니까?" 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 여인이 소리친 그 말까지도 당신께서 하고자 하시는 말씀을 계속하실 기회와 도구로 사용하셨습니다. 그래서 하신 말씀이 28절 말씀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
이 말씀 자체의 의미는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복 받은 사람이라는 것은 단지 예수님을 낳으셨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라 그녀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따랐다는 사실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의 탄생 전에 있었던 일들을 생각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천사 가브리엘이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 사는 다윗의 자손 요셉의 약혼녀인 마리아에게 찾아와 말하기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했습니다. 깜짝 놀란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기를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하자 천사가 대답했습니다: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 보라 네 친족 엘리사벳도 늙어서 아들을 배었느니라. 본래 임신하지 못한다고 알려진 이가 이미 여섯 달이 되었나니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 그러자 마리아는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라고 그 말씀을 받아들였던 것입니다(눅1:26-38). 상식적으로는 믿을 수 없는 말씀을 듣고 믿었을 뿐 아니라 처녀의 몸으로 아이를 가질 때에 그녀의 약혼자와 양가의 가족들과 주위사람들로부터 오해와 의심의 눈길과 비난과 냉대를 받을지 모르는 위험에도 불구하고 자기의 몸을 사용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받들기로 결심했던 것입니다. 그 후 마리아가 엘리사벳을 만나러 갔을 때에 엘리사벳은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눅1:41) 마리아를 보고 큰 소리로 말하기를 "주께서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고 믿은 그 여자에게 복이 있도다"(눅1:45) 했다고 누가복음의 저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마리아의 복됨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한 데에 있음을 강조하신 예수님의 의도가 무엇인가를 본문 전체와의 관계 속에서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본문 27절은 "이 말씀을 하실 때에"라는 말로 시작됩니다. 이것은 27-28절이 그 앞의 말씀과 긴밀히 연결됨을 말하는 것입니다. 앞선 23-26절 말씀의 요점이 무엇이었습니까? 마귀의 세력과 이를 물리치시는 예수님 사이에서 중립적인 위치는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마귀의 권세에 맞서 싸우지 않는 자는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지 않는 자이며 결과적으로 마귀의 역사에 동참하는 일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사람의 마음은 중립지대로 머물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그리스도께서 거하시지 않으면 마귀가 차지하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성령을 향해 마음을 열지 않으면 더러운 귀신을 다시 불러들이게 되며 그 때에는 한 귀신이 아니라 온갖 귀신이 함께 들어와 우리의 마음과 삶의 상태가 전보다 더 악화되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하는 것이 우리 마음을 마귀의 권세가 다시 차지하지 못하게 하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언제나 거하시게 할 수 있는 길인가 하는 문제가 남는 것입니다. 그 답을 예수님께서는 28절의 말씀을 통해서 주신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 하신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듣고 알기만 할 뿐 아니라 그대로 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아는 것은 우리의 마음을 청소하고 수리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청소되고 수리된 마음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행하는 삶으로 채워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행하는 것이 우리의 마음을 차지하려는 마귀의 공격로부터 우리를 지켜내는 힘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행하는 것이 하나님나라 백성의 모임으로 나아가는 길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삶이 날마다 더 좋아지는 행복의 길입니다. 말씀을 듣기만 하고 지키지는 않는 삶은 깨끗이 청소하고 수리한 후에 다시 더 더럽고 더욱 악한 귀신들이 들어와 우리를 다스리게 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말씀을 듣기만 하고 지키지는 않는 삶은 결국 마귀의 편에 넘어가고 말 삶입니다. 중립지대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만 하는 것으로는 하나님 편에 설 수 없습니다. 차라리 하나님의 말씀을 모르는 것이 낫습니다. 알고도 행하지 않으면 더 상황이 나쁠 것이라 했습니다. 실제로 보면 예수 그리스도를 전혀 몰랐던 사람들이 더 잘 믿을 수 있습니다. 어려서부터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을 가졌으면서도 말씀 따라 살지 않아온 사람들은 더 뺀질뺀질해서 돌려세우기가 힘듭니다. 주님의 가르침을 아는 사람들이 더 주님의 말씀대로 행하지 않는 것을 종종 봅니다. 예를 들면 네 형제를 용서하고 네 이웃을 사랑하며 아무도 미워하지 말라고 하는 가르침을 일찍부터 알면서도 행하지 않는 사람들은 집사가 되고 권사가 되고 장로가 되고 목사가 되도 그 말씀대로 행하지 못합니다. 부끄러운 말씀이지만 개인적으로 "누구누구는 내가 절대로 용서 못해"라는 말을 제일 많이 들은 것이 목사들에게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네 형제를 용서하기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하라"고 가르치셨는데 시기하고 질투하고 미워하고 욕하고 다니며 일러바치고 절대로 용서하지 않고 복수하고야 말겠다고 이를 갈며 파당 만들고 자기 파당에 들지 않으면 왕따 만들고 못살게 구는 행태를 일삼으며, 그러지들 말라고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으로 권면해도 눈곱만치도 변화의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것은 하나님나라 백성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이것이야말로 "나와 함께 하지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 하신 예수님의 말씀대로 예수님과 함께하지 않는 일입니다. 예수님을 반대하는 일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모으지 않는 일입니다. 주님께서 열심히 모으시는 백성을 헤치는 일입니다. 사람들이 시험 들어서 교회를 떠나게 만드는 일입니다. 마귀의 편에 서서 하나님의 나라를 파괴하려는 일을 거드는 일입니다. 우리 중 누구도 그런 일을 하는 자가 없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주의 말씀을 듣고 행함의 중요성을 여러 차례 반복해서 강조하셨습니다. 눅6:47-49에 보면 "내게 나아와 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마다 누구와 같은 것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하시고는 "집을 짓되 깊이 파고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사람과 같다" 하셨고, "듣고 행하지 않는 자는 주추 없이 흙 위에 집 지은 사람과 같다"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만 하고 행하지 않는 사람은 멸망할 삶의 길을 가는 어리석고 불쌍한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사람들만이 지혜롭고 영원히 안전하고 복된 삶의 길을 걷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여러 종류의 땅에 뿌려진 씨의 비유를 통해서는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라"(눅8:15)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천국비유의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사람들만이 천국을 소유하게 될 것이라는 가르침입니다.
또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보려고 찾아왔으나 많은 무리 때문에 예수님께 가까이 접근하지 못하고 밖에 서 있다는 말을 들으시고는 말씀하시기를 "내 어머니와 내 동생들은 곧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이 사람들이라" 하시기도 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사람들이 예수님의 가족이라 일컬음을 받고 하나님나라의 식구가 되는 영광을 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마지막 절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삶이 말씀을 듣기만 하고 행하지는 않는 삶이 아닌지를 냉철히 살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대림절 가운데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듣고 깨달아 안대로 행하기를 힘쓰는 것이 진정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바른 자세일 것입니다. 성탄절을 앞두고 특히 그동안 우리 각자의 마음 속에 품고 지냈던 모든 미움과 질시와 오해와 좋지 않은 감정과 독기 서린 말들을 깨끗이 걷어냄으로써 우리의 마음이 청소되고 수리되기를 바랍니다. 그 청소되고 수리된 마음에 또 다시 더 악하고 독한 생각과 감정과 의지와 언어가 들어차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신령한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성령의 은사로 가득 채워주시기를 기원합니다.
출처/이수영목사 설교 중에서